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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하송 | 12호 (2008년 7월 Issue 1)
2007년에 미국에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에 있는 쿠퍼휴이트 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의 컨셉트는 ‘90%의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90%의 사람이라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 주최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디자인은 상위 10%의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90%의 사람들인 빈곤층, 저개발 국가의 국민, 장애인 등을 배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최 측 의도대로 이 전시에서는 빈민자나 소외 계층을 위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과연 90%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은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90%를 위한 디자인을 만나보자.
 
90%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조건
1. 저비용의 생산성
90%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바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띈 작품이 바로 ‘라이프 스트로(lifestraw)’다. 라이프 스트로는 그저 평범한 빨대가 아니라 놀라운 기능을 가진 마법의 빨대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1억 명이 식수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루에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종 병균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는 의미다. 덴마크의 베스터가르드 프란센(vestergaard frandsen) 그룹이 10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라이프 스트로는 그야말로 작은 생명 샘이나 다름없다. 시가 담배 크기 정도로 작은 이 빨대의 힘은 실로 놀랍다.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을 안전하게 정화할 수 있으며 특별한 전원이나 추가 장비 없이 700리터 이상의 물을 정수할 수 있다. 1년간 필터를 교환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가장 큰 매력은 단 2달러도 되지 않는 가격에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수백 달러짜리 정수기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가나,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우간다 등 저소득 국가에서 라이프 스트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2. 생존을 위한 실용성
90%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의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실용성이다. 식수원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물을 운반하는 것이다. 상수도 시설이 없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 매일 수 km를 걸어야 하는 사람이 많다.
 
생활용수 운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스 헨드릭스는 특별한 장치를 디자인했다. 바로 큐 드럼(Q drum)이다. 원통형의 물통에 물을 담고 연결된 줄을 담기면 큐 드럼이 바퀴처럼 굴러간다. 이 제품은 매우 간단한 구조이지만 한번에 75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 힘이 약한 어린이도 쉽게 끌 수 있다. 무려 1만2000km를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도 아주 뛰어나다. 

 
3. 현장에서 느끼는 디자인
90%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의 마지막 특징은 현장 중심의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상머리에서는 결코 90%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디자이너 본인이 이 디자인을 필요로 할 사람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의 디자이너들은 모두 현지답사를 통해 제품을 개발했다. 직접 가보는 것과 가보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디자인한 것의 차이는 발상 자체부터가 다르다.
 
모하메드 바아바의 독특한 저장고도 바로 현지답사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디자인이다. 지금도 많은 국가가 기아와 기근 문제를 겪고 있다. 심지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보관할 시설이 없어서 기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카메룬, 에티오피아, 니제르 같은 국가에서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음식물 보관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
 
이들 국가를 방문한 모하메드 바아바는 이 지역에 딱 맞는 저장장치를 고안해 냈다. 바로 음식물 보관 장비인 ‘pot-in-pot cooling system’이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항아리, 모래, 물 이 세 가지만으로 저장 장치를 제작한 것.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 밖에서 보면 2중 구조의 항아리에 불과하지만, 두 항아리 사이를 물과 모래로 채워 온도 조절을 할 수 있게 했다.
 
지난날 이 지역에서는 토마토를 고작 23일만 보관할 수 있었지만, 이 장치를 활용하면 무려 21일간 보관할 수 있다. 항아리, 물, 모래 모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서 장비를 만드는데 큰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각 기업도 이를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보다 기업 이미지를 위한 홍보 활동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90%의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 제품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따듯한 가슴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또한 차가운 머리보다 따듯한 가슴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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