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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중종-김구

“술은 죄가 없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

김준태 | 300호 (2020년 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술은 오늘날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사회적 문제의 주범으로 죄악시됐다. 중종이 과거시험에 어떻게 하면 술의 폐단을 없앨 수 있겠냐는 문제를 낼 정도였다. 이에 대해 당대의 서예가 김구는 애꿎은 술을 탓하지 말고 과도한 음주를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문제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곱씹어볼 만하다.


오늘날 술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술에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지른 후, 심신미약을 내세워 ‘주취감형’을 받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면서 이를 폐지하라는 여론도 비등하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에는 ‘윤창호법’1 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 주폭 등도 사회병리의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옛날에도 다를 게 없었나 보다. 1513년(중종 8년) 별시(別試)의 ‘책문(策問)’을 보자. “술의 폐해는 오래되었다. 우임금은 향기로운 술을 미워했고2 무왕은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으며3 위무공은 술 때문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는 시를 썼다.4

이토록 오래전부터 술의 폐해를 염려해왔으면서도 그 뿌리를 뽑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 우리 조선의 여러 훌륭한 선왕께서도 대대로 술을 경계하셨다. 세종대왕께서는 특별히 글을 지어 조정과 민간을 깨우치신 바 있다.5 한데 오늘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폐단은 더욱 심해졌으니, 술에 빠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술에 중독돼 품위를 망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중종은 오래전 상고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성군(聖君)이 술의 폐해를 경고하고 술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 왜 사람들은 여전히 술에 중독되고 술에 취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사실,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은 뻔하다. 술을 절제하라는 답 외에는 나올 것이 없다. 다음에서 살펴볼 당대 유명한 서예가였던 김구(金絿, 1488∼1534)6 가 내놓은 ‘대책(對策)’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 문제의식만큼은 오늘날에도 곱씹어볼 만하다.

김구는 술이 윤리를 어지럽히고 인간의 성품을 깍아내린다고 봤다. 그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도 술을 마시면 어리석어지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면 사리를 판단하지 못하며, 강한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면 나약해집니다. 술은 마음을 공격하는 문이라 하겠습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술을 없애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원래 유교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예법이 있을 정도로 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며 잔치를 열 때도 술이 꼭 필요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을 주며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좋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술을 지나치게 탐닉하는 데서 발생한다. 술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술의 부림을 받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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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태akademie@skku.edu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왕의 공부』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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