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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에는 영혼이 있다

박성배 | 33호 (2009년 5월 Issue 2)
마니아라면 이쯤은 돼야
부릉부릉짧고 반복적인 리듬. 둔탁한 오토바이에 올라탄 한 무리의 건장한 아저씨들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엔진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 브랜드는 바로 오토바이의 명가 ‘할리 데이비슨’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호그(HOG·Harley-Davidson Owners Group)’라는 독특한 고객 커뮤니티를 갖고 있다. 호그에는 전 세계 130만 명 이상의 할리 데이비슨 열혈 팬들이 가입해 있다. 할리 데이비슨은 호그 회원들에게 마일리지 보상, 무료 모터사이클 잡지 제공, 보험 혜택 등을 주며 이들을 할리 데이비슨 공동체의 주역으로 만들어냈다.
 
호그 회원들의 할리 데이비슨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회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연회비 45달러를 내고, 연간 150차례 열리는 오토바이 랠리에도 참가한다. 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 일부 회원들은 비행기에 할리 오토바이를 싣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할리 데이비슨은 호그를 통해 브랜드 애호가의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브랜드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50대 남성들이 10대 소녀처럼 할리 데이비슨 스티커와 배지를 모으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GE를 능가하는 놀라운 성과
할리 데이비슨을 단순히 일부 마니아를 위한 고급 취미 상품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할리 데이비슨이 이뤄낸 성과가 너무 대단하기 때문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지난 20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2007년 매출은 1983년보다 24배 늘었고, 이익은 무려 930배 증가했다. 주가는 1986년 주식시장에 재상장된 이후 15년간 150배가 뛰었다. 포브스는 같은 기간 GE의 주가가 불과 10배 늘었다는 점을 들어, 2002년 할리 데이비슨을 ‘올해의 기업’으로 선정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추락
할리 데이비슨의 놀라운 실적은 회사가 바닥까지 추락한 후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1903년 설립된 할리 데이비슨은 원래 엔진 부착형 자전거를 판매하던 회사였다. 그러다 1909년 트레이드마크인 2실린더의 V트윈 엔진을 발표하며 오토바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0년대까지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혼다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이 등장한 1960년대부터 할리 데이비슨은 큰 어려움에 처했다. 일본 기업은 할리 데이비슨과 달리 날렵하고 가벼운 경량급 오토바이를 중점 생산하면서 신규 고객들을 끌어들였다. 결국 할리 데이비슨은 1969년 미국 레저업체인 AMF로 넘어갔다. 문제는 AMF가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할리 데이비슨의 주력 상품을 놔두고 경량급 오토바이 개발에만 주력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산토끼를 잡자고 집토끼를 놓쳐버린 셈이다.
 
할리 데이비슨이 경량급 오토바이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중량급 오토바이를 선호하던 할리 데이비슨의 핵심 고객들마저 할리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결국 할리 데이비슨은 자신들이 장악했던 미국 중량급 오토바이 시장에서도 급격한 점유율 하락을 겪었다. 한때 90%에 달했던 점유율은 1970년대 25%까지 떨어졌다.
 
부활의 씨앗
1981년 할리 데이비슨은 구원투수를 맞이했다. 바로 13명의 할리 데이비슨 임원들이었다. 이들은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 회사를 다시 사들인 후, 할리 데이비슨의 ‘진짜 가치’와 ‘정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둔탁한 엔진 소리와 중량감 있는 외양을 찾기 위해서였다.
 
1983년, 임원진은 자신들이 직접 할리의 고객 커뮤니티인 호그를 결성했다. 몸에 직접 문신을 새기고 가죽점퍼를 걸친 후, 살아 있는 할리 데이비슨을 보여주기 위해 랠리에 나섰다. 그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였다. 캐치프레이즈에 담긴 남성성과 저항 정신이 바로 할리의 ‘영혼’이었던 셈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첫해 3000명에 불과했던 호그 회원은 2년 뒤 6만3000명으로 늘어났다. 2003년 할리 데이비슨 설립 100주년 행사 때는 25만 명의 오토바이족들이 할리 데이비슨의 본사가 있는 밀워키에 모였다. 결국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 중량급 오토바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다시 차지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유럽과 일본에도 진출하며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영혼을 담은 감성 소음
할리 데이비슨이 극적으로 부활한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장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 소리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황야를 달리는 서부 사나이들의 힘찬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기 위해 일부러 만든 ‘감성 소음’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무려 100년간 V트윈 엔진의 형태를 바꾸지 않았고, 덕분에 명확한 정체성으로 고객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우리 기업의 강점은 과연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가? 그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어떤 방법과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 이제 제품 자체의 성능과 품질은 기본에 불과하다. 고객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 가치를 더해야 한다. 호그의 총괄 담당자 브루스 모터는 말했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는 심장이 없는 대신 영혼은 있습니다. 할리 오토바이를 탈 때 나는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있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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