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앉아 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부모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연락을 받거나 갑자기 아이를 맡길 곳이 사라졌을 때…. 출근해 있지만 심리적 부담으로 몰입이 저하되는 이러한 상태가 이어지면 생산성 저하뿐 아니라 조직 전체 성과를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돌봄’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경영 변수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 돌봄의 성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그동안 기업의 돌봄 정책은 주로 육아를 중심으로 설계돼왔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부모 세대를 위한 시니어 돌봄이 새로운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노인을 돌보는 직장인 수(약 2300만 명)가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직장인 수(약 2100만 명)를 처음으로 넘어섰고 고령화를 겪는 주요 선진국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돌봄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할 노동 공급은 빠르게 줄어드는 ‘돌봄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노동시장 구조와 기업 운영 방식을 동시에 흔드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육아와 노인 돌봄의 차이는 ‘범위’와 ‘지속성’에 있습니다. 육아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이벤트라면 노인 돌봄은 시작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고 장기간에 걸쳐 부담이 점진적으로 커집니다. 그럼에도 부모 부양 문제를 기업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일부 중장년층 직원만을 위한 복지라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돌봄을 ‘누가 혜택을 받는가’라는 관점에만 머물러 바라보기 때문에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시각을 바꾸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고령화 연구 전문 싱크탱크인 에이지웨이브는 최근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노인 돌봄을 특정 집단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조직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리스크로 정의했습니다. 부모 돌봄을 병행하는 직원은 결근과 지각이 늘고, 업무 집중도가 낮아지며, 경력 단절 가능성 또한 높아집니다. 특히 이러한 부담이 생애주기상 중간관리자와 고숙련 인력에 집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돌봄 리스크가 개인의 부담에 그치지 않고 리더십 파이프라인까지 흔드는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은 보편성입니다. 육아 지원이 어린 자녀를 둔 일부 직원에게 해당하는 반면 노인 돌봄은 대부분의 구성원이 시간차를 두고 겪게 되는 리스크입니다. 결국 거의 모든 직원이 마주하게 될 문제라는 뜻입니다. 가족의 건강과 돌봄 이슈는 개인의 삶에서 가장 깊은 불안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는 조직은 ‘좋은 회사’를 넘어 ‘대체 불가능한 회사’로 자리매김하며 인재 유출을 막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노인 부양은 큰 틀에서 사회가 책임져야 할 복지 이슈지만 개인이 마주하는 돌봄의 순간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에 있습니다. 공적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이 간극을 메우는 기업일수록 구성원의 충성도는 높아집니다.
이에 해외에서는 간병 지원, 유연 근무, 외부 서비스 연계를 결합한 정책을 통해 돌봄을 인재 유지 전략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돌봄을 ‘인적 지속가능성(Human Sustainability)’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인간을 단순한 노동력이 아닌 건강과 역량, 삶의 질까지 관리해야 할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인식합니다.
돌봄을 ‘선택적 복지’가 아닌 인재 관리의 ‘핵심 인프라’로 재정의해 보고자 한다면 혹은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돌봄 경제’의 기회를 모색하고자 한다면 이번 호 콘텐츠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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