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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 시장의 게임 체인저 ‘위고비’

‘주 1회 주사로 다이어트 효과’ 환호성
당뇨병 치료제서 전 인류 관심사로

신현암 | 383호 (2023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덴마크의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주 1회 주사로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2023년 루이뷔통을 제치고 유럽 시가총액 1위 회사가 됐다. 위고비와 같은 성분의 당뇨 치료제인 ‘오젬픽’까지 품귀를 빚는 기현상을 연출할 정도로 이 제품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치솟으며 회사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비만 시장 ‘게임 체인저’의 등장을 단순히 우연에서 비롯된 행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당뇨병을 정복하고 인류를 더 이롭게 하겠다는 노보노디스크 오너 일가의 경영 철학, 공공의 이익과 환자들의 수요를 최우선으로 삼은 회사의 지속가능 경영, 사회적 책임과 수익을 연결한 리더십 등이 만들어 낸 결실로 봐야 한다. 수많은 거대 경쟁사가 앞다퉈 발을 담그고 있는 치열한 시장에서 왜 노보노디스크가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었는지 100년 회사의 미션과 리더십, CSR과 ESG 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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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아이작슨이 자서전을 써서 더욱 유명해진 일론 머스크. 그는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후덕한 뱃살은 그의 상징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조금 날씬해졌다.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2022년 10월 한 X(구 트위터) 친구가 그에게 살을 뺀 비결을 물었다. 머스크는 짧게 답했다. “간헐적 단식, 그리고 위고비(Wegovy).”

단식의 효과인지 다이어트 치료제 ‘위고비’의 효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론 머스크가 30파운드(약 13.6㎏) 정도를 뺐다는 게 알려지면서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은 위고비에 쏠렸다. 세계적 모델이자 배우인 킴 카다시안도 위고비(주사)를 맞고 살을 빼 마릴린 먼로의 옛 옷을 입으려 했다는 일화까지 알려지면서 할리우드 스타 사이에서 이 약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기는 점점 일반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주변 호텔보다 숙박료가 5배 비싼 럭셔리 호텔 체인 ‘아만(Aman)’, 한 켤레를 사면 또 다른 한 켤레는 기부되는 신발 ‘탐스’ 등 유명 브랜드들이 초창기에 인기가 높았던 것이 할리우드 스타들 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고비도 이들 덕에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임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이처럼 흥미로운 약을 만든 기업은 어디인가? 바로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다. 덴마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는 2018년만 해도 매출액이 20조 원 정도였다. 물론 이도 적지 않은 규모지만 2023년에는 상반기에만 20조 원을 가뿐히 넘고 올해 40조 원 돌파가 당연시되는 것을 감안하면 위고비 같은 대형 신제품의 등장이 회사 매출의 새로운 변곡점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가파른 매출 증가세는 그대로 주가에 반영돼 주가는 2023년 1월 대비 2023년 9월 40% 폭등했다. 그 결과 노보노디스크는 루이뷔통 모네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에서 가장 시장가치가 높은 기업(약 4200억 달러)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물론 미국 시총 1위인 애플의 시장가치 약 3조 달러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말이다.

당뇨병 치료에 대한 헌신이 가져온 우연

비만 치료제로 일약 스타가 된 만큼 만약 회사 이름을 처음 접했다면 비만 치료제 전문 회사로 오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회사의 주전공은 당뇨병 치료제다. 전 세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4억 명 가까이가 당뇨병 환자다. 위고비는 이 당뇨병을 치료하는 인슐린 시장의 47%를 점하고 있는 절대 강자다. 100년 전만 해도 당뇨병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죽음의 병’으로 불렸다. 진단 후 불과 한 달 만에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노보노디스크는 인슐린을 생산, 유통, 판매함으로써 인류를 이 불치병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당뇨병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병’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어린 당뇨병 환자의 기대수명을 1.3개월에서 45년까지 극적으로 늘렸으니 ‘약만 있으면 병도 아닐 정도’의 혁신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비만 치료제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당뇨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혁신의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노보노디스크는 당뇨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특정 방식의 작용 기전이 혈당 조절뿐만 아니라 체중 감소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체중 감소가 인류 대부분의 관심사라는 점에 착안해 우연히 발견한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심장 치료제로 개발되던 화이자의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가 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제약사들이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는 소극적이어도 탈모 치료제 개발에는 적극적인 이유는 결국 인류 공통의 관심사, 즉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뇨는 당뇨병 환자만의 이야기지만 비만은 그렇지 않다. ‘뚱뚱하면 복부비만, 마르면 내장비만’이란 말처럼 우리 모두의 얘기다. 이렇듯 주전공인 당뇨병 치료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얻은 행운을 노보노디스크는 더 많은 인류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이기도 한 비만 치료제를 상용화하면서 당뇨를 넘어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강자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는 당뇨 치료제의 진화 여정에 따라 함께 진화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가 처음 당뇨병 치료제였던 ‘빅토자(Victoza)’를 출시한 것은 2010년, 같은 성분의 약을 비만 치료제 용도로 승인받은 것은 2014년이다. 이는 ‘삭센다(Saxenda)’라는 브랜드로 2017년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그리고 최근 매출의 견인차가 된 업그레이드 버전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Ozempic)’은 2017년 승인을 받았고, 같은 성분의 비만 치료제인 위고비는 2021년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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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출시된 위고비는 주 1회 맞으면 68주 후 체중이 15%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곧 몸무게가 60㎏인 사람이 주사만으로 약 9㎏(15%)을 감량해 51㎏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능이 이 정도니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혈안이 돼 달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다만 위고비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대용품인 오젬픽마저 품귀 현상을 빚고 정작 오젬픽을 필요로 하는 당뇨병 환자는 치료용 제품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것은 세상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노보노디스크 위고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유일한 경쟁자 일라이 릴리(Eli Lily) 역시 당뇨병 치료 시장의 양대 강자인 회사다. 2023년 11월 FDA로부터 승인을 얻어 낸 일라이 릴리의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Zepbound)’도 당뇨 치료제 ‘마운자로(Mounjaro)’의 용도를 비만 치료로 변경한 제품이다. 이처럼 화이자, 암젠, 리제너론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앞다퉈 발을 담그고 치열한 경쟁이 한창인 비만 치료 시장에서도 기존 당뇨 치료 시장의 양강 구도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은 주전공에 헌신해 온 축적의 힘을 한순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행운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100년의 역사, 인류 공공선을 위한 미션

이에 당뇨병 치료라는 사명에 헌신해 온 회사의 역사를 모르고는 노보노디스크의 성공을 이해할 수 없다. 회사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모세혈관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 교수는 그의 부인인 마리(Marie)로부터 “캐나다에 가서 프레더릭 밴팅 박사를 만나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마리는 의사였지만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당연히 전 세계에서 누가 당뇨병에 관한 특효약을 연구하고 있을지 주시하고 있었고 개의 췌장에서 최초로 인슐린을 발견한 밴팅 박사에 대한 정보를 포착했다. 인슐린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돼 식사 후 올라간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인슐린이 어느 정도는 생산되는 2형 당뇨병 환자는 식사 조절과 운동, 경구용 혈당강하제 복용으로도 대부분 혈당 관리가 가능하지만 몸속에서 인슐린을 전혀 생산하지 못하는 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밴팅 박사는 그의 제자, 동료, 지도교수 등등과 대규모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1922년 그가 당뇨로 죽음이 눈앞에 가까웠던 14살 소년 레오나드에게 인슐린을 투약하자 1형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레오나드의 혈당이 불과 몇 주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인슐린으로 많은 환자를 돕고 싶었던 밴팅 박사는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을 구하겠다며 단돈 1달러 50센트에 인슐린 특허권을 출신 대학인 토론토대에 넘겼다.

1922년 가을, 때마침 미국에서 순회강연을 할 기회를 얻은 크로그 박사와 아내 마리는 밴팅 박사를 만나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인슐린을 생산 및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다. 이 권리를 넘긴 밴팅 박사가 크로그 부부에게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류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하라”는 조건이었다. 이 권리를 가지고 크로그 교수가 덴마크의 유명 과학자인 한스 크리스티안 하게돈과 함께 1923년 ‘북유럽 인슐린 연구소’를 뜻하는 사명으로 설립한 회사가 바로 노보노디스크의 전신인 ‘노디스크 인슐린라보라토리움’이다. 그리고 2년 뒤인 1925년에는 이 회사에서 근무하던 형제인 기술자 하랄드 페데르센과 약사인 토르발드 페데르센이 ‘새로운 치료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노보 테라페우티스크 라보라토리움(이하 노보)’이라는 경쟁사를 창업한다. 어느 산업이든 독점보다는 경쟁이 발전을 촉진하는데 이렇게 반목하고 견제하고 협력하면서 각자 성장하던 두 회사가 1989년 합병해 탄생한 회사가 바로 노보노디스크다.

이렇듯 노보노디스크의 역사를 보면 창업 초기부터 당뇨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회사의 최대 미션이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너 일가를 주축으로 이 미션은 그대로 계승됐다. 노보노디스크의 오늘을 있게 한 탁월한 두 명의 CEO, 매즈 외블리센과 그의 후계자 라르스 쇠렌센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노보를 창업했던 하랄드 페데르센의 외손주사위인 매즈 외블리센은 1989년 노보와 노디스크의 합병을 주도해 노보노디스크를 강력한 회사로 키운 주역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덴마크에서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보노디스크가 1994년 유럽 최초로 환경 리포트를 발간하고, 1999년 유럽 최초로 CSR 리포트를 발간한 것도 그의 진두지휘 아래 이뤄진 일이다. 그는 ‘기업의 존재 의미는 이익을 뛰어넘는 목적(purpose)’이라는 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당뇨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회사가 목적으로 내건 공공의 이익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구했다. 전형적인 오너 사업인 CSR을 실제로 오너 일가가 주축이 돼 밀어붙인 셈이다.

매즈 외블리센은 2000년까지 20년 가까이 CEO를 지낸 뒤 그 자리를 또다시 사위인 라르스 쇠렌센에게 넘겨준다. 1954년생인 쇠뢴센은 코펜하겐 왕립 수의과 농업대학교에서 임업을, 코펜하겐 비즈니스스쿨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한 후 1982년 노보에 입사했다. 그러고는 2000년 11월 노보노디스크의 CEO로 임명돼 2016년 말까지 무려 16년간 CEO로 재직했다. CEO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노보노디스크 지분을 25% 가진 재단 이사회 멤버로서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라르스 쇠렌센 또한 “CSR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여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서 “사회적 이슈가 장기적으로는 재무적 이슈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경영진의 철학은 노보노디스크가 당뇨병, 비만 치료 등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사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실제로 라르스 쇠렌센이 2015년과 2016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이 발표한 ‘최고의 CEO’에 선정되기도 했다. 선정 기준에 ESG(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 같은 비재무 부문이 처음 포함되자마자 직전 해 1위였던 제프 베이조스를 제치고 바로 1위에 올랐다는 것은 라르스 쇠렌센이 단순히 돈만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 문제까지 고루 살피는 모범적인 CEO로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전임 CEO와 회사 전반에 흐르는 경영 철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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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소비자에게 집중해 창출해 낸 블루오션

노보노디스크는 이 CSR을 기업 이익으로 연결시키는 데 있어 특히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최종 사용자인 환자의 필요에 집중함으로써 보편적인 인류에게 도움이 되면서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접점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것이다. 인슐린 시장에 있어 노보노디스크의 성공 사례는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김위찬 교수가 저서 『블루오션』에서 다룰 정도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블루오션을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한 바 있다. 첫 번째는 대안(alternative)이 될 만한 다른 산업을 탐색하는 것, 두 번째는 같은 산업 내 전략 집단을 관찰하는 것, 세 번째는 최종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세 번째의 사례로 등장한 게 노보노디스크다.

사실 지금까지도 의약 분야에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는 의사다. 의사가 A라는 제품을 복용 내지 사용하라고 하면 “왜 A여야 하는지, 왜 B는 안 되는지” 묻는 환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의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신문에 등장하는 리베이트 사건도 의사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다가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당뇨병 치료제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슐린 구매 결정권자가 의사다 보니 인슐린 업체들은 의사를 타깃 구매자로 삼고 그들의 수요에 집중했다. 질 높은 치료제를 원하는 의사들의 요청에 부응해 순도 높은 인슐린 제공에 주력했다.

문제는 1980년 초반 인슐린 정제 기술이 혁신적으로 향상되고 기술적 요소로는 더 이상 차별화가 힘들어지면서부터 생겼다. 기술이 유사해지면서 의사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때 노보노디스크는 의사에게 집중하던 시장 관행에서 벗어나 타깃을 다시 환자로 돌렸다. 그러고는 당뇨병 환자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이들의 수요에 집중했다. 그러자 환자에게 제공되는 인슐린 약병이 오히려 애물단지라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일상에서 인슐린 주입을 위해 몸에 주사를 놓을 때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마약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주사를 놓는 모습이 마치 스스로에게 마약을 투여하는 것처럼 비쳐 공연한 오해를 살 위험이 있었다. 또한 모든 약은 적정량을 투여하지 않으면 자칫 독이 되는데 간호사도 아닌 사람이 스스로 팔을 걷어 올려 주사기를 투여하다 보면 정확한 양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이는 하루에 여러 차례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고 외출 시에도 예외 없이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상당한 난제이자 고역이었다.

이렇게 환자들이 겪는 불편에 주목해 노보노디스크는 인슐린 카트리지가 들어 있는 만년필 모양의 도구인 ‘노보펜(NovoPen)’을 개발했다. 환자가 일주일 치 분량의 인슐린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으면서도, 주사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도 사지 않으며, 눈금을 돌릴 때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 시각장애인 환자도 문제없이 투입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초의 사용자 친화적 인슐린 주입 기구였다. 이후로도 회사는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기에 최적의 제품인 일회용 인슐린 펜 ‘노보렛(NovoLet)’, 내장 메모리를 통해 인슐린 투입을 관리하고 마지막 투여 이후 경과 시간을 보여주는 ‘이노보(Innovo)’ 등의 제품을 출시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환자가 깜빡하고 투입 시간을 놓치는 상황까지 배려한 것이다. 이처럼 노보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를 의사가 아닌 최종소비자, 즉 환자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다른 회사와의 차별화에 성공하고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렇듯 환자 중심 경영은 노보노디스크가 단순한 인슐린 생산 업체를 넘어 당뇨병 관리 및 치료 시장의 절대강자가 되고 블루오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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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2007년 경쟁사들이 환자에게도 더 편리한 알약 형태의 당뇨병 치료제를 내놓고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노보노디스크가 위기를 맞이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알약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특허 만료 이후 가격 하락 등의 문제로 시장이 더 크지 못하면서 노보노디스크의 주입형 인슐린 판매는 여전히 건재하게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성공 역시 현지 환자의 니즈에 집중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례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인슐린이 서구에서 많이 보급된 1980년대에도 중국에서는 여전히 당뇨병이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다. 노보노디스크가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1994년 무렵 이미 중국에서도 도시화 진전, 고열량 식사, 운동 부족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당뇨병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가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당뇨병 치료제 시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노보노디스크가 현지 제약 업체와의 제휴도 고려해봤지만 자금력이나 기술력 측면에서 합작할 만한 회사를 찾을 수 없었고 회사는 결국 이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기 위해 중국에 독자 진출을 결정했다.

아직 당뇨병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치료와 예방의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을 위해 노보노디스크는 시장 교육부터 시작했다. 의사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당뇨병이 무엇인지 알리고, 치료를 위해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만 했다. 아울러 예방을 위해서도 잠재 환자들에게 당뇨병의 위험을 알리는 교육은 필수였다. 이를 위해 노보노디스크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노보케어클럽(Novo care club)’이란 커뮤니티를 만들어 인슐린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식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관리하고 투약 일정을 관리해주기 시작했다. 일종의 치료 파트너로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클럽 멤버가 당뇨병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핫라인을 통해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었다. 또한 회사 추정에 따르면 2016년까지 중국 위생부 및 세계당뇨병재단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약 5만 명이 넘는 의사를 교육했다. ‘당뇨병을 변화시키는 버스(Changing Diabetes Bu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골 구석구석을 버스로 찾아다니면서 현지 의사를 교육했다.

이렇게 노보노디스크는 환자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계몽 활동을 펼침으로써 중국 내 당뇨병 환자들이 제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토양을 구축했다. 이런 진정성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과의 관계 형성에 소극적인 중국 정부 유관 기관 및 중국당뇨병학회와도 긴밀한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국 의료계가 전국적인 진료 가이드라인을 책정할 때도 노보노디스크가 외부 전문가로 참여해 프로그램 수립을 지원했을 정도다. 이런 토양 위에서 회사는 1995년 톈진에 생산 공장을 건립하고, 2002년 베이징에 R&D 센터를 개설하면서 중국 당뇨병 치료제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환자들의 교육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고 중국 내에서 R&D, 생산, 판매를 일체화한 결과 노보노디스크는 신시장이었던 중국에서 60%가 넘는 시장을 점유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노보노디스크의 미래는?

이렇듯 북미뿐 아니라 중국에서까지 당뇨병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노보노디스크는 이제 비만 치료 분야에서도 전 세계시장을 장악하며 도약의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성장세는 가히 엄청나다. 예측 기관에 따라 숫자는 다르지만 CNBC는 2030년 비만 시장 규모를 1000억 달러 수준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비만 인구의 증가, 경구용 치료제 등 향후 탁월한 치료법의 출현 등을 전망의 근거로 삼았다.

노보노디스크가 진출한 중국 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2020년 기준 중국 비만 인구는 2억2000명이며 전체 성인의 50%가 비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중국의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만 해도 2025년 120억 위안을 초과할 것이라는 게 인민일보의 관측이다. 치료법의 진화도 심상치 않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만 했다가 지금은 1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된다. 마치 매일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매일 알약만 먹으면 되는 차세대 제품의 대중화도 머지않았다.

관련 기업들의 동향도 흥미롭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은 비만 관련 질환의 진단, 치료, 관리를 결합한 가상 의료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고, 심지어 비만 치료제 시장에 직접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시장 잠재력이 점점 커지면서 미국의 보험회사들은 비만 치료제를 ‘허영심 마약(vanity drug)’이라 부르며 보험 적용을 거부하고 있다. 이처럼 업종 간, 기업 간 이권 다툼이 더 치열해지는 가운데 선발 주자로서 시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노보노디스크가 당분간 최대 수혜자로서 성장세를 구가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비만 치료제 열풍이라는 반짝 수식어로만 설명하기에 노보노디스크의 경영 행보와 철학은 늘 한결같았다. 치료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올해 2023년 6월에도 ‘비만 예방 사업부’를 설치하며 사후 치료를 넘어 예방을 위한 연구와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막기 위해 비만 치료제를 내놓았듯이 더 궁극적으로 비만까지 예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장 비만 약을 더 많이 팔겠다는 방향이 아니라 사람들이 비만과 당뇨의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삶을 개선하겠다는 방향의 접근이다.

현재 CEO인 라르스 예르겐센에게서도 이런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회사를 안정시키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비즈니스 방식을 단순화하고 있다. 그리고 내부 혁신을 주도하고 새로운 파트너와의 협업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환자와 주주 모두를 위한 장기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은 수익 창출, 환경 및 사회적 책임을 모두 이행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트리플 보텀 라인이라는 원칙에 근거한 기업 운영 방식을 앞으로도 계속 고수할 것이다.” 이런 멋진 사명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미래가 계속해서 궁금해지는 이유다.
  • 신현암 신현암 | 팩토리8 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설렘을 팝니다』 『잉잉? 윈윈!』 등이 있다.
    gowmi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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