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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마케팅 이야기

고객이 왕이다? B2B 기업엔 아닐 수도
특정 고객사 의존 크면 가격결정력 상실

정재학,정리=최호진 | 412호 (2025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B2B 기업이 고객 중심 경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한 불균형적 관계가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객사와 공급사 간의 관계가 단순 공급-구매 관계에서 종속 관계로 변질되는 ‘클라이언트 종속화(Client Dependency)’가 일어난다. 공급 기업은 단기적으로 매출과 수익이 늘어가는 외형과는 달리 가격 결정권을 빼앗기게 되고 불리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갈수록 수익 건전성이 나빠진다. 최악의 경우 파산 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 B2B 기업이 특정 고객 의존도를 낮추며 전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매출 비중을 다른 고객사에 분산하는 것이다. 또한 독자적인 기술이나 품질로 제품을 차별화해 대체 불가능한 공급자로서 B2B 브랜딩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편집자주 | 정재학 서강대 경영대 교수가 전통적 마케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B2B 시장에 맞는 최신 마케팅 지식과 이론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B2B 환경에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용한 인사이트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고객이 왕이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스위스 출신의 리츠칼튼 호텔 설립자 세자르 리츠(Ce´sar Ritz)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고객 중심 경영을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한 최초의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손님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다(Le client n’a jamais tort)”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줄곧 해온 그는 1873년 호텔에서 근무 중인 에드워드 7세 왕세자를 고객으로 모시면서 ‘왕, 귀족 신분이 아니어도 손님들을 왕처럼 대접해주는 호텔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ʼ란 생각을 하게 된다.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리츠는 이런 욕망이 자신에게만 있진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18세기 산업혁명이 정점이던 시기에 나타난 신흥 부자들을 타깃으로 리츠칼튼 호텔을 설립했다. 그는 ‘호텔리어의 왕, 왕들의 호텔리어ʼ라고 불리며 고객을 최우선시하는 경영 방식을 최초로 도입해 이후 경영자들의 경영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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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기술의 혁신으로 제품이 대량 공급된 1940~1950년대에 이어 1960년대 시장은 초과 공급으로 인해 공급자보다는 수요자가 더 중요한 시대로 진입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따라 1960년대에는 고객 중심 경영을 배경으로 마케팅이 탄생했다. 공급 관리보다는 고객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경영 의사결정에 있어 최우선의 기준은 고객이라는 사고방식이 주류가 됐다. 이런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믿음은 ‘경쟁자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누구보다 빨리 제공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마케팅이 고객 욕구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에 집중한다는 점은 마케팅 성과 지표에도 잘 드러난다. 마케팅 성과 지표가 대부분 고객의 구매를 측정한 매출과 점유율, 고객 만족도, 고객 태도(선호도), 고객 인지도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마케팅 부서가 오직 고객에게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영 철학은 마케터라면 어느 누구도 의심해선 안 되는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여겨져 왔다. 마케팅 분야에서 30년 이상 교육과 컨설팅을 해왔지만 고객을 최우선하는 마케팅 철학에 대해 질문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과연 고객이 좋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잘 만들고 제공하기만 하면 기업은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B2B 시장을 살펴보면 훌륭한 제품을 개발했음에도 어려움을 겪거나 파산한 기업이 유난히 많다. 앞서 언급한 고객 중심 경영에 대해 재고해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 고객 중심 경영에 집중한 기업이 예상보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쉽게 시장에서 사라지는 전형적인 패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고객 중심 경영이 B2B 시장에서도 그대로 수용돼도 될지, 그렇지 않다면 B2B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아보자.


B2B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 ‘클라이언트 종속화’

B2B 시장에서 공급사가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 제공하려는 것은 분명 기업의 존재 가치를 지탱해주는 바람직한 경영 철학이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잘 만들어 제공하는 것만이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보장하진 못한다. 오히려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 경우도 B2B 시장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고객 중심 경영에만 집중하는 B2B 기업이 어떤 문제를 겪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B2C나 B2B 시장 모두 공급사가 고객이 원하는 높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사가 구매를 늘리고 공급사 매출은 증가하게 된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다. B2C 시장에서는 고객이 제품을 선호해 소비, 즉 구매가 늘면 선호하는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일은 흔하지 않다. 가격은 동일 수준을 유지하거나 많은 경우에는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이 현상은 경제학의 근간이 되는 시장 원리로 수백 년간 검증됐다. 매출이 상승하면 B2C 기업은 매출만이 아니라 수익 증가로 더욱 건전한 성장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B2B 시장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고객 욕구를 잘 파악해서 좋은 제품을 B2B 기업이 판매하면 고객사가 만족하고 주문량을 늘리게 되는데 그만큼 가격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B2B 산업의 관행이다. 주문을 늘리며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지 않는 고객사는 그리 흔치 않다. 주문량을 크게 늘릴수록 고객사는 그 대가로 제품 가격 할인을 기대하며 거래 관계가 지속되면 이런 요구는 당연한 계약 방식으로 고착화된다.

이런 현상이 B2B 시장에서 나타나는 원인은 B2B 고객이 B2C 고객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협상력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우깡을 많이 먹는 고객이 농심에 새우깡 가격을 내려 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설사 요구한다 해도 이를 농심이 받아들일 리 없다. 소비자도 가격이 저렴하길 원하지만 개인이 가격을 협상할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진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B2B 고객, 즉 클라이언트가 가격 인하 요청을 하고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흔하다. 클라이언트는 공급 가격을 조정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기 때문이다. 이 힘의 원천은 바로 고객 의존도에서 나온다. B2C 시장과 달리 B2B 시장에서는 공급사 매출에 개별 고객의 비중이 B2C 고객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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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시장에서 고객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B2B 시장은 소수 클라이언트가 대다수 시장을 점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보통 상위 3개사 점유율이 70%를 넘는 시장을 소수 과점 시장이라고 하는데 B2B 시장의 경우 1~2개 클라이언트가 시장점유율의 절반을 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일례로 조미료 B2B 시장의 경우 미원의 시장점유율은 2024년 기준 55%에 달하며 국내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점유율은 2021년 기준 62.1%였다. 기업의 유지, 보수, 운영에 필요한 소모성 자재를 구매 대행하는 사업인 MRO(Maintenance, Repair, Operation)의 경우 시장의 90% 이상을 서브원, 아이마켓코리아 등 두 개 업체가 점유하고 있다.

B2B 시장에서 고객 의존도가 높은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공급사가 경쟁 클라이언트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클라이언트가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공급 독점 선호 현상은 클라이언트의 힘이 셀수록 뚜렷해진다. 공급사는 클라이언트 눈치를 보며 경쟁사에 제품 공급을 자제하는 경우가 많고 클라이언트도 때론 불공정 계약을 해서라도 경쟁사 공급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무신사는 파트너사 계약에서 입점 브랜드사에 대해 타 경쟁업체 입점 제한 조항을 넣어 경쟁 제한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다.1 이런 공급 독점 선호 현상으로 인해 B2B 시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소수가 되고 고객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정 고객사에 의존하는 불균형적 매출 구조로 인해 고객 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면 고객사와 공급사 간의 관계가 단순 공급-구매 관계에서 상하 관계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공급 기업은 단기적으로 매출과 수익이 늘어가는 외형과는 달리 가격 결정권을 빼앗기게 되고 불리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중장기적으로는 갈수록 수익 건전성이 나빠진다. B2B 시장에서 고객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급사와 고객사 간의 관계가 파트너 관계에서 종속 관계로 변질되는 ‘클라이언트 종속화(Client Dependency)’가 일어나는 것이다. B2B 공급 기업이 고객 중심 경영에 치우쳐 클라이언트 종속화에 빠지면 많은 부작용과 심지어 파산 위기까지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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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매출 증가에 따라 총수익이 증가할 경우 기업이 클라이언트 종속화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호황기에는 수익 건전성이 낮아도 기업 생존에 타격을 주는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늘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흘러간다. 고객사 주문이 영원히 증가하거나 유지될 리 없다. 큰 불황은 소리 없이 찾아오고 호황에서 불황으로의 시장 전환은 급격히 일어난다. 급격한 시장 성장 뒤 관련 최종 시장(B2C 시장)이 급격히 수축하며 큰 폭의 수요 감소가 나타나면 B2B 가치사슬상의 수요 변동이 최종 시장에서 뒤로 갈수록 더 커지는 채찍효과(whip effect)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20%의 시장 수요가 감소하면 그 뒤에 있는 관련 B2B 시장에서는 30~50% 더 큰 수요 감소를 겪게 된다.

이때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건 수익 건전성이 약한 B2B 기업들이다. 고객사의 대량 주문에 따른 가격 조정으로 단위당 가격은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진 상태에서 갑작스런 주문 급감으로 생산이 대폭 줄면 평균 제조 비용이 튀어 올라 큰 적자를 보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B2C 산업에 비해 B2B 산업에서는 대량 흑자를 내던 기업이 순식간에 대량 적자로 전환하는 사례가 매우 흔하다. 특히 반도체 등 제조 산업에서는 고정비가 크며 수익 건전성이 낮아 호황기에는 대량 생산과 판매로 큰 수익을 내지만 1~2분기 만에 대량 적자를 보고하는 일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B2B 시장의 파생 수요(Derived Demand)2 는 단기적으로는 더 크게 감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가치사슬상 뒤에 위치한 B2B 기업은 그 충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생산 감소로 제조 비용이 올라가면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가격을 인상하기가 더 힘들다. 고객사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가격 결정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갑자기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데다 그동안 주문을 많이 해준 고객사가 시장 수요 감소로 힘들어 하는 상황을 파트너 관계의 공급사가 외면하고 가격을 인상하기란 쉽지 않다. 가격은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주문이 늘었을 때 올렸어야 한다. 불황기에 공급사가 가격을 올리면 고객사는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려는 공급사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더욱 거세게 가격 인상을 막으려 할 것이다. 즉 불황기에는 적자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나 클라이언트 종속화 관계에서는 가격을 올리기 더욱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 결정력을 잃어버린 기업일수록 이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며 불황기가 지속되면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된다.


클라이언트 종속화의 3가지 유형

이처럼 특정 고객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지면 고객사는 불균형적 관계를 통해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파트너로서의 협력 관계는 변질되고 거래의 공정성도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 이런 관계는 불황기에 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B2B 기업이 사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형적인 클라이언트 종속화 유형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클라이언트 종속화의 3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유형 1  가격 결정력 상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의 저자 브래드 스톤은 기업들이 아마존 같은 거대 유통 플랫폼에 벤더로 참여하는 것을 마약에 손을 대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아마존 플랫폼 거래에 벤더로 참여하면 갑자기 매출이 탄력을 받으며 증가하는 경험을 하고 공급사는 마약 같은 절정의 행복을 느끼며 결국 아마존에 종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아마존이 가격 인하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면 협상력 부족으로 수용하게 된다. 결국 매출은 증가하지만 수익성이 악화되며 수익 건전성 위기에 빠진다. 그렇다고 아마존을 벗어날 수도 없다. 이미 중독된 상태인 탓에 스스로 판매할 역량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벤더 업체들은 이를 알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멈출 수 없다. 이처럼 한번 고객사가 가격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면 그 이후에는 더욱더 공급사가 가격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열매가 달콤할수록 저항하기 어려워지며 더욱 고객사에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유형 2  공급사 기술의 클라이언트 내부화

공급사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고객사는 관련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넘어 기술에 관한 심층 자료와 설계도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구매 판단에 필요한 제품 이해 수준이 아니라 기업의 노하우까지 알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요청하는 경우다. 때론 공급사에 대한 전략적 관리를 위해 기술 관련 내부 정보를 확보하고 원가 분석을 통해 향후 가격 인하 협상에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공급사 제품 제조 기술을 고객사가 내부화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애플은 2018년 WWDC(세계개발자대회)에서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를 연동해 소지품을 찾게 하는 장치를 개발한 주요 협력사인 타일을 소개했다. 하지만 애플은 타일사의 기술과 거의 비슷한 기능을 갖춘 앱 ‘내 아이폰 찾기(Find My iPhone)’를 개발해 아이폰에 장착했다. 나아가 애플스토어에서 타일의 제품을 철수시켰고 타일 소속 엔지니어들도 스카우트했다. 타일사는 애플이 실제 공급사 기술을 내부화했을 것이란 의심을 하고 있다.3 또한 무선 스피커 기업인 소노스는 구글의 인공지능(AI) 스피커인 구글 홈이 소노스의 특허를 빼돌려 만들었다며 특허 침해로 구글을 고소했다.4 더구나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제조사가 여러 계열사를 보유한 대기업이다 보니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B2B 시장이 조금 커질 기미가 보이면 그룹 차원에서 사업부나 계열사를 만들어 필요한 물량을 자체 공급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이처럼 공급사 기술의 클라이언트 내부화는 공급사가 경계해야 할 클라이언트 종속화의 주요 유형 중 하나다.

 유형 3  타 고객사에 대한 판매 제한

강력한 힘을 가진 고객사의 경우 공급사의 판매 유통 경로 등을 제한함으로써 제품 판매 전략과 시장 다각화를 제한하기도 한다. 계약서에 명기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B2B 산업에서는 주요 고객이 계약할 경우 암묵적으로 고객사가 경쟁사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이 경쟁사에 공급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공식적으로 공급사의 타사 거래를 막는 행위는 대부분 불법이다. 그럼에도 고객사가 소수인 시장에서는 공급사의 판매 유통 경로와 시장 다각화를 제한하는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일례로 반도체 산업의 경우 애플이나 삼성전자와 같은 소수의 스마트폰 제조사에 반도체를 제공해야 하는 SK하이닉스는 항상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과거 애플에 공급하는 DRAM 매출 비중이 50% 이상인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사 다변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타사에 대한 제품 판매 확대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애플이 공식적으로 SK하이닉스의 타사 제품 공급을 막지 않는다 해도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애플에 대한 의존도를 고려하면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클라이언트 종속화는 피할 수 없으며 공급사의 수익성과 판매 전략이 제한되고 장기적으로 고객사를 잃을 경우에는 위기관리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B2B 기업, 클라이언트 종속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B2B 기업이 고객 중심 경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한 불균형적 관계가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B2B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상에서 다른 조직 대비 높은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힘을 확보할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 종속화를 완화하고 수익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B2B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고객 포트폴리오 및 사업 다각화

특정 고객 의존도를 낮추며 전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매출 비중을 다른 고객사에 분산하는 것이다. 2010년대 DRAM 메모리 매출의 40% 이상을 애플에 납품하며 전형적인 종속화 현상을 보였으나 지난 10년간 화웨이, 샤오미, 레노버 등으로 고객사를 확대해 애플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줄여나가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물론 소수의 고객사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어 고객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여의치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땐 가치사슬을 다양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일례로 과거 SK화학은 섬유, 특히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계열 섬유 사업이 중심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바이오 사업으로 확장하며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2. B2B 브랜딩 강화

기업이 시장에서 힘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본원적인 전략은 결국 제품 차별화다. 독자적인 기술이나 품질로 차별화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체 불가능한 공급자가 될 수 있어 협상력이 확보된다. B2B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의 네임 밸류나 제품 및 서비스 차원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수익 건전성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면 고객사의 고객에 관심을 끌 수 있고 이들이 고객사에 자사 제품 구매를 요구함으로써 클라이언트 종속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일례로 고어사는 1980년대 후반부터 고어텍스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함으로써 고어사의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가치사슬 끝단에 있는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브랜드를 인식시켜 고가 정책을 40년째 유지하고 있다.

3. B2B 고객관계관리

B2B 기업은 맹목적으로 고객 만족을 추구한다고 해서 생존을 보장받을 순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거래 협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마케팅은 고객 만족을 통한 관계 강화에 집중하는 고객관계관리(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B2C 시장에서 고객과 기업의 관계와 달리 B2B 클라이언트는 이익을 서로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상대다. 때론 공급사의 마케팅에 제약을 걸기도 한다. B2B 기업은 CRM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전통적인 CRM은 기존 고객 중 소수 우량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해 고객사의 매출을 더 키우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B2B 기업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고객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이는 고객사와의 권력 불균형을 키울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고객사를 단순히 ‘모셔야 할 왕’이 아닌 ‘함께 성장해야 할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마케팅 철학은 B2B 기업에 고객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신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B2B 기업이 고객을 왕처럼 모시면 시장 상황이 어려워질 때 먼저 목숨을 바치게 될 것이다. B2B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는 고객사와 주군 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 B2B 마케팅의 성공은 고객 만족을 넘어 공급사와 고객사 모두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균형 잡힌 관계 구축에 달렸다.
  • 정재학

    정재학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필자는 현재 서강대 경영대학에서 마케팅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코넬대에서 공학 석사와 마케팅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JMR(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등 저명 학술지에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2000년 MSI 선정 전미 최우수 박사 논문상을 수상했다. 국내 IT, B2B, 소비재 산업의 주요 기업들에 자문과 컨설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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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최호진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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