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4.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고성과자’의 성폭력

지위 높아질수록 공감 능력 떨어져
슈퍼스타들이여, 거울을 자주 보라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성폭력 사건은 조직 내 차별적, 폭력적 행위의 연장선상이다. 정신분석학 분석에 따르면 조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권력자인 이른바 ‘슈퍼스타’들은 이러한 잘못된 행동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더 높은 지위와 혜택을 누릴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조직 내 슈퍼스타들이 유독 성폭력 사건에 자주 연루되기도 한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선 권력자들이 권력을 오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계속해서 되물어야 한다. 동시에 조직도 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이들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와 상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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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적으로 본 ‘고성과자’의 성폭력

업계에서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저명인사였다. 그가 손을 대는 일마다 크게 성공했고, 그의 영향력이면 무엇이든 하지 못할 일이 없어 보였다. 업계 전체를 평정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업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성폭력 사건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권력 구조상 하위에 있는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는 성적 발언과 강제적인 신체 접촉을 했고, 여러 해에 걸쳐 누적됐던 그 문제 상황은 용기 있는 소수의 폭로로 업계에 알려졌다.

위 단락을 읽으면 어떤 업계가 떠오르는가? 각자 자신이 보거나 들었던 여러 사건의 조합으로 누군가, 혹은 어떤 업계의 사건이 떠오를 것이다. 그 업계는 어쩌면 문화예술계일 수도 있고, 종교계, 체육계, 혹은 학계, 또는 기업이나 정치계일 수도 있다. 어떤 업계를 대입해도 사실 다 의미가 통할 정도로 성폭력으로 문제가 돼 업계에서 축출된 ‘그’라는 존재는 어쩌면 산업 전반에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른바 조직에서 말하는 ‘슈퍼스타’다. 고성과자(high performer)이며 다른 사람보다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다. 이런 슈퍼스타들이 성차별, 성폭력 사건을 일으켜 조직에 큰 해악을 끼치며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을 주변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너무 자주 접한다. 슈퍼스타들은 왜 이런 문제로 타락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런 문제를 개인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슈퍼스타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단지 성 관련 사건들뿐인가?’라는 질문부터 살펴보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이다. 슈퍼스타들이 갖는 왜곡된 자의식은 성폭력 문제뿐이 아니다. 조직의 많은 부분에서 이기적이고 둔감한 행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상하관계의 갑질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대의 고충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거나 자기 위주로만 상황을 해석하는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한 자기중심성은 경미할 경우 꼰대 논란으로 회자되지만 심각할 경우에는 도덕적 해이로 조직을 흔든다.

2020년 5월 미국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코로나19 충격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음에도 질 솔타우 최고경영자(CEO)에게 450만 달러(55억200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계획안을 승인했다. 질 솔타우로서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기는 해도 자신이야말로 코로나라는 불확실한 환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기 때문에 그런 보너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CNN 방송은 “일반적으로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가면 대규모 해고를 포함한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며 많은 경우 해고자는 퇴직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2008년 말 대규모로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월가 금융사들이 최고위층에게 보너스를 비롯한 보상금으로 20억 달러 이상을 지급했고 이 중 80%는 부적절한 지급이었음이 드러났던 사건이 시간의 간격을 넘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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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슈퍼스타들의 조직 내 차별적 행위는 다음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 실장은 자타공인 탁월한 능력자다. 그가 부서를 맡은 후로 부서의 업무 처리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다양한 부서와 협업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관련된 연계 부서들이 김 실장의 부서에 요구하는 업무량은 상당했다. 그러나 김 실장은 각 부서가 원하는 업무를 기한을 넘기지 않고 모두 처리했다. 유관 부서의 장들은 모두 김 실장에 대해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그의 놀라운 실적 뒤에는 남다른 잔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요구량을 못 따라오는 구성원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그런 구성원을 비하적인 별명으로 부르거나 점심 식사 시에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조직의 중요 정보에서도 누락시켰다. 특히 인턴사원을 외모순으로 등수를 매기거나 자신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턴들에게 더 좋은 업무를 배정했다. 아무도 그에게 항의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부서라는 소왕국에서 왕이었다.

위의 사례처럼 권위자나 능력자들이 자주 행하는 조직 내 차별적 행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성폭력은 그러한 행동들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직 내 리더들이 권력을 가지면 왜 이런 행동들에 취약해 지는지, 조직은 그들의 행위를 왜 저지하지 못하고 묵인하다 더 큰 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과 뇌의 변화

질 솔타우는 어떻게 회사가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김 실장은 어떻게 구성원들을 그처럼 혹독하게 대하거나 성적으로 불편한 언동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해답은 그들이 가진 권력이라는 속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권력은 그 자체로 사람의 뇌와 사고방식, 행동 패턴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다. 연구자들은 이와 관련해 많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소속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알파벳 E 실험’을 통해 사람은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2006년 심리과학학술지에 발표했다. 갈린스키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명령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명령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갑자기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그려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명령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 일명 ‘고권력자’ 실험그룹은 33%가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반면 저권력자 실험그룹은 12%만이 자신이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리면 상대방은 알파벳 E의 좌우가 거꾸로 보인다. 즉, 고권력자 그룹보다는 저권력자 그룹에서 상대방이 보기 편하도록 알파벳 E를 그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대 제레미 호기븐 교수와 토론토대 마이클 인츠리트 교수 공동 연구팀은 권력을 가지면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게 하는 뇌의 거울 뉴런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2014년 심리실험학회지에 게재했다. 거울 뉴런은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마치 내가 경험하듯이 내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이해하는 능력인 공감(empathy)을 가능하게 해주는 뇌세포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남에게 의존했거나 또는 남에게 지시를 내렸던 경험을 글로 쓰게 한 뒤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 결과 권력이 있었을 당시를 회상한 실험 참가자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거울 뉴런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반대 그룹은 거울 뉴런이 활발히 작동했다. 즉, 권력을 가지면 타인의 말을 듣거나 표정•몸짓을 보면서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가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것은 권력에 취하면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더 많이 준다는 다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의 연구 결과다. 켈트너 교수는 이 모습이 마치 눈 바로 뒤편에 위치한 뇌 부분인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의 행동 방식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험의 하나인 ‘죄수와 간수 실험’에서 나타났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간수 역할을 부여받은 실험 참가자의 60%가 권력을 등에 업고 죄수 역할을 부여받은 실험 참가자를 고통스럽게 고문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권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권력은 체내 호르몬도 변화시킨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심리학과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2013년 발간한 책 『승자의 뇌』에서 권력이 주어지면 남녀 모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테스토스테론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데 그 양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는 또한 권력이 목표와 보상을 떠올리는 데 쓰이는 좌뇌 전두엽(left frontal lobe)을 활성화시키고 시각적인 요소와 위협 및 잠재 위협 요소를 판단하는 우뇌 전두엽(right frontal lobe)을 둔화시킨다고 했다. 우뇌 전두엽이 자기 인식(self-awareness)에 관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둔화는 권력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자기 성찰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직에서 종종 리더들이 자신의 입장 외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러한 연유다.

이처럼 단순한 실험 조건에서 약간의 권력을 행사하는 역할만 부여해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에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경향성이 뚜렷해진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예를 숱하게 본다. 많은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서 전과는 다르게 완고해지고 권위적이 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 권력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대상, 사물로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자기중심성의 극한-권력형 성폭력

이러한 자기중심성의 증가와 타인을 도구로 인식하는 현상의 한 극단에 권력형 성폭력이 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두 알코올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권력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 의식이 왜곡된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성을 자신의 권력 행사의 한 도구로 사용한다. 특히 성 문제에 대해 관대한 문화에서, 그리고 슈퍼스타라는 이유로 성 비위 문제에 쉽게 면죄부를 주거나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조직 환경에서 권력형 성폭력은 더욱 자주 권력의 가장 어두운 그늘로 조직에 드리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권력형 성폭력에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결함이 관여한다. 이러한 결함에는 위에 언급한 성을 거래의 대상으로 보거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성 의식,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공격성, 사랑과 성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낮은 감수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1969년 로렌스 피터 교수가 발표한 경영 이론인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은 ‘위계 조직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무능력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으로 조직이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처럼 자리에 비해 무능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결함을 느끼고 타인이 그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왜곡된 성 의식이 팽배한 사회 문화에서 내적 결함이 있는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성적으로 강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세우거나 자신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생각하고 타인에게 성적인 공격성을 보인다. 거기에 사랑과 성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낮은 감수성은 그러한 공격성을 서로가 좋아서 합의한 사랑의 행위였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특히 권력형 성폭력에서 이 지점은 큰 문제가 된다. 위계적 조직에서 가해자가 근무평정권, 포상추천권, 업무지시권, 인사권 등 광범위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자신의 사랑이나 호감에 동의했다고 임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도 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조직의 문제가 결부된다. ‘권력형 성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조직 내의 성폭력에 대한 방관자와 조력자가 존재하는데, 이들 역시 가해자의 권위나 권력에 눌려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다. 또한 조직의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가해자의 개인적 명예와 업적이 퇴색되는 일을 방지하고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권력형 성폭력은 체계적, 집단적으로 은폐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은폐의 과정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유혹이나 부당한 행동에 의해 한순간의 실수를 한 불쌍한 사람이 되고, 피해자는 잘나가는 가해자의 인생을 가로막는, 또는 조직의 위상에 먹칠을 한 소위 ‘조직의 배신자’로 전락하게 된다.

개인과 조직을 위한 제언

이탈리아 최대 언론 재벌이자 억만장자이며 총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74살의 나이에 모로코 소녀인 17세의 카리마 엘 마루그를 포함해 반라의 여자 12명과 함께 성적으로 난잡한 파티를 별장에서 주최했다. 이탈리아 검찰은 베를루스코니가 이 파티에 참석한 17세의 카리마에게 성매매 대가로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미성년자 성매매 사건으로 총리직에서 실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그전부터도 숱한 범죄로 12번이나 이탈리아 재판정에 섰다. 마피아 공모전, 위증, 세금 포탈, 경찰과 법관에 대한 뇌물 및 부패 등이 그것이다. 그럴 때마다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탄압하며 법을 개정할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서 무죄를 받아 총리직을 유지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는 그런 의미에서 참이다. 견제가 없는 권력은 개인과 조직을 망가뜨린다. 베를루스코니가 20년에 걸쳐 3번의 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의 재정 부실 국가 그룹인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 묶이게 됐고 현재까지도 국가 재정의 부실과 정치적 불안으로 EU의 문제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권력자 혹은 슈퍼스타가 보이는 문제 행동이 성 관련 문제에 국한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그리고 견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 어떻게 조직과 국가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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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그 자체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만을 중시하는 나르시시즘을 가진 리더에게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미친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나는 법 위에 있는 초법적 존재’라는 특권 의식이 있다. 정신분석적으로 개인은 아동에서 성인이 돼가면서 한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정신적 발달을 이룬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슈퍼맨이 돼 나는 것도 가능하다고 믿어 높은 곳에서 두려움 없이 뛰어내린다.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은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고 죽음조차도 넘어선 불멸의 존재(immortal being)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돼 갈수록 우리는 중력의 지배하에 있고,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mortal being)라는 것을 마음에 수용하게 된다. 이 과정이 성숙의 과정이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시간이 불멸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의 법칙 위에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망상 속에서 타인에게 적용되는 법을 자신에게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한 횡령, 거짓말, 폭력, 그리고 성적 착취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당당하다.

여기까지 읽으면 나는 베를루스코니 같은 문제 인간도 아니고, 저렇게 큰 규모의 부정이나 성적 이탈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어떠한가?

박 전무는 기획실의 김 사원이 아무래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요즘 고민이다. 자신의 방에서 나오면 김 사원과 항상 눈이 마주친다. 그럴 때 얼굴이 다소 붉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50살이 넘어도 자신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하다. 자녀들 공부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혼자 생활하느라 박 전무도 내심 외로운 시간이 많은데 김 사원이 자신을 흠모한다면 식사라도 한 번 같이 하는 게 예의일까 남모르게 고민이 된다.

김 사원은 어렵게 이직한 회사에서 아무래도 1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전에 없이 박 전무가 자신을 자주 쳐다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미소를 보낸다. 경력직으로 입사했는데 그만큼의 성과를 내는지 박 전무가 자신을 찍어놓고 감시한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내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수시로 책상 앞을 지나다니는 박 전무의 눈길을 피할 수 없어 요즘은 식사도 잘 안 될 지경이다.

이 둘의 사이는 어떻게 진행될까? 박 전무는 식사를 제안할 것이고,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김 사원은 주눅이 들어 그 식사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박 전무가 일종의 호의로 시작한 식사는 그의 도덕관념과 성 의식 수준에 따라, 그리고 배우자와의 평소 유대관계에 따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중 최악은 위력 관계로 인한 김 사원의 수동적인 모습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하고 선을 넘어버리는 경우다.

우리 중 누구도 사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거기에 권력으로 인해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둔감해지게 되면 더욱더 관계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이 되기 쉽다. 성폭력과 권력으로 인한 문제 행동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베를루스코니처럼 막강한 악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취약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권력에 의해 증폭될 때 타인에게 폭력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권력은 사회적 유대관계의 핵심”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권력관계 속에서 얽혀 살아간다. 그러므로 조직적으로 슈퍼스타들이, 그리고 우리가 권력으로 인해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스스로는 정확하게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견제하고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정기적으로 자신이 권력과 관련해 문제 행동을 보이고 있지 않은지 객관적인 외부의 평가 혹은 동료, 상사, 부하직원의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필요가 있다. 비단 조직의 상층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작은 영향력이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력과 관련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러한 권력이 나 위주로, 상대에게 폭력적으로 발휘되지 않도록 하는 정기적인 체크나 제도적인 보완책이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권력을 선한 영향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권력 인지(power awareness)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권력이 가지는 속성과 그로 인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부정적 영향력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위계적 조직에서 리더가 갖는 권한이 어떻게 타인에게 폭력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아무 뜻 없이 한 말이라거나, 상대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는 대답은 이미 너무 많은 갑질의 가해자들로부터 우리가 익히 들어온 변명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영향받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은 조직 전체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 알 수 있도록 둔화된 우뇌 전두엽을 다시 활발하게 만드는 교육과 코칭, 피드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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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슈퍼스타는 해롭다

많은 조직에서는 조직을 이끄는 능력자나 권위자를 대우해준다. 고성과자에게 좋은 환경과 혜택을 제공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고성과자가 조직 내에서 서슴지 않은 차별적, 폭력적 행위를 벌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세상의 규율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이 이와 같은 슈퍼스타들의 행동을 묵인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상징성과 역량이 궁극적으론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하고 성장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란 단순 계산에서다.

하지만 비뚤어진 슈퍼스타는 결국 조직을 와해시키고,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존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증명되고 있다. 2015년 마이클 하우즈먼과 딜런 마니너가 작성한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워크페이퍼 ‘해로운 동료(Toxic Worker)’에 따르면 조직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고성과자들은 자신의 성과를 감안하더라도 조직에 마이너스 효과를 낸다. 그렇기에 고성과자들의 실력을 별도로 보기보다는 이들이 미치는 악영향과 생산성을 함께 고려해 득과 실을 따져야 한다고 조언한다.1

또한 모든 중독은 애착 장애의 한 변형임을 기억하자. 건전한 애착 관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건강한 유대 관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건강한 인식은 우리를 공허한 중독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리더로서 힘을 과시하고 싶은가(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힘을 보여주려 하는가), 일을 통해 나의 업적을 통해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싶은가(그래서 오늘도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나를 일로 가득 채우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젊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주변 이성의 반응을 통해 계속 확인하고 싶은가(그래서 나보다 약자인 그들에게 성적으로 접촉하려 하는가). 이런 욕구는 내면의 결핍을 외부의 대상으로 채우고자 하는 중독 증상이다.

슈퍼스타이건, 아니면 작은 권력 체계의 승자이건 우리는 모두 현재의 애착관계와 자아감을 건강하고 원활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 결핍감은 우리로 하여금 권력에 취하고 하고, 타인에게 무감각하게 하며, 스스로를 더 큰 자극을 찾는 중독 속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배우자, 가족,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유대 관계를 잘 유지하고 내면의 결핍을 외부에서 대체재를 찾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한 초법적 존재인 불멸의 존재가 아닌 한계를 수용하고 일반적 규칙 아래 살아야 하는 유한한 존재로 성숙하는 것, 그것이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전하게 지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경민 마인드루트 대표 kmlee@mindroute.co.kr
필자는 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조직 및 리더십 개발 컨설턴트다.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Bethesda Mindfulness Center의 ‘Mindfulness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용인병원 진료과장과 서울시 정신보건센터 메디컬 디렉터를 역임한 후 기업 조직 건강 진단 및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 임원 코칭과 조직문화 진단, 조직 내 갈등 관리 및 소통 등 조직 내 상존하는 다양한 문제를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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