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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단어에 지칠 때 ‘Undesign’의 시대가 온다

정태영 | 73호 (2011년 1월 Issue 2)

 
편집자 주 경영자나 교수, 컨설턴트 등 각계 전문가들이 최근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서 흘러가는 정보를 지면에 정리해 봤습니다.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짧고 강한 단상에서 통찰력을 얻어보시기 바랍니다.
 
 

중역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내년에도 관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인물이라 내년에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거라고. 이런 질문에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진정한 디자인이란 기업정체성과 상품 콘텐츠를 시각적으로 정리해주는 것이다. 이런 개념 없이 아무데나 ‘디자인’ ‘스타일’이란 단어가 범람 남용되고 있다. 시장이 디자인이란 단어에 지치고 ‘Undesign’을 바라는 시기가 올 수밖에 없다.
 

현대카드는 고객에게 발송하는 신용카드 결제대금 청구서에 결제액과 적립 포인트만 큼지막하게 표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기존 청구서는 여타 신용카드사처럼 깨알같이 작은 글씨의 광고나 이벤트 공지가 꽉 차 있다. 하지만 이는 고객에게 정보공해가 될 수 있다.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청구서의 본질적인 기능(functionality)에 충실해야 한다. 현대카드는 본사 사옥과 파이낸스숍, 신용카드 등의 디자인에도 이런 철학을 적용하고 미니멀하면서도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가 우리를 copy하면 최선이다. copy는 불완전하고 우리의 움직임에 reaction하느라 바빠서 정작 자기의 장점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축구선수가 농구선수 흉내 내는 격이다.
 

제 사무실 개방의 재미있는 사진들. 성금 많이 내면 가끔 찬조 출연도 합니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에서는 연말에 대리 이하 직원은 5000원, 과장 이상은 1만 원 이상을 복지단체에 전달할 기부금으로 내면 누구나 사장석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것이든 사장실 주인이 되고 싶어하든 목적은 상관 없다. 정 사장은 직원들이 낸 성금과 똑같은 금액을 매칭펀드 방식으로 기부한다. 2010년에는 12월 23∼24일 점심시간에 사장실을 개방해 총 240만 원을 모금했다.
 

월요일에 하면 참석자들이 주말에 불안한 고민을 하게 되고, 금요일에 하면 결정을 어떻게 실행할지 생산적인 고민을 주말에 하죠. 또 자유토론을 강조하는데, 월요일 아침엔 경직돼서 토론이 잘 안됩니다. 금요일엔 한주간 쌓인 이슈들이 정리되고 분위기가 활발하죠. (단점은 목요일에 술 못 마신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의 중역회의인 ‘포커스 미팅’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열린다. 월요일에 회의하면 중역들이 회의 준비로 주말에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
 
 

기업의 경영층이 조직에 위기의식을 불어 넣고 경고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이해가 잘 안된다. 조직원들이 필요한 건 할 일의 뚜렷한 방향이지 구체적 내용 없는 위기감이 아니지 않을까. 위기라 하니 조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현대카드의 ‘플래티넘3(platinum3)’ 시리즈가 (연회비가) 고가임에도 한 달 만에 발급개수가 2만4000장, 사용액이 업계평균의 다섯 배, 고객의 70%가 20∼30대. 신기록투성이. 시장의 ‘비어있는 구석’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파워풀한 것인지. 조금만 더 밝은 눈을 가질 수 있다면.
 
 
현대카드는 2010년 3월 발급된 신용카드 개수가 1억여 장이 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500만여 명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하고 해외 신용카드사 임원을 만나기 위해 2만5000마일에 이르는 출장을 다녀왔다. 시장의 ‘비어있는 구석’을 읽는 게 목표였다. 8개월간 8개 연합팀의 태스크포스팀이 250회 회의를 하고 임원들 54회 회의를 하는 등 과학적이고 치밀한 조사를 한 끝에 고객에 대한 통찰력을 발견했다. 플래티넘 카드 고객의 50% 이상이 플래티넘은 상위, 즉 지위(status)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혜택(benefit)으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고객들의 잠재적인 마인드를 읽은 현대카드는 ‘모어 베네핏(more benefi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플래티넘 3’ 시리즈의 카드를 출시했다. 연회비가 7만 원인 생활 밀착형 카드 ‘H3’와 ‘M3’와 10만 원인 카드인 ‘R3’와 ‘T3’로 나눠서 출시하면 일반 카드 시장의 84%를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맞아 떨어져 이 같은 성공을 거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제대로 된 경영은 공격적 경영일 수밖에 없다. 방향과 방법만 다를 뿐. 안주하는 경영은 매일 매일 ‘상대적 축소’이니까.
 
 
리스크 관리에 집중 한다고 해서 수세적인 경영이나 위축 경영으로 오해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카드대란 직후인 2003년 26.1%에 이르던 연체율을 0.38%(2010년 3분기 기준)로 낮췄다. 동시에 카드업계 꼴찌에 가까웠던 위상을 1,2위로 끌어올렸다.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한다.
 
 

상품개발에 시장조사란 책임을 시장에 전가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사결과표가 창조적일 수는 없으니까. 고민은 우리가 하고 시장은 판단을 해야 한다.
 
 
여기서 시장조사란 특정 상품의 개발에 시장 조사를 많이 의존하는 경우로 평소 시장에 대한 insight는 살아 있어야 한다. 시장 조사를 해서 만든 상품도 실패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럴 바에야 각을 세워 용기 있게 실행하는 DNA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뜬금없는 기발함/의외성을 창조적이라고 착각한다. 적어도 사업에서의 창조성은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에만 가능하다. 나는 애플이 창조적이기 전에 매우 논리적이고 치밀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창조력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숫자로 분석을 잘하면 결정이 저절로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들은 계기판일 뿐이다. 결정은 계기판을 보고 하는 직관적 행위다.
 
숫자와 시장의 감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싸우면 숫자를 다루는 자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근거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경영은 숫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휘트니 휴스턴, 플라시도 도밍고, 스티비 원더, 스팅 등을 초청하는 슈퍼콘서트도 표면적으로는 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 재무적으로만 보면 비합리적인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카드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면서 브랜드 가치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정 사장은 “내 관찰로는 CMO와 CFO가 사무실에서 맞붙으면 항상 CFO가 이긴다. CMO는 꿈을 이야기하고 CFO는 돈을 이야기하니까. CMO가 이기는 자리는 술자리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리지널에서 영감을 받으면 또 다른 창조가 된다. 그러나 모방을 하면 아류가 된다. 모방이 실패하는 이유는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 사람의 정답이 내 정답이 아니기 때문. 마치 체형, 나이, 직업이 다른 딴 사람의 옷을 그대로 입는 것과 같다.
 

현대카드 임원들은 미술관이나 자동차회사 등 이종업계에서 벤치마킹하려고 ‘인사이트 투어’를 떠난다. 사진은 현대카드 고객의 불만을 실시간으로 뜨는 모니터가 설치된 ‘통곡의 벽’. 뉴욕타임스 본사의 독자 댓글 모니터에서 영감을 얻어왔다.
 
 

2009년엔 현대카드, 2010년에는 현대캐피탈에 연이은 30대 여성임원 탄생이 화제가 됐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은 나도 이분들 나이와 학력을 신문에서 보고 정확히 알았다. 검증된 프로인 경우는 워낙 나이, 출신지, 학교에 관심이 없다.
 

회사가 위기 때는 아드레날린이 뿜어나오고 고속으로 움직이는데 평시에는 아무래도 저속. 이것이 안정인지 태만인지 판단이 안 된다. 두 개가 물위에서는 언뜻 비슷해 보이니까.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임원들은 한 달에 하루를 이렇게 모여서 같이 일합니다. 회사의 팀워크가 재충전되는 날이죠. 백날 회식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오늘이 그날. 인증샷.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은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 임원 60여 명이 10층 대강당에 모여 업무를 보는 ‘마켓 플레이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각자 업무를 봐도 되고, 관련 업무를 하는 임원이 모여 즉석 회의를 하기도 한다. 때론 잡담도 한다. 물리적 거리를 좁혀 서로 대화나 토론을 활성화하고 남의 영역에 ‘참견’도 하면서 관점을 넓히자는 취지다. ‘어떤 일을 하시기에 회식보다 더 나은 팀워크가 나올까요?’라는 질문에 정 사장은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의견이 나눠지고 동료가 요즘 뭐 하는지도 알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한 경험 있으시잖아요?”라고 답했다.
 

제일 나쁜 결정이 부서 간에 타협하는 결정이다. 이루자는 전략적 목표가 없이 숫자만 서로 네고하는 ‘영혼 없는 결정’이다. 이런 소모를 없애야 회사가 나아간다.
 
 
현대카드는 치열한 회의를 강조한다. 본부장급 임원만 참석하는 회의인 포커스 미팅은 사전에 주제를 정하지 않고 난상 토론으로 진행된다. 회의 자료에는 회의 주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있을 뿐이다. 자료나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고 서로 격렬한 토론을 통해 타협이 아닌 문제 해결을 하려 한다.
 

해야 할 일을 잊어먹지 않게 되뇌이는 것만 해도 뇌용량을 상당히 소모시킨다. 아침에 크고 작은 할일 제목들만 간단히 적어놓고 되는 것부터 기계적으로 지워나가면 놀랄 만큼 효율이 오른다. 몇 년 된 습관.
 

영화제나 뭐를 봐도 결국은 사람이다. 비전(vision)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일구어낸다. 사업을 분석할 때 옛날엔 숫자를 보았는데 요즘은 기업철학을 본다. 탄탄한 철학과 열정이 있으면 일류기업이 되고, 그게 없으면 아무리 숫자가 좋아 보여도 결국 별볼일이 없다.
 

디테일은 큰 그림을 이루고 완성하기 위한 수단이고 노력의 표현이다. 그런데 큰 그림 없이 디테일을 강조하는 건 그저 까다로운 것을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카드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경영자의 경영 철학 못지 않게 판촉물이나 전단지, 사무공간과 식당 화장실 물품 등을 통해서도 회사가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전략적 일관성을 뚜렷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기업이미지(CI)와 브랜드이미지(BI) 매뉴얼은 현대카드의 지면광고, 포스터, 현수막, 문서 등에 들어가는 사진과 도안, 글꼴, 디자인의 규격을 정해놓고 있다. 분량은 100쪽이 넘는다. 언뜻 보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부분까지도 정해놓았다. 고객에게 발급하는 신용카드 디자인은 물론 볼펜, 수첩, 머그컵처럼 회사 내부에서 쓰는 용품까지 모두 매뉴얼 상의 규격을 따르게 해서 일관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회의, 면담, e메일, 전화로 가득 찬 하루를 끝내고 이제 퇴근. 이틀을 컵라면 먹으며 집중적으로 밀린 일들을 정리했다. 일을 지배해야지 일에 지배당하면 안 되는데, 요즘 좀 끌려 다니는 경향이 있어서 반성 중.
 

엔지니어나 경영학만 깊게 아는 분도 필요하고 세상이 점점 통합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몇 분야를 엷게 아는 크로스오버(cross-over) 직군도 필요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상품의 질이 균질하게 좋아지면서 전투의 장이 human의 이해로 옮겨간 면도 있고요.
 

제가 MUJI(일본의 패스트패션 및 생활용품 업체)를 좋아하는 이유는 훌륭한 디자인도 가격이 착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 재능이 있다고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없도록 멀리 도망가지 않았죠.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
필자는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미국 MIT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종합상사 이사, 현대모비스 전무 등을 거쳐 2003년부터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을 맡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는 @diegobluff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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