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중국전략 원점서 검토하라

59호 (2010년 6월 Issue 2)

‘13억 인구에 껌 한 통씩만 팔아도’라며 ‘묻지마 차이나 러시’를 감행했던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초라한 경영 성적표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중국을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생산기지로 삼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3억 시장을 보고 덤벼드는 경쟁사는 산업분야별로 평균 100개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 중국이다. 저가 시장은 저가 시장대로 중국기업들이 값싼 가격으로 장악하고, 고가 시장에선 아직까지 한국 브랜드를 최고라고 인정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더 이상 ‘한국에선 어려워도 여기선 성공하기 쉽겠지’ ‘버티면 성공한다’ ‘살아남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중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중국사업의 경영환경은 급격하게 변해왔다. 첫째 최근 중국정부는 외자기업에 대해 ‘특혜 축소’와 ‘선별적 비준’, ‘관리감독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즉 중국정부의 경제성장 정책의 중심이 더 이상 외국자본 투자 유치가 아니라 내수 소비시장 확대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국정부는 자국기업 육성 및 보호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다. 과세제도, 반독점법, 노동법 등은 표면적으로는 내외자 기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외자기업을 타깃으로 무시무시한 칼날을 들이대기 일쑤다. 셋째, 중산층 증가, 도시화 진전, 낙후 시장 성장 등으로 중국 경제가 불안함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자동차, 가전제품, 컴퓨터 등 소비재 판매에서 미국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작년 7월 KOTRA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636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8.6%가 향후 중국사업을 확대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을 축소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의 비중은 6.1%에 불과했다.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이 최근 급작스러운 경영환경의 변화를 오히려 기회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많은 한국기업들은 변화에 순응하면서 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을 바꾸고 추가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의 중국전략 변화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최근 한국기업들의 중국전략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감지된다. 추구하는 전략 방향은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①전선(戰線)의 확대(유통 커버리지 확대)현대자동차는 2009년 중국 신장성(新疆省), 윈난성(雲南省), 간쑤성(甘肅省) 등 서부지역에 28개의 신규 대리점을 개설했으며, 2010년 중 중국 전역에 100여 대리점을 신규 개설할 예정이다. 현대차의 올해 중국시장 판매목표는 지난 해의 57만 대보다 28% 증가한 72만9000 대이며, 공급량 확대를 위해 연산 30만 대 규모의 제3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CJ제일제당은 포장식품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바이위(白玉)’ 브랜드로 베이징 포장두부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베이징에서 거둔 성공 방식을 타 지역으로 이식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CJ오쇼핑은 중국 상하이미디어그룹과의 합자법인인 동팡CJ가 24시간 쇼핑 방송이 가능한 홈쇼핑 전용채널 허가를 획득함으로써, 중국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기존 방송채널의 일부 시간을 임대해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에서처럼 24시간 방송편성이 가능해졌다. CJ오쇼핑은 올해 무난하게 중국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②비즈니스 모델 현지화 두산인프라코어는 이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기업 중 하나로 손꼽힐 만큼 성장했다. 올해 예상 판매량 1만4000대, 15% 내외의 시장점유율로 고마쓰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발주자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개발하고, 중국에 적합한 유통망을 구축했으며 할부판매를 실시했다. 지금은 중국 공사현장 어디를 가나 두산 브랜드가 박힌 굴착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랜드 그룹도 중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이 회사의 브랜드인 헌트와 이랜드, 스코필드는 모두 중국의 고급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며, 지난해 매출은 3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에서는 중저가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지만, 중국에서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고급 의류에 속한다. 사실상 브랜드만 그대로 사용했을 뿐, 비즈니스 모델과 브랜드 포지셔닝, 마케팅 전략을 모두 현지화한 예다.
 
③가치사슬 현지화를 통한 시장대응력 강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각각 쑤저우(蘇州)와 광저우(廣州)에서 TFT-LCD 패널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중국 현지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후공정 생산공장만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중국 현지 고객(로컬 TV 생산기업)에 밀착 대응해 중국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러한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LCD TV 시장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에 약 20%까지 늘어나,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또한 대만기업의 공략으로 치열한 경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석유화학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LG화학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합작해 광동성(廣東省) 후이저우에 아크릴로니트릴부다디엔스타이렌(ABS)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 ABS 시장수요의 절반 이상이 화남지역에 집중돼 있어, 고객에게 밀착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④고부가가치화와 차별화 LG전자의 중국전략은 ‘집·현·전’, 즉 ‘집중화’와 ‘현지화’, ‘전문화’로 요약된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첫째 무리한 시장 커버리지 확대보다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장에 집중하고 둘째, 인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현지화하며 셋째,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제품을 판매해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2006년부터 꾸준하게 ‘집·현·전’ 전략을 실행한 결과, LG전자는 휴대폰, LCD TV, 양문형 냉장고 등 고부가가치 제품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포스코는 향후 중국의 자동차강판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자동차강판은 철강제품 중 품질 구현이 가장 힘든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중국 자동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와 맞물려 시장 매력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자동차강판 제품에서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는 향후 중국 내 주요 자동차 생산기지 인근에 자동차강판 생산 클러스터를 건설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⑤전장(戰場)의 확대(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SK텔레콤은 올해 들어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한국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회사의 중국시장 전략은 한마디로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로 요약된다. 과거 10년간 중국 경영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그룹 회장이 직접 지시해 신규사업 개발 부문의 본사를 중국 지역으로 이전했다. 중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 이동통신기업인 차이나유니콤과의 지분 관계도 청산하고, 중국 현지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비즈니스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SKT는 통신 및 산업 융합 분야에서 다수의 신규사업을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LS산전은 지난 4월 56억원을 투자해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의 초고압 차단기 및 배전반 생산기업인 호개전기를 인수했다. 또 베이징에는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며, 현지 기업에 대한 추가 인수합병도 검토하고 있다. LS전선도 지난해 산업용 케이블 생산업체인 홍치전기를 약 200억 원에 인수해 중국 산업용 케이블 시장 개척에 첫 발을 내디뎠다.

⑥Wait & See NHN은 기존 중국 게임사업의 철수를 검토 중이다. NHN이 지난 2004년 1200억 원 상당의 자본을 투입해 인수한 현지 게임기업 아워게임(聯衆)은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적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NHN은 이 회사를 구조조정 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게임기업은 비단 NHN 뿐만이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운영되는 성공적인 게임은 거의 다 한국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2009년 중국 Top 10 게임 리스트에 오른 한국산 게임은 불과 두 개뿐이다.
 
한국기업이 고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중국정부의 노골적인 자국기업 보호정책이다. 원칙적으로 외자기업이 중국에서 온라인게임을 유통하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게임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출판 라이선스(版號) 부여 시점을 고의로 늦추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시장을 방어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보호정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 한국기업이 중국 게임시장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맞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 보인다.
 
한국기업 중국전략 유형 분석
앞에서 언급한 한국기업의 전략유형들은 해당 기업이 중국시장 내에서 당면한 경영환경의 변화(원인변수)와,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대응전략(결과변수)이라는 분석 틀에 의거해 <그림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해당 기업이 속한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이며 기업의 경쟁력도 유지되고 있다면, 그 기업은 유통망 확대를 통해 단기간 내에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적극적인 비즈니스 모델 현지화를 통해 시장지위 굳히기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다. 중국의 자동차 및 부동산 시장은 지난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 현대차는 시장성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오히려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유통망을 확대하는 과감한 전략을 실행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일본 등 선진국의 경쟁기업이 실행하지 못했던 할부판매 등 과감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금과 같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반면 해당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거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산업 전체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또 정부정책의 변화로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이 체감되기도 한다. 이때 기업은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리스크 요인을 회피하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은 다시 적극적 대응과 소극적 대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적극적 대응이란 자신의 모습을 바꾸면서까지 해당 시장 내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해 승률(winning ratio)을 높이려는 전략을 의미한다. 중국의 LCD 시장은 이미 세계 1위 규모로 성장했지만, 대만 및 일본기업들의 추격으로 한국기업의 중국 시장 내 경쟁력은 약화됐다. 이에 삼성과 LG는 중국에 패널생산 공장을 건설해 가치사슬(Value Chain)을 현지화함으로써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한편 소극적 대응이란 제품의 목표시장(Target Market)을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시장 또는 수익성이 더 높은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가전시장은 중국기업의 경쟁력 강화, 가전유통업체의 교섭력(Bargaining Power) 증가 등 악재로 인해 산업평균 수익률이 극도로 악화돼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LG전자는 승산이 있는 고부가가치 시장에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수익성은 물론 매출, 브랜드이미지 등 전반적인 경영성과를 모두 호전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영환경 변화를 회피하는 전략으로는, 기존 시장에 비해 상황이 더 좋은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전략과 아예 해당 시장에서 발을 빼는 전략이 있다. 경영환경 변화가 기업의 내부적인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러한 리스크 회피 전략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특히 중국시장에서 정책변화 리스크는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대응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중국시장에서 철수한 구글을 들 수 있다. 중국정부의 미디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사회주의적’이다. 모든 매체들은 공산당의 사전검열을 받은 후에만 기사 등 콘텐츠를 공개할 수 있다. 공산당이 집권하는 한, 이러한 미디어 통제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구글이 중국정부와의 실랑이 끝에 철수라는 강수를 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살펴본 한국기업의 중국전략 다변화 추세는 한국기업이 오랜 경험을 통해 중국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중국시장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경영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경험한 전문가나 학자들은 중국 사업의 리스크 요인을 강조하며 베트남, 인도, 러시아 등 타 지역으로의 사업 이전을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시장이든 리스크는 존재한다.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거대한 소비시장’으로서의 중국은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현재 한국기업에 주어진 과제는 ‘정부 정책의 틀 안에서 새로운 생존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해 기업들은 환경 변화에 맞춰 기존 전략을 바꾸고 시장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편집자 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저가 생산기지를 넘어 세계의 소비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시장과 소비자의 변화, 기업의 대응 전략에 대한 현지 분석 리포트를 연재합니다. 현지에서 전문가가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