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무형자산
전통적으로 기업의 생산 활동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때문에 기업과 지역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기업과 지역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연구한 것은 기업이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공장을 어떤 장소에 입지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Weber의 최소비용이론과 Lösch의 최대수요이론을 토대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으며 1960년대 이후 기업은 최대 이윤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거나 지속가능성을 중시한다는 등 다양한 관점이 나타났다. 기업과 지역의 관계를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경제는 지식정보화와 더불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는 기업과 지역의 관계가 단순히 원자재나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유형자산(tangible assets)보다는 지식, 기술혁신, 브랜드 등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을 창출하고 축적하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무형자산이란 제품의 생산이나 서비스의 제공에서 기업이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하거나 미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말한다 (Tommaso, et al, 2004: 76). 이는 특허, 트레이드마크, 지적재산권 등의 법적인 무형자산과 지식활동, 협력적 활동, 레버리지 활동 등의 경쟁적인 무형자산으로 구분되기도 한다(Wikipedia).
지식정보사회에서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세계의 경제공간은 역동적으로 변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우선 세계적인 메가트랜드하에서 무형자산이 중요해짐에 따라 경제공간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 기업과 지역의 어떠한 과정을 통해 기업의 무형자산이 축적되고 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효과적으로 무형자산을 축적한 삼성전자의 사례도 소개한다.
1. 세계적 메가트랜드하에서 경제공간의 역동적인 변화
21세기의 글로벌 메가트랜드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경제의 서비스화, 기후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메가트랜드로 인해 세계경제는 물론 지역경제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기술혁신을 위한 경제주체들 간의 협력이 중요해졌다. 20세기 후반의 무한경쟁 환경에서 기업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지역에 기업을 입지시키는 데 주력했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개도국에 투자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위기 등 불확실성이 극도로 고조되면서 ‘무한경쟁하의 경쟁력’이라는 공격적 용어보다는 ‘창의성(creativity)’과 ‘협력(cooperation)’처럼 부드러운 용어들이 실질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바로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경제공간에 반영되고 있다. 역동적인 경제공간이 창출되면서 지역과 기업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역동적 경제공간의 특징을 △산업클러스터 형성과 발전 △대도시권의 집적과 성장 △공간분업의 진화 △세계적인 산업의 네트워크 △일시적 클러스터와 가상 혁신클러스터 △지역회복력과 지속가능한 발전 등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박삼옥, 2012). 이러한 특징들은 지역과 기업의 상호작용을 통한 무형자산 축적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산업클러스터의 형성과 발전
1980년대 ‘신산업공간’이라는 개념이 부상하면서 새로운 지역에 경제활동이 집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Scott, 1988). 과거에는 단순히 경제활동의 집적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은 단순한 집적이 아니라 집적된 경제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고 지식과 기술의 교류를 통해 기술혁신을 이뤄내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오늘날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의 발달로 형식지(codified knowledge)의 이전은 공간적으로 별로 큰 제약을 받지 않지만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이동은 그렇지 않다. 암묵지의 이동은 주로 국지적 지역에서 공식/비공식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 특히 다른 경제주체 간 기술적 상업적 문제에 대한 이해, 배경, 가치체계가 유사해야 지식의 이전이 용이하다(Maskell and Malmberg, 1999). 기업은 산업클러스터 지역에서 다양한 경제주체들 간 상호 네트워크를 통해 물적 연계를 갖는 것은 물론이고 지식과 정보 및 마케팅 전략 등 무형자산도 축적할 수 있다.
대도시권의 성장과 더불어 세계도시의 등장
Scott(2001)에 의하면 세계적인 대도시권(city-region)은 대도시와 인접한 배후지를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도시권은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집중적인 거래활동이 전개되는 중심지다. 이 때문에 이들 대도시는 새로운 지식의 창출, 혁신, 학습, 지식확산 등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집적경제의 이점 때문에 지식기반 제품을 생산하는 활동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 모험자본 등의 대도시권 집적현상이 두드러진다. 생산자서비스와 같은 지식기반서비스 산업의 집적은 이제 유럽이나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홍콩,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등 아시아지역의 대도시권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산업의 분산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B2B 또는 B2C 전자상거래 활동 등의 대도시 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지식기반 서비스업이 특정도시에 집중하면서 대도시의 팽창을 촉진했다. 국제적 네트워크나 경제주체 간의 협력 등이 세계도시에서 중점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업과 지역은 상호작용을 통한 무형자산 축적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
공간분업(spatial division of labor)의 지속적인 진화에 따른 신공간분업의 형성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공간분업은 각기 다른 산업의 기능과 역할이 지역에 따라 차별화돼 있는 것을 의미한다(Massey, 1995). 즉, 관리통제기능을 담당하는 기업의 본사는 무형자산의 축적과 고급 인력이 많은 대도시에 입지하고 본사로부터 관리와 통제를 받는 생산기능은 인건비가 저렴한 지방에 입지하는 경우가 전형적인 공간분업의 형태다. 다른 한편으로 연구개발 기능, 시제품 생산 등은 대도시 또는 핵심지역에 입지하고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기능은 생산비가 저렴한 주변지역에 입지하는 등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상이한 특성을 보이기도 했다. 기술변화와 더불어 공간분업은 또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즉, 1980년대 첨단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함에 따라 첨단 기술산업은 고급 인력과 엔지니어들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연구기관과 대학과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저기술 산업은 주변 지역으로 분산하는 경우다. 최근에는 지식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또 다른 형태의 공간분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산 활동에 관련한 다양한 지식집약적인 서비스 기능이 대도시 지역에 집중하는가 하면 생산기능과 일반 서비스기능은 상대적으로 분산되는 형태의 공간 분업도 나타났다. 제품생산과정에서 다양한 서비스 활동을 필요로 하는 소위 서비스 세계에서 이러한 공간 분업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전파가 유리한 지역에 많은 서비스 분야의 신생 기업이 집중하고 루틴한 서비스 기능이나 back office 기능은 주변으로 분산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 분업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과거의 기업 본사와 공장, 첨단기술산업과 전통산업의 공간 분업과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공간분업의 진화에서 비롯한 신공간 분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경제활동공간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공간 분업을 형성해 특정지역에 무형자산을 축적하고 지역 간의 차별화를 통한 격차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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