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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거는 인간 행동을 재활용한다

강희흔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사례 1 구글의 페이지랭크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인 구글은 우수한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다. 동일한 키워드로 검색하더라도 사용자에게 더 적합한 문서를 잘 찾아준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구글이 개발한 기술은 매우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웹 문서를 만들 때 다른 문서에 동일한 내용이나 참조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링크(link)를 건다. 링크라는 행위는 문서 작성의 효율과 편리성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웹 문서들이 링크를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소위 ‘페이지랭크(PageRank)’라 불리는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한다. 얼마나 많은 링크(backward link)가 연결돼 있느냐로 문서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편리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링크라는 행위(behavior)를 재활용(recycling)해 구글은 최상의 결과를 제공하는 검색 엔진을 만들었다.


사례 2 리캡차
미국의 많은 도서관들이 장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적을 스캔하고 광학문자인식(OCR)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캔된 문서에서 글자를 추출한다. 문제는 원본 상태가 좋지 않은 책은 OCR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글자 식별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일일이 수정해 고쳐야 할 판이다. 수백만 권에 달하는 책의 각 페이지마다 이 작업을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루이스 폰 안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개발한 ‘리캡차(reCAPTCHA)’라는 프로그램이 빛을 발했다. 리캡차는 인식되지 않은 문서의 글자 이미지를 추출해 이를 웹사이트 가입 인증 프로그램인 캡차(CAPTCHA)에 이용한다. 요즘은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프로그램에 의한 대량 자동 가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틀어진 이미지의 글자를 입력하라고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캡차 프로그램이다. 웹사이트에 가입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의 인증 행위를 고서의 디지털화 작업에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하루 약 2000만 단어가 수정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행위에는 주된 목적이 있다. 신문을 보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고, 시험을 보는 것은 평가를 받기 위함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는 주된 이유는 놀면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보듯, 일련의 행위가 행위 당사자의 본래 목적과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는 현상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행위 당사자는 자신이 의도했던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러한 행위를 모아 다른 의도로 재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필자는 이 현상을 ‘행위 재활용(behavior recycling)’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버려져왔거나 휘발됐던 행위들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유용하게 가공해 사용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현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행위의 저장, 이동, 재조합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술, 그리고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그 원동력이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우리 행위의 단면들은 0과 1의 조합으로 환원돼 손쉽게 저장할 수 있다. 생각을 글로 옮기고,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는 행동 등 오늘날 우리가 하는 수많은 행위들이 디지털 정보로 변환돼 저장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맞물린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 덕분에 저장된 행위 정보를 빠르게 이동 및 재조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기술적 인프라의 도움과 함께, 재활용 가치가 있는 행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디지털이나 인터넷이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학자들은 우수한 논문들을 인용하고 주석을 달아가며 논문을 써왔다. 이는 사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링크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 더 나아가 검색 엔진이라는 특별한 서비스가 등장하기 전, 학자들이 논문을 인용하고 주석을 다는 아날로그식 링크는 일부 후학들에게나 가치 있을 뿐 별다른 재활용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굳이 재활용의 예를 들자면 논문 인용 지수를 구성해 논문과 학자의 권위를 표현해주는 정도였다. 반면 디지털식 링크라는 행위에 기반해 이를 모으고 재활용하는 구글 검색의 전지구적 유용성을 생각해보라.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재활용을 통해 가치가 증폭될 수 있는 행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행위 재활용을 비즈니스 혁신에 도입하기 위해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 2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행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 즉 ‘behavior sourcing 전략’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사람들이 이미 행한 행위의 결과를 발굴(행위 발굴·behavior mining)해 사용하느냐, 아니면 행위를 유도(행위 디자인·behavior design)하느냐의 문제다. 앞서 언급한 구글의 페이지랭크는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해놓은 링크라는 행위의 의미를 재해석해 새롭게 재활용한 ‘행위 발굴’의 사례다. 반면 리캡차는 향후 재활용할 수 있는 행동을 설계해 이를 유도하는 ‘행위 디자인’ 전략을 취했다.
 
두 번째로 고민해야 할 점은 바로 어떻게 재활용을 할 것인가에 관한 ‘재활용 전략’이다. 이는 ‘현존하는 재활용의 패턴을 찾아 이를 모방(pattern-follower)’할지, 아니면 ‘새로운 재활용 패턴을 창조(pattern-creator)’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구글의 페이지랭크는 논문을 인용하고 이에 따라 가치를 결정하는 행위 재활용 패턴을 모방했다. 반면 리캡차는 컴퓨터를 통한 대량 부정 가입이 골칫거리가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행위를 재활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창조했다.
 
<그림3>의 행위 재활용 전략 매트릭스는 이러한 4가지 경우의 수를 명확히 보여준다. 2사분면의 ‘구글 페이지랭크’와 4사분면의 ‘리캡차’는 이미 설명했으므로 나머지를 좀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1사분면의 ‘오디오서프(AudioSurf)’는 MP3 파일을 이용해 게임을 만들어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MP3 파일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축적된 음악 행위의 결과물이므로 오디오서프는 행위 발굴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게임을 만들어주는 재활용 패턴은 과거에는 없었으므로 ‘패턴 창조’ 전략이다. 최근 다수의 게임에서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꽤 시장성 있는 아이디어로 판단된다.

특정 이벤트에 대한 예측치 거래라는 새로운 행위를 설계(행위 디자인)하고, 시장 거래 메커니즘을 모방(패턴 모방 전략)해 행위 재활용에 성공한 사례도 재미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HP는 월 분기별 매출 추정에 이른바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통계적 예측 방식에 비해 꽤 향상된 결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예측 시장에 참여하는 HP 직원들은 일정 금액을 걸고 월 분기별 실적에 대한 ‘예측치’들을 마치 주식과 같이 거래한다. 그리고 HP는 예측 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 ‘예측치’를 예상 실적치로 사용한다. 예측 시장에 참가하는 직원들은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순수한 시장 거래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HP는 이를 실적 예측에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HP뿐 아니라 굴지의 제약회사 릴리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유수 선도기업에서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친환경, 즉 그린 비즈니스 시대이고, 기업과 소비자들은 자원과 상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위’를 재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막대한 ‘노동 자원’의 활용뿐 아니라 비즈니스 혁신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 구글은 이를 통해 야후가 지배하고 있던 검색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특히 쓸 만한 행위를 ‘발굴’하는 것에서 나아가 앞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행위의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는 데 도전해볼 것을 제안한다. 필자가 이전에 언급한 ‘레이버테인먼트(Labortainment)’(동아비즈니스리뷰 19호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어라’ 참조) 개념도 재미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고, 이를 사업자가 의도에 맞게 재활용하는 하나의 행위 재활용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는 꼭 디지털 행위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 행위의 재활용이 더 넓고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센서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온·오프라인을 포괄하는 다양한 행위들의 저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이뤄지고 있는 것만 봐도 SK그룹에서는 다수의 택시에 설치한 내비게이션으로 운행 속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여기서 교통 체증 정보를 추출해 ‘휴대전화 교통 안내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행위 재활용 현상은 부지불식간에 비즈니스 세계를 파고들고 있다. 그동안 무심하게 버려졌던 행위들이나, 지금은 없지만 충분히 발생 가능한 행위를 예측해 이를 지혜롭게 재활용하라. 거기서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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