Special Report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은 급격히 높아졌다. 김정은 3대 세습정권이 연착륙할지, 아니면 붕괴될지 여부가 세계의 관심사다. 내로라하는 북한 전문가들이 내놓는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급작스럽게 붕괴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불과 몇 달 전까진 아무도 없었다.
김정은 체제는 리비아나 이집트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다. 정보도 없고 접근도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측을 하나로만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미래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정할 수 있다. 그 시나리오엔 최상도, 최악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대비한 최악은 최악이 아니다. 대비하지 않은 것이야 말로 진정한 최악이다.
북한은 사실 여러모로 보아 한국 기업에 충분히 기회가 될 수 있는 땅이다. 수십 년간의 경제난으로 북한 산업은 거의 몰락했다.(그림1) 반면 근로자들의 상대적 교육수준은 비교적 높고 우수한 산업기술자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 경제 및 자원 강대국들을 끼고 있는 지정학적인 이점과 자체의 풍부한 지하자원 등까지 갖추고 있어 발전 추동력만 있다면 폐허에서 고도성장으로 전환될 조건은 충분하다. 반면 불안정한 미래, 반기업적 체제, 폐쇄적 대외환경 등은 북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을 고도성장으로 이끌어 내고 그 흐름에 한국 기업들이 올라타는 것이 남북이 윈윈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면 한국 기업들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함과 동시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향후 미래를 여러 시나리오로 분석하고 각 시나리오별 한국 기업들의 대응전략과 북한 투자에 유망한 업종을 전망해본다. 산업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기 때문에 대북 식량지원이나 이산가족, 국군포로 문제, 문화교류 등 다른 남북 간 현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1) 몇 년 내 북한 점진적 개혁 유력
북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김정은 체제가 김일성·김정일 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노선을 견지하는 경우다. 한마디로 김정일 체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대외적으로는 핵문제를 내걸고 미국과 ‘살라미’식 협상을 통해 시간을 벌고 양보를 얻어내면서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독재로 불만을 짓누르는 것이다. 정책의 연속성을 고수하고 익숙한 일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해 한 달 남짓 지난 현재까지 북한의 정책은 김정일 노선 그대로 따라하기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에는 아주 심각한 허점이 있다. 경제적 파국을 더욱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주민들의 불만도 강제로 짓누를 수 있고 미국과의 협상도 이어질 수 있지만 이것이 계속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북한 경제를 회생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를 풀지 못하면 주민들의 불만은 계속 고조될 것이며 불만이 점차 간부층까지 전염된다면 김정은의 통치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그래도 새 지도자가 올라섰으니 혹시나’ 하는 심리로 김정은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 소식통들이 전해오는 민심으로 봤을 때 그 인내심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주민들이 완전히 등을 돌리면 결국 체제를 지탱하는 것은 공포통치다. 공포통치의 미래는 암울하다. 말기 암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처럼 ‘과연 얼마나 버틸까’ 하는 카운트다운일 뿐이다.
경제 회생이 유일한 출구
김정은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 회생밖에 없다. 경제 회생을 하려면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시장 친화적 경제개혁과 개방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시나리오다. 김정은은 당분간 안정성에 위주를 둔 첫 번째 시나리오를 고집하겠지만 결국은 두 번째 시나리오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언제 얼마큼 바뀌는가이다. 개인적으로는 주민들의 민심 이반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고려하면 개혁 조치는 이르면 1년 안, 길어도 2∼3년 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과 개방의 방식과 폭도 중요하다. 김정은으로서는 급격한 개혁개방은 체제의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속도를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내부 개혁조치가 대외 개방보다는 훨씬 위험이 적기 때문에 이왕이면 개방보다는 개혁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에게는 ‘우리도 변하는 구나’ 하는 환상만 심어준다면 불만을 상당 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
경제특구 ‘올인’ 유력
김정은이 체제도 지키면서 가장 손쉽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일은 우선 경제특구 중심의 발전이다. 특구를 앞세운 경제발전 전략은 이미 중국에서 검증이 된 모델이기도 하다. 특구는 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과 동시에 전국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 1월16일 김정일 사망 후 북한 고위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외신과 만난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김정은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개혁 사례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시나리오의 전망을 뒷받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올 초 북한 실세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이광근 전 무역상이 북한의 해외투자 유치 창구인 북한 합영투자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돼 베이징에 파견됐다.
김정은에게는 당면하게 현재 추진 중인 황금평 특구와 나진선봉 특구의 성공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이 특구에 진출하는 기업은 거의 없지만 특구가 김정은 체제 유지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곧 파격적인 조건을 거듭 내걸며 기업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전제로 한국의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성공단에 비견되는 다른 경제공단을 만들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특구 개발이 과연 북한 민심을 얻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점이다. 특구가 아무리 성공적으로 추진된다 하더라도 투자 기업들이 본격적인 생산에 착수해 북한 주민들이 피부로 그 효과를 느끼기까지 최소한 5년 이상은 걸릴 수밖에 없다. 또 특구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다른 지방 주민들의 생활격차는 또 다른 불만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예상외로 주민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되면 북한은 특구의 성공을 기다리기 전에 내부 개혁을 병행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 경우 북한이 가장 본받을 수 있는 국가는 중국과 함께 쿠바다.
쿠바 모델이 매력적
특히 30년 전의 중국 개혁 모델보다는 최근 미국의 제재 속에서 일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 중인 쿠바가 북한이 본받기엔 더 매력적이다.
장성택의 매형 전영진이 올 초 쿠바에 대사로 파견된 것도 쿠바 개혁 상황을 직접 보고 장성택에게 전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 전영진은 1980년대 중반 개혁개방을 주장하다 6년 동안 지방에서 노동자로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우선 단행할 수 있는 개혁은 협동농장 토지 임대, 소규모 국영기업 경영자율화, 자영업 제한적 허용, 배급제 폐지와 사유재산 거래 허용 등이다. 참고로 쿠바는 이달 초 통치자의 10년 이상 집권을 금하는 등의 정치개혁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북한은 당분간 정치개혁은 생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개혁만 하더라도 사실 하나하나가 북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개혁조치이지만 북한에 전혀 없는 형태는 아니다. 이미 북한 각지에서는 암암리에 농민들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있고 노동자 여러 명을 고용한 자영업도 존재하며 주택과 같은 사유재산도 돈으로 팔고 사고 있다. 배급제도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결국 이미 존재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만 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정도의 개혁까지는 북한 당국이 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 체제의 위기는 개혁 조치하에 전국이 합법적인 돈벌이에 빠져들면 전통적으로 체제를 지탱하고 있던 주민 통제 및 감시 조직들인 군과 노동당, 보위부, 보안서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능력에 따라 돈을 버는 세상이 됐는데 누가 10년씩 군에 가서 청춘을 바치려 할 것이며, 누가 체제 보위를 위해 뇌물을 마다할 것인가.
김정은 체제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개혁을 하지 않고 버티면 민심이반이 걷잡을 수 없게 돼 대량 탈북과 같은 또 다른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혁은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가 된다. 김정은 체제가 체제의 명운을 건 이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 점치기 힘들다. 바로 코앞에 다가온 한국의 총선 대선 전망도 모르는데 하물며 몇 년 뒤 북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회원 가입만 해도, DBR 월정액 서비스 첫 달 무료!
15,000여 건의 DBR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