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for CEO - 이계웅 할리데이비슨코리아 대표

로고를 문신하는 할리 고객들 그들에게 우리는 꿈과 열정을 판다

43호 (2009년 10월 Issue 2)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허름한 목조 건물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1903년은 포드자동차가 처음 나오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날렸던 해입니다. 

윌리엄 할리와 아더 데이비슨이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 현대적인 모터사이클의 원형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성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습니다. 1909년에는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의 트레이드마크인 ‘V-트윈’ 엔진을 개발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20년 할리데이비슨은 연간 2만8000대의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미국 최고의 모터사이클 회사가 됐습니다. 당시 이미 300여 개의 모터사이클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1, 2차 세계대전 때 군용 모터사이클을 납품하면서 최대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다 1950년대에 들어와 영국의 경쟁사들이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성능의 모터사이클을 내놓으면서 할리데이비슨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60년대에는 일본 회사들까지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에 진출하면서 위기가 심화됐습니다. 게다가 할리데이비슨의 브랜드 이미지마저 나빠졌습니다. 1947년 <라이프>지(
)에 실린 사진 때문이었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한 군인이 고향에 돌아와 만날 모터사이클만 타고 다니면서 술 마시고 깽판 부리는 사진이었어요. 그 후로도 패싸움하고, 마약을 운반하고, 혼성 섹스를 하는 등 나쁜 짓을 일삼는 깡패 영화에는 꼭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이지 라이더’입니다. 나쁜 짓을 할 땐 옆에 꼭 할리데이비슨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굳어졌죠. 반면 혼다는 야구 선수, 성직자, 가정주부 등 건실한 사람들이 모터사이클을 타는 그림을 싣고 ‘혼다를 타는 고객은 굉장히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웠습니다. 결국 할리데이비슨은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회사가 초토화돼 1969년 미국의 레저용품 회사인 AMF가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AMF는 모터사이클 전문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할리데이비슨의 시장점유율은 점점 추락했습니다. 그러다 AMF의 경영에 불만을 느끼던 임원 13명이 할리데이비슨을 다시 인수해 독립했습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할리데이비슨을 최고의 모터사이클 회사로 부활시키고 싶어 했죠. 이때부터 할리데이비슨은 모터사이클 하나만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는 문구를 내걸었습니다. 직원들이 티셔츠에 독수리 그림을 새기고 다닐 정도였죠.
 
1984년 할리데이비슨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에볼루션’이라는 엔진을 선보였습니다. 기존 엔진들의 크고 작은 결함들을 완벽하게 개선해 뛰어난 성능을 보인 엔진이었어요. 이 엔진이 라이더들의 신뢰를 얻어 할리데이비슨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광고 카피도 한몫했죠. ‘깡패 같은 사람들한테 고장 잘 나는 모터사이클을 팔 수 있겠니?’
 
2000년 드디어 할리데이비슨은 일본의 혼다와 야마하를 제치고 세계 1위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복귀했습니다. 1997∼2007년의 10년 동안 매출은 12.5%, 당기순이익은 18.3% 성장했습니다.
 

사랑하는 브랜드를 문신하다
할리데이비슨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것과 저희가 약속하는 것이 만나는 접점을 ‘브랜드’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과도 같은 모터사이클을 만듭니다. 우리가 V-트윈 엔진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것은 애초부터 최고의 엔진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고객은 할리데이비슨의 유전자가 옛날 그대로이길 원하고, 우리는 고객에게 바로 그 점을 약속드리는 것입니다.
 
할리데이비슨의 고객들은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고를 몸에 문신하고 다닙니다. 코카콜라나 소니는 할리데이비슨보다 브랜드 가치 총액이 훨씬 크지만 아무도 그들의 브랜드 로고를 몸에 새기진 않잖아요. 고객이 어떤 브랜드 로고를 자기 몸에 새기려면 3가지 요인이 필요합니다. 그 브랜드가 신비롭고, 감각적이고, 친숙해야죠. 우리나라에서는 문신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게 ‘용’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1위가 어머니와 관련한 것, 2위가 할리데이비슨 브랜드 로고라고 합니다.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 가격은 3000만 원 정도 합니다. 거기에 가죽 재킷과 각종 액세서리까지 판매해 매출의 20%가 여기서 나옵니다. 고객이 보통 3000만 원짜리 오토바이를 한 대 사면 이후 1년 동안 액세서리와 의류를 사는 데 600만 원 정도를 씁니다. 우리 고객들은 복장이 저마다 달라 아무리 헬멧을 뒤집어쓰고 가죽 재킷을 입어도 누가 누군지 티가 납니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비바람도 안 막아주고 에어컨도 없는 모터사이클에 그렇게 돈을 쓰다니 미쳤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느끼지 못하면 도저히 이해를 못하지요. ‘고객의 꿈을 실현해 드립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미션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터사이클로 고객에게 행복을 주고 고객의 꿈을 이뤄줍니다.
 

시골 동네에 모터사이클 100만 대가 모인 이유
1983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소유자들이 H.O.G.(Harley Owners Group)라는 동호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합니다. 특히 모터사이클 라이딩, 파티, 게임 등 다양한 행사를 하는 ‘H.O.G. 랠리’는 회원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지요. 우리는 평범한 고객을 점차 ‘로열 오너’로 키웁니다. 각 고객들이 지인들에게 자발적으로 할리데이비슨을 권유하다 보면 고구마 줄기 캐내듯 고객 수가 늘어납니다. 어떤 고등학교 동문 한 분이 할리데이비슨을 타면 나중엔 동문회 회원들이 단체로 타게 됩니다. 처음에 3만 명으로 시작한 H.O.G.는 현재 130개국에 100만 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1300명이 활동 중이죠. 한국에서는 강릉, 속초, 망상 등지에서 1000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줄지어 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5월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문을 연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용인점에서는 거의 매주 고객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파티를 잘 만드는 제 적성과도 맞아떨어지고요.
 
사실 H.O.G.는 단순히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늘리려고 만든 동호회가 절대 아닙니다. 그동안 부정적이던 할리데이비슨 이미지를 벗고 라이더들이 가족적으로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죠. 창립 100주년이던 2003년에는 전 세계에서 100만 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시골 동네인 밀워키에 모였습니다. 할리데이비슨은 고객이 모터사이클을 사기 전보다 사고 나서 마케팅 비용을 더 많이 쓰는 특이한 회사입니다. 책정된 마케팅 비용의 85% 정도를 판매 후에 씁니다. 이처럼 고객들과 각종 행사를 펼치기 위해서죠.
 
우리 고객들은 불경기에 직장에서 해고되고, 이혼당하고, 집까지 팔아야 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게 바로 자신이 타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할리데이비슨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분신 같은 존재죠. 그런 점에서 할리데이비슨의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 밝을 것입니다.
 
가슴으로 일하는 직원을 뽑는다
저는 학벌에 상관없이 그저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을 직원으로 뽑습니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모터사이클 마니아인 우리 고객들에게 어떻게 물건을 팔겠습니까.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과 머리로 일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할리데이비슨코리아에는 가슴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모터사이클 면허증이 있는 젊은 여성을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모터사이클을 잘 모르더라도 실력 있는 여성 직원을 뽑아놓으면 몇 년 뒤에 다들 모터사이클 마니아로 돌변한다는 사실입니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의 미션은 고객, 임직원, 본사, 한국 사회 등 4대 주체의 행복을 추구하고, 꾸준히 모터사이클 업계의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10가지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행복과 즐김, 정당함, 진실, 긍정적 사고, 약속 이행, 사랑, 상호 존중, 투명, 창조적 사고, 최선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가치 안에서만 행동한다면 모든 임직원이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요. 직원들은 입사 때부터 우리의 미션과 10가지 가치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아무리 영업을 잘하는 직원이라도 이 가치들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가족으로 치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이 중 하나라도 못 지키면 쫓겨나겠죠.
 
국내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외국인 선교사가 모터사이클을 처음으로 들여왔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소련군이 BMW 모터사이클을 국내에 가져왔고요. 저희 아버님은 모터사이클을 77종이나 타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자전거 선수셨던 아버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정부에서 모터사이클을 경매할 때 그걸 사셨습니다.
 
“제초기 엔진 소리만 들어도 피가 끓어”
아버님은 원래 불교 신자셨는데 1960년대에 한 영국인 신부님이 가톨릭으로 개종해야만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팔겠다고 하자, 모터사이클을 구입하고 다음 날 바로 가톨릭 신자가 되셨을 정도입니다. 이런 아버님의 영향으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녔습니다. 제 아들은 저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 대륙을 횡단했지요. 저는 아버지가 타시던 모터사이클을 물려받았고, 할리데이비슨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모터사이클을 아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대대로 물릴 가보입니다.
  
1996년부터 모터사이클 사업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저는 모터사이클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심지어 벌초할 때 쓰는 제초기의 2사이클 엔진 소리만 들어도 피가 끓습니다. ㈜대우의 멕시코 법인에서 근무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제 곧 불혹(不惑)인데 뭘 할까’ 고민했어요. 불혹이란 어떤 유혹에도 판단이 흔들리지 않아야 할 나이니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할리데이비슨 딜러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본사의 문을 두드렸고, 결국 1999년 할리데이비슨코리아를 설립했습니다.
 
제가 신처럼 여기던 리처드 티어링크 전 회장님이 은퇴하고서 2007년 한국에 왔다가 할리데이비슨코리아에 들러 제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할리데이비슨의 한국 딜러가 되기 위해 3년을 공들여 두드렸던 회사의 하늘 같은 전 회장님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다니! 정말 꿈은 이뤄진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저는 꿈을 향해 목숨 걸고 덤비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목숨을 바칠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요. ‘passion(열정)’의 원어는 ‘pain(고통)’입니다. 13세기의 종교학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passion’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기꺼이 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지금은 이 말을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의미로 많이 쓰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바칠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는 게 바로 ‘passion’이죠.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입니다. 대박이란 없습니다. ‘열정’이 있을 뿐입니다.
 
이계웅 대표는 볼리비아 라살(La Salle) 고등학교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1987년 ㈜대우에 입사해 섬유사업부와 해외사업팀 멕시코 법인에서 근무했다. 1999년 할리데이비슨코리아를 설립했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경영교육 전문기업 휴넷이 주최하는 CEO 포럼의 일부 강의를 요약해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이번 호에는 이계웅 할리데이비슨코리아 대표의 강의 ‘할리데이비슨의 꿈과 열정’을 전해 드립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31호 Data Privacy in Marketing 2021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