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군의 청정성 마케팅

감춰진 축복의 미학: 추위도 팔 수 있다

94호 (2011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주현(서강대 중문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강원도 화천군을 알리기 위한 대표적인 슬로건은산천어와 수달의 고장이다. 군수의 명함에도, 화천군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도 이 슬로건이 적혀 있다. 하지만 과거 화천군에는 산천어가 아예 없었다. 수달도 낙동강이나 섬진강 유역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는 동물이다. 화천군은 전문가를 동원해 지역에 사는 수달을간신히찾아냈다.

왜 화천은 고장의 전통적인 명물과 거리가 먼 산천어나 수달을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육성했을까. 내세울 만한 명물이 없기 때문이다. 화천군은 전체 면적(909) 97.6%가 산과 호수다.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땅을 수복한 지역으로 전체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어서 2층 높이의 건물을 지으려 해도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북한강 유역으로 상수원 보호구역도 많다.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4차선 도로가 하나도 없는 지역이다. 당연히 관광 인프라가 부족했다.

주민 수는 24000명이며 민간인보다 더 많은 군인( 36000)이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낚시꾼들이 많이 몰려왔는데 평화의 댐 건설로 물 흐름이 정체되면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농산물과 군인 가족들이 가져오는 용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날씨마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얼음이 얼 정도로 혹독했다. 지역 발전 관점에서 본다면 자원, 사람, 인프라, 규제, 자연 환경, 심지어 날씨까지 기댈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화천은 이제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산천어축제의 고장으로, 수달연구센터와 UN수달총회를 개최한 수달 연구의 본거지로 부상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교육, 복지, 일자리 등과 관련한 제도적 역량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한사회의 질(social quality)’ 조사에서 화천이 86개 군 중 1위에 올랐다. 대부분 농촌 지역이 인구 감소로 고민하고 있지만 화천은 인구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화천 출신들은춘천 옆에 있는 화천이라고 말하기 귀찮아 그냥 고향을 춘천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화천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정갑철 화천군수 및 군청 관계자 인터뷰와 문헌조사를 통해 화천군의 도전과 응전의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산과 물, 그리고 청정성을 팔자

지난 2002년 취임한 정갑철 군수는 지역 발전 방안을 고민했다. 규제와 입지 여건 때문에 기업 유치도 어렵고 지역 내에 특별한 천연자원도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산업 육성도 거의 불가능했다. 유일한 돌파구는 관광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특별한 관광자원이나 문화재가 없었고 인프라도 부족했으며 한번 해보자는 주민들의 인식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농촌 지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산과 물이 전부였다. 게다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100만명 이상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화천 산천어축제(위)와 타임지 보도 화면(아래)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정 군수는 불리한 지역 여건을 뒤집어 생각해봤다. 각종 규제로 지역 발전은 안됐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로 인해 청정한 자연은 유지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규제 때문에 공장이 들어올 일도 없고 군부대가 유지되는 한 대규모 개발은 거의 불가능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니 빈곤을 타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 군수는청정성을 무기로 관광을 육성해보기로 결심했다. ‘에코 파라다이스란 비전도 구상했다. 청정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이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큰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청정성을 기반으로 성과를 내려면 가시적인 관광 상품이 필요했다. 화천은낭천(화천의 옛 이름) 얼음축제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얼음이 언다는 점에 착안해 빙어 낚시와 얼음 축구 같은 스포츠를 즐기게 해주는 축제였다. 빙어도 잘 안 잡혀 서너 마리 정도만 잡으면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재미가 별로 없으니 참여 인원이 1만 명도 안 되는동네 축제에 그쳤다.

새로운 축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군수 선거에서 도와줬던 사람들을 소집했다. “군수로 당선시켰으면 일을 잘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력자들을 다그쳤다. 초어, 빙어, 산천어, 불꽃 등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중 산천어가 눈에 들어왔다. 화천에는 없지만 산천어가 1급수의 청정한 물에서만 산다는 점이 정 군수의 청정성 및 에코 파라다이스 콘셉트와 맞아 떨어졌다. 산천어는 어감도 화천과 비슷해 정 군수의 호감도를 높였다. 그는 산천어축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주변엔 온통 회의론으로 가득 찼다. 우선 빙어처럼 얼음낚시로는 산천어를 잡을 수 없다는 게 낚시 애호가들의 주장이었다. 실제 낚시꾼들 사이에서 산천어는플라이 낚시로 낚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었다. 얼음낚시로 산천어를 잡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 군수는 이들의 말만 듣고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양식장에서 산천어를 가져다 풀어놓고 얼음낚시로 직접 잡아봤다. 불과 몇 분 만에 찌가 흔들렸고 굵직한 산천어가 꼬리치며 올라왔다. 빙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손맛이 좋았다.

산천어가 얼음낚시로 잘 잡힌다는 사실만으로 축제를 개최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낚시할 수 있도록 낚시 가게도 축제 현장에 있어야 하고 식사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주민이 없었다. “화천에 살지도 않는 산천어를 갖고 왜 난리냐” “산천어로 사기 친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별수 없이 군수가 발로 뛰었다. 화천읍에 네 개뿐인 낚시 가게에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한 주민에게는 소머리고기를 사주면서 적자가 나면 고기 값을 받지 않을 테니 축제장에 나와 달라고 사정했다.

2003 12일 산천어축제가 시작됐다. 정 군수는 2만 명만 오면 술을 사겠다고 말했다. 축제를 개막하고 초기에는 별 호응이 없었다. 그런데 주말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운이 따라줬다. 그해 유독 겨울 날씨가 따뜻해 눈이 오지 않아 인근 지역 겨울 축제가 흥행에 실패했다. 방송사들은 긴급하게 다른 축제 현장을 찾아야 했다. 화천은 겨울이면 읍내의 양 골짜기에서 바람이 불어 얼음이 두껍게 얼기 때문에 축제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관광에 걸림돌로만 생각했던 추위가 화천을 결정적으로 도와줬다. 지역 축제 관련 콘텐츠 제작에 차질이 생긴 방송사들이 긴급히 화천 산천어축제를 홍보해줬고 주말부터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너무 많은 인파로 휴대전화 불통 현상까지 생겼다. 2만 명이 넘으면 술을 사주겠다던 군수도, 술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축제 조직위원회 사람들도 모두 손님맞이에 넋이 나갔다. 낚시 가게는 몇 년 씩 묵었던 재고를 완전히 소진했고 머리고기도 금세 바닥났다. 고기가 부족해 희멀건 국물의 설렁탕을 내오자한우도강탕(韓牛渡江湯)’이란 별칭이 생겼다고 한다. 산천어 회를 떠주던 사람은 몸이 망가지겠다며 비명을 질렀다. 당초 9일 예정이었던 축제는 20여 일로 연장됐다. 나중에 집계해 보니 축제에 참가한 사람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따뜻한 겨울 날씨로 인한 방송사의 홍보라는 우연이 작용했지만 순전히 운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산천어축제는 다른 축제보다 재방문율이 높다. 실제 이듬해 산천어축제 방문객은 58만 명을 넘어섰고 2006년부터는 100만 명을 넘겼다. 방송사의 도움으로는 반짝 흥행에 성공할 수 있지만 축제 자체의 경쟁력이 없었다면 이처럼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산천어축제만의 독특한 재미가 장기적 성공을 가져온 원동력이다.

산천어축제는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겨울에 빙어 낚시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낚시꾼들에게 강렬한 손맛을 제공했다. 또 대부분 낚시꾼들은 남성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낚시를 하는 동안 다른 재미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산천어축제에 참석한 여성과 아이들은 얼음판 위에서 썰매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낚시로 건져 올린 산천어를 즉석에서 요리해서 먹을 수도 있다. 소위낚시 과부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준 셈이다.

다른 축제와 자연스럽게 차별화된 특징도 있다. 대부분 축제는 봄(전체 축제의 18.5%)이나 가을(45.9%)에 열린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사람을 모으기 힘들기 때문이다. 추위밖에 없는 화천은 추위를 무기로 새해 가장 먼저 열리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경쟁 축제가 많지 않아 수도권 주민들의 겨울 여가 시간을 상대적으로 쉽게 빼앗아올 수 있었다. 역발상을 과감하게 실행해 보니 개발이 어려운 환경과 추위 등은 이제 화천만의 강력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됐다.

화천이 수달 중심지가 된 것도 청정성을 상품화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많은 농촌 지역은 청정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따라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가 필요했다. 한 공무원이 수달은 청정한 지역에서만 살기 때문에에코 파라다이스라는 화천의 비전과 잘 맞는다며 수달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달이 당장 지역 주민들에게 수익을 안겨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 군수는 화천이 수달을 통해 청정성과 관련한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화천군은 전문가를 불러 조사를 실시했고 지역에 사는 수달을 찾아냈다. 이후 중앙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 수달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세계수달총회도 유치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천을 얘기할 때 수달을 떠올린다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 나온 정책이다. 다른 지역에도 수달이 많이 사는데 화천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군청 공무원은안동은 고등어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내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람들은 안동하면 간고등어를 떠올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화천군은 

청정성이 단순한 마케팅 구호로 전락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가 힘들다고 보고 실제 청정한 자연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고 목재과학단지를 만들어 해충방지용 등으로 활용되는 목초액,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 목탄 등을 보급해 농촌지역의 친환경성을 높이고 있다. 또 친화경 오리농법을 시작한토고미 마을을 비롯해 청정성에 기반한 다양한 농촌 체험 마을도 운영하고 있다.


사소한 자원에도 상상력과 스토리를 입혀라

산천어축제 하나만으로 지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두껍게 얼지 않으면 이 축제는 그날로 끝난다. 천재지변 등 통제하지 못하는 요인도 있다. 실제 2011년 산천어축제는 구제역 확산으로 개최하지 못했다. 정 군수는 부임 초기부터 다양한 아이템을 찾아냈다. 지역 내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만한 소재는 많지 않았지만 작은 실마리라도 상상력을 입혀 축제로 구현했다.

쪽배 축제가 대표적이다. 북한강변에 있던 화천은 과거 무동력선을 이용해 서울로 물자를 수송하는 통로 중 하나였다. 옛날에는 모든 한강변에서 무동력선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화천만의 고유한 자산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정 군수는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이란 가사를 떠올리며 쪽배 축제를 생각했다. 물이 많은 화천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데다 여름에 주로 사람들이 바닷가를 찾는데 이런 관행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2003년 여름철부터 시작한 쪽배축제는 20만 명의 관람객을 모을 만큼 성장했다. 화천군은 다양한 종류의 무동력선을 타고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했으며 수영, 캠핑, 수상골프장 등도 마련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화천에서는 일부 농가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었다. 일교차가 큰 기후의 특성상 영양분이 꽉 찬 차진 토마토가 생산되며 가격도 비교적 높다. 전국 대부분 농촌에서 토마토가 생산되기 때문에 화천만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 군수는 절박한 현실에서 작은 자원이라도 활용하자는 생각에 토마토 축제를 고안해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인라 토마티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벌인 일이다. 그래서 초기에 프로그램이 엉성했다. 축제 기간 중 차진 화천산 토마토를 더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2003년 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첫 축제를 열었는데 한 주부가 남편에게 토마토를 던지며태어나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정 군수는 축제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스페인 축제를 벤치마킹하고 토마토 위에서 뒹굴며 금반지를 찾는 등 오락적 요소를 가미했다. 오뚜기 등 토마토 관련 업체와 함께 대형 조형물을 세웠으며 1000명분의 스파게티를 만드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했다. 올해 축제에는 5만 명이 방문했다. 방문객 수는 산천어축제보다 훨씬 적지만 이틀 동안 토마토 등 농산물 25000만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평화의 댐도 화천에 자리 잡고 있다. 분단의 아픈 상처와 정치 논란 등으로 평화의 댐은 이름과 달리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 활용하기에 따라서 좋은 관광자원이 될 잠재력은 갖고 있었다. 정 군수는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평화의 댐을 방문하면서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정 군수의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각종 상징물을 설치해 평화의 메카로 포지셔닝하면 관광자원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시적인 상징물을 고민하다 종을 떠올렸다. ‘평화의 메시지가 종소리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한국에 종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상상력과 스토리도 필요했다. 화천군은 살상에 사용된 탄피로 종을 만들자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냈다. 세계의 대표적 분쟁지역에서 탄피를 모으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종소리를 들을 때이스라엘 병사가 팔레스타인 소녀를 향해 발사한 총소리도, 독일 병사가 유태인 학살을 거부하다 총살 당한 탄피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 스토리 라인을 잘 갖추니 실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미국인 목사가 어렵게 입국심사를 통과해 화천까지 탄피를 전달한 사연, 30개 국의 분쟁 국가 탄피를 어렵게 수집한 사연 등이 태어났다.

또 다른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기 위해 화천군은 치열하게 고민했다. 종의 무게는만방에 평화의 메시지가 퍼지라는 의미에서 1만 관(37.5)으로 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 윗부분 비둘기 날개의 반쪽을 떼서 9999관으로 설치했다. 아직 평화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비둘기 날개를 붙여 1만 관짜리 종을 완성한다는 설명도 곁들일 수 있게 됐다. 타종을 원하는 관광객에게는 500원을 받는다.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의 장학금 마련을 위해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핸드 프린팅과 전쟁 유품 등도 전시했다.


화천에는 베트남 파병 용사들이 훈련을 받았던 곳이 있다. 여기를 그냥 놔둘 리 없다. 이곳에베트남 시가전 게임장을 조성하는 등 화천을 서바이벌 게임의 메카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지역 내 늪지대에는 스님들의 협조를 얻어 전국 각지에서 모은 연꽃 씨앗을 가져다 뿌려놓아 수백 종의 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야생화 단지도 만들었다. 작은 실마리라도 있으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담아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축제와 지역 경제발전 연계하라

축제로 많은 사람을 모았다고 해서 지역 발전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축제 때 사람이 많이 모이더라도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장사를 하면 지역 주민들은 별로 남는 게 없을 수도 있다. 또 축제 방문객들이 지역의 농산물과 상품 등을 구매해야 실질적인 주민들의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 화천군은 축제로 모인 관광객들을 활용해 지역 내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우선 축제 때 외지 상인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다른 자치단체들은 외지 상인들을 축제에 부르곤 한다. 지역 내 상인들만으로는 분위기를 띄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외지 상인을 부르면 축제 진행이 쉽고 분위기도 살아나며 관광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몫은 적어진다. 화천군은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고 서비스 질이 떨어지더라도 지역 내 상인들에게 경제적 파급효과가 미치도록 외지인의 영업을 금지했다. 대신 지역의 민간단체, 부녀회, 마을회 등 지역 주민들이 음식점과 판매장을 운영하도록 했다.

산천어축제 방문객들이 화천천 일대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시내로 진입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군은 화천천에서 읍내 상가로 곧바로 연결되는 터널을 뚫었다. 사랑방 마실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화천에는 축제를 찾은 방문객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축제를 즐기고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러야 경제적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화천군 내 농가에 머물며 현지 지역문화를 체험하면서 숙박할 기회도 갖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의 대부분은 마을을 재방문할 정도로 개별 농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화천군의 가격 정책도 주목할 만하다. 화천군은 축제 때 받는 입장료의 일부를 화천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1만 원의 입장료를 받는 대신 5000원을 화천군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아예 처음부터 5000원을 입장료로 받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상품권을 받은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이미 지불한 돈의 일부지만 일정 금액을 되돌려받는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실제 인터넷에는화천 쪽배축제에 가서 캠핑촌, 카약, 수상자전거 이용 등으로 총 164000원을 지출했는데 114000원의 상품권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 지출액은 5만원밖에 안 되네…”라는 식의 글이 눈에 띈다. 또 상품권을 화천군에서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군민들은 이로 인한 혜택을 입게 된다. 특히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다 보면 보유한 상품권 이상 구매하는 일이 흔하게 생긴다. 화천 농산물을 파는 시장으로 관광객을 유인한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장한 셈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들이 경제적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했지만 무작정 보호만 해준 것은 아니다. 경쟁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철길도 없고 4차선 도로도 없는 화천에는 10량의 새마을 열차가 있다. 코레일과 협의해 KTX가 운행되면서 남아도는 폐철도와 열차를 화천에 들여왔다. 코레일은 열차와 철로, 침목을 현물 출자했다. 이렇게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마펜션 열차를 만든 것은 부족한 숙박시설을 보충하는 측면도 있지만 기존 여관들의 환경 개선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화천군 내 여관들은 주로 면회객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재방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시설 개선 투자를 게을리했다. 이들에게 건전한 자극을 주기 위해 화천군은 열차 펜션과 아쿠아틱 리조트 등을 건립했다.


교육 투자로 경쟁력의 원천을 확보하라

일자리와 더불어 농촌 지역에서 인구가 빠져나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이다. 실제 과거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거의 절반은 좋은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화천을 떠났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지역 내 활력이 떨어지고 화천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인재도 줄어들게 된다. 사람이 머물려면 무엇보다 교육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 화천군은 중학교 3학년생과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60명의 학생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서울에서 유명 강사도 초빙했다. 또 캐나다에 3주간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은 착실히 성과를 냈다. 타 지역으로 중·고등학교를 가는 비율이 2.5% 정도로 뚝 떨어졌다. 과거에는 수도권 대학 진학자를 찾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25명 안팎에 달할 정도다. 이에 힘입어 2010년을 기점으로 화천군의 인구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 키즈 영어 아카데미, 청소년 수련관을 통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지원, 다문화 및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보육해주는 드림센터도 설치했다.

행정 공무원들의 경쟁력 강화도 지역 발전을 위한 필수적 과제다. 정 군수는 공무원들을 긴장시키고 경쟁을 유도한다. 또 책 돌려 읽기를 생활화했으며 독후감을 받아 1등 한 사람에게 배낭여행 기회를 주고 있다. 군정 시책에 도움을 준 아이디어를 제시한 공무원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고 있다. 돈이나 상품권 대신 배낭여행 기회를 주는 것은 견문을 넓혀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공요인 분석과 향후 과제

감춰진 축복 찾기: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빛과 그림자의 양면이 있다는 건 흔한 상식이다. 하지만 주요 비즈니스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는 이를 자주 잊고 산다. 특정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선입견, 고정관념, 범주를 정해놓고 여기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과거 한국인의빨리빨리문화는 발전의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급변하는 환경에서 빠른 적응력을 보장해주는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사실감춰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사물의 양면을 이해하고 감춰진 축복을 찾아 성공적인 혁신 아이디어를 낸 사례가 많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파워와 유려한 병 디자인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펩시가 실제 매장에서 콜라를 고를 때 가격 대비 용량이 큰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큰 용량의 콜라를 출시해 성공한 적이 있다. 이 전략은 자신의 약점(투박한 병 디자인)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병 모양이 어차피 투박했기 때문에 용량을 늘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반면 코카콜라는 유려한 병 디자인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펩시의 전략에 대응하기 힘들었다. 호주의 한 호텔은 새들이 너무 많아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기에 어렵다는 점을 반대로 활용해새들과의 아침식사이벤트를 만들어 고객만족도를 크게 높인 사례가 있다.1

화천군은 발전의 치명적 걸림돌로 인식되는 규제, 혹독한 날씨, 천연자원 부재 등 악재의 감춰진 축복이라 할 수 있는 청정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축제와 상징물을 육성했으며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또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평화의 댐을 역이용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보통 조직들은 긍정적 인상을 주는 자원들은 충분히 활용한다. 하지만 부정적 인식을 주는 자원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적개심마저 갖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보면 감춰진 축복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창조적 혁신의 출발점이다.


진정성 기반의 차별화: 감춰진 축복을 찾았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 화천군의 특별한 점은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다. 청정성을 주장하는 유사한 자치단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화천만의 차별화된 가치 제안을 찾지 못하면 고객들을 유인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화천은 청정성을 실제로 보여주기 위해 진정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 전략을 시도했다. 연구자들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자연성, 독창성, 특별함, 체험, 영향력을 들고 있다.2

자연성과 관련, 화천군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청정한 농법을 개발하고 청정 원료를 보급하는 등 지역의 자연환경과 농산물이 실제 청정함을 유지하도록 많은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또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독창성도 진정성을 낳는 원천이다. 분쟁지역 탄피로 종을 만들거나 무동력 배를 의미하는 쪽배라는 콘셉트로 축제를 만드는 등 화천군은 독창성에 기반한 진정성을 실천하고 있다.

각별한 봉사정신이나 배려감 등 특별함에서 오는 차별성도 진정성에 기여한다. 축제 프로그램만 즐기고 곧장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관광객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이들에게 특별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사랑방 마실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체험도 진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성공적으로 농촌 체험마을을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축제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수동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면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들로 구성했다. 별 준비 없이 화천에 가더라도 다양한 수상 스포츠뿐만 아니라 캠핑도 즐길 수 있다. 체험을 통해 고객들의 공통된 추억이나 소망, 열망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지막 진정성 마케팅 전략으로 꼽히는 영향력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더 나은 방식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수달총회 개최 등을 통해 환경 보호와 관련한 메시지 전달을 주도하거나 평화의 종을 만들고 평화에 기여한 인물들의 핸드 프린팅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영향력을 활용한 진정성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공짜 경제 마케팅과 포트폴리오 전략: 축제나 지역발전 정책을 지역민의 구체적인 소득 증대로 연결시켰던 방법도 흥미롭다. 이미 자신이 낸 돈이긴 하지만 상품권으로 되돌려줘 공짜 심리를 자극한 일종의공짜 경제(free economics)’ 마케팅이 빛을 발했고 축제 참가자들이 편안하게 읍내 상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터널을 뚫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축제를 여름과 겨울철에 분산해 개최하고 단기적 효과가 큰 축제 이벤트와 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브랜드 인지도 확대(수달 관련 투자) 및 교육 투자 등을 균형 있게 수행한 점도 눈에 띈다.


스토리텔링 역량: 스토리텔링 역량은 화천군의 핵심 경쟁력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줬다. 작은 소재라도 지나치지 않고 과거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며 스토리 라인을 보강해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가 이외수 씨가 정 군수의 권유 등으로 춘천에서 화천으로 이사 오면서 화천의 스토리 역량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리더십: 군수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군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직접 보고 고민할 뿐만 아니라 공무원 및 지역 주민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열린 태도가 정 군수의 장점이다. 직원들은 화장실에 가는 군수를 붙잡고 결재를 받거나 아이디어를 상의할 수 있을 정도로 열린 문화가 정착됐다. 회의에서 군수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한다. 정 군수는 자치단체장이란중지(衆智)’를 모으는 사람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화천은 혁신 모범 사례로 꼽히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장단기 포트폴리오를 조화롭게 추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산천어축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올해 이 축제가 취소됐을 때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자전거 도로, 야생화 단지, 연꽃 단지 등은 더 많은 스토리와 혁신적 체험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고객에 대한 더 치밀한 연구와 실험, 모험적 시도가 필요한 대목이다. 화천의 발전은 군수의 리더십에 의존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혁신의 고착화, 주민들의 혁신 역량 강화 등도 과제다. 군수가 바뀌면서 청정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 전략의 기조가 유지되지 않으면 과거의 성과가 퇴색될 수도 있다.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호텔이 없고 진입로가 여전히 불편하며 기차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라서 현재의 인프라로는 대규모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 화천군의 성장· 발전과 청정성이라는 전략의 모순, 혹은 긴장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


김남국 DBR 편집장 march@donga.com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mrsong@kre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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