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중 야구부의 기적

학생 30명 학교에 우승 선물한 야구부, 자신감과 의지로 학교 살렸다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폐교 직전까지 간 시골 학교 원동중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폐교를 막을 방책으로 만든 야구부가 창단 3년이 채 못 돼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연’ ‘기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원동중은 이듬해에도 다시 한번 전국대회를 재패하며 실력을 입증해보였다. 명문 야구팀에 들어가지 못해 모인 학생들이 전국 최고 실력을 갖춘 선수들로 성장했다. 선수들의 열정, 격려하는 조직문화, 차별화된 원칙 등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350㎞를 넘게 달렸다. 높고 빽빽한 건물 대신 평평한 논과 밭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광경이 계속됐다. 울퉁불퉁한 작은 길을 몇 차례나 지났을까. 서서히 학교 운동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부터 내린 비 때문에 질퍽거리는 운동장 구석에는 태풍으로 무너진 비닐하우스가 초췌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대통령기 전국 중학 야구대회에서 2연패를 차지한 경남 양산시원동중의 첫인상이었다.

 

 

원동중은 야구계에서 유명한 학교다. 전교생 50명의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한 지 3년도 안 돼전국대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승 때는깜짝 우연’ ‘뜻밖의 행운이라는 평가절하도 있었지만 올해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실력을 입증해보였다. 아무도 주시하지 않던 신생 야구부의 놀라운 성과는 학생들을 변화시켰고,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했고,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원동중 이야기를꼴찌들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폐교 위기에 몰린 학교

2010년 원동중의 전체 학생 수는 31명이었다. 다음 해 3학년들이 졸업하면 신입생을 받아도 25. 문제는 2012년이었다. 졸업생을 배출하면 학생 수가 19명으로 줄어드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원동중은 폐교절차를 밟아야 한다. 도교육청의 통폐합안에 따르면 전교생 60명 이하 학교는 통폐합 유도, 20명 이하는 즉각적인 통폐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양산야구협회에서 야구부 창단을 제안했다. 2010년 전국 리틀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양산시에서는 야구 인재 육성을 위해 골몰했는데 양산시의 다른 중학교가 모두 거부해 마지막으로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원동중에도 그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다른 학교에서는운동부가 생기면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이 많아 야구부 창단이 어려웠다. 하지만 원동중은 달랐다. 최윤현 체육부장 교사는 야구부원 신규 유입을 통해 학교를 살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양산시야구협회로부터 야구부 창단 제의를 들었을 때 온 몸이 전기를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먼저 학부모를 대상으로 야구부 창단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다행스럽게도 야구부 창단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 98%가 나왔다.

 

하지만 폐교 위기에 몰릴 정도로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우려에 맞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 시교육청과 도교육청은 허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였다. 야구부를 운영하려면 계속해서 예산이 들어가는데 원동중처럼 작은 학교에서 운동부를 지속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주만 교장과 최 교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계기관을 찾아가 담당자를 설득했다. 거절당해도 계속해서 교육청의 문을 두드렸다. 원동중이 왜 야구부를 창단해야 하는지, 선수모집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운영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매일 머리를 싸매고 방법을 찾았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에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과 양산시야구협회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원동중의 사정을 안 허 해설위원과 양산시야구협회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지역 주민도 성원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언제부턴가 고요해진 마을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역 주민과 학교, 학부모가 힘을 합해 관계기관을 설득했고 결국 원동중은 야구부 창단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2010 31명이던 학생 수는 야구부 창단으로 2011 39명이 됐다. 2012년에는 46, 지난해에는 60명이었다. 원래대로라면 20명 미만 학교로 폐교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학생 수가 늘면서 원동중은 폐교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하던 동네에도 활기가 돌았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부 창단은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축제였다. 그동안 젊은이들이 떠나고 고령화되던 동네에 어린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에도 활기가 돌았다.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들은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며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축하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원동중 출신이었기에 애정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7 28일 부산 서구 구덕야구장에서 열린 제 44회 대통령기 전국 중학야구대회에서 원동중이 우승을 차지했다. 문양수 교장(가운데)과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라

원동중은 2010년 말 신민기 전 한화 이글스 선수를 감독으로 앉히고 본격적인 팀 구성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선수를 모집하는 일이었다. 신 감독은 양산뿐만 아니라 부산, 울산, 대구 등 주변 지역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스카우트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선수를 데려오는 게 쉽지 않았다. 초등학교 에이스 선수들에게 원동중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학생들은 이미 전통 있는 유명 중학교에 스카우트된 상태였고, 간혹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에이스 선수들도 아무 연고가 없는 작은 시골 학교에 오기를 거부했다. 신 감독은 야구는 하고 싶지만 아직 고등학교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이들을 주목했고 어렵게 13명의 선수를 모았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지만 주전으로 뛰지 못한 후보 선수들, 중학 명문 야구팀 입단 테스트에서 떨어진 친구들이 다수였다.

 

13명의 야구부원이 전학을 오면서 2011 321, 원동중 야구부가 공식적으로 창단했다. 이튿날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첫 훈련을 보고 최 교사는 충격을 받았다. 창단 후 첫 훈련이라는 점을 고려했지만 선수들의 실력은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모인 선수들의 야구 스타일은 각각 달랐고 호흡이 전혀 맞지 않았다.

 

신 감독은 기본기를 닦는 것이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창단 후 6개월 동안은 기본 훈련만 했다. 근력 훈련, 달리기, 공 던지기, 타격 등 4가지 훈련에 집중했다. 매일같이 이어진 지루한 기본기 훈련에 학생들은 지쳐갔다. 초등학교 때 이미 배운 내용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성실하던 학생들이 일탈하기 시작했다.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잡담을 하거나 화장실을 간다며 수시로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은 연습시간에 늦고 아예 몇 시간씩 연습에 빠지기도 했다. 학생들의 불만 여론이 높아지자 학부모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다른 학교 야구부에서는 진도가 이만큼 더 나갔다” “우리 아이들은 기본기가 충실한데 다른 선수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같은 훈련이 계속되자 급기야 학생들이 야구부를 탈퇴하기 시작했다.

 

훈련 분위기가 흐려지고 다른 학생들도 힘들어했지만 신 감독은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기본을 제대로 닦지 않고는 어려운 기술을 소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팀을 구성했기 때문에 야구부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상황이었지만 기본 훈련에 지쳐 떠나는 선수는 잡지 않았다. 대신 학생들에게기본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기본을 닦아라라며 오히려 기본기 교육을 더 강조했다.

 

성실함은 최고의 미덕

원동중이 야구부 창단 초기에 세운 또 다른 원칙은공부하는 야구선수를 키운다는 것이었다. 이는 운동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일반 야구팀과는 완전히 다른 규칙이었다. 보통 학생 선수들은 프로가 되기 위해 온전히 운동에만 몰두한다. 본인 스스로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경우도 많고 학부모들도 경쟁력 있는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동중은 두 가지 이유에서 공부를 강조했다.

 

첫째는 학생 선수들이 나중에 운동을 그만뒀을 때를 생각하면 공부에 대한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둘째는 공부를 통해 선수들의 책임감을 높이고 인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 학부모들이공부시킬 거였으면 다른 학교에 보냈을 것이라며 훈련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했지만 원동중은 야구부원이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부모들을 설득했다. 선수들에게는공부를 해야스마트한 게임을 할 수 있다’”야구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하라”고 말했다.

 

공부하는 야구선수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규칙도 마련했다. 우선 야구부원들이 매 정기고사에서 교과 평균의 50% 미만이 세 과목 이상인 경우 방과 후 보충수업을 받도록 했다. 또 야구부원의 수업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교사가 바로 감독에게 알리도록 했다. 경기에 자주 출전하고 훈련을 제대로 받고 싶으면 수업시간에 늦거나 졸아서는 안 된다.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기 힘든 구조를 만든 셈이다. 심지어 선수들의 수업태도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신 감독이 자습시간에 들어가 현장을 관찰하기까지 했다. 시골의 신생 야구부가 야구만 열심히 해도 경기에서 이길까 말까인데 처음 이런 정책을 시행한다고 했을 때 큰 반발이 일었다. 이러다 경기에서 지면공부 때문에 훈련을 열심히 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동중 야구부의 이런 정책은 선수들이 학생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만들었고, 또 연습에서도 더욱 성실한 태도를 갖도록 유도했다. 교사뿐만 아니라 감독이 가장 강조하는 미덕도 성실함과 인성 같은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이상훈 현 감독은현재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최고란 보장은 없다. 성실함과 인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수업시간에서든, 훈련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태도였다. 어디에서든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면 벌을 줬다. 어떤 때는 특별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때는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는 식으로 제재를 했다. 이 감독이 주장으로 윤진혁 군을 뽑은 것도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성실한 선수가 주장이 되거나 중요 경기에 출전하는 등 성실함이 보상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선수들이 성실한 태도가 실질적인 보상을 받는 현장을 체험하게 했다. 이런 관행이 이어지자 야구부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아서 연습장을 청소했고, 동료의 빨래를 대신 해주기도 했다. 단체 훈련을 다 마친 후에는 자발적으로 남아서 개인 훈련을 이어갔다. 선수들이 전날 경기장을 깨끗이 치워놓고 정리하기 때문에 연습이 지체되는 일은 없었고 선수들 간 괜한 기싸움 때문에 팀 분위기가 흐려지는 일도 없었다. 성실성과 인성을 강조한 교육을 하다 보니 야구부에서 선수들이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학교 관계자가 설명했다. 대신 자발적인 희생과 성실함이 자연스레 조직 내부에 스며들었다.

 

2011 3 21, 원동중 야구부가 공식 창단했다.

동네 주민들이 이를 기념해 축하행사를 하고 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라

원동중은 기본기 훈련과 인성 교육을 강조함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원동중 교사들은 시골 학교의 신생 야구부 소속으로 큰 대회에 나가면 선수들이 기가 죽을까봐 염려했다.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전략이 뛰어나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감독은 늘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수들이 경기 전부터질 것 같다는 말을 하면 호되게 야단쳤다. 경기에서 실수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가르쳤다.

 

연습 경기나 공식 경기에서 실수해도 선수를 면박주거나 혼내지 않았다. 이 감독은경기에서 이긴 것은 선수들이 잘했기 때문이지만 진 것은 선수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다였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대응하면 오히려 팀 전체의 사기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육부장인 최 교사도 이 부분을 가장 염려했다. 그래서 공식 경기가 끝나면 실수를 한 선수 한 명을 불러내 문화상품권을 주며 격려했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다독였다.

 

교사들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도 서로를 비방하지 않았다. 이런 문화는 원동중의 최대 약점인 리스크 관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동중의 약점 중 하나는 한 번 실수가 생기면 팀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진다는 것이었는데 실수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됨으로써 선수들은 실수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됐다.

 

또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해 애썼다. 사실 선수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 후보였다. 주전이나 핵심 멤버에서 제외된 경험이 있다. 선수들은감독님이 눈길도 안 주고 연습도 같이 잘 안 시켜줘서 야구하기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그냥 볼보이만 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이유로 야구 경기에 참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원동중은 모든 선수들에게 끝까지 정성을 기울였다. 정성을 다해 맨투맨으로 훈련을 시켰다. 어떤 날은 하루 10시간 넘게 개인교습을 시키기도 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포지션으로 바꿔 기회를 줬다. 외야수였던 학 학생은 투수로 포지션을 바꾼 후 발군의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기본 실력은 갖춘 만큼 제대로 된 맞춤형 교육만 이뤄진다면 실력 향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입증된 것이다. 당장에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기다리자 초반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던 아이들이 강심장으로 변했다. 과거에는 훈련에서 배제되거나 주류선수에서 탈락하는 경험을 했지만 원동중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간다는 것이 원동중 야구부의 가치였다. 주전으로 발탁돼 뛸 기회가 많아지면서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한 번 경쟁에서 밀리면 지레 포기했던 선수들도 이제는 악착같이 훈련을 견뎌냈다. 감독은노력하면 한 명의 선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보냈고 아이들은열심히만 하면 나에게도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체감했다. 팀 전체에 오기와 자신감이 생겨나면서 개인 역량뿐 아니라 팀 전체의 분위기와 조화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최 교사는처음에는 자신감이 없고 주눅이 든 선수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했고 경기에서도 거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야구부 창단식 모습

 

의지를 보여주다

하루 10시간씩 땀을 흘리며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창단 초기 성적표는 형편없었다. 창단 후 처음 열린 리틀야구팀과의 경기에서는 콜드게임패를 당할 정도였다. 중학생 선수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작은 초등학교 선수들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후로도 패배는 줄을 이었다. 그래도 원동중은 기죽지 않았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사라지려고 하면 어김없이 원동중 교사들이 나서 용기를 북돋아줬다. 경기 수가 늘어나면서 콜드게임패를 당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었다. 접전 끝에 승리하는 일도 생겼다. 그런 날은 원동중의 경사였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전 학생이 교가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까지도 여전히 공식 경기에서 이렇다 할 승리는 없었다.

 

2013년이 되자 예상보다 빨리 대회 참가 결정이 내려졌다. 원동중 야구부는 1월 열리는 경주시장기 전국 야구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전국에서 8개 팀이 참가해 리그제로 운영되는 대회였다. 공식전 첫 승리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첫 경기는 명문 대구중학교. 초반 리드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149로 역전패를 당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잘 싸웠다고 위로했지만 선수들은 낙담했다. 한 시간 후 선수들이 감독과 최 교사를 찾아왔다. 삭발을 시켜달라고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수들이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 최 교사는 만류했지만 감독은 허락했다. 아이들은 그날 시내에 가서 전부 머리카락을 자르고 돌아왔다. ‘다음 경기에서는 무조건 이긴다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

 

다음 날 서울 영동중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초반부터 상대팀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결과는 133. 13점이 원동중의 점수였다. 전날 게임의 패배가 무색하게 콜드게임으로 경기를 이겼다. 이후 원동중은 승승장구했다. 남은 5경기도 모두 이기며 61패로 경주시장기 전국 야구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원동중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다. 선수들은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우리가 해냈다라는 말을 목을 터져라 외쳤다.

 

 

전국대회를 향한 도전

경주시장기 대회에서 우승을 했지만 이는 8개 팀만 참가한 것으로 전국대회 우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원동중은 전국대회에서 이기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감독은이길 수 있다는 것에서원동중은 강하다라는 말로 자신감을 불어넣는 멘트를 바꿔 선수들을 응원했다. 반면 자만심은 경계했다. 한 번의 우승으로 실력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기에 더욱 최선을 다하라고 다독였다. 이미 한 번 우승했지만 연습시간은 오히려 더 늘었다. 타자는 하루에 300번씩 공을 치고, 투수는 하루에 300개씩 공을 던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이 떨렸지만 선수들은 끝까지 훈련을 마쳤다. 시내의 한 빌라 방 3칸을 빌려 별도의 합숙훈련을 하기도 했다. 기본기 훈련으로 개인의 실력들이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되자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전국대회 4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갖고 2013 7월 대통령기 전국 중학 야구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는 전국에서 30개가 넘는 팀이 참가했다. 첫 상대는 포항제철중학교. 그해 5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팀이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을까 염려된 감독은 경기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부터우리는 지지 않는다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접전 끝에 32로 원동중이 1점 차 승리를 거뒀다. 다음 경기부터는 제법 수월했다. 차근차근 상대팀을 이겨가며 84, 대망의 결승전을 맞이했다. 상대는 부산 개성중학교로 이전 연습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팀이었다. 부산에서 열리는 경기로 응원석이 개성중 응원단으로 가득 찼다. 원동중의 승리를 점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 원동중의 주전 투수와 주전 수비수는 개성중에 다니다 전학 온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었다. 감독은 두 명을 따로 불러 위로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원동중이 1회 먼저 점수를 냈다. 하지만 전통의 강호 개성중도 만만치 않았다. 집요하게 따라왔고 점수가 뒤집히기도 했다. 상대팀에서는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이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지만 원동중 선수들은 언제부터인가 덕아웃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없었다. 모두들 서서 주먹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7회 말 동점 상황. 2 1루 상황에서 원동중 왕재웅 군이 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 2, 3루에 있던 모든 코치들도 홈 베이스 주변에 서서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왕 군이 홈 베이스를 밟았고 심판은 양 손을 가로로 그으며세이프표시를 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원동중이 전통강호인 개성중을 이건 것이다. 이날 경기에는 학부모뿐만 아니라 시의원, 헬스장 관장, 마을 이장, 주유소 주인, 미장원 원장 등 지역 주민이 여럿이 참가해 선수들을 응원했는데 이들도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명실상부 최강팀이 되다

원동중이 대통령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모두가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창단한 지 3년도 안 돼 우승을 차지한 학교가 어디인지 다들 궁금해 했다. 학교 규모를 확인하고는 더욱 놀라워했다. 시골의 작은 야구부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원동중은 이런 외부의 반응을 거꾸로 활용했다. 선수들에게 자만해서는 1등 자리를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초반에는 신생 야구팀이라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자만하지 않도록 선수들을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이 감독도 자만의 폐해를 누구보다 강조했다. LG트윈스 타자 출신인 감독은 프로 시절을 떠올리며실력이 좋다고 자만한 팀이나 선수들이 노력을 안 해서 부진한 성적을 내는 것을 많이 봤다야구를 오래도록 잘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지난해 우승팀이란 부담감을 안고 원동중은 올해 44회 대통령기 대회에도 참가했다. 준결승전에서 지난해 결승전 맞수였던 개성중을 만났고 이번에도 이기며 결승전에 올라갔다. 지난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개성중을 이겼는데 올해 다시 개성중을 이기면서 선수들은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결국 결승전에서 만난 성남 매송중학교와의 경기에서도 146으로 승리했다. 대회 2연패를 차지한 것이다. 지난해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했던 원동중이 명실상부 중학 야구 최강팀이 되는 순간이었다.

 

팀이 성과를 내자 고등학교 감독들이 서로 원동중 선수들을 데려가려는 상황이 연출됐다. 덕분에 야구부 3학년생의 진로도 일치감치 정해졌다. 현재 7명이 경남고, 대구고, 부경고 등 야구 명문고 진학이 확정됐다. 도시의 야구 명문 중에 입학하지 못해서 신생 야구팀으로 와야만 했던 이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본인이 원하던 야구 명문 팀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명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가운데는 원동중 2학년 선수를 벌써부터 찜해두고 스카우트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우승 멤버가 되고, 혹은 동료들이 우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다른 부원들은 더욱 분위기가 좋아졌다. 시골학교라서, 학생 수가 적어서 기죽는 일은 없다. 학생들은원동중에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야구를 하는 것은 더 신난다이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오히려 전국의 야구선수들이 원동중에 입단테스트를 먼저 제의하기도 한다. 주변 도시를 비롯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테스트를 받으러 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짧은 시간에 최강팀이 된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연습열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수업을 마치고 오후 4시가 되면 훈련을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9시까지는 전체 훈련, 11시까지는 자율적으로 개인 훈련을 갖는다. 중요한 경기를 앞둔 때에는 오전 5시부터 새벽 운동도 한다. 원동중 야구부 학생들은다른 경쟁자들도 열심히 하겠지만 우리가 제일 열심히 한다고 말할 수 있다며 연습량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다. 사실 놀고 싶어도 학교 주변에 별다른 오락시설이 없다. 학교 바로 아래 작은 슈퍼마켓 하나 외에는 편의점이나 PC, 오락실을 찾기 힘들다. 학 학생은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운동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편의시설이 별로 없다는 단점이 원동중 야구부원에게는 오히려 장점이다.

 

 

학부모의 신뢰도 큰 힘이 됐다. 그들은 감독의 선수 선발권이나 훈련 방침, 게임 운영 방식에 대해서 재량권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일선 도시 학교에서 흔히 있는 치맛바람도 없다. 감독은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팀을 운영했다. 이 감독은학교 생활부터 고등학교 진학까지 모두 내 일이라며학부모들이 완전히 감독을 신뢰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애정을 갖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수와 감독 관계도 돈독하다. 이 감독은 연습장이나 훈련장에서는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지만 평상시에는 선생님이자 선배로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의지하는 존재다. 선수들은 특별한 일이나 신상에 변화가 생기면 항상 감독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조언을 구한다. 감독에게 진로나 개인적인 상담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학생에게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지 물어보면감독님께서 제일 좋은 곳을 골라줄 것이라며감독님의 의견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야구와 기업 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다. 첫째, 개인마다 포지션이 있는체계가 있는 조직 스포츠. 이는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지닌 조직으로 구성된 기업과 유사하다. 둘째, 감독의 전략과 선수들의 수행 능력이 경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셋째, 야구는 과학적 방법과 통계에 근거한 분석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스포츠로 확률과 시장조사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영과 닮았다. 넷째, 야구는 정신적인 요소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멘탈스포츠(Mental Sport). 조직원 개인의 마인드와 조직문화는 기업의 성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1 폐교 직전에 몰린 작은 시골 학교가 전국을 재패한 성공 요인은 기업 경영에도 유용한 교훈을 준다.

 

부족한 자원이 오히려 축복

원동중 야구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최고 수준의 선수들, 탄탄한 인프라, 막대한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은 학생, 학교, 학부모, 지역주민이 마음을 모으게 만들었고 선수들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다.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야구팀들이 승리하기를 원하지만 원동중 야구부처럼 선수단이 자진해서 삭발까지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감독은 패배가 이어졌지만 학생들에게승리를 강조했다. “이길 수 있다” “우리는 강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학생들에게 승리에 대한 열정을 고취시켰다. 감독과 최 교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선수의 고민은 무엇인지, 힘든 점은 없는지를 상담하며 그들의 애로사항을 적극 해결했다. 연습 경기나 마지막 뒷정리를 하는 이들에 대해서 늘 격려하고 때에 따라서는 주장 직책을 맡기면서 구성원들이 가슴으로부터 조직에 대한 헌신을 느끼도록 했다.

 

비난 문화 청산

실수한 선수를 혼내거나 타박하지 않고 격려하는 문화도 조직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독은 실수가 있으면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식으로 학생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최 교사가 그날 경기에서 부진한 학생에게 1만 원짜리 상품권을 준 것도 학생들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문화는 기업에서도 중요하다.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비난 문화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 창조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실패를 통한 학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비난 문화다. 리더들이 앞장서서 실수나 실패에 대한 비난 문화를 없앤 것은 열정과 창의적 플레이의 원동력이 됐다.

 

원칙의 위력

원동중은 야구부 창단 초기부터 일관된 정책을 갖고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초반 6개월 동안 기본기 훈련만 시킨 것, 공부하는 야구선수 만들기 정책 등이 그것이다. 중간에 일부 학부모와 학생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감독이 계속해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팀워크를 다지고 선수들이 하나의 방향성을 갖도록 했다. 원동중이 지켜야 할 기본원칙 두 가지를 꿋꿋이 고수한 것이 야구부 우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직에서도 기본을 지키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하거나 반대에 부딪힐 때도 계속해서 정책을 지켜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는 자사가 지향하는 비전에 대한 정의와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조직원을 이끌 수 있다. 미국 내 매장을 400개 이상 보유한 의류회사 맨즈웨어하우스(Men’s Warehouse)는 자사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매 실적이 가장 높은 스타 직원을 해고했다. 아무리 성과가 좋다고 해도 조직 전체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벌을 줌으로써 다른 직원들이 규정을 따르도록 했다.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춘 직원이 있더라도 팀워크를 해치는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본 원칙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것, 고성과 조직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정지영기자 jjy2011@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