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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도 모르는’ 매혹적인 향수의 비밀

박용 | 58호 (2010년 6월 Issue 1)
인류 최초의 화장품은 5000년 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향수다. 신과의 교감을 위한 제사용으로 쓰이던 향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성을 유혹하고 불쾌한 체취를 감추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꽃보다 더 향기롭고, 감성과 애정 선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향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매혹적인 향기는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더스틴 호프만이 출연한 영화 ‘향수’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영혼을 뒤흔드는 향기를 만들기 위한 조향사(perfumer)의 광기와 집착을 모티브로 삼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남동부 지역은 ‘향수의 낙원’으로 불릴 정도로 향수 산업이 번창했다.
 
향수의 성품은 크게 식물성, 동물성 성분, 합성 화학 성분으로 나뉘는데 유럽의 조향사들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유의 향수 제조비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제조 성분을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경쟁력의 원천으로 봤기 때문이다.
 
프랑스보다 앞서 향수 산업의 꽃을 피운 이탈리아의 조향사들도 마찬가지였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명가인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프랑스 왕실로 시집오면서부터 이탈리아의 향수 산업이 프랑스로 전해졌다. 당시 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데려온 향수 제조사는 자신의 방과 실험실로 이어지는 비밀통로를 마련하고 향수 제조법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향수 제조법을 배웠고 이후 향수 강국으로 도약했다. 지금도 세계 유명 향수 브랜드들은 핵심적인 향수 제조법을 영업비밀로 다룬다고 한다.
 
최근 이 ‘며느리도 모르는’ 향수 제조법의 베일이 일부 벗겨졌다. ‘안전한 화장품을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Safe Cosmetics)’이라는 환경 단체가 17개 유명 향수 브랜드를 조사하고 성분 표시에 나타나지 않는 38가지 비밀 화학 성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아메리칸 이글 세븐티 세븐은 24개, 샤넬 코코 향수는 18개, 브리티니 스피어스 큐리어스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쿠아 디 지오는 각각 18개의 비밀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향수의 감춰진 성분 중 일부 화학 성분이 호르몬을 교란하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명 향수 브랜드들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당수 ‘비밀 레서피’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그냥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 정보 유통수단이 발달하면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정보 불균형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기업이 만든 제품의 세세한 특징과 제조 공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제품이 개인의 건강, 사회와 자연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캐묻는 시민단체의 눈도 매서워졌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 Authoris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나 RoHS(Restriction of Hazardous Substances·유해물질제한지침) 등과 같은 제품 성분의 안전성과 재활용 등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도 강해지고 있다.
 
이제 감추기만 해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급업체나 외부와의 협업(collaboration)과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도 힘들다. 글로벌 기업들은 제품 성분에 대한 관리 역량을 녹색 상품 개발의 필수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에는 영업비밀이 차별화된 경쟁력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투명성(transparency)이 기업을 키우는 화두가 된 것이다.
 
실제로 컨설팅회사인 애버딘그룹이 지난해 세계 12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제품 개발 역량이 상위 20%에 포함되는 선두 그룹의 70%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 물질에 대한 의무 준수사항을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나머지 그룹은 59%에 불과했다. 선두 그룹의 리콜 비율이 1%인 반면, 조사 대상 평균은 1.8%로 조사됐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말로 모든 게 통하던 시대는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21세기 기업에는 ‘햇볕이 최고의 살균제이자 영양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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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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