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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가 상품이다

임은혁 | 3호 (2008년 2월 Issue 2)
영화배우나 모델, 운동선수, 뮤지션처럼 이제 패션 디자이너들도 세계적인 유명인사(celebrity)가 됐다. 과거 디자이너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수줍어하거나 기피해 자신의 패션쇼에 서기를 꺼렸다. 전통적인 프랑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맞춤복)는 은밀함, 희소성 그리고 선택된 소수의 고객과 상류층 인사에 의존해왔으며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를 비롯해 유명 디자이너들은 공개적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이미지 구축은 물론 종종 판매를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이너들이 패션 컬렉션뿐만 아니라 매장 오프닝, 향수 런칭에 참석해 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들의 이미지가 제품의 이미지와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품으로서의 디자이너(designer as product)’가 브랜드 인지도를 극대화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있어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은 이미지 창조의 거장이 됐다. 그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부드러운 도시 남성에서 세련되고 성숙한 비즈니스맨으로 바꿨다.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는 항상 지성미를 상징하는 절제된 블랙 의상을 입는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창조적인 작업이 상업적인 사업으로 인식되는 것을 꺼려함을 보여준다. 톰 포드(Tom Ford)와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항상 흠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자신에 찬 매너를 보여준다. 이제 디자이너는 대중의 시야에 머물면서 그들 제품 마케팅의 성공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트 쿠튀르 컬렉션 쇼는 수만 달러가 소요되는 대형이벤트다. 비용은 높지만 디자이너는 쇼의 화려함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미디어에 등장시키며 광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에 비해 라이센싱(licensing)은 디자이너가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많은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자 주요한 수입의 원천이 된다. 디자이너는 제조업자가 자신의 이름을 제품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보통 총 이익의 7∼8% 정도를 로열티로 받는다. 라이센스 제품으로는 선글라스, 모자, 텍스타일 제품(타월, 시트), 가정용품 등이 많다.
 
피에르 카르뎅(Pierre Cardin)은 1959년 디자이너 최초로 대량 생산되는 기성복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당시 그의 행동은 디자인을 독점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주 목적인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의 조합인 파리의상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의 분노를 샀다. 이에 대한 징계로 카르뎅은 일정기간 동안 멤버십을 박탈당하고 파리 패션 컬렉션에 설 수 없었다.
 
카르뎅의 목표는 부유층이 아닌 모두를 위한 패션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가구에서부터 카펫, 타일, 프라이팬, 레스토랑, 자동차, 보트, 올리브 오일, 매트리스까지 총 900여종의 제품의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을 비롯해 많은 디자이너들도 향수, 화장품 판매뿐만 아니라 브랜드 라이센싱을 통한 로열티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브랜드 네임이 제품의 환상을 만든다
이런 제품들의 가치는 브랜드 네임에 존재한다. 브랜드 네임 없이는 사회적 재화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디자이너 이름은 브랜드 네임을 가리고는 비슷하게 보이는 제품들에 차이를 만들어 냈고, 또 지위(status)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브랜딩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점점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프레타 포르테(pret-a-por ter·고급 기성복) 라인이 글로벌 고객을 타깃으로 보급형 디퓨전(diffusion) 라인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오트 쿠튀르가 디자이너의 고급 기성복 라인 판매를 촉진시켰던 것처럼 이제 기성복 라인은 디퓨전 라인을 판촉하는 데 이용된다. 기성복 라인보다 더 저렴한 디퓨전 라인은 1990년대 들어 패션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새로운 마케팅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고,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도나 카란(Donna Karan)은 디퓨전 라인인 ‘DKNY’를 런칭해 성공을 거뒀다. 유럽 왕실의 왕관을 장식했던 까르띠에(Cartier)도 ‘Les Musts de Cartier’라는 보급형 기프트 라인을 출시해 안경집, 가죽 제품, 라이터 등을 생산했다. 이런 전략적 움직임은 회사의 재정 상황을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명품 시장(luxury market)을 회생시켰다. 까르띠에는 이를 브랜드의 대중화로 보지 않았다. 까르띠에의 브랜드 명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럭셔리 제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필자는 서울대 의류학과와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삼성디자인학교(SADI) 패션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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