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사진은 대우자동차의 마티즈2와 2003년5월 출시된 중국 치뢰이(奇瑞) 자동차의 주력 모델 QQ다. 싼 가격과 수려한 디자인을 앞세운 QQ는 중국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3년 만에 무려 30만 대가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치뢰이 자동차는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 1위의 자동차 수출업체로도 성장했다.
하지만 이는 ‘짝퉁’ 신화일 뿐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QQ는 GM대우가 생산하는 마티즈의 복제품에 불과하다. 단순히 외관만 베낀 것이 아니라 내부까지 판박이다. 마티즈의 부품을 QQ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서는 QQ를 구입한 고객이 GM대우의 서비스 센터에 와서 수리를 요구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치뢰이가 QQ를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 수출하면서 마티즈의 수출에 커다란 악영향까지 주고 있다.
GM대우는 2004년 12월 상하이 법원에 치뢰이 자동차를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동시에 중국 특허청에 등록된 20여 개의 QQ 관련 디자인 특허 무효 심판도 청구했다. GM대우는 QQ의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 중단, 치뢰이의 공개 사과 및 8000만 위안의 경제 손실액 배상, 해당 차량의 부당 판매 수익금 전액 몰수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치뢰이 자동차는 중국 국영 기업이다. 게다가 중국 법원은 자국 기업에 대한 보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결국 GM대우는 2005년 11월 치뢰이와의 합의로 소송을 종결했다. 구상 단계에서 실제 생산까지 보통 3, 4년이 걸리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모방 시기의 증명이 어려운 점도 화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QQ 사례는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지적재산권 침해로 피해를 겪는 전형적 사례다.
반면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특허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08년 말 시점으로 삼성전자는 현재 샤프 등 세계 25개 회사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상태다. LG전자도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소송을 당한 사례가 15건에 이른다. 하이닉스는 램버스와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도 3, 4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기술 로열티 수입을 노리거나 시장 진입을 차단하기 위한 특허 소송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한국 상품의 기술 수준이 괄목할 정도로 높아지고 브랜드 이미지도 크게 개선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시장에서 짝퉁 제품의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선진국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을 견제하려는 지적재산권 제소가 증가하는 등 한국 기업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WTO 체제에서의 지적재산권 보호
과거 지적재산권 보호의 내용과 수준은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무역에 관한 지적재산권 보호 협정(TRIPS)’이 등장하면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모든 WTO 회원국들이 예외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WTO 체제 출범 이후 한국도 1995년 12월 저작권법을 개정했다. 이때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외국인 저작물의 소급 보호였다. 법 개정 전 국내에서는 1987년 7월 1일 이전의 외국인 저작물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저자 사후 50년’ 동안 보장되는 저작권 보호가 일괄 적용되기 시작했다. 소위 ‘빽판’으로 불리던 해적 음반이나 대학가 서점을 꽉 채우던 복사판 외국 교재들이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때문이었다.
TRIPS 협정이 보호하는 지적재산권은 저작권뿐 아니라 특허, 상표권, 지리적 표시, 영업 비밀 등 총 7종류에 달한다.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국제 협정으로는 특이하게도, TRIPS 협정은 국내외 지적재산권 소유자는 물론 모든 WTO 회원국들에 대해 비차별대우 의무를 부과한다. 특히 TRIPS 협정의 비차별대우 의무는 FTA 예외 조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한국은 한미 FTA를 통해 저작권 및 특허 보호 내용과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저작권 보호에 관한 상호주의 원칙의 예외가 인정되는 70년의 보호 기간 이외에는 향후 모든 WTO 회원국들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뜻이다.
TRIPS 협정에 따르면, 무역 규제 기관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가 있다고 간주하는 경우 즉각 수입을 금지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무역위원회가 지적재산권 침해 물품의 수입을 불공정 무역 행위로 규제한다. 주로 특허권과 상표권 침해 사안이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적재산권 위반에 대한 사법적 판결 없이 행정 기관의 재량적 판단만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당하는 꼴이므로, 종종 논란이 된다.
실제 2004년 11월 일본 마쓰시타가 LG전자의 PDP 제품에 대해 특허권 침해 혐의로 통관 보류를 신청하자, LG전자도 마쓰시타의 글로벌 브랜드인 파나소닉 PDP에 대해 무역위원회에 특허권 침해를 사유로 수입 금지 조치를 신청했다. 한일 양국의 대표 회사 간에 벌어진 지적재산권 분쟁은 WTO 체제에서의 첫 한일 간 국가 분쟁으로 확산될 위기를 맞았다. 2005년 4월에야 LG전자가 마쓰시타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두 회사가 특허권을 상호 사용하는 ‘기술 상호 공유(크로스 라이선스)’에 합의하면서 사안이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