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코 진스(Noko Jeans)’라는 청바지가 화제가 됐습니다. 노코 진스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북한에서 만든 청바지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웨덴의 세 젊은 사업가들이 북한에 1100여 벌 생산을 위탁해 만든 상품입니다. 북한에서는 푸른색 청바지가 미국 제국주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검은색 바지만 만들었다고 하네요.
2009년 12월 5일 이 노코 진스가 스웨덴의 한 고급 백화점에서 출시됐다가 판매 개시 2시간 만에 북한의 노동 환경을 문제 삼은 백화점에 의해 매장에서 퇴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노코 진스 판매를 추진한 측은 “앞으로는 중국산 제품도 모두 수거하기를 바란다”고 반박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양측 논리 모두 ‘비(非)경영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에서도 이 상품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코 진스의 홈페이지(www.nokojeans.com)는 ‘제품 탄생 비화’를 알리는 동영상과 사진, 설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밤이 되면 불이 꺼져 어두운 도시 평양… 북한의 가장 큰 의류 회사에서 생산을 거부해 북한의 가장 큰 광업 회사에서 만든 청바지.”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다.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아쉬운 점은 왜 소비자들이 비슷한 가격대(한화로 약 25∼27만 원)의 게스나 리바이스 등 유명 청바지를 놔두고 노코 진스를 사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과 근거는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코 진스라는 신생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최근 각광받는 ‘스토리 텔링’과 ‘티저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마케팅 전문가들은 스토리 텔링의 효과는 상품 가치를 명확하고 진솔하게 전달하는 ‘진실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들은 과장된 ‘포장’이나 ‘허구’의 이야기에 속지 않는다는 것이죠. 명확한 가치 제언이 없는 스토리는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저원가 경쟁력은 ‘가치 소비’ 시대의 강력한 무기
최근 맥킨지가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년간 18%의 소비자들이 예전에 구매하던 상품보다 더 낮은 가격의 소비재 상품을 구매했습니다. 이들 중 46%가 “저가 상품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품질이었다”고 응답했고, 34%가 “더 이상 예전에 구매하던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41%는 “프리미엄 상품이 가격만 한 가치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불황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바꾼 것뿐만 아니라, ‘저가=불량’이라는 고정관념도 깨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저가이면서 양호한 품질을 가진 브랜드들이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가치 소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저원가 경쟁력이라는 무기의 파괴력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습니다.
왜 노코 진스측은 북한에서 생산하는 저비용의 이점을 살리는 마케팅 전략을 택하지 않았을까요? 왜 이 제품의 가격 대비 품질이 어떤지 자신 있게 밝히지 않을까요? 오길비액션 시카고 사무소의 켄 페더스톤 대표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가치 소비자들은 ‘실용적’이고 ‘신중한’ 판단을 하며, 기업이 이런 가치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투명성’과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최근 노코 진스가 스톡홀름의 한 아웃렛 매장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노코 진스측은 아직 몇 벌이나 팔렸고 매출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청바지를 백화점이 아닌 아웃렛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인 것 같습니다. 모쪼록 더 많은 북한산 제품들이 고객에게 진정한 가치를 줘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