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닌 가치 있는 정보나 지식을 서슴지 않고 남에게 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이 제공한 정보나 지식을 습득한 상대방이 늘어갈수록, 자신만의 독특한 이점이 사라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 기업의 핵심 기술만이 아니라, 사내에서 기획된 대부분의 문서들에는 ‘대외비’라는 제한이 걸려 있다. 방문자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기업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상식을 무시하는 기업 경영 사례를 최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기술을 보유한 구글은 자사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를 모든 제조업체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단지 무료 사용만 가능한 게 아니다. 각 제조업체들은 자사의 하드웨어를 위해 안드로이드를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으며 구글은 이를 위한 개발도구까지 공짜로 제공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한 ‘오픈소스(open source)’는 누구나 마음대로 이용하고 수정할 수 있는 공개 소프트웨어들을 수십만 개 이상 생산해냈다. IBM, 휴렛팩커드(HP), SAP 등을 포함한 상당수 기업들도 모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거나 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핵심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공개하는 기업 경영 방식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즈니스 전략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전략을 우리 산업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존 비즈니스 전략들이 공유해온 ‘폐쇄적 가치관’의 장단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폐쇄적 경쟁 전략의 가치와 한계
기업 경영을 잘 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수십 년간 전략경영 분야의 중심적인 시각으로 자리잡은 ‘자원기반관점(resource-based view)’에 따르면, 기업은 자신만의 독특한 핵심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독특한 핵심 역량을 구축한다는 것은 경쟁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기술력이나 지식, 또는 관리 역량을 보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특한 핵심 역량을 보유한 기업은 경쟁자와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경쟁 방식을 구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독특한 핵심 역량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 나만의 고유 역량을 구축했더라도 경쟁 기업이 이를 쉽게 모방해버리면 그들과의 차별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서비스 업체가 혁신적인 신상품을 출시하더라도 경쟁자가 쉽게 모방해버리면 그 성과를 지속시키기 힘들다. 따라서 기업이 구축한 핵심 역량은 경쟁 기업의 모방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역량과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가 경쟁 기업에 노출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핵심 역량을 구축하라는 논리는 대체로 산업의 경계가 명확하고 경쟁 대상이 뚜렷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뚜렷한 경쟁 대상이 있을 때 경쟁에서 이기려면 ‘남보다 잘 하는 것’, 즉 상대적인 우위를 점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나의 지식이나 기술을 공개하는 것은 상대적인 우위를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 된다. 즉 경쟁 상대가 소수라면 나와 유사한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이들이 늘어나 경쟁은 좀 더 치열해지고, 성과는 좀 더 악화된다.
반면 산업 간 경계 자체가 무너지는 초경쟁(hyper-competition)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업 분류표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으려는 기업은 신제품의 시장 규모를 확대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 소비를 촉진시키는 다양한 보완재 시장의 성장과 대중적인 기술표준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때 나와 유사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는 협력자가 된다. 즉 경쟁 관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는 나와 유사한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이들은 더 이상 나에게 위협 요인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새로운 사업 구조를 함께 형성하는 동반자다.
지금은 익숙한 비즈니스 용어가 되어버린 ‘코피티션(co-petition)’ 역시 이와 유사한 상황을 가정한 개방형 경쟁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용어를 제안한 예일대의 네일버프 교수와 하버드대의 브랜던버거 교수는 새로운 시장의 형성과 성장을 위해 ‘윈-윈 게임(win-win game)’의 구조를 지니는 협력적 경쟁 방식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기업과의 공존 가능성을 배제하는 폐쇄적인 전략을 구사하면 시장 확대를 저해하고 업계 전체에 큰 타격을 주는 매우 격렬한 경쟁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오픈 시스템 전략의 등장
혁신적인 시장 개척을 위해, 소수의 동반자를 선정하고 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지니는 기업 간 협력은 예상만큼 쉽지 않으며, 협력 가능성을 소수로 한정하는 것보다 불특정 다수에게 열어두는 것이 훨씬 유리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지식이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공개해 다수의 협력자를 얻어내는 혁신 전략을 흔히 ‘오픈 시스템 전략(open system strategy)’이라고 부른다.(표1)
오픈 시스템 전략이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한 첫 사례는 이미 20년도 넘는 1980 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자바(Java)’라는 언어로 유명한 썬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는 자사의 핵심적인 네트워크 기술을 경쟁 기업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통해 소규모의 후발 업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제패했다. 당시 썬이 제공한 네트워크 기술은 워크스테이션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표준기술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썬은 워크스테이션 및 네트워크 산업의 기술 흐름을 주도했다. 당연히 썬이 제조한 워크스테이션은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자사 제품을 업계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핵심적인 기술을 공개함으로써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는 그 외에도 많다. 이제는 고전적인 사례로 인식되는 미쓰비시와 소니의 비디오 표준 경쟁도 오픈 시스템 전략의 힘을 잘 보여준다. 폐쇄적인 전략에 의해 자사의 베타방식 비디오를 보급하던 소니는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일본 내수 시장을 어느 정도 점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VHS 기술을 다수의 협력업체에 제공해 비디오의 보완재였던 수많은 콘텐츠 제조업체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결국 일본 내에서도 소니의 베타방식 비디오가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