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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강부장 개조 프로젝트] “SWOT, ROI … 그게 도대체 뭐야?”

김현기 | 36호 (2009년 7월 Issue 1)
신사업 타당성 검토를 위해 회의실에 모인 영업부원들. Y주식회사의 신제품 태스크포스팀(TFT)은 최근 ‘유기농 토종 과일(오디, 매실, 복분자) 스무디 음료’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과일나무의 재배는 직영 농장에서 할 계획. TFT는 각 부서별로 이 아이디어를 심층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만해 주임이 브리핑을 시작한다.
 
신제품의 4P 분석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제품을 보면…. (중략) 문제는 가격이라고 보는데요. 그렇다고 원가 절감 요소를 찾아 가격을 현실화할 경우에는 기존 제품에 대한 카니벌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자기 잠식)이 생길 겁니다. 보고서를 보면 180ml 한 개당 소비자가를 1800원으로 낮출 경우, 기존 제품 시장 점유량의 30%가 잠식될 수 있다는 예상치가 있습니다.”
잠깐, 시장 점유를 30%나 할 수 있다고? 이 제품이 그 정도로 메리트를 갖고 있나? 그럼 당장 진행해야지!”
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제품이 시장을 많이 잠식할 거라면서?”
‘!!!’
 
강 부장의 한마디에 일순간 얼어버린 사람들. 유부단 대리가 슬그머니 입을 연다.
 
저, 부장님. 카니벌라이제이션이라고… 신제품이 기존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한다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제 살 깎아먹기가 된다는 얘기죠.”
“!! 흠흠, 내 말이 그 말이잖아! 그러니까 신제품의 장단점을 꼼꼼히 찾아보라는 거지!”
네, 그럼 SWOT 분석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내 말 안 들려? 제품의 장단점 분석을 먼저 해보라고!”
‘!!!’
 
이제는 본인이 더욱 답답해하면서 직원들을 채근하는 강 부장. 그의 ‘순진한’ 얼굴을 본 일 주임이 살짝 눈높이를 낮춰 이야기를 이어간다.
 
네, 그럼 우리 제품의 장단점과 기회 요인, 위협 요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중략)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볼 때, ROI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신제품 개발은 무의미할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강 부장이 긴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입사한 지 몇 달도 안 된 조아라 씨도 있는데 말 좀 쉽게 풀어서 하지 그래? 하여튼 요즘 젊은 친구들은 말 줄여서 하는 걸 너무 좋아해 탈이야. 그래서 이 제품이 되겠다는 거야, 안 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제품에 대한 종합적인 대안이 어떻게 세워지느냐에 따라….”
나처럼 현장 영업을 뛰었던 사람한테는 분석보다 더 뛰어난 경험이란 게 있다고! 난 이 제품 될 것 같은데, 자네들은 그런 생각 안 드나?”
그럼, 영업부 차원의 판매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영업 전략을 세우면 되겠나? 신제품은 말 그대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거잖아? 그럼 그 제품을 어떻게 팔아야겠나? 제품의 장점이나 기존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해야겠지? 그리고 그에 맞춰 유통 루트를 만들어야겠고?”
네, 맞는 말씀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업 계획을 세워야 할까요? 신제품에서 좀더 보강할 부분이나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그 구체적인 대안이 지금은 잘 안 떠오르네요.”
내 말을 제대로 듣긴 한 거야? 내 얘기 다시 잘 들어봐. 신제품 판매할 때 영업적인 측면에서 갖춰야 할 게 뭐야? 소비자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우리 제품을 사 먹을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지! 그걸 찾아보라고. 이 답답한 사람아!”
 
계속해봐야 강 부장의 수박 겉 핥기 식 원론만 되풀이될 것 같자, 나만희 과장이 회의를 정리한다.
 
네, 부장님. 그럼 다음 주까지 생각을 좀더 해보죠.”
그래, 좀더 고민해보라고. 달랑 아이디어 한두 개만 찾아보지 말고 좀 많이! 그래야 그 안들 가운데 우리가 찾는 게 나오지 않겠어?”
 
그리고 며칠 뒤, 요즘 들어 강 부장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책 한 권에 부서원들의 신경이 쏠려 있다. 책은 하얀색 달력 종이로 곱게 포장돼 있다. 강 부장은 뭔지도 알 수 없는 책을 들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밑줄 긋고 메모를 한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보셔? 부장님 혹시 토익시험 준비라도 하시나?”
 
강 부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문의 책을 들여다본 조아라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다. 그 책은 바로 <사회 초년생을 위한 마케팅 용어 사전>.
 
스토리 김연희 작가 samesamesame@empal.com/ 인터뷰 한인재 기자 epicij@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리뷰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kkim@lgeri.com/ 자문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 calvin.kim.2@hewitt.com
 
편집자주 ‘강부장 개조 프로젝트’가 이번 호(10회)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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