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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壯에게 배우는 경영

말이 많으면 궁색해지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안병민 | 293호 (2020년 3월 Issue 2)
세상만사, 변화가 상수(常數)입니다. 열흘 붉은 꽃 없듯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상황과 맥락이 바뀌면 정답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세상 변화를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면 될 일입니다. 그게 ‘변화에 맞춤하는 새로운 정답을 찾아가는’, 혁신으로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변화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의 이론으로 ‘오늘’을 평가하고 ‘내일’을 재단합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입니다. 음(陰)과 양(陽), 유(有)와 무(無), 공(空)과 색(色)을 오가며 순환하는 세상의 유연함에 역행하는 일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고루한 잣대 때문입니다. 세상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죽은 잣대를 들이대니 들어맞질 않습니다.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는, 지식과 경험의 완고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리더(leader)’는 앞서서 이끄는 사람. 세간의 정의입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리더가 자꾸 앞장서서 이끌려고 합니다. 하지만 ‘작위(作爲)’입니다. 작위는 의식적으로 행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의식이 개입되니 ‘나(我)’가 들어갑니다. ‘나’는 주관적입니다. 객관적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리더 개인의 가치와 경험이 리더십의 표준으로 올라섭니다. ‘맞고 틀림’과 ‘낫고 못함’의 기준이 모두 리더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엇박자가 납니다. 무심(無心)히 변화하는 세상과 들어맞질 않는 겁니다.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 ‘성인불인(聖人不仁)’이라 했습니다. 천지와 성인이 인자하지 않다? 요령부득의 이 문구,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노자의 눈에는 ‘인(仁)’ 역시 또 하나의 작위적 가치였음을. 요컨대, 작위에 의한 주관적 시선을 탈피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작디작은 나의 기준을 내려놓고 크디큰 자연의 섭리에 눈을 뜨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편애 없이 불편부당하라는 일갈이었습니다.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라는 의미로 노자는 ‘천지불인’ ‘성인불인’이란 표현을 썼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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