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Interview: 엘리자베스 티펫 오리건대 교수

“사례 늘어놓고 법적 문제 설명하기보다
성 평등 수호자 키우는 데 교육 초점을”

306호 (2020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성희롱 예방 교육의 목적은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이해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의무 교육으로 바뀐 지 10년이 지났지만 많은 이가 교육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공유하며 폭력적 상황을 끝내려는 미투(MeToo)운동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희롱 예방 교육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선 법적인 책임을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 내용에서 벗어나야 한다. 리더들과 중간관리자들이 적극적 성 평등 수호자가 될 수 있는 교육도 중요하다. 기업의 조직문화와 업무 형태를 고려한 맞춤형 강의 개발을 위한 강사와 기업의 담당자 간의 상호 노력도 필요하다.



1년에 한 번, 한 시간. 대부분 직장인은 의무적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거나 대규모 강당에 모여야 한다. 정부가 법정 의무교육1 으로 지정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듣기 위해서다. 고위 임원도, 현장 관리자도, 사무직도, 영업사원도 예외가 없다. 회사 내 인사 관리 조직이 준비한 1시간짜리 교육을 일괄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회사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적, 폭력적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고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이 서로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하지 못할 조직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교육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회사가 강제로 들으라고 하니 바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교육, 매번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돼 3번 정도 들으면 교육을 수강하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는 고리타분한 내용쯤으로 치부한다. 게다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설정하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만 쭉 나열하는 등의 교육에 불쾌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성 직원들이라고 다를까. 여러 교육 프로그램에서 여성이 대체로 성폭력 피해자로 그려지는 것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이 효과를 나타내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 교육의 실효성 논란은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폭력 예방 교육(Harassment Training)2 을 실시한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법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티펫 오리건대 법학 교수는 2015년 미투 사건 발생 이후, 미국 기업들이 오랜 기간 폭력 예방 교육을 했는데 왜 큰 효과가 없는지 의구심을 품고 30년간의 교육 실태를 조사했다. DBR는 그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성희롱 예방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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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티펫 오리건대 로스쿨 교수는 고용, 업무 환경 등 직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과 폭력 등에 대해 연구한다. 가장 최근 연구 주제는 미투(MeToo)운동의 법적인 함의였다. 미투운동이 한창 벌어진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기업 내에서 이뤄졌던 ‘harassment training(괴롭힘 방지 교육)’의 내용을 분석하기도 했다. 티펫 교수는 단순히 여성의 권리와 차별이라는 주제에 입각하기보다 업무 환경 내에서 직원들이 겪는 부당함이나 차별 등에 초점을 맞춰 실질적인 차별을 인지하고 이를 조직 내에서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로스쿨 교재인 『고용차별과 고용법』(5판)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2006년 하버드 로스쿨 졸업 후 윌슨 손시니 굿리치 앤드 로사티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관련 교육들이 실제로 효과가 없는지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미국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가 2016년 내놓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진행된 미국 성폭력 예방 교육은 ‘효과가 있다고 보기도,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사실상 30년간의 교육의 실질적으로 직장 내 폭력 상황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16년까지 74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분석해 데이터로 받아본 결과도 크게 다르진 않다.3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도덕적으로 폭력적 언행을 하는 것이 나쁘기 때문에 근절해야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고 회사가 경영상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두 번째, 대부분 폭력 예방 교육은 직원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교육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련 법이 복잡하고 범위가 넓기 때문에 아무리 사례로 설명을 하더라도 실제로 허용 가능한 행위가 무엇인지, 해선 안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잠재적 피해자’와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성 평등을 제고해 직장 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요원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의 효과가 기대보다 낮다고 해서 교육 자체가 필요 없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꼭 말하고 싶다. 사실, 교육은 조직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보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투 운동 이후 교육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나이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나이키의 한 남성 상급 직원이 여성 직원에게 ‘멍청한 X(stupid bitch)’라고 욕했다. 다른 직원은 동료 직원에게 보내는 e메일에 다른 여성 동료 직원 가슴을 품평했다. 직원 회식 때 스트립쇼를 하는 바를 후보지로 올리는 일도 벌어졌다. 여성 직원들은 수차례 인사팀에 부당함과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진 않았다. 이 일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서 나이키는 큰 후폭풍을 맞았다. 6명의 고위급 임원이 사임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이상한 일이다. 나이키처럼 글로벌 기업에, 여성의 스포츠 정신과 능력을 장려하는 브랜드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성희롱을 판단하기 애매모호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폭력, 성추행 등 물리적인 피해가 있을 경우 기업에선 잘못을 명백하게 짚어낼 수 있다. 법적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법적 기준이 명시되지 않아 실제 상황이 성차별적, 폭력적 행위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저 ‘한마디 말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권한이 있음에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나이키 인사관리팀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투운동 이후 기업 내에서 성희롱적 발언이나 태도에 문제 제기를 하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절대적인 피해자 수가 늘어나서가 아니다. 자신이 받은 피해를 인지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기 때문이다.4 더 이상 여성들은 불편한 농담이나 발언을 참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기업들이 보다 세심한 가이드라인과 규율을 바탕으로 회사 내부 직원들을 교육하고 이끌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회사에서 직원들의 행동이나 언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에 대해 직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미투운동의 주를 이루는 ‘무관용 원칙’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일면 타당하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투운동 이후 남성들이 직장에서 여성을 대하는 게 더 어렵다고 느꼈다. 절충점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의 발언이나 주장에 근거하기보다 회사가 규율과 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는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행동이 수용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 행동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사내에서 정하고 교육 프로그램(compliance training)을 통해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늘 입은 재킷이 참 예쁘네요(멋지네요)”라는 말은 성희롱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춰 칭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 직원이든, 남성 직원이든 출근 시간에 늦지 말고, 일을 제때 끝내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위해 필수적인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성과를 내는 직원이 특정 성향이나 특성 때문에 달리 대우를 받는 것은 안 된다는 점도 함께 알려야 한다. 어렵지만, 여러 가지 일반적인 상황과 기준을 명시해 직원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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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일반적인 교육 프로그램 하나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로 보인다.

그렇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중간관리자급 직원들이다. 관련 교육을 수년간 진행한 한 강사는 “나에게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자원이 제공된다면 95%를 중간관리자 교육에 쓸 것이다”고 말할 정도다. 교육을 통해 중간관리자들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어떤 강도의 개입이 필요한지(인사팀에 즉시 보고할지, 어떤 형식으로 보고할지 등) 등의 기준을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중간 관리자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했을 때 조직 내에서 성차별적 행동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경우를 종종 봤다. 중간관리자들이 성차별적 행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되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이 방침을 따르게 돼 있다. 또한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사안에 대해선 직접 개입해 일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CEO와 같은 고위급 리더들은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위급 임원들이 성희롱/성폭력 교육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제대로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한 시간짜리 영상 교육 프로그램을 직원들이 시청하기 전에 CEO가 관련 프로그램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고 가정해보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조직 내 성 평등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고위급 임원들이나 CEO들이 조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적절한 발언과 생각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오히려 고위급 임원이 성 평등 문화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조직문화를 오랜 기간 경험했기 때문에 인식을 바꾸기 힘들지 않을까?

중요한 포인트다. 성 평등 문화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을 달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계획행동이론(theory of planned behavior)에 따르면 개인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여지가 달라진다. 그 단계는 무관심-관심-준비-실천-유지로 구분할 수 있다. 만약 직원이 성 평등 문화에 무관심한 단계에 해당하는 경우 온라인으로 주입식 교육을 해봤자 적개심만 커지고 역효과만 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데 그룹 토론과 같은 방법이 적절하다. 이때 성 평등 문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고위급 임원이나 CEO급을 강연자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의 가치와 목표와 성 평등 문화가 어떻게 연계되고 어떻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참여자들의 생각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관심 단계에 있던 직원들은 관심의 단계, 그리고 태도를 바꿀 준비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 밖에도 교육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무엇이 있을까?

산업별, 직무별 교육 프로그램을 조금씩 달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 업무 환경의 특성에 따라 차별적 요소도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계법인, 법무법인처럼 동질 집단, 남성 비율이 높은 환경에서는 소수의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가 더 어렵고, 환경 그 자체가 소수 집단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권력의 차이가 현격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공장 생산 라인 직원은 공장장의 막강한 파워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공장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직원들은 보복을 두려워할 가능성이 크다. 고객 만족이 성과 평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직무의 경우, 직원들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참아내는 경우가 많다. 홀로 일하는 직무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 호텔 청소를 맡는 하우스키퍼, 밤샘 근무를 하는 수리공 등도 자주 성차별, 성폭력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업직과 같이 업무상 술을 자주 마셔야 하는 조직에서는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위험에 자주 노출된다. 대형 마트와 같이 직원들이 흩어져 있어서 감독관이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경우, 차별적, 폭력적 상황이 발생해도 모르고 지나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런 위험을 모두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 잠재된 위험 요소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 자원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교육을 할 때도 조직의 차별적 요소와 환경을 정확히 파악해 ‘금지해야 할 행동’을 제시하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바이스탠더(By Stander, 제3자 개입) 교육’ 프로그램이다. 직원들에게 실제 폭력적/차별적 상황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교육한다. 직원 스스로가 권한을 가지고 직장 내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교육 프로그램을 그린닷(Green Dot)이라고 부르는데 세 가지 행동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는 방식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스스로 개입하거나, 피해자를 지지하고 지원하거나, 인사팀(관리감독 조직)에 바로 보고하는 것이다. 이 교육은 원래 대학생들 대상으로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 효과가 어느 정도 증명된 이후에는 직장으로 옮겨와 실험해보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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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바이스탠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앵커리지시가 대표적인 예다. 앵커리지시는 1) 폭력적 행동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감지하고 2)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개입하는 그린닷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어떤 수준의 행동을 위험 상황이라고 볼지 지역주민, 상인들이 함께 정했다. 술집을 포함한 음식점주들은 언제 자신들의 직원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공유했다. 그 결과, 폭력적 상황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안내판과 메시지가 곳곳에 붙여졌다. 식당과 음식점주들이 직접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앵커리지시에는 폭력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런데 직원들이 관련 상황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조직에서 그런 행동을 장려하는 분위기나 제도가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맞다. 아무리 직원들이 상황에 개입하려고 해도 조직에서 이런 행동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독려하지 않으면 긍정적 효과를 보기 어렵다. 실제 직원이 관련 사항을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조직이 이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보고 체계, 사후 조치 매뉴얼 등이 존재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당장 미투운동 이후에도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감추거나 뒤늦게 터뜨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실제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직장에서의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온라인상의 공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피해 호소나 문제 제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내부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사실은 차별적/폭력적 상황에 대해 조직원의 문제 제기가 많아지는 것이 회사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함께 처리해 나가야 조직문화는 조금씩 개선될 수 있다. 직원들의 문제 제기를 골칫덩이라고 생각하기보다 회사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DBR mini box I : Interview : 최윤정 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연구센터장

“사내 성 평등 교육, 인사팀-교육팀 역할 절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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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연구센터장은 신한대 겸임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아동돌봄분과위원을 맡고 있다.

미국 등 서구국가와 다른 조직 문화 및 질서를 가진 국내에서 기업 내 성폭력 예방 교육은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최윤정 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연구센터장에게 관련 교육이 바람직하게 이뤄지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이규열 인턴 기자(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가 참여했습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 실효성 논란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교육을 했을 때 조직 내에서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교육 자체가 쉽지 않다. 교육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피교육자들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모두 느껴야 한다. 그런데 성희롱 예방 교육은 대체로 비자발적으로 이뤄진다.

또 다른 문제는 교육의 흥미성과 유용성이다. 교육을 들었을 때 직원들이 스스로 유익하다고 느끼거나 업무를 할 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의무교육이라도 적극적으로 들을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교육을 개선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 교육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교육이라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직원들이 성 평등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효과나 목표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교육 내용이 성희롱 사례를 나열하는 것에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 만한 성희롱 사례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주로 교육이 전개되다 보니 피해자로 여성, 가해자로 남성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교육을 받는 남성들이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라고 느끼고 직장 내에서 여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더욱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 교육을 왜 하게 됐는지에 대한 뿌리를 찾지 않고 진지한 고찰 없이 처방전만 알려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수학 문제도 원리를 제대로 이해해야 여러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성폭력 예방 교육도 마찬가지다. 성차별, 성폭력은 사회문화적인 성별 고정관념, 사회문화적 경험 등이 축적돼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 없이 ‘이런 행동, 이런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누구나 순순히 받아들이긴 어렵다.

예를 들어, 교육 시간에 얼평(얼굴 평가)이나 몸평(몸매 평가)를 하면 안 된다’라고 교육한다고 가정해보자. 강사가 몸에 대한 암묵적인 관념들이 잘못된 것이고,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등 그 이유를 함께 설명하기보다 ‘그렇게 말하면 젊은 친구들이 당신을 비판할 것이다’ ‘나쁜 행동이다’라고 단순화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납득이 가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고, 그런 행동을 하면 내 커리어에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면 누구라도 교육 내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강사가 각 기업에 맞는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이 지적이 되고 있는 이슈다. i 이 시장에서는 강사가 핵심 플레이어다. 그런데 강사들이 제대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는 게 문제다. 성 평등 관련 교육은 표준 프로그램이 존재하긴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지기에 강의의 질은 강사의 역량과 자질에 절대적으로 달려 있다.

문제는 강사가 만나는 기업 현장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언론사가 될 수도 있고, 제조기업이 될 수도 있고, IT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강사 혼자서 이 모든 사업장의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그 회사만의 상황을 간파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어느 사업장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통상적인 매뉴얼을 소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산업별 전문 교육 강사가 있거나 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역량이 뛰어난 강사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부분 강사가 프리랜서인데다가 아직 시장이 작아 강사들이 차별성이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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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노력들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일수록 기업 인사관리팀이나 교육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강사가 회사에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 내용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조직 내에서 성 평등 이슈와 관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볼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이 매년 축적되면 조직에 꼭 필요한 맞춤형 성 평등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교육을 강사의 역량에 관계없이 회사가 주도하는 양질의 교육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성희롱 예방 교육은 강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 담당자들도 이 교육의 중요성과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성과를 분명히 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교육 프로그램의 목적이 명확해질 것이고 메시지도 선명해질 것이다. 직원들도 자신이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팁을 회사가 제공해주는데 열심히 듣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직장 내 성 평등 문제는 더 이상 소수자를 위한 기업의 관대한 조치가 아니다. 성희롱 사건 하나가 기업을 위태롭게 하기도 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기업마다 여성 인력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여성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빠르게 조성해나가는 것이 조직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기업 내에 성 평등 교육, 문화 조성 등을 전담하는 직원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9호 Smart Hiring 2020년 1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