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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창조적 벤치마킹, 혁신과 성장의 원동력

김유영 | 66호 (2010년 10월 Issue 1)


다른 기업의 장점과 단점을 연구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벤치마킹은
기업 현장에서 가장 자주 활용되는 경영 기법 중 하나입니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들은 벤치마킹 기법만 잘 활용해도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선도적인 기업의 임직원들은 해외 출장 길에 들렀던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얻어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비판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추종은
고유의 기업 문화와 충돌을 일으켜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은 한국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벤치마킹 우수 사례와 방법론, 창의적 사고 도출 기법 등을 집약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로 벤치마킹 툴의 가치를 재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
 
 

구성연 <사탕시리즈 v05>, 2010
사진작가 구성연 씨는 일상의 사물에 자신의 상상을 덧입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정물 사진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사탕과 꽃은 황홀하면서도 한시적이다. 꽃이 피면 눈부시고 아름답다. 하지만 절정에 달하는 순간 이내 지고 만다. 사탕 역시 달콤하지만 결국 혀끝에서 녹아버린다. 사탕과 꽃 모두 인간의 욕망과 연결된다. 구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의 시대적 산물을 일상적 사물인 사탕과 꽃을 이용한 새로운 맥락(context)으로 연결해 제3의 기호를 만들어냈다. 사탕 시리즈의 ‘사탕 꽃’은 현존하는 사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와 동시에 현존하는 어떤 사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시뮬라크라(simulacra·순간 생성됐다가 사라지는 자기 동질성이 없는 복제)이기도 하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의 주제인 ‘벤치마킹’의 핵심이 과거에 이질적으로 생각됐던 요소를 새로운 맥락에서 결합하는 창조적 모방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을 감상해볼 만하다.
작품소개: 사탕시리즈 v05, 108x150cm, light jet c-print, 2010
 
 

한국 기업의 초석을 닦은 것은 벤치마킹이다. 산업화 초기 한국 기업들은 저마다 외국으로 건너가 직·간접적으로 선진 기술과 경영 방식을 배웠다. 국내 한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가 벤치마킹한 사례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현지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며 밤마다 숙소에서 각자 보고 듣고 경험한 기술들을 짜맞춰 국산 자동차를 만들었다. 전자회사도 일본 제품을 분해해보며 기술력을 축적했다.
 
이후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해지면서 무조건 베끼는 방식의 벤치마킹에서 벗어나고 있다. 무비판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추종이 조직 갈등 등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다른 업종 벤치마킹을 통해 혁신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한국적 상황에 맞게 외부 아이디어를 변형하거나, 회사 내부 부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벤치마킹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마트, 현대카드, 포스코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1. 이마트
최근 이마트는 백화점의 패션 매장을 압축해 이마트에 선보였다. 이마트 성남점에 개설된 ‘스타일 마켓(Style Market)’이 대표적이다. 아디다스, 크록스, 리바이스, 버커루, 매긴나잇브릿지, 블루독 등 40여 개의 백화점 브랜드가 입점했다. 동시에 제조 직매형 의류(SPA)를 ‘데이즈(daiz)’라는 자체 브랜드(PL)로 내놓고 있다. 자라(ZARA)나 유니클로처럼 4주에 한 번씩 상품을 선보인다. 신세계의 패션 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널(SI)이 남성, 여성, 아동복 등 의류 370여 종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디자인 한 것. 데이즈는 대형 할인점의 의류가 트렌디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깬 시도다.
 
신세계는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형 할인점인 타겟(Target)을 벤치마킹했다. 타겟은 국내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쿨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타겟이 내건 구호는 ‘칩 시크(Cheap Chic·싸고 세련되게)’. 할인점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α’, 즉 세련됐다는 가치(value)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 파슨즈디자인스쿨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인 아이작 미즈라히(Issac Mizrahi)가 디자인한 의류 제품을 판매한다. 이를 통해 합리적 가격에 명품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했다.
 
이마트는 타겟을 벤치마킹하면서 ‘대형 할인점= 싼 브랜드’라는 인식을 불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타겟의 기본 아이디어는 취하되 구체적인 방법은 한국의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 타겟은 디자이너와 손잡았지만 이마트는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유치했고, 신세계에 패션 계열사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의류 디자인을 신세계인터내셔널에 맡기기도 했다.
 

한국 여건 감안한 선별적 벤치마킹
이마트의 벤치마킹은 성장 단계에 따라 4단계로 나뉜다. 1993년 첫 매장(창동점)을 개설할 즈음인 1단계 때는 월마트의 창고형 매장을 벤치마킹했다. 당시 신세계는 백화점과 일반 슈퍼마켓의 성장세가 정체되는 시장 환경에서 신성장 동력 사업의 일환으로 기업형 유통 채널 비중을 키우기로 했다. 이마트는 높은 선반에 대용량 제품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월마트의 방식을 창동점에 그대로 적용했다. 고객들은 셀프 서비스 형식으로 물건을 갖고 갔다. 고객들은 많이 싸게 파는 새로운 방식에 신선함을 느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한국 정서와 다른 판매 방식에 소비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제품 설명이나 안내 등의 서비스가 없다는 점에 소비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낯선 방식이 불편함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마트는 1996년 2단계(12번째 매장, 충북 청주점부터) 할인 매장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소비 행태 및 정서가 비슷한 일본의 할인점인 이토요가토(Ito Yokado)를 중점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이토요가토는 동양인의 식습관에 맞게 야채 과일 채소 등 신선 식품에 주력했다. 또 시식 행사도 벌이고 전통시장처럼 박수치면서 물건을 판매했다. 이마트는 이를 적용했다. 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해 신선식품의 비중을 늘려 공산품을 주로 취급했던 월마트와 차별화했다. 천장 마감도 하고 인테리어도 고급화했다. 월마트형 매장은 창고처럼 천장 마감을 하지 않아 위에서 때로 먼지가 떨어졌다. 하지만 신선식품을 판매하려면 위생에 신경 써야 했다. 식품 코너를 늘리면서 시식행사도 도입했고, 할인점 위치도 교외가 아닌 도심을 택했다. 판매 단위 용량도 과거 평균 10개에서 2단계부터는 평균 5개로 줄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후 이마트의 초기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월마트가 1998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철수했다. 반면 이마트는 연 매출 10조778억 원(2009년 기준)으로 성장했고 한국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사례는 벤치마킹을 해당 상황에 가장 맞는 최적화 전략(optimization alignment)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벤치마킹 대상 대폭 확대
이마트는 이후 3세대 점포(52번째 매장 안산 고잔점부터)를 개설할 때부터 영국 테스코(Tesco)에 주목했다. 단순한 쇼핑센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설정한 테스코가 더 큰 고객가치를 준다는 판단에서다. 테스코는 규모와 주력 판매 제품에 따라 4단계로 구분했는데 신세계는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하이퍼(Hyper)’를 눈여겨봤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마트는 할인점 건물에 문화센터나 약국, 치과를 입점시켰다. 또 프랑스의 오샹(Auchan)에도 관심을 가졌다. 고급형 할인점으로 생선을 판매하고 조리하는 오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신세계는 음식 코너에 베이커리와 활어 판매점을 마련했다.
 
4단계부터는 벤치마킹 대상이 더 많아졌다. 소비자들의 기호는 고급화하는 동시에 다양화하고 있는 데다 국내에 할인점이 많아져 경쟁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벤치마킹을 하러 다녔다. 또 각 분야별로 잘하는 대형 할인점들을 골라 혼합하는 전략을 강하게 썼다.
 
대표적인 게 자체 브랜드(PL, Private Label) 전략이다. 가격 경쟁력을 낮추는 게 대형 할인점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다만 PL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포지셔닝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PL 종주국’ 영국을 벤치마킹하러 갔다. 테스코나 영국 세인즈버리(Sainsbury), 프랑스 챔피온(Champion)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약 60% 정도는 PL제품이다. 국내 대형 할인점의 제품이 10% 안팎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수준이다. 특히 테스코는 식료품 매출의 절반 이상이 PB 제품이었고, 휴지 우유 옷 통조림 과일음료는 물론 심지어 콜라까지도 있었다. 특히 눈 여겨 봤던 점은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해서 가격을 낮췄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티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PL이라도 일부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테스코는 브랜드를 세분화해서 PL 제품 중 프리미엄 급에는 테스코 파이니스트(Tesco Finest)란 명칭을 붙였다. 중간 제품은 테스코 노멀(Tesco Normal), 가장 저렴한 제품에는 테스코 밸류(Tesco Value)란 브랜드를 달았다.
 
이마트도 PL브랜드가 있었지만 일관성이 없었다. 예컨대 휴지통이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와 패션이 추구하는 브랜드 가치는 확연히 달랐음에도 같은 브랜드를 붙였다. 또 영국 등 유럽에서는 PB(Private Brand)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나 로열티가 강했지만 한국에서는 PL브랜드 파워도 약했다. 또 신세계는 ‘세인즈버리 와인’이나 ‘막스앤드스펜서 샌드위치’처럼 킬러 카테고리(killer category)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마트는 브랜드 전략을 대거 수정했다. 이마트는 기존 PL 브랜드를 베스트(BEST)-이마트(E-MART)-세이브(SAVE) 등 3개 계층으로 재편했다. 간결한 브랜드 네이밍으로 상품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PL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공략 대상 고객층도 다양화했다. 현재 이마트의 PL 제품은 19개 브랜드 1만8000개로 늘었다. 브랜드 고급화, 신뢰성 확보 등이 향후 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마트는 2단계 벤치마킹 때부터 받아들였던 신선식품 강화 전략도 점점 진화시켜갔다. 특히 올해를 신선식품 EDLP(Every Day Low Price)의 해로 정하고, 가장 많이 팔리는 신선식품 100가지를 골라 연중 최저가로 판매한다. 온라인 쇼핑몰인 이마트 몰에서도 신선식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마트 몰 전체 매출 중 신선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8월 기준 33%에 달한다.
 
꼼꼼한 예습은 필수
이마트의 벤치마킹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최고경영자(CEO)인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매년 한 차례씩 벤치마킹 출장을 떠난다. 가기 전에는 사전 자료를 꼼꼼하게 준비해서 읽는다. 자료만 200쪽이 넘을 정도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 ‘예습’을 미리 해둬야 벤치마킹 포인트도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벤치마킹 프로젝트에 한국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항상 현지 업체에 근무했던 임원이나 현지에서 협회장 등을 맡고 있는 전문가에게 성공 요인 분석 등의 컨설팅을 맡긴다. 물론 현지에서 벤치마킹 대상 할인점 안내 및 설명도 이들에게 부탁한다. 돌아와서는 실무자가 똑같은 곳으로 벤치마킹 출장을 떠난다. 김민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팀장은 “벤치마킹 전략에 대한 전 직원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벤치마킹 프로젝트를 훨씬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 현대카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현대카드 본사 사옥 내 레스토랑 ‘더 박스(The Box)’. 이곳 벽에는 10인치 안팎의 LCD 화면 60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일명 ‘통곡의 벽’. 스크린에는 문장이 연속해서 나간다. ‘○○지점 담당자는 전화만 돌린다. 마음에 안 든다’ ‘현대카드, 그딴 식으로 영업하냐’ 등의 험악한 문장들이 주로 나온다. 심지어 욕설까지 등장한다. 잘하는 것을 대놓고 알리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이 통곡의 벽은 현대카드 임원들이 뉴욕타임스 본사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왔다. 뉴욕타임스를 방문한 현대카드 임원들은 이 회사 사옥에 설치된 모니터에 독자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것을 보았다. 곧바로 “우리도 해보자”고 무릎을 쳤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직원들이 자만하지 말고, 고객 목소리에 귀에 기울이라는 뜻에서 뉴욕타임스의 실시간 댓글 모니터를 벤치마킹했다”고 말한다.
 
카드회사지만 신문사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개방적인 자세는 현대카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2001년 말 현대카드는 시장 점유율(취급액 기준) 1.8%. 카드사 중 사실상 꼴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3년에는 카드대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카드는 그룹 내에서도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그랬던 현대카드가 현재 점유율 10.9%(2009년 기준)로 전 업계 카드사 중 삼성카드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현대카드의 성장에는 신용카드 회사가 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한 것이 주효했다. 다른 카드사와 전혀 다른 느낌의 광고를 내보내고, 포인트를 선지급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신용카드에 디자인을 도입하기도 하고 대형 콘서트와 테니스 대회를 열었다.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 문화부터 광고, 마케팅, 인사 제도 등에 ‘현대카드스러움’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역발상의 통찰력은 인사이트 투어에서
현대카드스러움의 아이디어는 회사 바깥에서 얻어진다고 현대카드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적은 것을 관찰하고, 이를 현대카드의 문화에 맞게 이식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취하는 작업을 현대카드 내부에서는 ‘인사이트 투어(Insight Tour)’라고 불린다. 현대카드의 각 단위 조직들은 중요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선정해 인사이트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인사이트 투어는 정태영 사장과 주요 임원들이 직접 참여한다. 1년에 몇 회라고 한정돼 있지 않다. 각 부서마다 필요할 때 진행한다. 기간은 대개 7∼10일 정도로 장소는 미국이나 유럽. 하지만 금융회사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대신 훌륭한 기업 문화를 만들었거나 새로운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는 기업은 물론 미술관, 공연장, 디자인 회사, 심지어 자동차 회사의 박물관, 와인 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카드회사와 관계없는 곳을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카드는 카드회사라는 업에 대한 정의를 경쟁사와 다르게 내렸기 때문이다. 카드회사는 고객이 결제하는 카드만 취급하는 곳이 아닌,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새롭게 정의했다. 이미영 현대카드 마케팅본부 브랜드 실장(이사)은 “당연히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서비스에 대한 통찰을 얻어야 한다. 인사이트 투어는 고객의 삶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휴사부터 숙소까지 ‘벤치마킹 열공’
인사이트 투어는 일정 내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세밀하게 계획된다. 숙소를 선정하는 기준은 몇 개의 ‘별’이 아니라 ‘누가 디자인’ 했는지다. 글로벌 호텔 체인은 가지 않는다. 천편일률적으로(cookie-cutter) 디자인 됐기 때문에 영감을 얻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또 잡지사 디자인회사 등 글로벌 제휴사를 방문, 벤치마킹과 동시에 제휴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 추가 사업 기회도 창출한다.
 
최근 인사이트 투어의 뉴욕 일정에서는 산업 디자인계의 거장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더 스탠더드 호텔(The Standard Hotel)을 숙소로 정했다. 필립 스탁은 현대카드가 글로벌 제휴사인 세계적인 예술서적 업체 타셴의 팝업스토어를 만들 때 모듈을 디자인했다. 호텔 객실에 들어서면 천장부터 바닥까지 통유리로 돼 있어 바깥에서도 안이 보인다. 뉴욕에서 오래된 기찻길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허드슨 강의 경관이 보인다. 전설적인 호텔리어 경영자 안드레 발라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호텔은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인 타셴과 팝업스토어를 만들었을 때 필립 스탁이 팝업스토어의 모듈을 디자인했다.
현대카드는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와 제휴를 맺고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판매한다. 같은 인사이트 투어에서 잡지사를 방문하면서 역발상 사고를 체득했다. 흔히 고부가가치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살림조차 TV쇼로 만들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현대카드와 제휴 관계인 레스토랑 평점업체 자가트(ZAGAT)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미슐랭 가이드는 소수의 전문가가 레스토랑의 등급을 매긴다면 ZAGAT는 해당 레스토랑을 직접 가본 일반인이 점수를 준다. 무작위로 평점을 매기는 게 아니라 30∼40년간 쌓인 노하우로 일반인들의 평가 결과를 검증, 고급 레스토랑 등급은 전문가만이 매길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깼다. 현대카드는 인사이트 투어에서 경험한 ZAGAT를 바탕으로G20정상회의 참석자에게 서울 시내 음식점 안내 책자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고객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주고 현대카드의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고객 대상 서비스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접목했다. 인천공항 내 현대카드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라운지에는 특이한 자판기가 있다. 건전지나 콘센트 등 여행에 필요하지만 깜빡 하기 쉬운 물품을 판매한다. ‘자판기= 싸구려 일회용품을 파는 기계’라는 통념을 뒤집고 고급스럽게 포장했다. 이는 인사이트 투어 중 자판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일하기 좋은 직장, 사옥은 벤치마킹의 집합체
사옥의 1층 ‘더 박스’에는 와인 자판기가 있다. 전용 카드를 충전한 뒤 카드로 결제해 와인잔을 갖다 대고 와인을 선택하면 기계에서 와인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와인바 테이블은 터치 스크린 모니터로 돼 있어서 테이블 앞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와인의 포도 품종과 생산 연도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시 인사이트 트립의 결과물이다. 뉴욕 타임워너 빌딩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CLO 와인바의 모델을 그대로 도입해온 것이다.
 

뿐만 아니다. 더 박스 건너편에는 오디토리엄이 있다. 이 역시 미국 뉴욕 링컨센터의 로즈홀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센트럴 파크 옆에 있는 링컨센터 공연장은 밀폐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연주자들의 뒤쪽에 있는 벽을 아예 통유리를 만들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은 연주를 감상하면서 연주자들의 뒤로 보이는 공원의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착안해 1층의 오디토리엄 벽을 유리로 만들었다. 직원들은 이곳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거리의 광경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조직 문화와의 적합성 고려한 벤치마킹
현대카드는 지난해 혼다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장실을 없애고 임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벤치마킹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 문화에서 사장실을 없애는 것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했다. 대신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마켓 플레이스’라는 임원 회의를 10층 강당에서 개최했다. 모든 임원이 노트북을 들고 이날 오후 1시 반부터 6까지 같이 근무한다. 오프라인 스킨십은 기본이고 강력한 의사 결정체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어떤 주제로 누구라도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며 즉석 회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3. 포스코
포스코는 2006년 5월부터 생산 현장에서 식스시그마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QSS(Quick Six Sigma)’ 활동을 펼쳤다. 일상적인 낭비를 없애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 일본 기업의 정리(Seiri), 정돈(Seiton), 청소(Seiso), 청결(Seiketz), 습관화(Sitsuke)의 앞 글자를 따서, 정리 정돈을 통해 쾌적한 작업 환경에서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일본 도요타나 국내 기업들을 벤치마킹했다. 약 2년이 지나자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는 등 QSS활동이 본 궤도에 올랐다. 따라서 더 이상의 벤치마킹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QSS 활동으로 더 큰 성과를 올리기 위해 포스코는 사내(社內) 벤치마킹을 실시했다. 2008년 8월부터는 모범적인 작업장을 내부 투어 코스로 만들어 다른 부문 직원들이 현장 학습을 하게 했다.
 
대표적인 사내 벤치마킹 대상은 선강(銑鋼) 부문이었다. 선강 부문은 석탄을 이용해 쇳물 생산에 필요한 열원인 코크스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가스를 재가공해 이를 연료로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선강 공장은 석탄을 옮기고 배합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가루가 쌓여 탄광 막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먼지가 많아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선강 부문 직원들은 QSS활동을 벌이면서 나무심기, 집진기 장착, 공장 내 도로 물 뿌리기, 야적된 석탄 위에 경화제 뿌리기 등의 활동을 통해 매연과 먼지를 줄였다. 선강 부문의 단위 면적(1㎥)당 미세먼지 농도는 과거 2000∼3000μg에 이르렀으나 QSS활동을 통해 2007년 80μg으로, 지난해 말 45μg으로 낮아졌다. 도심 지역의 미세먼지(평균 65 μg)보다 낮아진 셈이다.
 
이런 성공 사례는 후판 제조공정 직원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후판 제조공정은 상대적으로 먼지가 별로 없어서 오히려 청정 활동에 소홀했다. 후판 제조 공장은 철판을 1000∼1200℃의 높은 온도로 열처리를 한 뒤 재빨리 물을 뿌려 내부 강도를 좋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담금질이다. 문제는 물을 부은 뒤 처리 과정이었다. 물을 부으면 기름이 섞인 채 지하에 고여 썩었다. 물이 고인 곳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는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 직원은 혼자서 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 물이 한 쪽으로 흐르게 했다. 기계도 닦고 조였다. 결국 고인 물은 거의 없어졌고 먼지가 줄어들어 제품 불량률이 낮아졌다.
 
학습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사내 벤치마킹
일련의 사내 벤치마킹 활동은 학습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됐다. 사내 벤치마킹 투어가 의무는 아니지만, 이 투어를 마치면 일정 학점을 줘서 나중에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쌓게 했다. 또 실행에 초점을 뒀다. 이종훈 포스코 포항혁신지원그룹 팀장은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손”이라며 “그만큼 실행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서는 머리(생각)는 바꿀 수 있지만, 벤치마킹은 가슴까지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모범 현장을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의 작업장에 돌아갔을 때 응용을 하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포스코는 벤치마킹을 통한 혁신 활동을 지표화하지는 않았다. 절감액 등을 지표화하면 성과를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제철소장이 바뀌면 혁신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신임 소장이 사내 벤치마킹 활동의 필요성에 공감해야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진장훈(25·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학과3)씨와 김현경(23·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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