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달성한 성과를 개인의 실제 역량으로 착각하는 ‘역량 착시(Competence Illusion)’가 HR 분야의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AI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빠르게 생성하지만 그 결과물을 이해하고 새로운 상황에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본질적인 직무 역량까지 키워주진 않는다. 오히려 AI에 의존할수록 정보를 숙지하고 고민하며 방향을 수정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이 생략되면서 개인의 직무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기업은 AI로 만든 결과물만으로 구성원의 역량을 판단해선 안 된다. 결과물에 대한 설명 가능성, 반복 가능성, 전이 가능성 등을 함께 검증하는 새로운 역량 진단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06. 역량 착시 Competence Illusion
AI의 도움으로 거둔 성과를 개인의 직무 역량과 동일시하는 현상. 구성원이 AI로 만든 결과물의 수준을 자신의 실제 실력으로 과대평가하고 조직 또한 이런 착시에 빠져 구성원의 역량을 잘못 진단하는 상황.
“기획안 정말 잘 썼네요.”
신입 사원이 작성한 프로모션 기획안을 읽은 이 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데이터 분석은 정확했고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논리도 탄탄했다. 대리급 이상의 직원이 작성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신입 사원의 실력에 놀란 이 팀장은 기획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일대일 미팅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화를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핵심 아이디어를 어떻게 도출했는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신입 사원이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작성한 기획안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을 얼버무렸고 질문이 이어질수록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만 반복했다. 결국 미팅이 끝날 무렵 신입 사원은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AI로 급하게 작성한 문서라 자세한 내용까지는 설명드리기 어렵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최근 많은 조직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제 직장인들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기존보다 훨씬 빠르게 수준 높은 기획안과 프레젠테이션 자료 등을 만들 수 있다. AX(AI 전환)의 일환으로 실무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AI는 분명 우리의 업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여줬다.
문제는 AI의 활약이 조직의 인사(HR) 기능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높은 성과가 뛰어난 역량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성과’를 개인의 역량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삼았다. AI 시대에는 이 전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AI 도구를 잘 다루기만 하면 자신의 실제 역량을 뛰어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얼마든지 완성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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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규
뉴욕시립대 경영학과 부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LG인화원에서 근무했으며 타워스왓슨과 딜로이트에서 HR과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다. 현재 미국 로스웰앤드어소시에이츠(Rothwell & Associates)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리더십과 조직 개발이다. 주요 저서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천재들을 이끈 오펜하이머 리더십(2024)』 『에디슨 알고리즘(2026, 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