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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고전 읽기

‘의도된 전략’보다 더 강력한 ‘우발적 전략’

이동현 | 87호 (2011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고전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캐나다 맥길대의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 교수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경영 석학 중 한 명이다. 그는 경영자, 전략경영, 조직, 경영교육 등 경영 분야의 다양한 주제들을 탐구해왔고 무려 15권이 넘는 저서와 150편에 가까운 논문들을 발표했다. 하지만 민츠버그의 저작 중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의 업적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주류 미디어의 주목을 끌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주장이 상당히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1994년 출간한 <전략계획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Strategic Planning)>는 주류 전략학자들이 주장했던 내용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전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전략계획이 기업 경영의 중요한 기능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로 추정된다. 1973년과 1979년 두 번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기업들은 불확실한 환경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인식했고 전략계획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체계적인 자료수집과 정교한 분석을 위해 전문 스태프를 선발했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전략 수립을 위한 각종 조사와 분석, 보고 작업을 맡았다.
 
문제는 전략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책임자들을 보좌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전략 스태프가 고급 정보들을 독점하면서 전략을 결정하는 존재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본래 전략 스태프는 복잡한 경영 환경 속에서 보다 정교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대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략 스태프가 복잡한 정보와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는 전략을 마련하면 책임자들이 그저 보고받고 승인만 하는 존재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오죽했으면 GE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잭 웰치는 취임하자마자 두꺼운 보고서만 양산하는 스태프 부서들을 없애버렸을까!
 
기존 전략계획의 문제점 중 하나는 분석기법과 계량적인 자료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다. 물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한 분석을 했을 때 좋은 결과물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분석을 강조하다 보면 더 중요한 현장 경험이나 통찰력을 무시할 가능성도 크다. 수많은 분석 장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라는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는 사업계획이 허다하다. 사업에 대한 경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현장 감각,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 등이 모두 전략계획에 반영돼야 할 주요한 재료들인데도 객관적 자료와 정교한 분석이라는 미명하에 이것들이 제외되는 것이다.
 
사실 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는 집계된 계량적 자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고객의 얼굴 표정, 공장 내 분위기, 정부 관리의 논조 같은 소프트한 자료도 경영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다. 특히 많은 정보에 시달리고 정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영자들을 위해 정보를 집약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자료가 너무 간략하게 요약되고 있다. 간결하게 요약된 자료는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쉬울지는 몰라도 자료가 집계되고 정리되는 과정에서 핵심 정보가 빠지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중요한 정보가 너무 늦게 전달돼 정작 전략 수립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경우도 있다. 정보가 분명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트렌드, 사건, 성과 등이 사실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또 이런 사실들이 집계돼 보고서로 작성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경쟁자들이 중요한 고객들을 빼앗는 동안 이런 사실이 분명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주요 고객이 어느 경쟁자와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는 오늘의 소문과, 사업 손실을 입게 될 내일의 사실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경영자가 전자에 근거해서 행동하기를 주저하겠는가?
 
정교한 분석 장표는 문제를 확인시켜주는 데 불과하다.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정보는 현장에서 얻은 소프트한 것들이다. 기분 상한 어느 고객의 말 한 마디가 수천 쪽의 시장조사 자료보다 더 가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분석 자료는 경영자들로 하여금 지적인 측면을 자극할지 모르나 경영자들에게 지혜를 갖게 해주는 자료는 오히려 소프트한 자료들이다.
 
‘전략 결정 자체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활동이고 모든 창조적 활동이 그러하듯 전략 결정도 완벽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활동이다. 사실 많은 기업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보면 사전의 완벽한 분석과 이에 근거한 의도된 전략(intended strategy)보다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한 우발적인 전략(emergent strategy)이 더 큰 역할을 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민츠버그는 합리성과 논리성으로 포장된 분석 중심의 사고를 경계했다. 분석이 종합(synthesis)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즉, 아무리 분석을 엄격하게 하더라도 그것을 보다 창조적으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전략 계획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의미다.
 
사업과 전략을 책임지는 경영자에게 우발적이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설득력이 없지 않다. 3M의 대히트 제품인 포스트잇은 한 연구원의 엉뚱한 발상이 없었다면 아예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호텔 체인으로 유명한 메리어트는 본래 레스토랑 사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이 비행기에서 먹기 위해 음식을 구입하는 것을 보고 항공사에 음식을 납품하는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자료 수집이나 분석이 불필요하고 그저 운이나 바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전략이 구조화된 공식적 프로세스를 통해서만 개발될 수 있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민츠버그 교수의 주장이다. 이 점에서 기존 전략 계획의 또 다른 중대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환경이 안정적이거나 적어도 변화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을 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잡하고 불확실한 환경 변화 속에서 모든 결과를 사전적인 분석 작업을 통해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는 분명히 무리다.
 
오히려 경영자들에게는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사업 여건이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빠른 학습과 이에 따른 계획의 유연한 수정이다. 최근 스마트폰 열풍 속에서 벌어진 노키아의 급격한 추락과 삼성전자의 선전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고 예측 가능성이 낮을 때는 사전적인 분석을 통해 마련한 의도된 전략보다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한 우발적인 전략이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끝으로 주류 전략학파들은 전략 결정을 실제 기업의 운영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 즉, 조직에서 소수의 나이 든 중요한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행동하라는 식이다. 민츠버그는 이를 분리의 오류라고 말한다.
 
‘잭 웰치나 스티브 잡스처럼 탁월한 경영자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항상 바쁜 일상에 시달리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들을 때로는 쉽게, 때로는 얼떨결에 내리는 경우가 많다. 뛰어난 전략가는 자잘한 일상의 업무로부터 물러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일상 업무에 열중하면서 그로부터 전략적 메시지나 의미를 잘 추출하는 사람이다.’
 
전략을 거창한 비전이나 큰 그림, 미래의 방향성으로 규정하고 현실에 기반을 둔 세부적인 운영과는 별도로 전략이 존재한다는 발상 자체가 전략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오랫동안 주류 전략학자들은 전략의 수립과 실행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략을 수립하면 큰 문제없이 실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보다 실천이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전략을 최고경영자 혹은 고위 임원들의 몫으로만 한정한다면 전략에 관한 현장 직원들의 무관심은 심화할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고 경쟁자와 부딪히는 일선 직원들이 화려한 분석 기법을 모르고 세련된 발표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전략 수립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전략을 실행할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dhlee67@catholic.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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