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2001년 ‘애플스토어’를 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비즈니스위크는 ‘Sorry Steve, Here’s Why Apple Stores Won’t Work’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애플의 계획을 비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스트리트닷컴의 유명 컨설턴트 데이비드 골드스타인 역시 “애플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2년 안에 알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죠.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에 있던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은 비슷했습니다.
애플스토어의 놀라운 성공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요? 현재 미국의 고급 쇼핑몰 중 애플스토어가 없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애플스토어가 없다면 쇼핑몰의 격이 떨어진다고 여길 정도입니다. 애플스토어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매장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매장은 마치 미래에 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건물 전체가 아름답게 빛나기도 합니다. 아무나 자유롭게 제품들을 써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입니다. 매장의 강습장에서는 고객들이 매일 비디오 편집 수업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2001년 5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에 처음 생긴 애플스토어는 현재까지 소매업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년 만에 연매출 10억 달러를 넘기더니, 2006년부터는 분기별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애플스토어의 성공은 타사와 비교해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2004년 기준으로 매장의 평방피트당 매출을 보죠. 고급 백화점 삭스가 362달러를 벌어들였고, 전자제품 소매업체 베스트바이가 930달러(업계 최고), 티파니앤코가 2666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스토어는 얼마나 벌었을까요? 무려 4032달러입니다. 애플스토어가 당시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로 매출이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현재는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선택, 론 존슨
애플스토어의 가공할 만한 성공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애플의 차기 최고경영자(CEO) 후보로 평가받는 론 존슨 소매 부문 수석 부사장입니다.
사실 애플이 애플스토어를 열기로 결정할 무렵, 스티브 잡스는 무척 두려웠다고 합니다. 당시 애플은 대중들에게 특별히 보여줄 만한 제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형 유통업체들의 유통 전략 탓에 애플의 제품들이 특별하게 보일 수 있는 계기도 전혀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애플스토어는 이러한 배경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고육책이었죠. 이에 애플은 당대 최고의 소매 유통 혁신가 론 존슨을 대형 유통업체 ‘타깃’에서 영입했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는 고스란히 존슨의 어깨 위에 지워졌습니다.
이에 앞서 스티브 잡스는 소매 유통의 적임자를 찾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실무 책임자로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띈 사람이 바로 존슨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탁월한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론 존슨은 타깃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모집해 다양한 가정용품 디자인을 맡겼습니다. 그는 타깃에 근무할 때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가정용품을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판매함으로써 타깃이 ‘디자인을 선도하는 고급스러운 유통업체’라는 이미지를 얻게 했죠.
론 존슨은 애플이 선보이고자 하는 상점의 견본(prototype)을 20개 정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거의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컴퓨터가 정보와 음악, 영상 등이 모이는 디지털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는 미래적 개념이 스토어 디자인에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는 스티브 잡스를 찾아가 스토어를 완전히 새롭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합니다. 어찌 보면 사업 책임자로서 황당한 행동을 했죠. 하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새롭게 디자인을 하면서 6개월이 넘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결국 그들의 결정은 옳았습니다.
론 존슨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어였습니다. 고객이 마치 호텔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끼기를 원했죠. 누구나 호텔에 와서 서비스를 요구하듯 고객이 자연스럽게 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제품 서비스 영역은 호텔의 컨시어지를 본떠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는 곳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이를 위해 론 존슨은 “포시즌스 호텔처럼 친절한 상점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늘 자문했습니다.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게 바로 애플스토어의 명물 ‘지니어스 바(Genius Bar)’입니다.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지니어스 바
소매 유통업계에서 ‘고객 중심’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많이 나오는 구호입니다. 그런데 지니어스 바처럼 철저히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지니어스 바는 각종 체험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애플의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를 찾아옵니다. 고객들은 친절한 직원들과 함께 직접 문제를 해결하죠. 이 완벽한 서비스는 애플의 명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지니어스 바 아이디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론 존슨은 이를 밀어붙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업계 서비스 직원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이들이 고객들에게 제대로 서비스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론 존슨은 그동안 가전제품 유통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판매수당도 없앴습니다. 매장 직원들이 판매에 혈안이 되기보다는 고객 서비스에 집중하도록 했죠. 지니어스 바는 판매수당을 없애고 좋은 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을 골라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성공했습니다. 최고의 직원은 맥 지니어스(Mac Genius)로 올라가거나, 매장에 있는 강습소에서 고객들을 교육시키는 프레젠터가 될 수 있습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명예와 자부심을 최대한 자극한 거죠.
이러한 혁신을 통해 애플스토어는 고객들이 언제나 부담 없이 들러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는 최고였고, 첨단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애플스토어의 뒤를 이어 소니의 ‘Sony Style’이나 삼성의 ‘Samsung DigitAll’ 등이 생겼습니다. 애플스토어가 전자회사들의 최첨단 소매점 전략의 모델이 된 거죠.
컴퓨터 회사들이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전화 등을 통해 애프터서비스(AS)를 한다는 상식을 완전히 깨버린 애플스토어의 발상은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론 존슨은 스스로 애플스토어가 바로 ‘하이터치 시대의 성공 사례’라고 언급했습니다.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팔지만, 결국 고객은 사람입니다. 훌륭한 고객 서비스가 없으면 물건을 팔 수 없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죠. 첨단기술의 세계에 하이터치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이터치를 최대한 이용해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론 존슨. 애플의 성공은 한두 명의 천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참고 자료
‘Apple: America’s best retailer’, Jerry Useem, Fortune, 2007. 3. 8.
‘Apple, a Success at Stores, Bets Big on Fifth Avenue’, Steve Lohr, The New york Times, 2006. 5. 19.
‘Apple Store strategy: “Position, permission, probe”’, http://counternotions.com/2007/10/21/apple-store-strategy/, 2007. 10. 21.
필자(본명 정지훈)는 의학과 보건정책관리, 의공학을 전공했다. 현재 병원에서 의공학 관련 연구와 해외 비즈니스를 책임지고 있으며, ㈜아원의 연구총괄 이사직을 겸하고 있다. 블로그 ‘하이컨셉 & 하이터치’에 미래의 과학기술, 기업, 경영, 의학, 사회 변화 등 ‘미래’를 주제로 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