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의존 지나치면 숙련 저하·획일화
‘유창성 환상’ 경계하고 AI 없는 기준선 지켜
Article at a Glance
비판과 사고 등 고차원적 인지 작업마저 AI에 맡기는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 현상이 발생하며 사람들이 지적 능력을 학습할 기회가 상실되고 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뇌의 본능에 따라 AI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스스로 고민하고 불확실성을 견디는 ‘생산적 고군분투’ 과정을 생략하게 되거나 나중에 갚아야 할 ‘인지적 부채’가 쌓이고, 마치 자신의 실력인 양 과대평가하는 ‘유창성의 환상’에 빠지기 쉽다. 이는 결국 구성원의 업무 숙련도를 떨어뜨리는 ‘디스킬링(Deskilling)’을 초래하고 집단 전체의 아이디어를 획일화시켜 모방 불가능한 조직의 핵심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고 생산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조직은 AI에 위임할 하위 업무와 인간이 끝까지 책임져야 할 본질적인 판단 영역을 전략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이 AI의 산출물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할 수 있도록 성찰 및 복기의 시간을 업무 프로세스에 포함시키고 정기적으로 ‘AI 없는 기준선’을 점검해 기계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정의하고 오류를 감지하는 구성원 본연의 사고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 및 강화하는 조직 설계가 필수다.
AI에 사고와 판단을 위임하는 사람들 최근 만난 한 대학생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수업에서 교수 강의 평가를 400자로 작성해 제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그 과제를 AI에 지시해 작성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 학생이 AI에 지시하기 위해 교수의 전공, 수업 특성 등을 200자 넘게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뒤에서 보던 학생은 의아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쓸 거면 조금만 더 써서 그냥 본인이 400자를 쓰면 되지 않나고 생각한 것이다.
언뜻 보면 이 학생의 행동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노력하면 자신의 손으로 강의 평가를 완성할 수 있을 텐데 굳이 200자 넘는 지시문을 작성하는 수고를 들이는 동기는 무엇일까? 200자의 지시문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강의에 대한 판단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작업은 지적이고 시간이 소요된다. 이 학생은 그 고차원적인 작업을 AI에 맡김으로써 자신의 지적 수고를 더는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지적 외주화는 인간의 역사와 늘 함께였다. 손가락을 구부려 셈을 하는 것부터 달력을 보며 날짜를 헤아리는 것도 인지적 부담을 줄이는 외주화의 일종이다. 종이 지도를 펼치며 길을 찾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하게 된 것은 인지적 외주화의 방식 역시 진화함을 보여준다. 프린스턴대 수잔 피스케 교수와 UCLA 셸리 테일러 교수는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제한적이기에 가능한 한 지름길을 택한다”라며 인간의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간단하고 노력이 덜 드는 방법을 선택하는 현상을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개념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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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지적 외주화는 신체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소모하는 뇌의 부담을 줄여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초기 인류부터 이어져 온 생존 기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