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식음료 ODM의 선두주자 ‘흥국F&B’의 변신

신생 스타트업 손잡고 ‘기브 & 테이크’
신규 포트폴리오 확보 등 상생 모델 결실

294호 (2020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스타벅스 등 유명 카페 프랜차이즈에 과일 착즙 음료 베이스를 납품하며 20% 가까운 영업이익률을 누리던 중견 식품 ODM사 흥국F&B는 2015년 상장 직후 거래처 이탈, 시장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진통을 겪었다. 이에 회사는 B2B 위주 사업 구조, 과일 액상에 편중된 제품 포트폴리오, 마케팅 역량 부재, 대형 거래처 의존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생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았다. 흥국F&B가 이 같은 협업으로 신규 포트폴리오 확보, 마케팅 역량 강화, 유망 거래처 선점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파트너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확실한 상생 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업계 ODM 선두주자로서 회사의 강점인 1) 빠른 의사결정 속도 2) 다품종 소량 생산 기반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 3) 철저한 IP 보호 등을 살려 대기업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이점을 발휘했다.

2018년 2월, 저칼로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파는 식품 스타트업 ‘라라스윗’의 민찬홍 대표는 패닉에 빠졌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서 1억1500만 원 모금에 성공하고 당장 3500명에게 제품을 배송해야 하는데 공장의 기계가 갑자기 멈춰 선 것이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영세한 공장 설비를 빌려 간신히 주문량을 소화하고 있던 민 대표에게 이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플랜B’는 없었다. 일단 부랴부랴 “배송이 2∼3주간 지연됐다.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았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현 공장에서는 해결이 불가하다”고 공지하고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했으나 2주 안에 상황을 반전시킬 묘안이 보이지 않았다. 촉박한 일정에 맞춰 신제품을 양산해줄 공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품을 믿고 후원해준 소비자와의 약속을 저버리진 않을까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 민 대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2주 안에 생산해주겠다”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흥국에프엔비(이하 흥국F&B)라는 식음료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및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가 와디즈에서 라라스윗의 배송 지연 공지를 발견하고는 민 대표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연락해 온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민 대표는 그 즉시 아이스크림 시제품이 담긴 박스를 들고 택시를 잡아 흥국F&B 본사로 향했다. 이후 전 과정은 눈 깜짝할 새 진행됐다. 제품 배합, 설비라인 조정, 식약처 신고 등이 속전속결로 이뤄지면서 1주 만에 초도생산이 시작됐고, 그다음 주 생산이 완료되면서 라라스윗은 레서피 그대로 약속한 기한 내 아이스크림을 고객 문 앞에 배달했다.

도대체 왜 대형 거래처를 주로 상대하던 식음료 ODM 업체 흥국F&B가 갑자기 일면식도 없던 신생 스타트업에 손을 내민 것일까. 흥국F&B는 스타벅스, 이디야, 할리스, 투썸플레이스, 파리바게뜨 같은 카페 프랜차이즈와 개인 점주를 상대로 에이드용 과일 농축액, 커피, 빙수 등의 원자재를 생산해 납품하는 중견 기업이다. 여러 고객사 요구에 맞춘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과 다양한 품목에 대응할 수 있는 설비가 이 회사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최신 생산기술과 B2B 기반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바탕으로 2015년 코스닥시장에 상장까지 한 흥국F&B가 최근 2∼3년 동안 기존 사업 모델과 무관한 식품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일명 ‘라라스윗 구하기’ 프로젝트의 경우 흥국F&B의 창업자인 박철범 대표, R&D센터장 겸 생산본부장이던 신동건 상무, 전략기획실 여직원이 각자 와디즈를 모니터링하다가 라라스윗이 위기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됐고, 이심전심으로 협업을 제안하기로 결정했다. 신생 업체와의 협업이 단순히 위기에 처한 초기 창업가들을 도와주는 회사의 자선 활동이 아니라 흥국F&B 입장에서도 ‘탐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흥국F&B가 이 같은 기회에 왜 눈독을 들이는 건지, 스타트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는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회사의 동반 성장 전략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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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F&B는…

흥국F&B는 주요 프랜차이즈 및 카페 사업자들의 메뉴 제조용 원재료가 되는 과일 농축액, 커피 등을 생산해 납품한다. ‘세상을 더 신선하게’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카페 토털 솔루션 제공업체를 지향한다. 외식, 커피 프랜차이즈 및 중간 도매상(벤더)을 통한 개인 카페와의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안정적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으며, 최근 리테일, 온라인, 호텔, 레스토랑 쪽으로 유통채널을 다각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주요 제품은 다음과 같다.

1. 착즙 주스: 스타벅스 착즙 주스(햇사과, 한라봉, 망고), 이마트 피코크 주스(딸기, 오렌지, 자몽) 등
2. 과일 농축액: 개인 매장 제조용(자몽, 청포도, 오렌지, 레몬), 프랜차이즈 납품용 등
3. 커피: 이디야, 카페 파스쿠찌의 콜드브루 커피 추출액 및 질소 커피용 장비, 네스프레소 호환용 캡슐커피
4. 디저트: 빙수 제조를 위한 빙삭기, 빙수 블록, 젤라토 및 부자재

2019년 매출 비중은 과일 농축액이 약 47%를 차지했으며 스무디, 주스, 커피 등 음료가 각각 10% 안팎의 비중을 점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 이디야커피, 할리스, SPC그룹 등 카페 프랜차이즈 매출 비중이 전체의 약 6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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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후 진통, B2C의 높은 벽을 체감

2015년 8월 코스닥시장 상장 전 흥국F&B는 자몽에이드 등 생과일 착즙 음료 베이스를 대형 프랜차이즈에 납품하며 20%에 가까운 안정적인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었다. 최신 HPP(초고압 처리) 설비를 바탕으로 과일 그대로의 맛과 신선도를 내는 데 주력했다. 이에 까다로운 스타벅스뿐 아니라 이디야, 할리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등 대형 카페 프랜차이즈 거래처를 확보했고, 이익을 고스란히 설비에 재투자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그러던 회사에 상장을 통한 IPO(기업 공개)는 ‘양날의 검’이 됐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높은 영업이익률이 외부에 공개되면서 거래처들의 견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곧장 “너희 왜 이렇게 돈을 잘 벌어?”라는 반응부터 튀어나왔고, 주요 고객사들은 제품 가격을 깎으려 들거나 외주 물량을 빼고 자체 생산, 판매에 뛰어들었다. 물론 후발주자들에는 흥국F&B 같은 수준의 생산기술은 없었다. 그래서 맛과 신선도까지 따라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격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대형 프랜차이즈 거래처들의 매출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굴지의 식품업계 회사들도 줄줄이 경쟁에 가세했다. 농축액 용기부터 색상까지 똑같이 베낀 카피캣도 쏟아져 나왔다. 블루오션이었던 시장은 순식간에 피 튀기는 전쟁터로 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면서 2015년 21.7%에 달했던 영업이익률은 2016년 처음으로 10% 밑으로 떨어졌고, 이듬해에는 6.4%로 2년 새 반 토막이 났다. (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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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상장은 정말 ‘비싼 마케팅’이었다. 경쟁업체 수가 급증했고, 가격을 내리라는 고객들 압박도 거셌다. 우리만큼 설비에 투자하고 품질 관리를 하는 업체가 많지 않다 보니 결국 떠났던 거래처들이 돌아오긴 했지만 2∼3년 정도 진통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식품 브랜드는 품질 이슈가 한 번 터지면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생산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업종의 특성 덕에 이탈했던 고객사들이 몇 년 뒤 돌아왔고 덕분에 매출도 상당 부분 회복했다. 하지만 절벽같이 느껴졌던 이 공백 시기에 임원들은 사업 다각화와 위험 분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2016년, B2B 시장에서의 경쟁 격화와 성장성 둔화에 직면한 회사는 B2C 시장에서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B2C 시장을 이해해야만 장기적으로 M&A(인수합병)를 위한 안목을 기르고 F&B 산업의 트랜드를 따라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는 2016년 5월 ‘SUGA(수가)’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과일 착즙 주스와 고로쇠 수액 등을 대형 마트와 편의점에 입점시켰고, 올리브영에는 스프레드를 팔았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팔면 팔수록 손실이 커졌다. 체험단을 운영하는 등 마케팅 활동도 벌였으나 추가 입점은 부진했고, 소비자 반응도 싸늘했다. 특히 신선 제품은 유통기한이 짧다 보니 안 팔리는 제품들은 대량으로 폐기 처분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험 부족’이었다. 줄곧 ODM만 해오던 회사가 최종 소비자의 니즈와 마케팅을 이해하고 있을 리 없었다. 고객사가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주지만 스스로 신제품을 기획하거나 브랜딩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맛있고 신선한 제품을 만들 줄만 알지 제품을 어떻게 최종 소비자한테 홍보하고 구미를 당기게 할 줄을 몰랐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성상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 대비 가격 경쟁력도 떨어졌다. 고급 신선 제품을 표방하면서 가격보다 맛을 앞세웠던 흥국F&B에 맛만큼 가격이 중요한 B2C 시장의 벽은 높았다. 박 대표는 “우리의 철학은 조금 비싸더라도 맛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카페 프랜차이즈나 중간 도매상(벤더)에 납품할 때는 유통 단계가 적어 이런 접근이 통했다”며 “그러나 B2C 리테일 시장에선 유통 단계가 많아 원가를 맞추려면 맛을 포기해야만 했고, 그게 용납이 안 되니 가격 경쟁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출이 꺾이자 회사 직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창업 이래 15∼20%의 고성장에 익숙해져 있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성장 정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너스도 줄었고, 미래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16년에는 전 직원이 130명인 조직의 퇴사자가 30여 명에 달했고, 팀 전체가 사표를 쓰고 짐을 싸는 일도 벌어졌다. 자사주를 판 사람들은 다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이 무렵 2016년 6월 새로 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한 김상형 상무는 혼란을 수습하고 조직을 안정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파악했다. 그는 상장 당시 대외적으로 공표한 흥국F&B 중국법인 성장을 위해 영입된 ‘외부 피’였다. 그런데 김 상무의 눈에는 당장 중국으로의 무리한 확장보다 내부 안정이 더 시급해 보였다. 물류 체계가 덜 발달한 중국에서 신선 제품으로 승부를 보기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었다. 이에 그는 2017년 박철범 대표를 설득해 외부 컨설팅을 추진했다. 컨설팅 결과, B2C 시장 진출에 따른 비용이 적나라한 숫자로 드러났다. 경영진도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 상무는 “막연하게 리테일이 돈이 안 된다는 건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얼마나 안 되는지를 직시하면서 ‘B2C는 좀 더 배운 뒤 재도전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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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프레쉬(Fresh)

흥국F&B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2년 8개월간 본사와 더불어 생산 현장의 번아웃(Burn out)을 해결하기 위해 컨설팅사에 자문을 의뢰, 제조 운영 효율화와 현장 디지털화를 위한 ‘프로젝트 프레쉬’를 추진했다. 상장 후 거래처 이탈, 신규 B2C 유통채널 진출 등으로 변화가 많아 생산직 직원들의 피로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생산 효율화를 통해 ‘신선, 신속’을 생명으로 하는 식품 제조 ODM 사업의 본질적 역량 제고가 절실했던 시기였다.

이를 위해 회사는 사내 전략기획실 인원을 2명 충원해 공장에 파견한 후 흩어져 있는 공장 데이터부터 수집했다. 라인별로 터치 PC, 라벨러, 스캐너와 각종 센서 등을 설치해 실시간 생산 정보를 모으고, 무선 PDA(개인용 정보 단말기)를 이용해 실시간 자재와 제품 입출고를 관리했다. 그다음 방대한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해 ▲원부재료 손실이나 불량을 추적하고 ▲까다로운 원물 공정 품질 관리를 체계화하고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설비별 고장 주기, 수리 소요 시간, 필요 부품의 한계 수명 등을 분석해 ▲사전 예방 정비를 유도하는 등 제조원가 낭비도 최소화했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 움직임은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동선과 설비 레이아웃을 재배치해 잦은 충돌이나 끼임에 따른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포장재 수령 등 같은 업무를 여럿이 중복해서 하지 않도록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이와 동시에 개별 부서 간 신속하고 직관적인 의사소통을 유도했다. 본사와 공장의 힐링 타임을 갖고,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비효율적인 관행을 뿌리 뽑을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낸 우수사원에게는 포상금을 수여했다. 이런 전방위적인 경영혁신 프로젝트 추진 결과 제조원가와 판관비를 매출액 대비 연간 4% 이상 절감할 수 있었다.

간접 경험으로 새로운 돌파구 모색

경험 부족의 한계를 메우는 방법은 ‘간접 경험’뿐이었다. 실패를 직시한 흥국F&B의 박 대표와 김 상무는 B2C 시장에서는 B2B에서와 전혀 다른 DNA가 필요하다고 판단, B2B에 특화된 조직을 쇄신하려면 회사 안에 없는 역량을 밖에서 이식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봤다. 특히 김 상무는 박 대표에게 기획, 마케팅에 강점이 있는 식품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이들의 생산을 도우면서 반짝이는 브랜딩 노하우와 신사업 아이디어를 수혈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33세의 나이에 흥국F&B를 창업해 청년 사업가들이 흔히 겪는 자금난과 생산 차질 등을 이해하고 있던 박 대표는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 역시 돈 없고 어렵던 창업 초기 모 대만 식품회사의 도움으로 자몽 농축액을 국내에 독점 유통하고 OEM을 시작하면서 시장에 안착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B2C에 진출해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M&A를 추진하려면 시장 트렌드를 잘 읽고 최종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식음료 산업은 환율, 원자재 가격 변동보다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이나 기술 없이도 참신한 발상 하나로 소비자 취향을 저격, 틈새시장을 뚫는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었다. 박 대표는 “요즘 젊은 창업자들은 창의적이고 기발하며, SNS 채널을 활용한 마케팅과 소통, 디자인에 탁월해 배울 점이 많다”며 “반면 신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생산해줄 만한 제조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만큼 우리가 도움을 줄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B2C 마케팅, 흥국F&B의 제조 역량을 조합하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흥국F&B에는 스타트업에 제공할 수 있는 확실한 강점, 생산과 R&D 역량이 있었다. 충북 음성에 위치한 3000평(약
9917㎡)짜리 공장에는 고가의 최신 설비가 갖춰져 있다. 또한 품질관리 팀원 15명을 비롯한 80여 명의 직원이 있었고, R&D센터에선 제품 개발, 메뉴 연구와 신사업을 담당하는 직원
18명이 제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에 회사는 스타트업을 상대로 안정적인 생산처를 제공하고 ▲제품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고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식품업계 네트워크를 연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보고 본격적인 파트너 물색에 나섰다. 이렇게 생산에서부터 협업하다가 궁합이 잘 맞는 회사에 추가로 직접투자를 하고, 그중 특히 시너지가 많이 나는 대상은 M&A까지 고려하는 ‘계단식 접근’을 취하기로 했다.

김 상무는 “과거 다른 직장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한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젊은 창업자들의 에너지와 다양한 시도가 보수적인 대기업 경영진과 전략부서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을 목격했다”며 “또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재무 등 노하우와 영업 네트워크를 소개받고, 대기업 SI(전략적 투자자)의 후광효과를 누렸다”고 말했다. 실제 경험으로 미뤄보더라도 흥국F&B가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는 설명이다.

‘Give and Take’ 확실한 상생 모델 구축

흥국F&B는 푸드테크 스타트업들과의 협업을 결정한 뒤 시너지가 극대화될 만한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다음의 기준을 고려했다. 첫째,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도움이 돼야 했다. 착즙 주스 등 과일 농축, 액상형에 편중된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향후 신규 거래처 발굴, 나아가 신사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 2016년 기준 회사 제품의 84%가 과일류였는데 이 비중을 낮춰야만 단순 과일 가공 상품공급 업체에서 카페 토털 솔루션 업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계절적 수요와 소비자 취향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했다.

이에 따라 먼저, 과일 농축액보다는 되도록 아이스크림/빙수, 커피, 파우더, 베이커리 등 신규 사업군에 속한 업체와 손을 잡기로 했다. 특히 마실거리(B) 대비 먹을거리(F) 경쟁력이 약한 만큼 디저트 등 푸드 업체를 주된 타깃으로 삼았다. 궁극적으로 M&A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급성장하는 디저트나 식사 대용식 시장 진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잠재적 파트너가 필요로 하는 생산설비가 흥국F&B가 이미 보유 중인 라인과 겹치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카페 프랜차이즈 납품에 활용될 가능성이 보인다면 증설까지 감행하기로 했다.

둘째, 새로운 유통채널을 잘 활용하는 업체인지를 살폈다. 프랜차이즈나 벤더보다는 온라인, 리테일, 개인 카페, 호텔, 레스토랑 등 신규 유통채널 관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습득하는 게 협업의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타트업의 CEO가 얼마나 SNS 등을 통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새로운 채널을 잘 뚫는지가 관건이었다. 간접 경험도 결국 ‘사람’을 통해 이식되는 것인 만큼 CEO의 창의적인 감각과 개성이 중요하다는 게 박 대표의 신념이었다. 박 대표는 “우리에게 없는 마케팅이나 채널관리 노하우를 배우려는 취지가 짙었지만 막상 파트너를 선택할 때는 CEO를 사석에서 만나 자기가 하는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열정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봤다”며 “그래야 협업 과정에서 우리 직원들도 자극을 받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면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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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건강 지향적인 프리미엄 소비 트렌드와도 부합해야 했다. 그래야 점점 건강하고 바른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새로운 니즈를 충족하면서 ‘세상을 더 신선하게’ 만들자는 회사의 슬로건과 맞아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저칼로리, 저탄수화물, 고단백, 고지방, 비건, 유기농 등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데 전사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카페에서 빵과 케이크가 아닌 샐러드를 선택하고, 출출할 때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간편식을 찾는 게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또 B2C 시장에서 단가를 맞추려면 일반 식품의 경우 고급 재료와 품질을 고집하기가 어려운 만큼 상대적으로 고가인 건강 기능 식품으로 경쟁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박 대표는 ”리테일 쪽에서는 F&B보다는 건강기능식 시장에 진출하거나 관련 업체에 투자해 몸에 좋고 건강한 제품을 소비자들에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밝혔다.

Give: 흥국F&B → 스타트업
1. 안정적 생산처 제공

2016년 12월, 기능성 식사 대용식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스타트업 이그니스의 박찬호 대표는 품질 관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금은 이그니스의 제품인 ‘랩노쉬’ 쉐이크와 푸드바 등이 간편식의 일반 명사가 됐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당시엔 끼니 대신 가루에 물을 타서 마신다는 개념이 낯설 때였다. 당연히 이런 제품을 제대로 생산해줄 만한 공장도 없었고, 일일이 손으로 페트병에 가루를 퍼 담다 보니 품질도 들쑥날쑥했다. 맛이 변질되거나 미세하게 달라지는 일도 잦았다. 분말 제형의 특성상 지방이 들어가면 산패되기 쉬웠고 상온 보관이긴 해도 기온이 30도까지 치솟는 여름이면 처음에 잡았던 맛과 차이가 생겼다. 창업 초기에는 제품에 이물질이 섞여 들어가 고객 앞에 사죄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고객 피드백 하나하나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작은 스타트업에 불균등한 품질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식사 대체라는 기능보다 맛을 중시하는 한국 시장에선 더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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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안정에 사활을 걸던 이그니스에 흥국F&B와의 만남은 전환점이 됐다. 처음에는 투자를 논의하려 접촉했던 흥국F&B에서 덜컥 생산을 맡아준 것. 흥국F&B 측과 매달 정기회의를 하면서 개발, 생산 과정의 애로사항도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안정적 생산처가 확보되고 품질 논란이 없어지자 이그니스는 오로지 회사의 강점인 기획과 마케팅, 영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는 “제조 기반이 약할 때는 제품 개선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생산 가능 여부를 뒤늦게 검토해 수정해야 했다”며 “그런데 흥국F&B가 생산을 맡아준 뒤부터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지를 현장에서 바로바로 검증할 수 있게 됐고, 오로지 소비자들이 먹고 싶고 좋아할 만한 제품이 무엇일지에만 관심을 쏟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산 수율은 어떤지, 단가는 맞출 수 있는지 등 공장 측 피드백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보니 시장 수요에만 집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2018년 2월 라라스윗의 민찬홍 대표 역시 영세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흥국F&B를 만난 뒤 든든한 생산처를 확보했다. 이후 전 물량을 흥국F&B에 맡기면서 생산 수율을 높일 수 있었다. 기획과 생산 현장, 즉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도 빠르게 좁혔다. 민 대표는 “이후 2019년 여름까지는 음성 공장을 수시로 드나들고 근처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생산 현장을 배웠다”며 “흥국F&B 직원들은 현장에서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문제를 지적했을 때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바로 조율해서 안 될 것 같던 것도 ‘된다’고 해줬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흥국F&B 공장에서 최초 생산을 시작한 이래 라라스윗은 생산에 대한 걱정 없이 마켓컬리, 쿠팡, 이마트몰 등의 판로를 공격적으로 개척할 수 있었고, 세븐일레븐 매장 중 3000곳에 입점하면서도 급증하는 물량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됐다.

2. 신제품 개발 및 정보 공유

흥국F&B는 이그니스가 단백질 특유의 시큼한 향을 가리고 맛을 끌어올리는 작업도 도와줬다. 랩노쉬 이후 신제품 개발은 모두 흥국F&B의 전문 R&D 연구원과의 협업 및 공동 회의를 거쳐 이뤄졌다. 간편 죽 제품이 대표적이다. 흥국F&B는 죽을 출시하기 위해 공장에 레토르트 생산라인을 새로 확충하는 한편 이그니스 측에 농도와 맛 등을 고려한 레서피를 제안했다. 인력이 많지 않고 핵심 인재의 업무가 과중해질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배려해 해외 전시회 동향 등을 공유하고 해외 제품 샘플을 공수해오는 등 장거리 출장에 따른 비용과 시간 부담도 덜어줬다.

또 라라스윗에는 과감히 자체 연구실과 기계를 내주고, 아이스크림을 전담하는 연구원까지 붙여줬다. 그 결과 라라스윗은 아이스크림에 ‘생딸기를 넣어보고 싶다’ ‘초코 청크가 씹혔으면 좋겠다’와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흥국F&B가 보유 중이던 프루트 피더(fruit feeder) 등의 최신 기기를 활용해 테스트해보고 실제 딸기, 민트초코맛 제품으로 구현해 냈다. 아울러 젤라토 생산설비뿐만 아니라 과일, 빙수 등 다른 품목용 장비와 HPP 기기 등까지 폭넓게 적용하며 시야를 넓히고 맛을 개선했다.

양사가 이렇게 쌓은 저칼로리 아이스크림 개발 노하우와 설비는 ‘마이노멀푸드’라는 또 다른 스타트업의 생산에도 적용됐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푸드를 지향하는 마이노멀푸드가 저당질 아이스크림,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락토프리 아이스크림 등 신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데 활용된 것이다. 마이노멀푸드의 이형진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흥국F&B에 커피 관련 자문을 구하면서 버터를 넣고 탄수화물은 1% 미만으로 낮춘 방탄커피 등 회사의 베스트셀러 제품을 개발했다.

흥국F&B는 국내 첫 1인 화덕피자 브랜드인 ‘고피자’의 맛 개선 작업에도 도움을 줬다.
2019년 여름 고피자 임재원 대표는 ‘피자업계 맥도날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피자 소형 창업 프랜차이즈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유능한 기술 인력이 부족해 고심 중이었다. 이에 흥국F&B는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에 치즈 소스와 음료 등을 납품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고객사에서 20년간 R&D를 전담해 온 전문가를 연결해줬고 고피자는 그를 정식 고문으로 위촉해 기존 레서피를 개선하고 신메뉴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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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영 자금 대출 및 결제 조건 변경

흥국F&B는 이그니스에 긴급 자금도 대출해줬다. 2017년 2월에는 급증하는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운전자금이 필요하다는 이그니스의 요청이 있은 지 단 이틀 만에 박철범 대표가 4억 원을 선뜻 내줬다. 단 한 차례의 IR(기업 설명)만으로 전격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금리도 직원 대출 수준에 맞춰줬다. 이 같은 대출은 장기적으로는 투자와 경영권 인수까지 논의하더라도 창업자가 가급적 늦게까지 지분을 지키면서 기업가정신을 유지하고 회사 가치를 높이는 데 몰두해야 한다는 박 대표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구축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흥국F&B는 2018년 4월 20억 원의 지분 투자도 진행했고, 2020년 1월에는 10억 원의 운전자금을 한 번 더 대출해주기도 했다.

또한 주 거래처로부터 돈 받는 시기와 흥국F&B에 생산대금을 줘야 하는 시기가 맞지 않아 이그니스의 유동성이 메마른 경우, 대금 결제일을 늦춰주는 식의 편의도 제공했다. 박찬호 대표는 “흥국F&B가 매번 자금 미스매치, 공백을 메워준 덕분에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면서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며 “‘햇살론’처럼 따스한 자금이었다”고 설명했다. 수출이나 IPO 등을 고민할 때는 네트워크도 연결해줬다. 2019년 중국의 대형 뷰티 유통 그룹인 홍위엔과의 130억 원 수출 계약도 흥국F&B가 소개해준 인맥을 통해 성사됐으며 향후 IPO를 염두에 두고 흥국F&B의 상장 주관사와도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스타트업의 경우 아직 외부 자금을 받고 있지 않아 보류 중이지만 흥국F&B는 향후 이들이 요청할 경우 마찬가지 조건으로 투자, 대출 등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Take: 스타트업 → 흥국F&B
1. 신규 포트폴리오 확보와 다각화

흥국F&B에도 스타트업과의 협업은 터닝포인트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과일 액상 제품에만 치우쳐 있던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회사는 이그니스와의 협업을 기점으로 그전까지 호시탐탐 기회만 엿봤던 파우더형 제품의 생산을 본격화했다. 양사의 협업 이야기가 오간 지 불과 1달 만에 분말 반자동화 라인에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완전 자동화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단, 일단 가능한 범위에서 설비를 확충했다. 이렇게 신규 설비를 도입한 결과 쑥 파우더, 초코 파우더, 요거트 파우더 등 새로운 제품군도 선보일 수 있었다. 흥국F&B의 R&D 및 생산을 총괄하는 신동건 상무는 “프리미엄보다는 중저가 제품으로 승부를 보려는 개인 카페를 중심으로 가성비 좋은 파우더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라며 “이들 신제품의 판매량이 꾸준히 늘면서 분말 라인의 가동률이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랩노쉬 생산을 맡기 전부터 흥국F&B 내부에선 파우더 제품 양산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었다. 액상보다 맛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어 찾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액상보다 유통기한이 길고 관리도 쉬웠다. 그러나 공장 내부에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걱정이 컸다. 분말은 이론적으로 수분에 약한데 흥국F&B의 공장은 액상 위주의 라인으로 구성돼 습도가 높고 분말 생산에 적합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신생 스타트업인 이그니스와의 협업은 건조기 등 분말 생산설비 투자를 감행해야 할 명분을 제공했다. 이 투자를 기점으로 흥국F&B는 파우더 완제품의 수분을 4% 미만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노하우를 습득했고, 기존에 없던 신제품들을 출시할 수 있었다.

흥국F&B는 이그니스 제품 생산을 위해 분말 라인뿐 아니라 레토르트 라인에도 신규 투자했다. 원래 비가열 처리 전문으로서 신선 식품만 취급해 왔지만 죽 제품을 생산하면서 레토르트로까지 저변을 넓힌 것이다. 그리고 이 투자를 계기로 남양유업 등에 어린이용 이유식을 납품하는 등 신시장을 뚫는 데도 성공했다.

라라스윗과의 협업 역시 흥국F&B가 진입을 노리던 아이스크림 시장의 문턱을 넘는 계기가 됐다. 줄기차게 디저트 사업에 눈독을 들이던 회사는 이미 아이스크림 생산에 필요한 기본적인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탈리아 유명 업체와 제휴해 우유, 달걀, 설탕과 천연 향미 재료를 넣은 젤라토 생산기술을 배운 뒤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 그러나 생각보다 카페 프랜차이즈에서 젤라토가 잘 팔리지 않았고, 관리까지 까다롭다 보니 기껏 투자했던 기기가 방치된 상황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납품할 거래처가 마땅치 않아 고심 중이던 회사에 라라스윗과의 만남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라라스윗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와디즈 공지를 보자마자 연락을 취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협업을 계기로 흥국F&B는 라라스윗을 신규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아이스크림 설비 가동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협업 전인 2017년 93일에 불과했던 설비 가동일 수는 2018년 122일, 2019년 157일로 증가했으며, 2020년 3월 기준으로는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되는 중이다. 흥국F&B는 이 기세를 몰아 영하 60도 급속 냉동으로 최상의 맛을 유지하는 ‘스파이럴 프리저’에도 과감히 투자하며 낡았던 기기를 신식으로 교체했다.

신 상무는 “라라스윗의 생산 물량이 급증한 2019년 하반기부터는 라라스윗 제품이 전체 아이스크림 설비 가동률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며 “라라스윗의 제품을 생산하면서 이 회사의 원료 배합비, 가공 방법, 세균, 온도, 공정 중 신경 써야 할 여러 기술 노하우도 습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원료인 계란 성분을 넣기 시작했음은 물론, 실제 씹히는 과일이나 청크 등을 주입하는 프루트 피더의 성능도 검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가령, 온도를 높여 살균하는 과정에서 계란 성분이 기계 장비 벽에 달라붙었고, 라라스윗 제품을 생산할 때마다 배합실에서 세척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런 진통을 겪으면서 회사는 세척 방법을 개선하고 더 다양한 개발 역량을 체득하게 됐다.

새로 흡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흥국F&B는 2020년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카페용 젤라토 신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위생 관리가 힘들고 고가인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캡슐만 넣으면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상품을 개발해 카페 프랜차이즈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처럼 흥국F&B는 스타트업과 손잡으면서 과일 제품 의존도를 낮추고 품목은 다변화하고 있다. 변동성이 큰 식품 시장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 3)

2. 시장 트렌드 파악 및 마케팅 역량 강화

스타트업과의 협업은 F&B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비자와 접점 포인트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신 상무는 “우리는 B2C보다는 B2B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에 최종 소비자보다는 중간 소비자인 카페 점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들이 메뉴를 만들 때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더 신경 써 왔다”며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스타트업은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고 최신 동향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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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3S’, 즉 칼로리가 낮고(Slim), 설탕이 들어가지 않으며(Sugar-free),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Super food)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게 됐다. 흥국F&B는 최근 이그니스가 피트니스 업체인 서울코치를 인수하고 식단 관리 시장에 침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거 헬스 트레이너나 선수들만 먹던 프로틴 제품이 점차 대중화되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건강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이를 확인하고, 과거에는 너무 협소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헬스푸드 시장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등의 유통 채널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라라스윗과 마이노멀푸드의 급성장에서도 저칼로리나 저탄고지 등 다이어트 식품에 대한 수요를 확인하고, 1인용 피자를 내세운 고피자로부터는 실속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소비 경향도 포착했다. 이는 흥국F&B가 저칼로리 음료 베이스 출시나 1인용 소포장 등의 변화를 검토하는 배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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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F&B가 SNS 채널을 활용하고, 투박했던 제품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개선하게 된 것도 스타트업 벤치마킹의 결과였다. 라라스윗 민찬홍 대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SNS에 올라온 제품 리뷰를 정독하고 댓글을 달 정도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고객과의 소통에 쓴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서 출시되길 원하는 맛을 투표로 정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제품이 입점한 편의점 매장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등 고객 참여 이벤트도 활발히 진행한다. 마이노멀푸드 이형진 대표는 저탄고지, 키토제닉 식단의 효용을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면서 제품을 알리고 있다.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흥국F&B도 유명무실했던 마케팅 인력을 13명까지 확충하고, 디자인 전담 역시 1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 사진 촬영 및 편집 기술, 동영상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촬영실을 별도로 마련하고, 촬영 기법에 능숙한 외부 인력을 영입하거나 내부 교육을 시행했다. 원래 B2B 제품의 경우 카페 점주들이 매장에서 사용하고 버리기 때문에 디자인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만들어달라는 대로 주문 제작하거나 최소한의 법적 규격만 맞추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색상으로 패션 아이템을 방불케 하는 랩노쉬 등 B2C 제품들의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을 보면서 CEO를 비롯해 전 직원이 자극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박철범 대표는 “스타트업들은 제품을 예쁘고 섬세하게 디자인하고 포장하는 데 능숙하기에 젊은 직원들이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감각을 익힐 수 있다”면서 “나 역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많이 보고 해외 맛집 팔로우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2016년 5월 처음 B2C 시장에 진출할 당시 편의점, 대형 마트만 신경 썼던 회사는 2018년 11월 홈 카페 수요를 겨냥한 자체 신규 B2C 브랜드 ‘오늘의일상’을 내놓으면서는 쿠팡, 오픈마켓, SSG닷컴 등의 온라인 채널을 개척했다. 동시에 SNS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파워블로거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유튜브 연계 홍보를 시작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 관심을 두면서 2019년 12월 뱅쇼 베이스를 와디즈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등 TV 광고 외 프로모션 전략에도 눈을 떴다. 그 결과, 출시 후 1년을 기준으로 온라인 오픈마켓을 통한 매출 비율이 66%까지 점해 자사 몰(15%)은 물론, 오프라인 매출을 능가하게 됐다. 과거 출시했던 ‘수가’의 경우 자사 몰이나 식자재 업체를 통한 매출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그림 4) 이 같은 채널 다각화에 힘입어 ‘오늘의일상’의 2020년 1분기 추정 실적은 판매량 기준 2019년 1분기보다 10배 가까이 뛰었으며 품목 수도 출시 당시 8개에서 15개로 늘었다. (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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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오늘의일상’의 선전은 유튜브 브이로그 등을 통해 확산되는 최신 시장 트렌드를 잘 읽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점점 실내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외출 빈도는 줄면서 집에서도 카페 메뉴를 제조하고 싶어 하는 홈카페족들의 니즈를 효과적으로 공략했다는 것. 소위 ‘집순이’ ‘집돌이’들이 카페에 간 듯한 기분을 느끼려면 쉽고 간편하게 맛을 흉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핵심을 간파했다. 이에 흥국F&B는 자몽, 레몬, 오미자유자, 콜드브루, 밀크티 등 베이스에 물이나 탄산수만 섞으면 에이드나 흑당 밀크티 등 인기 음료를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밀가루 함량은 낮춘 글루텐프리 와플믹스를 선보이는 등 홈 브런치 영역으로까지 제품군을 넓히면서 SNS, 와디즈와 기타 여러 유통채널을 타고 입소문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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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망 거래처 선점

협업 초반에는 흥국 F&B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지만 결과적으로 이그니스의 성장은 흥국F&B의 매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그니스의 경우 거래 시점부터 지금까지 매년 거래처 매출 10위권에 들고 있으며 2017년 7위, 2018년 3위, 2019년 5위 등으로 계속 그 비중이 늘며 명실상부 대형 거래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18년에는 약 30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이 발생하며 흥국F&B의 역성장을 막는 성장 동력이 됐다. 이는 회사가 기존 거래처 매출 부진을 상쇄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아울러 라라스윗도 매출이 2019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늘고 있으며 분말 생산라인과 아이스크림 생산라인 등이 모두 BEP(손익분기점)를 넘어섰다. 마이노멀푸드의 저탄고지 아이스크림 판매에 따른 매출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할 예정이다. 흥국F&B에 따르면 이렇게 2017년부터 스타트업 파트너사들을 신규 거래처로 확보하면서 생긴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액의 약 5% 전후를 차지한다. 김 상무는 “상장사 입장에서 매출 역성장은 주가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스타트업들의 선전 덕분에 단기적인 거래처 이탈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며 “꼭 직접투자나 M&A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이 스타트업들의 성장이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로 이어지기 때문에 파트너십에 따른 실익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견 ODM사의 강점 극대화한 협업

흥국F&B가 이처럼 스타트업과 윈윈(Win-Win) 모델을 구축하고 가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중견 ODM사로서 다른 대기업들과는 차별화되는 이점을 파트너사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식, 인력, 경험, 자금, 설비 등 모든 면에서 뒤지는 중견 기업이 대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그런데 흥국F&B는 소품종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과 달리 다품종 소량 생산을 택했고, 이 방식을 뒷받침하기 위해 빠른 의사결정과 집행으로 시장의 수요를 즉시 맞춰왔다. 그리고 박철범 대표의 ODM 비즈니스 철학대로 고객의 레서피 등 지식재산(IP)을 철통같이 보호함으로써 의심 많은 스타트업의 신뢰를 얻었다. 이 같은 회사의 강점은 동반성장 전략에서 빛을 발했다.

1.스타트업 호흡에 맞는 빠른 의사결정

흥국F&B의 가장 큰 특징은 대기업이 가지지 못한 빠른 의사결정 속도였다. 우선,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작다 보니 결재 체계가 단순했다. 복잡한 라인을 거치지 않고도 생산과 R&D를 총괄하는 신동건 상무, 전략을 담당하는 김상형 상무가 구두로 제안하고 창업자 박철범 대표가 결단을 내리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음으로, 주문 즉시 생산을 시작해야 하는 ODM의 특수성으로 인해 경영진이 생산 가능 여부를 바로바로 알려주고 실행하는 게 회사의 문화였다.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납품 기한을 맞추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조직 분위기상 시간 지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자사 브랜드가 적어 역으로 기존 사업과의 연계성, 시너지를 모색하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베팅할 수 있었다. 즉, 사업부가 많은 대기업과 비교해 다른 사업부와의 이해 상충이나 캐니벌라이제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같은 특징은 빠른 호흡의 스타트업과 손발을 맞추는 데 있어 장점으로 작용했다. 대기업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가 때때로 스타트업과 불협화음을 내는 주된 원인이 느린 의사결정인데 흥국F&B는 의사결정상에 병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집이 큰 대기업 계열사들의 경우 투자와 제휴 결정이 오래 걸리다 보니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촌각을 다투는 스타트업들과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표방하면서 통상 검토에만 수개월, 최종결정까지 1∼2년씩 걸리고, 차부장급부터 상무, 전무/본부장, 대표이사까지 보고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흐지부지될 때도 많다. 아무리 풍부한 자본력과 네트워크, 기술을 갖춘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피드백을 질질 끌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고, 이런 간극은 대기업-스타트업 파트너십 구축의 최대 애로사항이었다.

이에 반해 흥국F&B는 속도에 있어 확실한 비교우위가 있었다. 특히 식품 제조사의 경우 산업 자체의 유행이 빠르게 바뀌고 계절을 타기 때문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소비자들의 취향, 시즌별로 리뉴얼되는 메뉴를 따라가야 하는 게 숙명이다. 가령,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는 시즌 메뉴를 3∼4개월 단위로 출시하는 만큼 이 속도를 맞춰주지 못하면 경쟁사에 기회를 뺏기게 된다. 메뉴 하나당 샘플 테스트가 수차례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365일 신제품 개발을 하면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인기가 많은 제품은 최장 6개월까지 연장 판매되기도 하지만 인기가 없는 제품은 전부 폐기된다. 재고를 예측하기 힘들고 트렌드 교체 주기가 짧아 공급자가 의사결정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그니스의 박 대표는 “식품 대기업 5∼6곳과 컬래버레이션 논의를 진행한 적도 있었는데 대기업의 경우 계속해서 정보 브리핑을 요구하면서 레서피나 비즈니스 전략을 캐묻다가 연락이 끊기곤 했다”면서 “흥국F&B에서 1달 걸린 일이 2∼3달은 기본으로 걸리고, 흥국F&B에서 상무님과 대표님 결재면 끝날 일을 다른 데서는 수차례 미팅을 하고도 대표님에게 보고가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사소한 레서피 변경도 적용하려면 몇 달씩 소요되는 대기업들 대신 흥국F&B를 택한 이유가 ‘스피드’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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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품목만 709가지, 고객 맞춤형 서비스

‘다품종 소량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대형 고객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춰 무엇이든 개발, 제조해줄 수 있는 유연성과 적응력도 회사의 강점이었다. 흥국F&B는 카페 프랜차이즈들이 주문한 대로 만들어주는 맞춤형 생산에 최적화돼 있었다. 고객이 요구하면 “일단 해보겠다”고 답하고, 안 되는 이유보다는 가급적 되는 이유를 찾는 게 거래처 관계 유지가 핵심인 업의 특성상 당연한 문화였다. 이는 곧 신생 업체가 전례 없는 아이디어를 구현해보고 싶어 하거나 신제품을 소량만 시범 생산해보고 싶다고 제안해도 충분히 맞춰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고객사의 눈높이에 부합하기 위한 품질 관리 스트레스도 흥국F&B에는 일상이었다. 신 상무는 “고객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품질 유지를 위해 공장을 실사하다 보니 사실상 이틀에 한 번꼴, 1년에 약 180번은 기습 방문을 받는다”며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라 외부 실사를 통한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자기 성장 기회로 생각하는 직원들만 조직에 남는다”고 말했다.

흥국F&B는 2011년 공장 준공 이후 끊임없이 증설을 거듭하며 현재 709가지에 이르는 품목제조 보고서, 27개의 HACCP(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그때그때 다른 고객 주문에 맞춰 700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에 대응하고 있는 것. 공장 성수기인 5월부터 9∼10월까지는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당일 설비 교체를 통해 포장재 크기나 용량이 다른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할 정도다. 흥국F&B가 2012년부터 스타벅스를 고객으로 둘 수 있었던 비결도 고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의지로 고객의 니즈를 맞춰주는 생산 역량에 있다.

2011년 이후 설비 투자가 계속해서 이뤄지면서 처음 1대밖에 없던 고가의 HPP 장비도 3대까지 늘었고, 커 보였던 3000평 공장도 빼곡히 들어찼다. 안정적인 거래처를 기반으로 성장을 이어가면서 연간 최대 70억 원에 달할 정도로 타 제조사 대비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미래 수요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는 경쟁사 추격을 따돌리고,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진입장벽을 구축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상장 후 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탈했던 거래처들을 되찾고, 10%대 영업이익률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런 오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철범 대표는 “거액을 투자한 설비가 놀고 있거나 가동률이 떨어지면 불안할 때도 있지만 선제적 투자로 인해 반사 이익을 누린 경험이 쌓이면서 확신이 생겼다”며 “무식하게 확장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마케팅 회사가 아니라 제조사인 만큼 설비에서 우위가 있어야 사업을 지탱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령, 고객사인 한국야쿠르트의 콜드브루 제품 ‘바빈스키’의 원두 로스팅 주문으로 과감히 커피 로스팅기에 투자한 것이 계기가 돼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에도 콜드브루 커피를 납품하게 됐듯이 투자만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작년 흑당 버블티의 수입 판매로 이익을 본 뒤 타피오카 펄과 흑당을 생산하는 설비에도 새롭게 투자했다”며 “어차피 유행은 돌고 돌기 때문에 당장 인기가 한풀 꺾여도 기회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덧붙였다.

3. 철저한 IP 보호로 쌓은 신뢰 관계

파트너사가 성공하더라도 떠나지 않고 장기 거래처로 남으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본 흥국F&B는 “같은 카테고리의 제품을 생산, 납품할 때는 반드시 파트너와 상의 후 결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는 국내 대형 마트 등 유통사에서 스타트업 제품과 똑같은, 혹은 비슷한 PB 제품을 생산해달라는 의뢰가 왔음에도 파트너와 협의 후 모두 거절했다. 이는 ODM 비즈니스에서 거래처 비밀 준수를 철칙으로 삼고, 파트너십을 장기적인 투자의 일환으로 본 박 대표 본인의 의사였다. 유통사의 대규모 물량 제안을 선뜻 받는 게 궁극적으로는 ‘소탐대실’이라고 본 오너의 확신이 흥국F&B를 다른 기업들과 구별 지었다. 박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대형 유통사에 납품하면 물량이 많으니 이익이지만 유통사가 자체 개발한 레서피로 생산을 의뢰하는 게 아닌 한 우리가 먼저 다른 회사를 위해 생산 중인 것과 같은 품목을 생산해주진 않는다”며 “스타트업과 약속을 지키고 신뢰가 쌓여야 장기적으로 이 회사들이 성장했을 때 우리한테 더 많은 물량을 맡기고 관계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식품 스타트업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기발한 아이템을 내놔도 조금만 될성부르면 다른 기업들이 똑같이 베낀 미투(Me-Too) 제품을 쏟아낸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브랜드가 중요한 패션, 뷰티보다 식품업계에서 더 심각하다. 타 업계와 달리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식 때문이다. ‘식품이 무슨 기술이냐’ ‘거기서 거기지’ ‘싸면 장땡’이라며 여러 기업이 우후죽순 들어와서 단가와 품질을 떨어뜨리고, 매출이 생각보다 주춤하면 접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박찬호 대표는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 자체는 파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상당수가 디자인 및 콘셉트를 단순히 베낀 PB 제품을 만들려 하는 게 문제”라며 “랩노쉬 출시 후 유사한 콘셉트의 제품을 내놓은 기업만 50개사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중 한 대형 유통사의 경우 랩노쉬 디자인을 표절한 게 문제가 돼 특허청의 시정 권고를 받고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민찬홍 대표 역시 “국내 대형 유통사도 저칼로리 아이스크림 PB 제품을 내놨었고, 2018년과 2019년 각각 7∼8개 유사 제품이 출시됐지만 조용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흥국F&B가 스타트업 레서피 등 정보를 보호해준다는 입소문이 나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스타트업들이 먼저 회사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창업자 출신으로 콤부차를 생산하는 박상재 ‘부루구루’ 대표의 경우 “궁극적으로 흥국F&B 같은 ODM사가 될 것”이라며 지원을 요청했을 정도다. 이런 요청에 흥국F&B도 기꺼이 충북 음성 공장 견학을 허용하고 생산 노하우를 전격 공개했다.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인 ‘인벤터스’도 정보 보호에 대한 믿음, 다품종 소량 생산에 유리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 협업을 제안해 방식을 논의 중이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스타트업과 협업형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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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경제의 근간은 협력과 경쟁이다. 파이를 키우려면 협력해야 하고, 파이를 나누려면 경쟁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 파이를 가져가는 데만 몰두하면 시장을 키울 수 없는 만큼 둘의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시장의 경우 기업 간 경쟁보다는 생태계 간 경쟁의 양상을 띠기 때문에 같은 생태계 내 협력 시스템을 얼마나 잘 구축하는지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런데 아직 국내 기업의 의식은 기업 간 경쟁에 머물러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단기적으로 떡을 더 가져가는 데 치중해 떡의 총량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2004년 ‘상생 협력’을 시작으로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성장이 국내 재계에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삼성, LG, 현대, SK 등 대기업과 1차, 2차 중소협력사의 긴급 자금 지원, 공동 제품 개발, 원가 절감 노하우 전수 등 협업 케이스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스타트업과의 협업 사례는 많지 않다. 모바일 산업과 벤처투자 붐으로 다양한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한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여전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논의만 활발하다. 그런 의미에서 흥국F&B의 케이스는 매출 500억 원대 중견 기업과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스타트업이 제품 개발과 생산, 정보 공유, 네트워크 소개, 투자 등 다방면의 상생 협력을 꾀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재 진행형인 흥국F&B의 협력 모델은 스타트업과 동반성장을 고민 중인 기업들에 시사점을 준다.

1.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위험 완화

흥국F&B는 스타트업과의 협업, 외부 운영 컨설턴트의 자문을 통해 기업에 부족한 역량을 채우고, 미 버클리대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오픈 이노베이션 이론을 실행에 옮겼다. 모든 일을 스스로 다 하려 하지 않고, 내부에 부족한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기업과 협업함으로써 외부 아이디어와 R&D 자원을 함께 활용했다. ODM사 특유의 고객 지향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파트너사를 물색하고, 창업자가 직접 스타트업 CEO들과 소통하고 협업 업체 선발에 관여하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에 힘을 실었다.

흥국F&B는 카페 산업 성장 초기 시장을 장악하며 블루오션에서 20% 이상의 영업이익을 누렸고, 상장 전까지만 해도 회사의 단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장 후 경쟁 심화로 레드오션에 진입한 뒤 B2B, 대형 거래처 중심의 편중된 포트폴리오가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깨닫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사업 다각화에 눈길을 돌렸다. 709개 품목제조보고서를 보유한 R&D 분야의 강점을 살려 스타트업 제품 개발을 돕고 매출처를 확보하는 한편, 복잡한 공장 프로세스, 유행 교체에 따른 품목생산량의 높은 변동성 등 약점을 보완했다. 이를 통해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식품 산업의 불안정성에 대응했다.

2. 스타트업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해결에 집중

흥국F&B는 진정성을 가지고 어려움에 부닥친 스타트업에 먼저 다가갔다. 일면식도 없던 라라스윗이 생산에 차질을 빚을 때 연락해 생산을 제의하고, 운영자금이 필요한 이그니스에 긴급 자금을 바로 대출해주는 식으로 페인 포인트를 명확히 인지해 해결해줬다. 경험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가 처음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신뢰하고 선뜻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 사전에 회사의 비전 등을 철저히 조사한 뒤 먼저 손을 내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보 비대칭과 상호 신뢰 부족은 ‘단계적 협업’을 통해 해결했다. 이그니스 투자에 앞서 제품 개발과 생산을 먼저 지원하며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고, 1년 뒤 이그니스가 제시한 매출 목표를 달성하며 역량을 증명하자 투자까지 진행한 것이 그 예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가장 시급한 페인 포인트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흔히 스타트업에는 자금과 유통채널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흥국F&B는 식품 스타트업에는 당장 투자 유치보다 생산 안정화를 통한 우수한 품질관리, 맛있고 신선한 제품 개발 등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생산과 R&D부터 지원했다. 스타트업들을 단순히 제품이나 B2C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창구로 보지 않고,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경청하고 전사적 노력을 기울여 해결함으로써 신뢰를 쌓았다.

3. 동반자 정신으로 예측 가능한 관계 확립

한번 맺은 협업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려면 동반자 정신에 따라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흥국F&B는 대기업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퍼주기식, 시혜적 배분에 나선 게 아니라 기브앤드테이크에 기반을 둔 호혜적 협력을 꾀했다. 이를 위해 상호 계약사항을 철저히 준수했다. 상대적으로 큰 기업으로서 작은 기업의 비밀유지준수(NDA) 계약 이행에 온 힘을 쏟았다. 스타트업을 기존 대형 유통 거래처와 동등하게 대하고 파트너사 제품과 유사한 PB 상품 생산 의뢰 등 단기적으로 더 큰 매출을 낼 수 있는 제안들의 유혹을 이겨냈다. 한국 기업들에서 동반 성장 모범사례가 잘 안 나오는 까닭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단기적인 기업가치 극대화와 원가 절감에 매달리느라 지속가능한 거래 관행을 정착시키지 못하기 때문인데 흥국F&B는 유망 거래처 확보라는 장기적인 관점의 목표를 수립하고 약속을 지켰다.

철저한 계약 준수는 협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흥국F&B는 다른 납품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스타트업 전용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까지 감행했다. 일정 기간 스타트업에 종속되길 자처한 것이다. 그 결과 흥국F&B는 수억 원을 들여 기껏 설비를 확충했는데 스타트업이 다른 제조업체에 물량을 맡겨버릴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됐고, 스타트업은 흥국F&B가 단기적인 가동률 증가와 매출 증대를 위해 대형 유통사에 레서피 등 기밀을 누설할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됐다. 이 같은 쌍방의 위험 공유 및 인지는 예측 가능한 협업을 가능케 했다. 이 같은 협업은 모든 거래를 내부화해 직접 조달하는 것과 외부 경쟁 시장에서 모두 공급받는 것 사이의 절충안이자 시장 파이를 나누기보다는 함께 키웠을 때의 효익에 집중한 전략이었다.

글로벌 협업 케이스로 확대 기대

글로벌 대기업들은 혁신 스타트업과 상생 협력에 적극적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의 54.2%는 전 세계 스타트업과 기술 자문, 제품•서비스 공유, 인큐베이터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대기업은 특유의 공채 문화, 폐쇄형 조직 분위기로 인해 외부 조직과의 연계 활동이 아직 미흡하고, 자체 액셀러레이터를 보유하고도 상생 협력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자금과 정보가 부족한 스타트업, 혁신성이 부족한 대기업이 국경을 초월해 협력해야 한다. 과거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손잡고 국내 부품 소재기업과 신제품 공동 개발, 해외 시장 동반 진출을 도왔듯이 이런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 성장 모델을 이제는 스타트업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흥국F&B 케이스는 개방적인 조직문화, 빠른 의사결정, 유연한 책임자를 상대로 한 권한 위임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천한 사례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5년, 10년을 내다보고 스타트업의 아픈 부위를 치료해주는 동반 성장 모델을 계속해서 만들 때 한국에서도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skkwak@snu.ac.kr
곽수근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학장, 한국경영학회 회장, 중소기업학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생협력연구회 대표, 동반성장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9호 Fly to the Metaverse 2021년 09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