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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자본주의 시대, 당신 선택은?

김정수 | 12호 (2008년 7월 Issue 1)
가끔 외국 유명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이 소개되면 천문학적 숫자에 입을 다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월마트 CEO의 연봉은 무려 175억 원이나 된다.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1963년 CEO들의 연봉은 일반 직원의 60배 수준이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350배에 이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영진에 대한 이윤창출 압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미국 CEO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1999년 평균 10년에서 최근에는 8년으로 줄어들었고, ‘비자발적’ 교체율도 1995년의 9%에서 2005년 15%로 높아졌다. CEO가 된 뒤 12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장기적인 전략을 펼쳐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의 치열함과 성과에 따른 명암 대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극명해진 것이다.
 
미국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이런 현상을 ‘슈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라고 정의했다. 같은 이름의 책은 이와 같은 ‘성과 지상주의’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큰 변화 트렌드에 기인한 구조적 결과라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또 슈퍼자본주의가 기업 경영은 물론 정치·사회에 주는 시사점도 상세하게 제시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평범한 직장인들이 과연 슈퍼자본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슈퍼자본주의의 등장 배경
우선 슈퍼자본주의의 등장 배경에는 주주 구성 변화와 권한 강화가 자리하고 있다. 필자가 최근 컨설팅 작업에 참여한 외국의 한 은행은 펀드 투자자의 비중이 40%에 달했는데, 성과가 나빠지자 주요 펀드들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다. “올해 안에 눈에 띄는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식을 처분하거나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것이었다. 과거와 같이 개인 투자자들이 이른바 ‘개미’에만 머무르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힘이 펀드를 통해 결집되고, 전문적으로 운영되면서 0.1%라도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경영진에 대한 압박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진입장벽 완화와 과점 구조 붕괴에 따라 모든 산업에서 소비자 주권이 강화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간 경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졌다. 1950년대의 기업 경영진은 비용 인상 요인을 손쉽게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소비자 선택권과 각종 가격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 기업의 내부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감축만이 유일한 대안이 됐다. 최근 구조조정 등의 명분으로 인력 감축이 훨씬 더 잦아진 것도 수익성에 대한 주주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CEO들의 고육책이다.
 
양날의 칼
이처럼 경제의 중심이 생산자에서 투자자와 소비자로 옮겨감에 따라 등장한 슈퍼자본주의는 기업의 성과 경쟁을 심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더 싸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가져다 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슈퍼자본주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우리는 투자자와 소비자인 동시에 기업과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로서의 우리는 인력을 10% 감축하고 주가를 높인 CEO를 지지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인력 감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투자한 회사의 CEO가 환경 보호를 위해 주가 하락을 감수하겠다고 했을 때는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그 기업이 환경을 오염시켰을 때는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 나의 투자 수익률을 높여주기만 한다면 CEO에게 일반 직원 350배의 연봉을 줄 용의가 있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350분의 1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는다는 소득 불균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슈퍼자본주의는 사회적 안전망이 함께 따라주지 않았을 때 혜택보다 큰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사회안전망 제공 등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기업은 생존 경쟁이 더할 수 없이 치열해짐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찾게 되고, 결국 각종 법령이나 정부 규제를 담당하는 정치권도 예외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의 주요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공정 거래, 환경 보호, 소비자 보호, 고용 안정, 소득 불균형 해소 등의 정책들이 정치 자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의 입김으로 인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워진다. 또 기업들의 단기적 과당 경쟁을 막을 수 있는 기능도 상실되기 쉽다.

이윤 못내는 ‘착한 기업’ 용납 못해
한편으로는 기업의 자발적인 사회 활동,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이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하지만 투자자와 소비자의 이익에 반하는 기업의 사회적 활동은 궁극적으로 어려우며, 슈퍼자본주의는 이윤을 악화시키는 착한 기업의 행동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가 종업원에 대한 보험 혜택을 늘리는 것은 직원들의 이직률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수익을 늘리기 위한 것이지, 결코 직원들만을 위해 그런 정책을 세운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투자자들은 수익 증대와 관련 없는 복지 혜택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 보완이라는 방대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해결책은 나와 있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이런 큰 트렌드의 이해는 기업의 전략적 의사 결정에서부터 개인의 투자와 진로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판단에는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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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jungsu.kim@gscaltex.com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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