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s from the Past
편집자주 과거는 경영자들에게 큰 통찰을 줍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인류의 과거 행동양식을 분석해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이 비즈니스에 응용할 수 있는 선조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지식노동사회에서는 창조적인 자유와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우리 일상은 디지털 기기의 수배망에 얽혀 있다. 전자기기의 발전과 자율 근무제의 미명하에 주 7일, 하루 24시간이 업무활동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일과 삶의 균형(Work & Life Balance)’이 화두가 됐다. 개인 차원의 시간관리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막상 만족스러운 균형감을 느끼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무너진 일과 삶의 균형을 복구하는 과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인가라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일부 경영자들은 직원들의 늦은 귀가시간과 가정의 불화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며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무너진 균형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게 해법은 아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현대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고, 일과 삶의 균형도 불분명했던 우리 선조의 삶 속에서 그 단서가 있다.
산업화와 함께 등장해 지식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일과 삶의 경계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대체로 주거지와 농경지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식사 후 산책하는 기분으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논과 밭이 있었다. 따라서 일과 삶의 경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어른들의 일터는 어린 자녀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논에서 개구리를 잡고 밭에서 잠자리를 잡으며 놀았다. 아이들은 어른들 주위에서 놀면서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며 자랐다. 땅과 가축의 소유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농경지 근처에 모여 살면서 부족하나마 자신의 필요를 채워가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은 공장을 중심으로 집단화, 규격화되기 시작했다. 농부가 자신의 생체리듬에 따라 일을 시작하고 마치던 과거와 달리, 일상은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수의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모여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일부만 담당하는 이른바 ‘파편화된 노동’을 담당하게 됐다. 목적을 상실한 채 파편화된 노동은 노동량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도 노동자를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다음 일화는 목적의 인식 여부가 노동에 따른 피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땡볕 아래 벽돌을 쌓아 올리던 두 사람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각각 질문을 던졌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보면 모르오. 벽돌을 쌓아 올리지 않소. 더우니, 말 시키지 말고 가시오.”
첫 번째 사람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두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으나, 사뭇 다른 답이 돌아왔다.
“저는 여기 새로 지어질 유치원의 북쪽 담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도 이 유치원에 다닐 겁니다.”
과거 노동은 두 번째 사람이 담을 만드는 것처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래서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피로를 덜 느끼며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화 시기의 노동은 집단적으로 이뤄지고, 파편화되면서 노동자의 피로감을 급격히 높였다. 또 개인의 삶에서 일이 분리됐다.
부모의 근무지에서 자녀들의 접근은 통제되고 거주지와 근무지가 멀어지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과거 농경시대에 아이들이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근로윤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어졌다. 그러면서 가정은 일로부터 분리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됐다. 그래서 서양에서 일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대하는 관점이 보편화됐다. 동양에서는 직업을 자기 성찰 및 완성으로 보는 관점이 있는 등 상대적으로 일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이기는 해도, 일과 삶은 역시 분리될수록 좋다는 생각이 폭넓게 자리잡게 됐다.
영국에서 실시된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영국인 조사대상자 1456명 중 53%가 업무로 인해 배우자 또는 연애상대와의 관계가 깨진 경험을 호소했다. 그 중 65%는 자신 또는 상대방의 장시간 근무로 관계가 상처를 받았다고 답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은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 조사 시작 이후 한 번도 근로시간 2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인사컨설팅사 휴잇어소시엇츠에 따르면 한국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업무 외에도 다양한 일에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사내 동문회, 사내 향우회 등 다양한 인간관계와 함께 사내 정치에도 민감하게 안테나를 세우는 사람이 직장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일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심리적 에너지가 분산된 상태를 ‘엔트로피(복잡도)가 높다’라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엔트로피 수치는 다른 아시아 기업과 대조를 이룰 정도로 매우 높다.
여기서 눈 여겨볼 점은 한국기업의 경우,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된 기업이라 할지라도 엔트로피가 높다는 사실이다. 한국 베스트 10개사의 엔트로피 평균은 12%나 된다. 이는 아시아 최고의 직장 평균(6%)에 비해 높고, 아시아 평균(13%)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업무 말고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집중해 일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높은 엔트로피는 직원들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결국 사람들이 귀가할 즈음에는 녹초가 되고 만다. 이런 경우, 비록 주말이 보장되고 야근이 적더라도 사람들은 과부하에 걸린 두뇌를 쉬게 하느라 가정사에 소홀한 ‘게으른 가장’이 되고 만다.
행복을 추구한다면 균형이 아니라 선택이 해법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경제가 벼랑에 몰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생존의 이슈에 매달려 개인의 삶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후 20년도 채 안 돼 한국사회는 급격히 발전했고, 개인의 삶에 대한 회사의 배려를 기대하는 직원들도 늘었다. 대중매체도 이런 변화에 한몫 했다. DBR 독자라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승무원이 랩으로 기내방송을 하거나, 공중에서 생일을 맞은 승객의 생일파티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구글과 나이키, 애플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자랑하는 해외 기업들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한국 근로자들의 기대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평균 이상의 대우를 해주고 싶겠지만, 결국 비용 문제로 좌절한다. 경영자들은 생산성 향상의 고민 위에 직원들이 느끼는 일과 삶의 균형감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한다.
최대의 만족을 추구하는 일과 삶의 전략적 선택, 즉 Work & Life Choice라는 개념은 흔히 일과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일은 하나로 분류할 수 있지만, 삶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건강의 추구, 재정적 안정, 인간관계의 회복, 개인의 지적 성장 등 삶은 여러 요소들로 이뤄진다. 따라서 Work & Life Choice 는 일과 개인 삶 중 딱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포함한 다양한 삶의 요소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선택해 자신의 자원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과 집중은 전략적 사고의 기본이다.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이슈에 대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강수진처럼 개인 차원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직장인들은 마땅한 대안없이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기 일쑤다. 그래서 행복한 직원을 통해 경영성과를 향상시키려는 경영자는 조직 차원에서 Work & Life Choice 를 구현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제3의 공간과 신세대의 Work & Life Choice
필자는 수 차례에 걸쳐 지식사회가 비인간화된 산업화 사회보다는 인간미가 살아 있던 고대 농경사회의 특징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Work & Life Choice에서도 이런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근무지와 거주지가 분리됐고, 이 분리가 확실할수록 개인생활이 보호받는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은 정보화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근무지와 거주지라는 물리적 장소를 분리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했다. 물리적 장소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정보화 사회에서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근무공간과 개인공간 외에도 ‘제3의 공간’이 등장한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무장한 지식노동자가 공적 업무와 사적 업무를 넘나들며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카페에서 업무 회의를 하고, 사무실에서 친구의 미니홈피를 검색하며, 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상사에게 e메일을 보낸다. 이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은 공간의 분리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우선순위에 따라 업무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