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최수정(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의 ‘태평성대’는 누가 만들었을까? 물론 뛰어나고 자애로운 임금 스스로 만들어낸 시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누가 가장 큰 조력자였을까?
황희 등 뛰어난 재상이나 윤회 등의 외교관, 집현전 학사들부터 떠올렸다면 이는 ‘권력’에 대한 고려만큼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세종이 별다른 사화나 피비린내 나는 혈투 없이 오직 문화융성과 경세제민에 몰두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누구보다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의 공이 컸다.
태종은 스스로 ‘악역’을 맡으며 자신의 칼에 피를 묻혀나갔다. 조선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을 숙청했고 왕자의 난을 도운 부인 민씨의 형제 민무구, 민무질도 제거했다. 심지어 ‘물러난 왕(상왕)’의 위치에서도 핵심권력을 놓지 않고 세종의 장인 심온마저도 죽였다. 그 잔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나 바로 그 덕분에, 한 세대가 지나면 왕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세종은 치열한 권력투쟁 대신 ‘통치’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한고조 유방도, 당태종 이세민도 이 같은 형태로 치세의 기반을 닦았다. ‘극악무도한 듯한’ 지도자 이후에 반드시 ‘성군’이 나타나는 이유다.
북한 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현대국가의 정치나 기업 내 사내정치에서는 물론 왕조시대와 같은 방식을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올바른 통치’ ‘위대한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권력기반이 탄탄해야 하고, 효과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해야 하며, 후임자에게 안정적으로 넘겨줘야 한다. 이는 린다 A. 힐 등이 저서 <보스의 탄생>에서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영향력을 갖추라”고 조언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는 변명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망해버린 국가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 기업을 회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을 쓸 수 없다는 제한사항만을 지킨다면 왕이나 독재자들이 구사하는 권력의 획득, 유지, 행사, 승계의 방식은 민주정치 지도자나 기업의 리더 역시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배워야 할 덕목이 된다. 미국 정치학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뉴욕대 석좌교수가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일종의 ‘권력투쟁 지침서’를 내놓은 이유다.
그는 일반적인 정치학자들처럼 국가들 사이의 관계나 정부나 의회, 공공기관 등에 대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고대 왕조와 현대판 절대왕정 북한 김정은 체제의 세습 문제, 미국 내 각 기업들 내의 권력투쟁 양상을 모두 다뤘다. 부에노 데 메스키타 교수를 e메일 인터뷰한 뒤 부족하거나 미진한 부분은 그의 양해를 얻어 저서 내용을 인용해 전체 인터뷰를 구성했다.
1. 권력의 획득과 유지
권력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느 집단이든 권력을 장악하고 싶은 도전자는 다음 세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 첫째, 집권자를 제거한다. 둘째, 정부기관을 장악한다. 셋째, 새 통치자로 살아남기에 충분한 지지자 연합을 형성한다. 물론 이 세 가지 각각의 단계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그리고 이 세 단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다. ‘반란 세력’ ‘도전 세력’ 연합의 규모는 실제 다수의 유권자, 혹은 주주 등과 같은 선출인단보다 훨씬 적다. 지도자들은 일단 득표나 지지자를 충분히 확보하면 잠재적 후보자가 적을 것이라고 여긴다. 오산이다. 항상 체제를 전복시킬 태세를 갖춘 여러 집단은 동시 다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속도감 있게 핵심부서부터 장악해 나가야 한다.
일단 속도감 있게 권력을 잘 장악했더라도 며칠 만에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권력을 잡았으면 지지자들에게 보상부터 하라. 권력을 잡은 뒤 혹시나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지지자들의 두려움을 완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중에 버릴지라도 처음엔 무조건 보상해야 한다. 자신의 측근이 됐다면, 그리고 잠재적 도전자가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상하고 챙겨라. 이를 위해 권력을 새롭게 장악한 사람은 ‘지급능력’부터 갖고 있어야 한다. 권력 획득 후 재무부서와 같은 핵심부서부터 접수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통치자가 지지자에게 지급할 돈이 떨어지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지지연합 구성원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내놓기가 훨씬 쉬워진다. 재정 위기는 곧 도전자들에게 ‘공격할 적기’임을 암시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생각해보자. 흔히 사회주의 혁명 이념에 따른 계급투쟁으로 알고 있는데 혁명세력이 1917년 겨울 별궁을 습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차르가 군부에 보상을 해주지 않아서 혁명군을 진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이 16세 시절 일어난 프랑스혁명 역시 그 같은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또 지지자에게 보상하는 것을 넘어서 확신을 유지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축구선수이면서 동시에 전쟁영웅이기도 했던 벤 벨라는 알제리 독립운동에서 명성을 얻은 뒤 알제리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수년 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축출된다. 일주일 후 열릴 정치국 회의에서 ‘내각 개편, 군사령부 개편, 군부 반대세력 제거’ 등의 안건을 다룰 것이라고 말한 뒤 수도를 비운 것이다. 그의 핵심지지자들 중 일부를 제거하겠다는 선포를 한 셈이었다. 이때 그의 도전자였던 부메디엔은 음모를 계획해 권력을 빼앗았다.
기업도 설립 초기 창업자들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상장되고 나면 일종의 ‘주주에 의한 견제’가 작동한다. 이럴 때 어떻게 권력을 획득할 수 있나.
견제 세력이 있는 상태는 민주국가와 같은 경우다. 민주국가에 대입해 생각해보자. 민주국가의 경쟁은 몸싸움이 아니라 머리싸움이다. 처칠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런 그도 전쟁 직후 클레맨트 애틀리가 이끄는 노동당에 졌다. 아이디어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노동당의 리더는 전후 피폐해진 국민의 삶을 복구하기 위한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과 복지국가 건설을 내세웠다. ‘긴축’으로 또 한번의 희생을 요구했던 처칠은 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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