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reciative Inquiry 방법론

AI: 조직 개발의 새 패러다임 (장점 탐구)

80호 (2011년 5월 Issue 1)

 
 

Appreciative Inquiry의 탄생
Appreciative Inquiry(이하 AI)는 ‘과거와 현재의 장점, 성공, 자산(資産),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appreciation’, ‘가능성을 발견할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탐구’한다는 ‘inquiry’의 두 단어로 구성돼 있다. 이를 사전적 의미로 단순 번역하면 ‘장점 탐구 혹은 가치 탐구’ 정도가 될 것이다. 통섭학을 이끌고 있는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스승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의 ‘Consilience’를 ‘통섭(統攝)’으로 번역했듯이 뭔가 적합한 우리말을 찾을 필요가 있지만 아쉽게도 마땅한 우리말을 찾지 못했다.
 
Appreciative Inquiry라는 말은 1980년대 중반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Case Western Reserve) 대학의 조직행동학 박사과정 학생이던 데이비드 쿠퍼라이더(David Cooperrider)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지도교수인 서레시 스리바스바(Suresh Srivastva)의 클리블랜드 클리닉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돕다가 두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첫째, 조직개발을 위해 조직구성원들을 인터뷰하면서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발견할수록 사람들이 실망하고 서로 비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조직에 개입(intervention)한다는 자세보다는 조직의 강점과 생명력을 ‘탐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할 때 변화가 더 잘 일어난다. 이로부터 데이비드 쿠퍼라이더는 ‘문제점’을 발견해 ‘개입’한다는 전통적 조직개발 개념을 조직이 본래 갖고 있으나 미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가치’와 ‘강점’을 찾아내고 ‘탐구’한다는 새로운 조직개발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데이비드 쿠퍼라이더는 조직개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던 다이애나 휘트니(Diana Whitney) 박사 등을 만나면서 AI를 여러 조직의 변화, 혁신에 적용해 얻은 사례들을 축적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제까지 AI를 적용한 기업이나 조직은 Hunter Douglas, British Airway, McDonald's, Verizon, US Navy, United Religions Initiative 등 수천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AI는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전파돼 수많은 컨설턴트들이 애용하는 조직개발 방법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결함중심접근과 강점중심접근의 차이
전통적 조직개발과 AI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AI 전문가들이 애용하는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BP(British Petroleum)의 자회사로서 차량서비스를 하는 프로케어(ProCare)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79%의 만족도가 나오자 이를 더 높이기 위해 불만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를 전 직원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재조사 결과, 당초 의도와는 달리 소비자 만족도는 오히려 더 떨어졌다. 접근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ProCare는 역발상의 접근을 시도했다. 만족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서 ProCare 서비스 직원들이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으며 그 서비스에 왜 만족했는지 자료를 수집해 전 직원에게 배포했다. 8개월 후 다시 실시한 조사에서 만족도는 95%로 껑충 뛰어올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불만족 소비자들로부터 수집된 자료들은 회사와 직원들의 결함, 잘못된 행동에 관한 것들인 반면, 만족한 소비자들로부터 수집된 자료들은 회사와 직원들의 강점, 잠재력, 가능성, 올바른 행동에 관한 것들이었다. 결함에 관한 데이터는 자긍심을 떨어뜨리고 조직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강점에 관한 데이터는 자긍심과 가능성을 고조시키고 훌륭한 서비스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롤-모델을 전파시킨다. 결함중심접근(deficit oriented approach)과 강점중심접근(strength oriented approach)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필자는 의학과 교육학을 공부하고 의과대학에서 의사 양성 시스템을 기획, 조정, 평가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여러 차례 의과대학과 병원의 전략기획을 이끌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전통적 전략기획 방법론에 따라 환경 분석(SWOT 분석)이라는 것을 할 때 참가자들을 당혹하게 하는 공통된 현상은 강점(strength)과 기회(opportunity)는 몇 개 나오지 않고 약점(weakness)과 위협(threat)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SWOT 차트를 벽에 걸어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곤혹스러운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이 같은 경험 때문에 필자는 AI를 배울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모든 부문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경험이 주로 의료계에 국한돼 있어서 그렇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유능한 의사는 환자의 ‘문제’를 잘 찾아내야 한다. 흐릿한 X-레이 필름의 한 구석에 작은 음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 소견을 족집게처럼 짚어내는 의사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은 떠올릴 것이다. 의사들은 의과대학 시절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발견하는 훈련을 받고 이것을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장점이나 기회보다는 약점이나 위협을 더 많이 발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직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구성원들이 온통 부정적인 것들에 압도당하는 것은 아주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부정성에 깊게 빠져 있는가
중학교 시절 필자는 담장을 맞대고 있는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 문예반 선배들을 도와 교지 교정보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광화문 서울신문사 지하 인쇄소에서 교정이 끝나고 돈암동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와 맛탕을 얻어먹으며 ‘웃자란 보리 같은’ 문예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하루 종일 교정에 몰두하곤 했다. 어느 날 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나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거리 간판의 잘못된 글자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오탈자를 잡아내는 교정일을 일주일 정도 하고 나니 세상이 온통 교정지로 보였던 것이다.
 
이 습관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버리지 못해 대학원생이 논문을 들고 와도 내용을 읽기도 전에 오탈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답답한 습관이다. 오류중심, 문제중심, 결함중심의 속성은 쉽게 몸에 익고 잘 버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내부, 외부로부터의 위협 등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는 생명체의 생존본능으로부터 온다. 오류, 문제, 결함을 빨리 발견하고 이를 신속히 제거하거나 이로부터 재빨리 도피하는 것은 생존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생존본능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도 필자는 늘 아이들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 익숙하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본능적 행동이지만, 문제점을 뒤집어 남다른 특성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렌즈’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로젠탈과 제이콥슨(Robert Rosenthal & Lenore Jacobson)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비슷한 실력의 학생들을 A, B 두 학급으로 나눈 후 교사들에게 A학급은 매우 뛰어난 학생들이고 B학급은 다소 뒤처지는 학생들이라는 정보를 주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측정해보니 A학급이 B학급보다 우수한 성취를 보였다. 교사들에게 처음 주어진 정보는 두 학급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고, 이 이미지는 학생들 자신에 대한 이미지에 영향을 줘,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행동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A학급의 교사가 되고 싶지만, 나의 본능이 자꾸 부정성을 부각시킨다.
 
부정성에 집중하는 이 같은 본능은 학문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교수는 재임시절인 20세기 말까지 30여 년 동안의 심리학 연구들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무려 4만 5000개의 연구가 인간의 우울, 질병에 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인간의 기쁨, 희망, 행복에 관한 것은 겨우 300여 개에 불과했다. 셀리그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심리학이란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학문인데도 말이다.
 
문제중심 사고의 틀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수년 전 필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 열린 다이애나 휘트니의 AI 워크숍에서 AI를 처음 접했는데 일주일간 계속된 워크숍의 마지막 날까지도 ‘문제중심의 접근을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불편하게 느껴진다’라고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데 대략 1년 남짓 걸린 것 같다. 휘트니 박사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AI의 4D 프로세스
AI는 처음에 조직변화방법론으로 시작됐지만 팀 빌딩, 전략기획, 조직합병, 조직문화혁신, 평가 등으로 적용영역을 넓혀가다가 요즘에는 리더십 모델, 코칭 모델 등까지 개발돼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모델이 있지만 가장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변화의 4D 프로세스를 살펴보는 것이 AI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AI의 4D 프로세스는 ‘발견(Discovery)→꿈꾸기(Dream)→설계(Design)→숙명(Destiny)’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AI를 시작한다는 것은 으레 조직에 어떤 ‘문제(변화의제, change agenda)’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는 문제를 문제로서 다루지 않는다. ‘높은 이직률’이 당면 문제라면 AI 전문가들은 일단 이것을 탐구질문(research question)으로 만든다. 가장 단순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이직률을 줄일 수 있을까’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 중심의 접근에서 쓰이는 질문이다. AI는 이것을 뒤집는다(flip). 즉, 1단계로 좋은 질문(good question)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다듬어 훌륭한 질문(great question)을 만든다. 좋은 질문과 훌륭한 질문의 예시는 <표1>과 같다.
 
질문 1과 질문 2의 차이는 무엇인가? 질문 2는 질문 1을 긍정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질문 3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직률은 ‘근무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것을 개선해 직원들을 끌어당기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묻되 보다 매력적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목적지에 도착한 승객이 수하물을 찾도록 하는 서비스의 문제점을 인식한 British Airway는 ‘수하물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문제 중심의 질문을 ‘수하물 서비스를 어떻게 향상할 것인가’라는 좋은 질문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이것을 ‘고객에게 어떻게 특별한 공항도착 경험을 안겨줄 것인가’라는 훌륭한 질문으로 바꾸었다.
 
왜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것일까?
 
첫째, AI는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조직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인터뷰나 설문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행위를 조직에 대한 개입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쿠퍼라이더 박사가 발견했듯이 조사단계의 질문도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 이미 개입이다. 따라서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훌륭한 질문을 갖고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둘째, AI의 철학적 배경인 사회구성주의 원칙(social constructionist principle)에 의하면 ‘말이 세상을 만들기(words create worlds)’ 때문이다. 사회구성주의는 (1)의미란 대화를 통해 만들어지고 미래도 대화를 통해서 창출되며 (2)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각(知覺)은 이 같은 대화의 산물이고 (3)지각된 현실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 보지 않는가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즉, 조직 구성원 간의 대화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에 주목하는가, 무엇에 주목하지 않는가를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셋째, ‘마력처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과 같이 경영학이나 조직이론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동원하는 것은 조직이론이나 매스컴, 조직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이미지가 고착된 상투적 표현은 조직구성원 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질문이 만들어지면 질문의 하위 질문들을 도출하기 위한 예비 인터뷰를 거쳐 발견(discovery) 단계로 들어간다. 발견 단계에서는 조직구성원들이 서로를 인터뷰해 변화의제(change agenda)와 관련해서 조직이 갖고 있는 긍정적 경험, 전통, 지혜, 역량, 노하우 등 유형, 무형의 자산들을 찾아낸다. 인터뷰 내용은 변화의제와 관련된 조직구성원의 최상의 경험, 꿈 등 긍정적 질문들로 구성된다. 인터뷰를 통해 면담자는 변화의제와 관련해 조직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들을 확인한다. 피면담자는 최상의 경험과 꿈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감과 자긍,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피면담자들은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던 자신의 가치와 장점을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면담자와 피면담자는 직책이나 직위가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를 발견하는 소중한 체험을 한다. 필자는 2009년 가을 전라도 지역 J대학의 AI를 진행하던 당시 갓 발령받은 신임교수와 총장이 서로 인터뷰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인생경험이 다르고 직위도 극과 극이어서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지만 서로가 갖고 있는 가치와 장점을 발굴해주고 설레는 꿈을 함께 나눈 뒤에는 마치 아주 오랜 친구 같은 사이가 됐고 그 신임교수는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긍정적으로 뒤집어진 훌륭한 질문으로 촉발된 대화는 조직구성원으로 하여금 조직에 관해 무엇을 지각(知覺)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이에 의해 조직의 미래가 창출된다. 그런데 여기서 최상의 경험이란 큰 성취를 이뤘다거나 보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것만이 아니다. 역경을 극복한 경험,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이겨낸 경험 등도 최상의 경험에 해당된다. 필자도 나이가 든 탓인지 올 겨울 추위에 무척 고생을 했다. 그러나 12월 어느 날 대학로를 걷다가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도 견뎌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덕분에 이후에는 겨울을 비교적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조직구성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발견된 자산들, 즉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잠재역량들을 분석해 핵심적인 공통요소(positive core)들을 도출한다. 요컨대 발견(discovery)이란 변화의제와 관련해 조직이 갖고 있는 핵심역량을 도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쿠퍼라이더 박사의 지도교수인 서레시 스리바스바는 ‘건강한 조직의 3가지 생명력’이라는 논문에서 건강한 조직은 연속(continuity), 참신(novelty), 이행(transition)의 3가지 특성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연속이란 ‘과거의 최상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그 교훈을 현재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모든 것을 바꾸자’는 말을 종종 듣지만 인간이든, 조직이든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모든 것을 바꾸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미시간대의 로버트 퀸(Robert Quinn) 박사가 말했듯이 ‘변화란 완전히 벌거벗은 채 칠흑 같은 미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과 가치를 극대화하는 변화는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레기까지 한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도 ‘변화는 좋다, 그러나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변화의제에 관한 조직의 핵심역량 도출이란 변화를 앞둔 조직에서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특히 자신에게서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과정은 변화에 대한 조직구성원의 수용성(受容性)을 높여준다.
 
발견의 다음 단계는 꿈꾸기(dream)다. 이 단계에서 조직구성원들은 조직의 핵심역량을 토대로 ‘우리에게 이런 자산이 있으므로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미래상은 무엇인지’를 토론한다. 조직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 조직구성원이 갖고 있는 강점들을 잘 정렬(align)하면 어떤 꿈이 이뤄질 수 있는지 그려볼 수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말을 인용하자면 ‘리더가 할 일은 약점들이 의미가 없어지게끔 강점들을 정렬(align)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꿈을 하나의 시나리오로 만들어 드라마, 노래 등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가정하고 행동하면(acting as if) 꿈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다소 유치해보이지만 필자는 50, 60대 구성원들도 예외 없이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을 관찰해 왔다.
 
전통적 접근에서는 꿈꾸기(비전, 미션 도출)를 한 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분석(환경 분석)을 하는 데 반해, AI에서는 조직에 관한 분석(발견)을 먼저 하고 이에 근거해서 꿈꾸기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 중의 하나다.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 변화 과정에서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와 장점을 바탕으로 꿈꾸기를 함으로써 변화의 실현성이 높아지게 된다.
 
꿈꾸기의 다음 단계는 설계(design)로서 이 단계에서는 꿈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조직설계를 한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은 ‘당초 구조를 만드는 것은 우리 인간이지만 나중에는 구조가 우리 인간을 만든다’고 했다. 우리 자신이 만든 구조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직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대개 우리가 만든 구조가 우리를 속박함으로써 발생한다. 따라서 설계 단계의 핵심은 기존의 구조(structure)를 넘어선 창의적 설계를 하는 데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진정으로 도발적인 새로운 꿈을 낡은 구조에 의존해서 이룰 수는 없다. 때문에 이 과정은 구성원들의 무한한 창의성을 촉발해야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꿈꾸기 단계의 드라마와 노래는 창의성을 촉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설계의 또 하나의 효과는 구성원들이 기존 구조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조직구성원들은 처칠 경의 말처럼 ‘당초 구조를 만든 우리 인간’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휘트니 박사의 경험에 의하면 ‘유리알처럼 투명한 조직’을 꿈꾸던 한 기업은 설계단계에서 기존의 구조를 완전히 타파하는 과감한 용기를 발휘했다. 사장실 벽을 온통 유리로 만들어 모든 직원이 복도를 지나면서 사장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고, 회사의 수입,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를 전 사원이 항상 들춰볼 수 있도록 경비실 앞에 비치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어찌 조직이 유리알처럼 투명해지지 않겠는가. 꿈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조직설계란 바로 이런 것을 일컫는다.
 
마지막 숙명(destiny)은 조직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로 조직 재설계를 실천하는 단계다. 조직구성원들은 설계 단계에서 도출된 조직 설계 요소들을 나열하고 군집화한 후 이를 실행할 실행 팀을 구성한다. 실행 팀의 구성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에 헌신하며, 자기조직화(self organizing)야말로 가장 높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조직원리라는 ‘자율선택의 원칙(principle of free choice)’이 AI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숙명 단계에서 이뤄지는 또 하나의 일은 조직을 긍정적, 참여적, 탐구적인 appreciative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인류의 조직은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문제중심, 부정중심의 사고 틀, 대화방식, 조직체계를 갖춰왔고 이것은 조직의 체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을 떨치고 긍정중심의 사고 틀, 대화방식, 조직체계를 갖춰나가는 긴 여정이 숙명 단계의 또 다른 역할이다.
 
왜 이런 체질개선이 필요한 것일까? 당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주변 동료들을 돌아보자. 그들 마음속에 조직에 관한 어떤 내면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상상이 되는가? 조직에 대한 주변동료들의 내면대화를 상상하기 어렵다면 어제의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 조직은 이래서 문제야’ ‘참으로 한심하군, 우리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져볼까?’ 이런 식의 내면대화를 하지는 않았는가? AI는 궁극적으로 이런 부정적 내면대화의 조직을 긍정적 내면대화의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캠페인이기도 하다. 조직구성원 모두가 ‘문제 중심의 질문’을 ‘훌륭한 질문’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우리의 조직이 얼마나 활기찬 조직이 될지 한번 상상해보라.
 

‘긍정의 발견(Positivity)’의 저자인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에 의하면 건강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은 구성원 간에 이뤄지는 긍정대화와 부정대화의 비율로 구별할 수 있다. 건강과 불건강을 가르는 티핑포인트의 비율은 일반적으로는 긍정:부정=3:1이며,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고성과팀의 티핑포인트는 5:1이라고 알려져 있다. 숙명 단계에서 AI를 조직의 체질로 만든다는 것은 조직구성원 간의 대화가 이 티핑포인트를 넘어서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조직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긍정대화와 부정대화의 비율을 산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AI에서 발견과 꿈꾸기, 설계는 대개 전 직원의 참여 하에 이뤄진다. 이것을 AI 서밋(summit)이라 부른다. 회사 문을 걸어 잠그고 전 직원이 3∼4일간 서밋을 하는 이유는 모두의 참여야말로 최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총체성의 원칙(wholeness principle)이 AI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AI는 조직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AI의 저변에는 조직을 일종의 기계로 간주하던 산업화시대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조직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역량(relational capacity)’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내재해 있다. 관계역량은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발휘·육성되기 때문에 AI는 조직변화의 과정을 ‘진단-치료(diagnostic process)’의 과정이 아니라 ‘대화의 과정(dialogic process)’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관계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긍정 질문(great question)’을 갖고 구성원이 서로를 인터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조직구성원 모두의 총체적 참여 속에 조직이 갖고 있는 ‘아직 덜 활용되고 있는’ 잠재역량에 근거해서 미래를 모색하고, 기존의 사고 틀을 넘어선 새로운 창의적 설계를 하며, 전 구성원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혁신을 실천해야 한다.
 
요컨대 대화, 사회구성주의, 긍정성, 문제 뒤집기, 시인(詩人), 총체적 참여, 자발적 선택, 자기조직화 같은 단어들이 AI의 핵심을 요약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들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왠지 산업, 경영, 조직 이런 단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AI는 21세기의 조직변화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좌섭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hismed1@snu.ac.kr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의학교육학을 가르치고, 동 의과대학 의학교육연수원에서 교수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 전문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퍼실리테이터 조직인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acilitators’의 Certified Professional Facilitator이며 긍정조직개발의 세계적 컨설팅 그룹인 ‘Corporation for Positive Change’의 Certified Appreciative Inquiry Practitioner, Certified Appreciative Leadership Development Program Trainer이기도 하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 <임상윤리학> 등의 저서가 있으며 <이타적 유전자> <의학의 역사> 등의 역서와 의학교육 관련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