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09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와 보험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가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떠올릴 것이다. AIG는 투자은행들이 발행한 부채담보부증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라는 금융자산에 대해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Credit Default Swap)라는 증권을 판매했다. CDS는 일종의 보험 상품으로 판매자는 보험료에 해당하는 CDS 프리미엄을 받고, 대가로 CDO가치 하락 시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계약이다.
AIG와 관련된 논의나 비판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많은 비평가나 학자들이 의견을 개진해 온 사항이기에, 이 글에서 반복해서 살펴볼 의도는 없다. 대신 그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해 왔던 보험의 근본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고, 건전한 금융시장의 구도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한다.
전통적 보험 계약의 주요 특징
넓은 의미로 보험은 위험 혹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개인이나 조직이 이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통칭한다. 이 위험은 자연재해 같은 자연 현상으로부터 초래되는 자연적 위험과 다양한 거래나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인위적 위험까지도 속한다. 보험 계약은 보험 계약자(보험 구매자)와 보험자 사이에 체결되는 약속이다. 보험계약자는 일정한 보험료의 지불을 약속하고, 보험자는 그 대가로 보험계약자에게 일어나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게 계약의 골자다.
전통적 보험 계약의 주요 특징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하나의 보험자가 다수의 보험 계약자와 보험 계약을 한다. 이를 풀링(pooling)이라고 한다. 풀링을 통해 단위 당 평균 위험이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험자가 감수해야 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풀링은 평균 위험을 통계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 때문에 전체의 위험이 줄지는 않는다. 즉, 보험자가 보험 계약자의 위험에 대해 신중하게 인수하고 관리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사람들이 건강 보험에 가입하려 할 때 보험회사가 까다롭게 계약자의 건강 상태나 과거 병력 등을 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피보험 이익(insurable interest)을 강조한다. 피보험 이익이란, 보험 목적물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보험 계약자가 직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피보험 이익의 존재는 보험을 도박과 구분 짓는 결정적 차이다. 또 이는 사회적 규범에 반하거나 사회에 해가 되는 방식으로 보험을 운영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피보험 이익을 위배한 보험의 대표적 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됐고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도 재정 확충을 위해 이용했던 톤틴(tontine) 연금이다. 이 연금은 다른 가입자가 빨리 사망해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연금의 액수가 커지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연금 가입자들이 다른 가입자가 빨리 죽기를 바라기 시작했고,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금융시장과 보험기능의 변화
전통적 형태의 보험 계약뿐 아니라 인류는 보험의 기능을 점점 다양하게 개발하고 이용해 왔다. 이를 확장된 보험시장이라 부른다. 대출과 증권으로 대표되는 협의의 금융시장은 대표적인 확장된 보험시장이다. 이 금융시장은 일반적으로 보험시장과 다르다고 여기지만,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보험 기능임은 부인할 수 없다. 대출이나 채권시장에서 이자율은 채권자의 시간에 대한 선호도와 채무자의 채무 이행 위험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 역시 보험 계약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서 더 많은 이자를 받을 때 이 때 추가 이자는 보험료에 해당한다.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채권자도 손실을 입는다. 이는 보험금을 채무자에게 지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기관은 채권의 부도 위험도를 평가하여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의 역할 역시 해당 금융상품의 위험을 평가하여 어느 정도의 보험료를 책정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보험금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전통적인 보험계약 원리에 위배되는 보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불특정 다수의 보험자가 존재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하나의 보험자가 여러 계약자와 계약을 하는 보험계약 틀에서 벗어난 형태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에서 채권자는 채무자인 기업의 부도위험을 공동으로 담보한다. 주식투자자는 경영 위험을 공동으로 담보한다. 이는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다양한 금융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보험 기능의 확대를 통해 효율적으로 전가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금융공학의 발전과 과도한 증권화에 따라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둘째, 피보험 이익의 무시다. CDS는 근본적으로 보험 상품이나 증권의 형태를 띠고 있어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즉, CDS의 보유자는 피보험 이익이 없이도 보험 상품을 산 셈이다. 피보험 이익의 무시 역시 과도한 증권화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증권은 시장에서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된 보험시장의 추락과 금융위기
이 두 가지 변화는 금융위기의 발생과 증폭에 주요 원인을 제공했다. 보험 계약에 종종 뒤따르는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정보 비대칭이다. 일반 상품과 다르게 보험 계약자는 보험료를 미리 지급하고, 미래에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을 받는 약속을 한다. 이 때 보험자는 보험 계약자의 위험 크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험 계약자는 손실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증폭시키는 행동으로 손실 확률 및 크기를 키울 수 있다. 또 애초에 큰 위험을 작은 위험으로 속일 수도 있다. 전자가 바로 도덕적 해이, 후자가 역선택이다. 보험자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는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와 관련이 있다. 보험 계약자 역시 중대한 정보 문제에 봉착한다. 보험자가 보험료만 받고, 손실 발생 시에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을 지급불능의 가능성이다. 보험자는 법적으로 최선의 의무를 다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지급 불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