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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인간 나침반’이 필요한 때

김현진 | 358호 (2022년 12월 Issue 1)
DBR를 애독할 정도의 식견과 지적 호기심을 가진 독자 여러분이라면 이미 멘토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봤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짐작합니다. Z세대 신입 사원이 임원을 가르치는 역(reverse)멘토링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학번, 사번 다 떼고 권위 없이 지혜를 공유하려는 사회적 관심을 반영합니다.

이렇게 ‘멘토링 개론’ 정도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점이 되다 보니 멘토링이 실제 실효성이 있는지, 팬데믹 이후 변화한 일터에서 주파수가 달라질 지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개선책을 고민하는 이른바 ‘멘토링 심화 버전’이 필요해졌습니다.

내년을 준비하는 시점, 글로벌 멘토링 플랫폼 멘토클리크(MentorcliQ)가 2023년 3대 멘토링 트렌드로 제시한 화두들을 보니 멘토링이란 주제 속에 현재 우리가 일터에서 마주하는 도전 과제들이 압축적으로 반영돼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재결속(re-engagement)’ ‘진정성 있는 연결감(authentic connection)’ ‘친밀한 거리(affinity spaces)’라는 ‘착한 키워드’에는 사실 팬데믹으로 서로 떨어져 일하면서 갖게 된 정서적 거리감으로 전 세계적으로 80%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외로움을 경험했고, 급격한 환경 변화로 50%가량은 정신적 번아웃을 겪고 있다는 ‘안 착한’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영혼 없이 최소한도로 일하기’란 의미를 내재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트렌드가 신드롬으로까지 번지는 때, 구성원들이 결속력을 찾으면서 일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돕는 솔루션 중 하나로 멘토링의 역할이 내년에는 더욱 부상할 전망입니다.

특히 조직 안이 아닌 밖에서 내 인생과 커리어에 도움을 줄 ‘노련한 선배’를 찾는 ‘랜선 멘토링’은 관련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내 지갑을 열어서라도 기꺼이 커리어 관련 상담을 받겠다는 시장의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의 상담 시간을 쪼개 파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지인은 최근 1∼4년 차 신입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던 중 ‘엄마표’ ‘학원표’로 모범생으로 자라온 20대 후배들에게서 이런 니즈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과거엔 엄마가 들고 온 정보 등 좋은 ‘나침반’ 덕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펙을 갖게 됐는데 막상 입사를 해서 나 혼자 시행착오를 해가며 일을 배우게 된 상황이 두렵다”며 “사내 선배들에게 소소한 조언을 구하기엔 스스로 부족함을 고백하는 듯해서 꺼려지고 이직 같은 민감한 화두는 꺼내기도 쉽지 않은 만큼 회사 밖에서 ‘과외 선생님’을 찾고 싶다”는 게 이 모범생들의 속마음이었습니다.

한편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른 시간 내에 능력을 증명해 내야 하는 집단이야말로 멘토링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큽니다. 바로 젊은 창업가부터 대기업 CEO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최고 리더들입니다. 시애틀대 교수 등으로 이뤄진 연구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멘토링을 경험한 CEO의 71%는 멘토링 덕에 회사의 성과가 개선됐고 84%가 멘토 덕분에 큰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멘토링이 ‘필수’가 아닌 ‘옵션’일 경우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도 눈길을 끕니다. 하버드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이 미국의 한 콜센터 신규 영업사원 603명을 대상으로 실험해 최근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소개한 연구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멘토링을 받고 싶어 한 사람들은 실제 멘토링을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멘토링을 받고 싶지 않다”고 밝힌 사람들 대비 일평균 실적이 30%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성과자나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는 부류는 멘토링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멘토링 대상의 적용은 전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입니다.

한편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멘토에 대한 보상 이슈도 앞으로 관련 연구에 중요한 테마가 될 전망입니다. 예컨대 최고의 영업사원이 동료 사원들에게 노하우를 공유할 경우 멘티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해 멘토의 경쟁 상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멘토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평가나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 등 보완책도 필요합니다.

우울한 경제 전망 탓에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그리 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하고(show must go on), 그 무대를 이끌 원동력은 결국 사람일 것입니다.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면서 ‘인간 나침판’이 돼줄 멘토링을 고찰해 보면서 ‘사람의 힘’, 즉 지혜를 나누는 한 해를 미리 설계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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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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