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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 오버슈팅은 파멸 부른다

이동우 | 39호 (2009년 8월 Issue 2)
과유불급의 교훈
어느 날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물었다.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어진 사람입니까?” 이에 공자가 답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이에 자공이 “그렇다면 자장이 더 낫단 말씀이십니까?”라고 반문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은 단지 마음 수양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훌륭한 신기술 혹은 신제품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마케터들도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휴대전화를 사러 이동통신사 판매점에 들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많은 기능들이 과연 모두 필요할까?’ 하고 자문한 적이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대세라고 다들 입을 모으지만, 막상 스마트폰을 사려고 하다가 ‘충분히 스마트해진’ 일반 폰을 선택하는 고객이 적지 않다. 또 TV는 어떤가? 디지털에서 고화질(HD)로, 풀(Full) HD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온 지금의 TV 화질에 불만을 가진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초고화질 경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대대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TV는 불과 얼마 전에 풀 HD 액정표시장치(LCD) TV를 구입한 고객의 기를 팍팍 죽이고 있다. 게다가 TV의 두께를 1cm 이하로 줄여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오버슈팅(overshooting)’의 시대에 살고 있다.
 
오버슈팅의 이유
오버슈팅을 이론적 모형으로 설명한 이는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다. 그는 기술의 수준이 고객의 니즈를 넘어서는 순간을 ‘오버슈팅’이라 정의하고, 이를 기술 선도기업이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dilemma)이라고 말한다.
 
오버슈팅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인텔의 펜티엄 시리즈는 초기에 빠른 처리 속도를 내세워 고객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펜티엄 4를 넘어가면서부터 오버슈팅 논란에 휩싸였다. 애플 컴퓨터도 1980년대 초반 최고의 사양을 갖춘 개인용 컴퓨터 ‘리사(LISA)’의 실패 이후 저가, 저사양 제품인 ‘매킨토시’를 내놓아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면 왜 기술 선도기업들이 ‘오버’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기술 개발자들이 ‘최고’ 혹은 ‘1등’을 유지하려는 달콤한 목표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맹목적 기술 개발은 기술 지상주의로 이어져 어느 순간부터 시장, 즉 고객과 무관한 기술 개발의 함정으로 이끈다. 오버슈팅의 두 번째 이유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고객 니즈의 상승 속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1>에서 보듯, 제품 성능에 대한 고객의 요구 수준은 시간에 따라 상승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와 비교하면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술은 때로는 점진적이고 때로는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끝없이 상승한다.
 
 

 
그렇다면 오버슈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오버슈팅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첫째, 오버슈팅은 고객의 니즈와 관계없는, 즉 쓸데없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투자했는데 정작 고객들이 외면하면 기업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기업들은 이른바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첨단기술을 제품에 접목시키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는 1500만 화소를 훌쩍 넘어섰고, 최근 출시된 LED TV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얇은 두께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경쟁이 정말 고객들이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사진을 찍었을 때 500만 화소와 1500만 화소를 구분할 수 있는 고객은 얼마나 될까? 초슬림 TV가 주는 진정한 효용은 무엇인가? 1000만 화소를 넘어가는 디카로 찍은 사진들은 메모리카드와 하드디스크를 순식간에 잡아먹고, e메일로 사진을 보내려면 파일 크기를 줄이기 위해 추가 작업을 해야 할 지경이다. 최근 TV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벽걸이형보다 스탠드형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벽걸이형이 더 예쁘기는 하지만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스탠드형 TV를 선택한다면 기존 LCD TV도 충분히 얇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은 피곤하다: 기능 피로감과 와해성 기술
둘째, 오버슈팅은 고객에게 ‘기능 피로감(feature fatigue)’을 가져다준다. 롤런드 러스트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기고한 논문에서, 아무리 좋은 기능이라도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라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그림2) 실험을 통해 밝혀진 재미있는 사실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기 전에는 많은 사양(feature)을 원하지만, 제품을 사용한 이후에는 소수의 사양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사양은 고객에게 기능 피로감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제품 사용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린다는 이 주장은, 기술 기반 제품을 판매하는 관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버슈팅의 세 번째 문제점은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이다. 와해성 기술이란 일시적으로 열등한 기술이지만 소형, 저가, 편리함 등의 새로운 가치로 기존 기술이 지배하는 시장과는 다른 별개의 시장을 창조해 결국 시장을 장악하는 기술을 말한다.
 
CD가 음악을 전달하던 주된 매체였을 때 MP3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CD 플레이어 제조사들은 당시 열등한 기술이었던 MP3 플레이어를 무시한 채 CD 플레이어의 성능을 발전시키는 데 몰두했다. 당시의 MP3 플레이어는 저장 용량도 작았고 음질도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CD 플레이어는 MP3 플레이어로 신속하게 대체됐다. 이처럼 맹목적 기술 개발을 통해 오버슈팅을 하게 되면 고객들은 자신의 니즈를 ‘추월한’ 기술을 대신할 제품을 낮은 곳에서 찾게 되고, 와해성 기술은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고객을 빼앗아가게 된다.
 
최근 김연아가 사용한다는 기사가 나온 이후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트위터(Twitter)’ 서비스를 살펴보자. 트위터는 마이크로블로그 서비스로서 140자 이내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해주는 단순한 기능을 갖고 있다. 최근 리서치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트위터 서비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기존 e메일과 메신저 이용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포털업체들은 더 큰 용량과 빠른 속도의 e메일, 새로운 서비스의 메신저로 기존 고객들을 만족시키려 했지만, 고객들은 단순하고 신속한 서비스인 트위터에 열광하고 있다.
 
오버슈팅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술을 잘못 관리하면 위와 같은 ‘과유불급’의 상황에 쉽게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존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TV를 얇게 만드는 회사는 그렇지 못한 회사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오버슈팅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기술을 바라보는 고객의 눈높이와 기업의 눈높이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객의 요구 수준 및 만족도는 일정 수준의 기술에 도달한 후에는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조사와 통찰력으로 고객의 눈높이를 파악하고, 고객의 니즈를 앞지르지 않도록 기술 발전의 속도, 즉 페이스(pace)를 조절해야 한다.
 
둘째, 와해성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과 이를 사용하는 고객에 대한 애착 때문에 와해성 기술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와해성 기술의 등장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저서 <성장과 혁신>에서 이러한 와해성 기술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고객의 니즈를 끊임없이 끌어올려야 한다. 오버슈팅은 근본적으로 고객의 니즈보다 기술 발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하지만 고객의 니즈가 없거나 그 속도가 느리다고 포기하지 말고, 고객의 숨은 니즈를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연합해 고성능 칩에 대한 니즈를 개발, 유지하고 있다. 아마존의 전자책(e-Book), 즉 종이가 아닌 디지털 디바이스로 보는 책 ‘킨들’은 오버슈팅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존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객의 니즈를 끌어올렸고, 고객들은 이제 전자책의 존재를 당연시하게 됐다.
 
절대 오버하지 말라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획기적인 기술에 투자하고 R&D에 매진해 대박을 터뜨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오버슈팅은 위험하다. 고객이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없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튀는 것(차별화)’과 ‘오버하는 것’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넘칠 바에는 차라리 2% 모자라는 게 득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기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함께 고객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지속해야 한다.
 
편집자주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김상훈 교수가 주도하는 비즈트렌드연구회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로 구성된 이 연구회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비즈니스 트렌드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시합니다.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SK텔레콤 C&I 전략 파트에서 컨버전스 상품과 신규 서비스에 대한 전략 수립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이동우 | - (현) 북세미나닷컴 대표
    - 한국경제신문 출판국 기업정보팀
    - 미래넷 전략기획실
    - JCMBA 전략기획팀장
    - 한국일보 서울경제 백상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ceo@booksemin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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