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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If, 역사를 만드는 힘

김현진 | 328호 (2021년 09월 Issue 1)

‘만약 그랬더라면’. 가정에 쓰이는 if가 과거형으로 쓰이면 종종 후회의 표현이 되곤 합니다. ‘팬데믹을 야기할 증거들을 미리 감지했더라면’ ‘장기화에 대비해 발병 초기부터 장기 플랜을 세웠더라면’…. 하지만 조금만 견디면 ‘애프터 코로나’를 논하게 될 줄 알았던 시점에 여전히 캄캄한 터널을 헤매게 될 것을 예견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위드 코로나’. 팬데믹과의 공존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는 역사적 시점, DBR는 터널 끝에서 빛을 찾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재도약하려는 기업들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소개합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특히 팬데믹이라는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한 나머지 앞으로 또다시 닥쳐올 위기에 이미 취약점을 드러내는 기업이 많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감염병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연구한 마크 존슨 이노사이트 대표는 제대로 된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부터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5∼10년 후 우리 비즈니스가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발휘할지에 대한 장기적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이 목표와 타임라인에 맞춰 역으로 현재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하는 ‘역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방식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질병이 역사적 유물이 되는 세상을 상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존슨앤드존슨의 ‘질병 차단 이니셔티브’에서처럼 현재의 실천 전략이나 단기 목표를 강조하기에 앞서 최종적으로 기대하는 궁극의 가치를 먼저 수립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다양한 데이터 속에서 ‘이상파랑(rogue wave, 여러 자연현상이 맞물린 결과 돌발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대형 파도)’을 감지한 결과, 지금의 팬데믹 사태를 미리 대비한 기업도 있습니다. HP(휴렛팩커드)는 향후 10년간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기술, 경제, 사회적 영향을 추적해 관련 정보를 리더들에게 공유하는 연구 조직인 ‘퓨처 유닛’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2015년에 이미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예측했습니다. 조너선 브릴 글로벌 퓨처리스트에 따르면 HP는 이에 대비해 신속 진단 등 의학 분야에 프린터 기술을 접목하고, 원격 시술을 적용한 프린터 등 재택근무에 특화된 제품 등을 선제적으로 개발한 결과, 다사다난했던 내•외부적 경영 상황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상 신호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전통 기업의 관리자라면 뉴노멀 이후 새롭게 달라진 세계 질서에 더욱더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글로벌 전략 수립 시 누구와도 연결 가능한 민첩한 조직 구조, 외부에 개방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기업 간 상호 연결성을 추구해야 앞으로 닥칠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불확실한 위험을 가리키는 ‘블랙스완’을 변형한 말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의 파괴적 위기를 가리키는 ‘그린스완’이 시대적 키워드가 된 시기, 인류 공영공생을 위한 기후변화 관련 활동에 본격적으로 동참하는 것도 위드 코로나 시대를 살아나가야 하는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됐습니다.

이처럼 도약의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제시된 전략들이 공통적으로 각 기업의 ‘각개전투’가 아닌 각 주체 간 ‘단합’을 지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신간 『The ages of globalization(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을 통해 “감염병 이후 강화된 방역과 자국 산업 보호주의 탓에 ‘단절’이 화두가 된 시대, 단합과 연대만이 인류 공동의 위기를 물리칠 해법”이라고 강조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삭스 교수는 그 예로 전 세계적으로 28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으며 ‘1980년대 팬데믹’으로 불렸던 에이즈가 인류의 공동 대응 결과, 통제 가능한 만성질환 수준으로 완화된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과거형이면 ‘후회’가 되는 if를 미래 시점으로 옮기면 ‘기회’가 됩니다. ‘지금이라도 대비한다면’ ‘새로운 일을 실천한다면’, 앞으로는 더 자주, 더 센 강도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이상파랑을 침몰이 아닌 비상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팬데믹과 마주한 역사적 시대, 국내외 전문가들이 전하는 인사이트가 승리하는 역사를 쓰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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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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