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창립 이후 처음으로 사학·철학·미학, 국어국문·영어영문 등 인문·어학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공개 채용에 나섰다. 채용 인원과 배치 계열사, 직무를 미리 정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특정 직무에 맞춰 사람을 뽑는 대신 해외 사업이라는 큰 방향 아래 현지의 역사·문화·언어·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새로운 역할을 맡을 잠재력을 보는 것이다. 직접적인 배경은 해외 사업 확대지만 생성형 AI가 번역·검색·문서 작성 등 기존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이번 실험의 의미는 더 커지고 있다. AI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의미를 해석하고 고객과 신뢰를 형성하는 일까지 대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효성그룹 사례를 단순히 ‘인문계의 부활’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사례는 ‘직무의 경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인재를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실험에 가깝다. 다만 이 실험의 성패는 선발 자체보다 이들에게 어떤 경험과 역할을 부여하고 실제 사업 성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송합니다”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가 말해주듯 채용시장에서 인문계 전공자의 입지는 오랫동안 좁아져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이 산업을 이끌면서 기업의 시선이 이공계 인재에 쏠린 탓이다. 생성형 AI가 번역과 문서 작성, 정보 검색 등 언어 기반 업무까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인문계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효성이 흐름을 거스르는 채용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인문·어학 계열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별도 공개 채용을 실시한 것이다. 1966년 창립 이후 처음 있는 시도였다. 지원 자격은 사학·철학·미학 등 인문학 계열과 국어국문·영어영문 등 어학 계열 전공자로 한정했고, 글로벌 사업장 근무 희망자를 우대했다. 더 눈길을 끈 것은 채용 인원은 물론 배치 계열사와 담당 직무까지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상 기업은 필요한 직무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역량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효성은 순서를 뒤집었다. ‘인문계 인재’라는 조건부터 정한 뒤 이들이 맡을 역할은 열어뒀다. 기술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나온 이번 채용은 그래서 단순한 ‘인문계 우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가 기존 직무의 상당 부분을 빠르게 재편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과연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현재 직무에 꼭 맞는 사람과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낼 사람 중 누구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국내 채용시장에 던졌기 때문이다. 전공과 직무를 촘촘하게 연결해온 기존의 인재 선발 방식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실험으로도 볼 수 있다.
기술이 중요해질수록 기업은 왜 다시 인문계 인재를 찾는 것일까. 또 직무를 정하지 않고 사람부터 뽑는 효성의 실험은 앞으로의 채용과 인재 전략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까. DBR은 채용·교육 등 HR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를 수행해온 이중학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박종규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부교수와 함께 이번 채용이 국내 기업의 인재 전략에 던지는 의미 및 시사점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