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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게 묻는다

<4> 팔루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교수

DBR | 1호 (2008년 1월)
《“유럽 지역개발정책에서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유럽 지역통합 분야의 석학인 안드레아스 팔루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공간정책시스템학과 교수(사진)는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본산인 유럽 대륙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쟁을 통해 유럽 각 지역이 세계 경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다(多)중심 도시지역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
 
“유럽도 지역발전정책 경쟁 강조 파리, 중앙-주변부 윈윈 모델로”
“한국, 고령화 급격하게 진행 통합 위한 이민대책 마련해야”
 
그는 “통합과 결속을 강조하던 유럽의 ‘지역통합(Cohesion)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팔루디 교수는 최근 지역발전위원회가 주최한 ‘지역발전 국제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럽 지역정책에서 경쟁이 강조되는 이유는….
 
“유럽에 미국과 동아시아는 파트너이자 경쟁자다. 한국도 우리에게는 경쟁자다. 유럽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다. 유럽은 대부분 복지국가이며 인구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임금을 낮추고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유럽위원회는 2010년까지 유럽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 개념이 도입되면서 나타난 변화는….
 
“2007년 유럽의 경쟁력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유럽연합(EU) 개정조약인 ‘리스본조약’이 나오면서 지역 통합정책에서도 경쟁력이 강조되고 있다. ‘리스보나이징(Lisbonizing)’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유럽위원회가 낙후지역에 주는 보조금도 조건부로 준다. 각 지역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리스본조약에서 제시한 경쟁력 강화 전략과도 맥이 닿아 있다.”
 
―수도권 성장을 억제했던 프랑스가 새로운 파리를 건설하기 위해 ‘그랑파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의 집중 문제를 우려했다. 프랑스를 ‘파리와 그 밖의 사막지역’이라고 표현한 책까지 나왔다. 1962년에 드골 정권에서 지역개발을 시작하고 리옹, 툴루즈 등 지역 거점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지역통합정책은 유럽 지역정책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글로벌 도시로서 파리의 위상이 영국 런던보다 뒤처진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에 따라 파리의 위상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발전을 추진하는 이중 정책으로 돌아섰다. 파리가 발전하면 주변지역에 파급 효과가 일어나는 ‘윈윈’ 정책이다. 상호 모순적이지만 중앙과 주변부를 동시에 성장시킨다는 정책이다.”
 
―유럽통합 이후 영토 개념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과거의 영토 개념은 무의미하다. 집값이 싼 독일, 벨기에에 살지만 네덜란드에서 직업을 갖고 자녀를 교육하는 사람만 6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아일랜드의 인구 중 10%는 동유럽, 중부유럽 이민자다. 유럽에서 결혼한 부부의 16%는 부부의 국적이 서로 다르고 독일에서는 네덜란드 국적자가 시장으로 선출되고 있다. 과거의 고정된 영토 개념(hard territoriality)으로는 이런 현상에 대처할 수 없다.”
 
팔루디 교수는 물리적 영토(Hard space)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에 초점을 맞춘 ‘소프트 공간(Soft space)’에 유럽 지역정책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구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기업과 주민의 생활공간에 따라 지역 개발을 추진하는 한국의 광역경제권 정책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의 대도시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보다 중앙 집중과 지역개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프랑스 사례를 배울 필요도 있다. 모든 대도시가 글로벌 시티가 되기보다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Globally known City)’가 되는 방법도 좋다. 스페인 카탈루냐 주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글로벌 마케팅에 성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국경을 뛰어넘는 도시 간 협력도 중요하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는 두 도시를 잇는 다리를 통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공동으로 교육기관을 운영할 정도다.”
 
―동아시아 지역 통합에 대해 조언한다면….
 
“동아시아의 통합은 유럽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영토적 통합보다 무역이나 경제 정책, 이민 정책이 지역통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이민정책의 자유화가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 아시아계 이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지역통합에 영향을 줄 것이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 안드레아스 팔루디 교수
안드레아스 팔루디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교수(공간정책시스템학과)는 유럽 통합과 지역개발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네덜란드와 유럽국가의 지역정책 등과 관련한 폭넓은 저술활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유럽의 공간발전 기본구상’(2002년), ‘유럽연합의 공간계획’(2002년), ‘지역통합의 유럽모델’(2007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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