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혁신
영업에서 좋은 결과를 내려면 거래 당사자 사이의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이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비즈니스 거래뿐만 아니라 본사와 대리점,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협력해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트러스트>의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이끄는 밭’이라고 강조했다. 또 높은 신뢰감은 법이나 계약 따위의 형식적인 절차를 줄임으로써 성과를 올리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족성을 넘어서는 신뢰감은 협동을 촉진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여기에 두 가지 질문을 더 해보자. 사람들은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까.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질문인 것 같다.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가끔 TV에서 북한 군인 중 높은 직위에 있는 장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군복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훈장은 이들에게 역전의 용사 혹은 무공을 많이 세운 군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기관에서 수여하는 소비자 만족대상, 브랜드 대상 등 수많은 상훈 등도 기업의 신뢰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일본 기후현에 있는 한 건강식품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기업은 독특한 원료로 만든 건강식품을 일본 전역 및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2만여 명의 영업사원을 통해 판매하고 있었다. 해당 기업 본사에는 꼭대기층 전체를 사용하는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관에서 두 가지 흥미로웠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자신이 사용하는 독특한 원료가 갖고 있는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 세계적인 병원에서의 임상결과, 유명 연구소로부터의 인증 등이었다. 다른 하나는 해당 제품을 판매해온 역대 최고 영업사원의 얼굴 상을 26년 기업역사의 각 연도별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있었다.
기업이 원하는 영업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영업사원이 자기 제품에 대해 갖는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각종 특허와 인증, 영업사원들의 판매신화 등은 영업사원으로 하여금 고객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갖게 만들며 목표에의 도전의식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학교도 기업과 다르지 않다. 최근 경영대학원이 난립하면서 ‘우수한 경영대학원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 평가하고 선별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연구, 교육, 교수진, 학생 수준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우수한 경영대학원을 가려내는 기관이 등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우수한 경영대학원의 자격을 인증하는 AACSB가 생겨났고 (국내에는 약 10여 개 경영대학원이 인증을 받음) 유럽을 중심으로 AACSB보다 한층 강화된 자격요건을 가진 EQUIS가 생겨났다. EQUIS를 주관하는 기관은 EQUIS가 훨씬 까다로운 자격심사와 인증 부여를 하기 때문에 권위나 신뢰 측면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국내에는 오로지 3개 대학원만이 인증을 받았다.) 그리고 경영대학원이 아닌 MBA 과정에 부여하는 AMBA라는 인증이 있다. 이 세 가지 인증을 받기 위해 세계의 많은 경영대학원이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다 받으면 이를 Triple Crown이라고 한다.) 인증을 받은 대학원은 세계적인 공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대학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또한 자신의 교육프로그램의 신뢰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다.
이처럼 수상 경력을 널리 알리고 인증과 특허 등을 받으려는 이유는 당연히 거래 상대방이나 고객의 신뢰(Trust)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 조직마다 상징적인 영웅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신뢰도를 높이려는 노력과 관련돼 있다. 기업, 개인, 학교, 국가를 막론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리점이 본사를, 직원이나 고객이 회사를, 국민이 정치가를 믿게 만들려면 상대에게 믿음의 원천이 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신뢰체계(Trust System) 구축이라고 한다.
신뢰체계의 중요성과 구축 방법
신뢰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기업에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잘 만들어진 신뢰체계는 강력한 ‘세일즈 토크(Sales Talk)’의 핵심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기업이 판매채널의 하나로서 홈쇼핑을 활용하고 있다. 그중 일부 기업은 홈쇼핑 채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략적인 기업은 단순히 홈쇼핑을 통해서 제한된 시간에 많은 판매를 하는 것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홈쇼핑 판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방송을 내보낸 다음 세일즈 토크를 정리하는 부수적 성과도 기대한다. 당연히 방송 내용을 직원, 판매원의 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신뢰체계를 바탕으로 한 세일즈 토크는 판매현장에 바로 적용된다. 고객접점에서의 판매원의 행동과 대화를 표준화하고 정리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The Art of the Sale>의 저자인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장사란 좋은 이야기를 파는 일이라 하면서 고객이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의 배후에는 신뢰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직원들에게 밖에 나가서 회사를 열심히 홍보하라고만 하지 말고 체계적이고 정리돼 있어서 고객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세일즈 토크를 만들어내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영업 관리자들의 핵심업무다.
잘 만들어진 신뢰체계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신뢰체계가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과 리플릿 등에 적용할 때에도 훌륭한 재료가 되고 일관적인 아이덴티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신뢰체계의 구축은 제품별 세분화(Segment), 목표시장(Target), 포지셔닝(Positioning)의 전략을 재설정하게 함으로써 매력적인 세분시장을 발견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기존 제품의 강화와 확산의 기회를 제공하며 추가적인 신제품의 개발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패션기업의 창업가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이 사업가는 성공적으로 중국집을 창업하고 운영해 사업 기반을 닦았는데 필자에게 “중국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대답 저 대답을 한 끝에 자장면이라고 답했더니 정답이라고 하며 곧바로 그 이유를 물었다. 즉답을 못했더니 이 사업가는 “간단하다. 고객들은 자장면이 맛있어야 다른 메뉴도 맛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일식집의 핵심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 답 저 답을 했지만 다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식집의 핵심은 “고객 앞에서 스시 등의 요리를 직접 하면서 고객을 만나는 셰프(Chef)”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유능한 셰프는 자신의 수많은 단골고객을 하나하나 파악하고 있으며 관리 또한 자기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중국집 사례는 영업 활성화는 핵심제품의 혁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핵심제품으로부터의 신뢰가 전체 판매제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식집의 사례는 최고의 영업사원이 바로 셰프라는 점을 보여준다. 셰프가 단골고객에게 전하는 메뉴 설명 내용이 최고의 세일즈 무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식집의 성패는 유능한 셰프 확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체계적 영업교육을 받지 않은 셰프라도 본능적으로 고객에게 신뢰를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례가 많다. 전문성을 갖춘 신뢰체계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설명력은 고객과의 훌륭한 관계 설정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례다.
기업은 신뢰체계를 구축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첫째, 관점의 중심을 고객에게 둬야 한다. 여기서 고객에게 관점을 둬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기업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절대 고객 수를 확대하는 것”이다. 절대 고객 수의 확대를 위해서는 영업사원과 중간채널(대리점)의 관점에서도 고객을 바라봐야 한다. 고객을 중시한다면 영업사원과 중간채널(대리점)의 활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뢰체계는 본사가 고객을 설득하는 체계지만 동시에 영업사원과 중간채널(대리점)이 본사에 대해 갖는 신뢰활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좋은 고객은 좋은 접점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선 접점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의 제품, 인증, 특허 등의 신뢰시스템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고객관계관리(CRM)를 본사에서 전적으로 수행하는 과업으로 인식하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본사와 채널이 동시에 고객관계관리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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