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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조직’ 만들기

조직의 속도 높이는 4가지 포인트

이호준 | 36호 (2009년 7월 Issue 1)
빠른 기업을 요구하는 경영 환경
거함 GM이 좌초했다. GM 몰락은 현대 경영 시스템의 상징적인 의미가 무너졌다는 측면에서 일개 자동차 회사 파산 이상의 파급 효과가 있다. 씨티그룹과 AIG의 몰락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거대 기업들이 몰락한 원인에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무리한 몸집 불리기, 체계적 리스크 관리 부족,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조직학 관점에서는 ‘느린 의사결정’과 ‘조직의 비대화’가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GM은 고유가와 환경 규제 강화라는 자동차 산업의 전반적인 트렌드와 소비자 성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큰 패착이다.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은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다시 속도와 관련된 용어들(speed, agility, fast)이 경영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결국 누가 더 빨리 시작하느냐, 누가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느냐가 기업의 흥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에는 오랜 역사나 거대한 규모를 가진 기업이라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경영 환경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는 반복되는 경기 부침 속에서 기업의 생사와 성장성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불황기를 오히려 경영 시스템의 효율화와 조직 유연화의 기회로 활용한다. 이들은 호황기가 오자마자 경쟁사를 크게 앞서 나간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조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영의 비효율을 없애고 내실 경영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가치와 경영 시스템의 수준도 한 단계 높아졌다. 많은 기업들이 조직 구조의 슬림화와 인사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효율화와 스피드를 확보했다. 각종 경영 혁신 용어들(BPR, PI, TPS, BSC, 6시그마 등)이 주요 경영 과제로 자연스럽게 인식됐고, 자체적인 프로젝트나 외부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반면 GE나 도요타 등 해외 선진 기업들의 경영 기법을 여과 없이 받아들여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는 사례도 많았다. 국내 기업들이 ‘빠른 기업(fast company) 만들기’ 또는 ‘스피드 경영’이라는 구호 아래 시도한 다양한 혁신 활동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변화가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됐거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위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의 문화 개선을 위해 스탠딩 회의나 회의 시간 제한제, 원 페이지 미팅(one-page meeting) 등 여러 방법이 시도됐지만, 대부분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나거나 주관 부서의 실적 과시용으로만 쓰였다.
 
실질적으로 효율적인 회의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참석자들의 인식(시간 엄수, 철저한 준비 등)이 우선 바뀌어야 하고, 회의 진행 기법이 뒷받침돼야 할 뿐 아니라, 회의 환경과 회사 시스템 개선 등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상당수 기업들이 주로 초점을 맞췄던 하드웨어(조직 구조, 프로세스 등) 측면의 접근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커뮤니케이션, 조직 문화 등) 측면의 접근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그림1) 특히 물리적으로만 ‘빨리빨리’를 요구하지 말고, 진정으로 경영에 도움이 되는 ‘빠름’의 정의와 방향성을 설정하는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DBR TIP ‘빠른 기업의 진정한 이해’ 참조) 

‘빠른 조직 만들기’ 프로세스
헤이그룹은 조직 효과성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함으로써 어떻게 민첩하고 빠른 조직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왔다. 다음 4가지 포인트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이 포인트들은 명확한 목표 공유 → 조직 설계 → 부서 간 관계 정립 → 성과 관리 등의 순차적 프로세스로 정리돼 있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활동들이 동시에, 또는 일부만 이뤄져야 할 때도 있다.
 
①명확한 목표 공유와 책임 소재 규명
‘빠른 조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명확한 목표 공유다.(그림2) 대부분의 기업에서 의사결정과 전략 실행이 늦어지는 이유는 전략적 목표가 조직 전체에 명확히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조직원들은 업무에 몰입할 수 없으며, 엉뚱한 일을 벌이느라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기 일쑤다. 또 불명확한 목표는 책임 소재를 흐려 의사결정과 전략 실행을 늦춘다.
 
‘성과 책임 매트릭스’는 명확한 목표 전달과 책임 소재 규명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게 해주는 방법론이다. 이것은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말단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업무상 부담해야 하는 기대 역할을 정리해놓은 표다. 연계된 직무를 수행하는 구성원들(그룹 리더와 그에게 직접 보고하는 부하 직원)은 성과 책임 워크숍을 통해 전사 비전 및 전략과 개인의 직무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공유하게 된다.

포스코는 2007년 역할과 책임의 명확화를 위해 성과 책임 매트릭스와 유사한 ‘책임권한표(RAI 차트)’를 도입해 큰 성과를 얻고 있다. 책임권한표는 부서 내 의사결정에 관련된 모든 업무에 대해 개인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의한다. R(Responsible)은 실무 담당자, A(Accountable)는 R에게 업무 방향과 방침을 알려주고 업무 결과를 책임지는 의사결정권자, I(Informed)는 사후 결과를 통보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은 업무 추진 결과에 대해 정보 공유 차원에서 e메일로 통보만 받고, 사후 조정 권한은 없다.
 
포스코가 책임권한표를 도입한 계기는 2005년 실시한 직원 설문조사 결과였다. 조사 결과 △권한이 조직의 장(長)에게만 집중돼 있고 △계층 간 역할이 중복돼 있으며 △구성원들의 역할 및 책임 명확성이 미흡해 의사결정이 늦어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책임권한표는 명확한 지시와 효율적인 보고, 의사결정의 신속성 제고뿐 아니라, 권한 위임의 확대와 성과 몰입도 향상 효과도 동시에 가져다주고 있다.
 
‘속자생존(速者生存)’이라는 표현으로 스피드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해외에서 물건을 사면서 가격 흥정 내용을 위에 보고하는 내부 결정 과정을 거치다 보면 경쟁사가 먼저 그 물건을 사갈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신속하고 명확한 의사결정을 주문하고 있다.
 
②민첩성 확보를 위한 조직 구조 설계 조직 구조는 의사결정의 기본적인 인프라다. 대다수 기업들은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기 위해 조직 슬림화를 통한 ‘의사결정 단계 축소’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하지만 조직 단계의 축소에는 반드시 충격이 따른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들고, 기존 업무 처리 과정에서는 물론 다른 부서와의 협업 과정에서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조직 구조의 개편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진은 단편적으로 조직도만 다시 그리면 조직 구조가 간단하게 바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효율적인 조직 설계를 위해서는 단순히 조직 계층(layer)을 걷어내는 것을 넘어서는 한 단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새로운 그룹화(grouping)와 연계(linking)를 통해 실질적인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기업은 그룹화와 연계로 외부 환경 변화에 보다 발 빠르게 대응하는 동시에, 내부 의사결정의 질과 속도를 높일 수 있다.(그림3) 

LG전자는 현재 연구개발(R&D) 기능을 마케팅 기능과 연계시키고 있다. 급변하는 고객의 니즈(needs) 변화를 즉각 제품 개발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제품 R&D 기능이 대부분 생산 부분에 속해 있었다. 롯데닷컴은 고객 서비스 부서를 가치 사슬의 맨 끝에서 앞쪽으로 끌어왔다. 다시 말해 사후 불만 접수라는 ‘소방관’ 역할을 넘어, 수집된 고객 불만을 전사의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반영(input)토록 한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고객 접점 부서들을 내부로 끌고 들어와 과거보다 훨씬 폭넓은 역할을 맡기고 있다.
 
조직 구조를 바꾸는 핵심 목적은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구성원들이 명확하게 공유해 집단적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주목할 만한 변화는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매트릭스 조직으로의 변화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직의 노하우를 활용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③부서 간 상호 의존성 강화 빠른 경영을 지향하는 기업들은 조직 간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도 각각의 조직들이 성과 달성을 위해 상호 의존
하게 하는 ‘모순적’ 특성을 갖고 있다.(그림4) 조직 설계의 기본서로 유명한 <강한 조직을 설계한다(Competing by Design)>는 각기 다른 조직들이 가지는 이질성을 ‘상호 의존성(interdependence)’이라는 개념 아래 효과적으로 연계(linking)시키는 과정이 조직 경쟁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복잡해지고 있는 고객 니즈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부서가 아니라 연계를 통한 전사적 대응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계는 단위 조직별 목표 추구로 생길 수 있는 부서 이기주의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전체 조직 관점에서의 최적화를 이끌어내게 해준다. 궁극적으로는 부서 간 시너지와 경영의 스피드가 확보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안은 부서 간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협력 메커니즘 구축을 위해서는 공통 목표 부여와 내부 고객 만족도 측정 등이 필요하다. 개별 부서들에 공통의 목표나 공통 평가 지표를 부여하면 부서 이기주의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전 부서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영업과 마케팅 등 연관 부서를 묶어서 할 수도 있다. 공통 목표는 공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조직이 자연스럽게 협력하도록 해준다.
 
내부 고객 만족도를 측정해 조직 간의 협력 풍토를 만들어내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한 국내 인터넷 쇼핑몰 업체는 영업, 마케팅, 정보기술(IT) 등 각 조직 간의 효과적인 협력이 고객 만족과 성과 창출을 가져오는 핵심 요소라는 판단 아래, 매 분기별로 각 부서가 업무 연관성을 가진 다른 부서로부터 만족도 평가를 받도록 했다. 푸르덴셜생명은 내부 고객 만족도 평가를 주요 성과 평가 지표(KPI)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두 번째 방안은 ‘최고경영자 팀(Top Team)’의 운영이다. 유니레버는 2000년 베스트푸드를 인수한 후 어려움을 겪었다. 조직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이 서로 다른 두 회사의 결합으로 의견 조정에 어려움이 컸고, 의사결정은 한없이 늦어졌다. 애초 의도했던 시너지는 아예 기대하기 힘들었다. 두 회사 경영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경영자 팀을 만들어 의견 조정에 나섰다. 명령권자인 경영진이 대화를 시작하자 곧 혼란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최고경영자 팀은 M&A의 이슈가 없는 다른 기업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일반적으로 기업 내 각 사업부의 리더들은 각자의 사업에 신경 쓰느라 서로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사업 이슈를 논의할 시간이 없다. 최고경영자 팀은 이런 활동을 위한 장을 제공해준다.
 
④빠른 실행을 위한 성과 관리와 모니터링 ‘보고 절차의 효율화, 회의 문화 개선, 불필요한 업무 통폐합,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빠른 조직 만들기를 위한 액션 플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제들이다. 이런 것들이 각 기업 경영 혁신 부서의 단골 과제로 반복해 등장한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제대로 실천이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설정 과제에 대한 제대로 된 성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선진 기업들은 엄격한 성과 관리와 체계적인 모니터링 프로세스를 통해 일반 기업들이 범하기 쉬운 ‘전시형 과제의 비효율’을 최소화한다. 특히 수립된 전략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을 때 해당 리더에게 엄격히 책임을 묻는다.
 
헤이그룹의 2008년 조사 결과에 의하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83%는 조직이 전략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반드시 교정하는(corrective action)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반 기업들의 교정 비율은 59%에 불과했다. 최근까지 경영 혁신의 모범으로 인식됐던 GE의 차별적 우위도 고성과자에 대한 체계적인 개발·유지와 저성과자의 퇴출로 대표되는 명확한 성과 관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성과 관리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전략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략 BSC 성과 혁신>의 저자 성은숙 컨설턴트는 “국내 기업들의 성과 관리는 전략 실행 결과를 차기 전략 수립에 활용한다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평가 결과를 놓고 사업부와 팀을 서열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왔다”고 비판했다. 조직원들이 점수와 서열에만 연연하게 되면, 단기적으로 실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행동만 하기 때문에 전략과 동떨어진 업무로 인한 자원 낭비와 장기적 경쟁력 악화 등 부작용이 생긴다.
 
최근 스피드 경영을 통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순익 1조 클럽에 가입한 LG화학은 ‘먼저(early)’ ‘빨리(fast)’와 더불어 수립된 계획을 세부적으로 자주 점검하자는 ‘자주(real time)’를 구성원들의 행동 양식으로 정해, 사업 경쟁력 확보와 조직 문화 변혁 등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래리 보시디는 저서 <실행에 집중하라(Exe-cution)>에서 “기업 간 경쟁력의 격차는 비전과 전략의 차이보다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실행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성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조직은 실행력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빠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객관적인 평가 지표를 설정하고, 변화의 속도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 문화, ‘빠른 기업’의 보이지 않는 손
앞서 지적했듯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조직 구조(하드웨어적 요소)의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변화는 소프트웨어적 요소(구성원들의 인식, 가치, 조직 문화, 분위기)가 하드웨어를 뒷받침할 때 일어난다.
 
문제는 사람이나 문화를 바꾸려면 조직 구조나 프로세스를 바꿀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효과가 미미하고, 결과 도출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사람과 문화를 소홀히 하면 진정한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무조건 속도만 강조하다 보면 천천히 할 때보다 훨씬 큰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빠른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의 확대와 권한의 적절한 위임 등이 꼭 필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불황에는 현장 직원들과 경영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경영진이 시장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최대한 빨리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M은 앞서 이야기한 최고경영자 팀 회의에 일반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참여시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했다.
 
기업 현장에서 ‘공룡’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제비’ ‘표범’ ‘가젤’ 등의 가면을 쓴 공룡으로 남아 있다. 진정한 속도는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나오며, 단순히 빠르다는 것 이외의 개념들을 포함한다. 우리 기업들이 진정한 민첩함으로 경쟁자들을 앞서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DBR TIP] ‘빠른 기업’의 진정한 이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짧은 기간 안에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런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속도’였다. 우리 기업들은 놀랄 만큼 단기간에 제품과 기술을 개발해 선진국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스마트한 속도 전략을 추구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개도국 시절에는 단순한 따라잡기 전략으로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우리 기업들의 사업 규모와 수준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빠른 기업(fast company)’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다.
 
재해석의 첫걸음은 빠름의 속도만큼 ‘빠름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단기적 관점의 성과 창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의사결정, 절차와 기본을 무시하는 경영 관행 등 한국식 ‘빨리빨리’ 경영 방식은 한 방향으로만 열심히 달려온, 불완전한 스피드 경영이었다. 무조건 남보다 빠른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빠르되 올바른 방향으로 달려야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씨티그룹은 신속한 고객 대응과 앞선 금융상품 개발로 거대 금융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도적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진입한 주택담보대출 분야가 결국 씨티그룹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속도의 완급 조절(control)이다. 자동차가 무조건 빨리 달리기만 하면 연비가 낮아지고 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 숙련된 레이서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만 사용하지 않고, 적절하게 기어를 바꿔가며 속도의 완급을 조절한다. 속도만 강조하는 스피드 경영 역시 자원의 낭비나 질 낮은 혁신의 반복을 낳게 되고, 이로 인해 조직의 피로도가 높아져 끝내는 탈진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홈디포의 로버트 나델리 전 회장과 프랭크 블레이크 현 회장은 모두 GE 출신이지만, 경영에서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나델리는 ‘리틀 잭’이라고 불릴 정도로 잭 웰치와 비슷한 경영 스타일과 수완을 갖고 있었다. 그는 독단적 리더십과 무차별적인 구조조정, 실적 악화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7년 결국 사임하고 말았다. 나델리는 강력한 명령 체계를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GE식 스피드 경영을 강조했다. 그 후 최고경영자(CEO)를 맡게 된 블레이크는 일방적인 형태의 의사소통보다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핵심으로 경영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는 현장 점포 직원들의 애로 사항이나 근무 여건을 파악하려 했다. 이를 위해 점포 방문 횟수를 늘렸으며, 직원들과의 수평적 소통을 위해 ‘e메일 건의함’ 제도를 도입했다. 홈디포는 CEO의 이런 노력에 힘입어 불황에도 불구하고 예년의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세 번째, 속도를 ‘지속성(sustainability)’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벤처기업들이 초기의 눈부신 사업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할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못 찾아 몰락한 사례를 많이 접한다. 시동을 빨리 걸어 먼저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기업의 경쟁력은 출발 이후에 그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조직은 상반된 2가지 요소를 한 번에 갖춘 양손잡이 형태(ambidextrous organization)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의 다중적이고 상반된 전략과 문화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사전에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마련해 놓음으로써 빠름의 준비도(readiness)를 높이는 일이다. 기업은 고객의 성향이나 기호 변화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놓고 고객 니즈를 미리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불황기라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차세대 성장 엔진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상시에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선수들이 실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고, 사전에 철저한 점검과 충분한 워밍업을 거친 자동차가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그림6) 

 
이호준 헤이그룹 이사는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조직·전략을 전공했다. 그 후 LG데이콤과 머서컨설팅을 거쳤다. 정현석 헤이그룹 부사장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선더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PWC와 한화그룹을 거쳐 머서 HR컨설팅에서 상무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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