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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제보 시스템 구축법

통제 힘든 해외법인 부패, 내부제보로 막자

유희동 | 79호 (2011년 4월 Issue 2)
 

 
한국에 현지법인을 둔 유럽계 A사는 한국지사의 한 직원으로부터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 한국지사의 지사장이 정기적으로 본사에 보고하는 경영 실적을 조작하도록 지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제보 내용만으로는 어떤 방법으로 경영 실적이 조작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 익명으로 제보됐기 때문에 제보자로부터 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실제 대부분의 제보는 객관적인 증거 제시나 검증된 내용이라기보다 단지 일련의 의혹들에 대한 목록 형식인 경우가 많다.) A사는 제보가 접수된 이상 제보 내용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실제 사례를 일부 가공한 것이다. 글로벌 경영이 가속화하면서 이런 일을 경험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2010년 미국의 ACFE의 연구보고서1 에 따르면 전체 기업 내 부정의 40.2%가 직원, 고객, 공급자 등의 제보로 적발됐다. 제보시스템(Whistleblower Hotline 또는 Ethics Helpline)이 가장 효과적인 부정 적발 수단임을 알 수 있다.국내의 다양한 기관에서 제보시스템을 운영하고자 하는 노력은 기업 내 부정을 적발하기 위한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된다. 제보시스템은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글로벌화하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지사 또는 현지법인에서의 부정위험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 기업의 제보시스템 운영이 어떻게 하면 더욱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또 해외지사나 현지법인에서 제보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함께 제시해보고자 한다.
 
제보는 배신이라는 반감을 없애는 게 출발점
여러 국가에 지사나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제보시스템을 통해 해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을 적발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수행되고 있는 부정조사 중 상당수가 미국, 유럽 등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 한국지사의 직원으로부터 제보받은 내용을 근거로 이뤄지고 있다.
 
거대한 다국적기업도 해외 자회사에 대한 원거리 통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1∼2년마다 실시되는 제한적 범위의 내부감사로는 해외 자회사의 실질적이고 보이지 않는 속사정까지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 다국적기업은 이와 같은 원거리 통제의 어려움을 제보시스템 운영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이는 해외 진출을 통해 다국적 기업화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기업이 내부제보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우리 회사의 솔직한 직원이 정의감에서 제보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헛된 바람이다. 성공적인 제보시스템은 매우 치밀하게 마련돼야 한다. 성공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보에 대한 정서적, 문화적 반감을 극복해야 한다. 국내 기업과 아시아권 기업의 직원 상호 간 유대관계는 업무보다 정신적인 측면이나 온정주의에 기초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 직원의 부정행위를 제보한다는 것은 제보자에게는 심리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직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직원 간 정신적 유대관계는 분명 업무상 시너지 창출에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온정주의로 주위 동료의 부정행위를 모른 체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속한 기업과 직원 전체를 어려움에 처하게 할 수 있음을 충분히 알려야 한다.
 
둘째, 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 사실이 기업 내로 알려지면서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회사 또는 제보 대상자로부터의 보복을 우려해 부정행위를 보고도 눈감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제보는 익명으로 이뤄져야 하며(익명제보가 법적으로 금지된 국가도 있음을 유의할 것), 제보 내용은 조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법제도적으로 보면 2001년 시행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보자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공공부문에 국한되고 있어 민간부문에서의 제보자 보호장치가 미흡한 상황이다. 제보자를 논란을 일으키는 말썽꾼(Troublemaker)이 아닌, 부정에 대한 파수꾼으로 여기는 기업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셋째, 가능하면 공급자, 고객 등 외부 이해관계자로부터의 제보를 지원해야 한다. 외부 이해관계자가 회사에 제보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직원의 부패행위 억제에 효과적이며, 실제 부패행위 적발에도 유용하다.
 
넷째, 제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책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제보에 대한 경영진의 미흡한 대응은 내부제보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고, 내부제보시스템의 부정 적발 효과를 떨어뜨린다.
 
다섯째, 제보 내용에 대해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내부감사 또는 보안담당자에 대한 특화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기업 내 임직원 부정은 많은 경우 내부통제를 교묘하게 우회하여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조사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부정행위를 적발해내기 어렵다. 사안이 중요하다면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조사를 위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 밖에 제보된 내용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조사의 지체는 부정행위자가 사안에 대해 주도권을 갖게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적인 조사의 착수 및 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 또 시간의 제약없이 언제든지 제보 접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제보는 근무시간 이후 야간시간 또는 주말에 접수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조사로부터 회사 손실을 만회할 수 있었다면 만회된 손실의 일부를 제보자에게 제공하는 방안도 내부 제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보 활성화를 위한 포상금 제도는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 많이 제도화되고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위반행위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부당한 고객유인행위 등의 신고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 미국 상원을 통과한 금융규제개혁법안인 Dodd-Frank 법안2 의 제922조(Section 922)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회수한 금전적 제제 규모의 최소 10%에서 최대 30%까지 제보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업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활동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Dodd-Frank 법안에서 주목할 점은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제보자의 자격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의 해외지사 또는 현지법인의 직원도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 상장된 국내 기업 혹은 국내에 있는 미국 기업의 지사도 이런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는 사베인스-옥슬리법(SOX)에 따르면 해외 제보자가 미국 증권시장 상장법인의 해외 자회사나 현지법인의 직원인데도 해외 비상장 자회사 직원에 의한 제보라는 이유로 일부 제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과는 다른 점이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은 직원이 포상금을 받기 위해 기업 내 부정행위를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직접 제보할 수도 있게 됐다. 결국 기업들이 제보시스템과 같은 내부보고체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운영해 기업 내 부정이 우선 내부적으로 보고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제보된 사안에 대한 성실한 사후조치를 통해 이러한 위험을 축소할 필요가 생기게 됐다.
 
제보시스템의 한국계 글로벌기업에 대한 시사점
다시 서두에서 제시한 A사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A사는 익명의 내부 제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때마침 한국지사에 대한 정기내부감사가 예정돼 있었다. A사 감사팀은 감사의 범위에 재무보고 프로세스를 포함해 경영 실적 조작 의혹을 확인하기로 했다. 감사 결과 우선 미국 본사에서 수령한 한국지사의 수년간의 매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정상적으로 많은 반품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는 분기말 경영 실적 보고 직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한국지사는 분기 후반에 실제 수요보다 많은 물량을 중간 유통업체들에 출하했다. 또 이 중 일부 중간업체는 A사 한국지사의 전 영업임원 등이 운영하는 업체로서 매출이 부족한 시기에 물량을 일시적으로 받아주는(Channel Stuffing)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출하된 물량의 판매가 어려울 경우 반품을 받아주겠다는 이면계약도 체결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중간 유통업체로부터 반품 요구를 받게 되면 물량이 한국지사의 물류창고로 입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부기록을 다음 분기로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실적을 조작하고 있었다. A사 감사팀은 이를 감사위원회에 보고했다. A사 경영진은 한국지사장과 일부 관련 임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으며, 그 결과 한국지사장이 해임됐다.
 
하지만 문제가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제보자에 대한 정보가 한국지사 내에 유출된 것이다. A사 감사팀은 매출데이터에 대한 분석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재무팀 직원들과 개별적인 인터뷰를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감사팀은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게 됐다. 제보자가 감사팀이 작업하는 회의실에 들어가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면서 주변 동료들의 시선을 받게 됐다.
 
이후 제보자는 회사로부터 불합리한 처우를 계속 받았다. 심지어 과거 자신이 담당하던 업무가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직원에게 인계되는 등 조직 내에서의 역할이 점차 축소됐다. 무엇보다도 상사로부터의 시선이 견디기 어려웠다. 제보자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A사는 최초 제보를 받은 시점에 조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정기내부감사라는 형식으로 내부감사인력과 외부 전문인력을 활용해서 효과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부 감사팀은 제보자가 확인되는 시점부터 제보자와의 접촉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제보자와의 면담을 근무시간 중 회사 내에서 수행하는 비전문성을 보였다. 제보자의 불행한 최후를 경험한 A사는 한국지사의 직원으로부터 더 이상의 제보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제보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제보자에 대한 보호가 필수적이다.
 
결론
기업 내 부정의 상당수는 내외부인의 제보로 밝혀진다. 이는 문화적, 정서적 차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내부감사기능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부정의 예방과 적발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이 지속적으로 글로벌화하는 상황에서 인력과 시간의 제한으로 내부감사를 통한 부정의 적발에는 한계가 있다.
 
제보시스템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자회사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데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직원에 대한 충분한 교육, 글로벌 제보시스템 및 제보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 역량 강화를 통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부정행위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기업의 명예훼손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더욱 투명한 조직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유희동 Ernst & Young 부정사건 조사 및 분쟁관련서비스 이사
Hee-Dong.Yoo@kr.ey.com
유희동 이사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워릭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서 기업재무 자문 및 M&A 컨설팅을 수행했고, 리스크컨설팅사인 크롤과 델인터내셔널에서 기업의 내부 통제 관리 자문을 담당했다. 현재 언스트앤드영(Ernst & Young)의 부정 사건 조사 및 분쟁 관련 서비스(Fraud Investigation & Dispute Services) 부문 이사를 맡고 있다.
 
  • 유희동 | -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기업재무 자문 및 M&A 컨설팅 수행
    - 리스크컨설팅사인 크롤과 델인터내셔널 내부 통제 관리 자문 담당
    - 현재 언스트앤드영(Ernst & Young)의 부정 사건 조사 및 분쟁 관련 서비스(Fraud Investigation & Dispute Services) 부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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