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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지역 문제의 새 해법 ‘관계 인구’

정착 인구보다 ‘관계 맺은 이동 인구’
UJI턴, 워케이션, 가치 창업에 초점을

조희정 | 367호 (2023년 0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그간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여러 정책이 쏟아졌다. 주로 지방에 정착하는 ‘정주 인구’를 늘리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역과 다양한 무게,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이동 인구를 늘려 지역의 인구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양한 관계 인구는 UJI턴, 워케이션, 지역에서의 가치 창업 등 다양한 ‘관계 인구’로 활동하며 지역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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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deadcross)’ 현상이 한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2022년 연간 합계 출산율1 은 0.78명이었다. 2018년부터 1명 미만이 돼 감소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2 OECD 국가 중에 출산율 1명 미만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 각종 재정 부담 증가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법적으로 ‘청년’이라고 부르는 19~34세 인구는 대도시권에서 30%대 수준이다. 하지만 조사에 의하면 5%까지 떨어진 지자체도 있었다.

인구문제는 자연적 감소와 사회적 감소로 진행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오로지 자연 증가, 즉 출산율을 늘리는 것에만 집중돼 있다. 어서 결혼해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는 식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우리 지역으로 오라는 일방적인 러브콜식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정주 인구가 아니라 ‘이동 인구’의 관점에서 인구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 ‘이동 인구는 결국 뜨내기일 뿐이라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관점은 잠시 접어두고 이동 인구에게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이 있는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들은 한 달 살기나 워케이션, 지역에서의 가치 창업 등 다양한 ‘관계 인구’로 활동한다. 특히 기업과 스타트업이 주축이 된 워케이션이나 지역 창업, 예술 창작 집단이 주축이 된 목적형 체류는 지역 균형 발전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있다.

한 달 살기와 ‘인 레지던스’

2011년쯤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고향이나 현재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본다는 개념의 체험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3 2010년대 이전에 이러한 ‘한 달 살기’ 앞에 붙던 수식어는 주로 ‘최저 비용으로’ 한 달 살기, ‘인터넷, 스마트폰, 차 없이’ 한 달 살기 등이었다. 즉, 복잡한 고비용의 도시에서 잠시 탈출(exit)한다는 수동적 의미가 강했다.

2011년 포틀랜드에서 창간한 『킨포크』가 표방한 자연친화적 삶과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가치, 힐링, 욜로, 소확행, 워라밸의 의미를 담고 있는 오캄(au calme)4 , 라곰(lagom)5 , 단샤리(斷捨離)6 , 휘게(hygge)7 등의 용어들도 이러한 탈출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한 달 살기는 단지 절약과 결핍의 의미가 아니다. 집에 머물다가 잠시 여행하는 패턴과도 다르다.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며 더 능동적인 경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초기의 한 달 살기는 팍팍한 도시 생활로부터의 탈출, 아름다운 제주 같은 곳에서 힐링하면서 마음의 평화 찾기 등 개인적인 의미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지자체들이 나서서 다양한 지역 체험 아이템을 마련하고 전문가를 불러 모으는 등 보다 적극적이면서 사회적인 의미로 확산되고 있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불러들이는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은 창작 그룹이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 AIR)와 같은 목적형 체류는 예술가가 대체로 한 달 살기보다는 길게 지역에 체류하며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 구현되기 좋은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이 있는 지역 환경 속에서 예술 창작의 배경이 되는 체류 지역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역 주민과 공동 창작을 통해 체류 기간 이후에 지역으로 아예 이주하기도 한다.

지자체들은 출퇴근 시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예술가들을 지역에 초대해 더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지역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가파도를 시작으로 국내에 많은 공공, 민간 AIR이 운영되고 있다. 일본 가미야마 지역에서는 AIR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리되 그 대상을 확장해 예술가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창업가), 셰프, 워크(취업자)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8 AIR은 지역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도록 해 지역 주민과 교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 문화를 풍부하게 한다. 심지어 그 지역에 완전히 정착해 인구 증가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스테이 투어리즘

AIR과 함께 떠오르는 또 다른 움직임은 스테이 투어리즘(Stay Tourism)이다. 보통 여행 계획을 짤 때 1박2일, 2박3일 등의 기간을 정한다. 그리고 숙소와 이동 수단을 선택한다. 그러나 스테이 투어리즘은 더 오랜 시간 머물면서 더 의미 있고 풍부한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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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이 더 확장되면 ‘5도 2촌’처럼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한다는 의미로 아예 두 지역 생활(double local)이 이뤄지기도 한다. 여기에 유목(nomad) 업무 방식을 적용하면 일과 휴식을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워케이션(worcation, work+vacation)도 가능하다.

과거에는 지역을 안다는 것이 여행, 지인 방문, 고향 정도의 의미였다면 요즘 진행되고 있는 한 달 살기, AIR, 스테이 투어리즘 등은 본격적인 지역 문화 소개와 체험 프로그램, 이주·정착으로의 마중물로 기획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어떤 식으로든 지역을 알고 체험할 수 있지만 이들은 직접 지역을 오가며 주민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지역의 물리적 조건과 심리적 조건을 변화시킨다. 오래 머무르는 동안 활발한 교류가 일어난다면 더 많은 지역 사정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삶을 지역에서 바꿀 수 있는 기회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창업이나 지역 활동으로 이어져 결국 이주를 결심하게 될 수도 있다.

‘UJI’턴, 지방으로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226개 시군구와 3501개 읍면동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한다. 남해군이나 동해시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해와 동해를 바다를 가리키는 말로만 이해하거나 어떤 지역이 경남에 있는지 경북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UJI턴 인구’는 이런 상황에서 지방으로의 이주 결심을 직접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3세대 귀농귀촌 인구’인 UJI턴 인구는 지역 창업을 목적으로 이동한 청년층이다. U턴은 고향으로, J턴은 자기 출신 지역이 아닌 지역으로, I턴은 수도권에서 바로 비수도권 지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로 2010년대 초기의 체류 경험을 한 많은 지역의 가치 창업자들은 어디 어디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친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지역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삶을 선택할 용기를 얻어 지역으로 UJI턴 했다고 했다.

이들의 UJI턴 이전에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귀농귀촌의 역사다. 1세대 귀농귀촌은 정규직으로 일한 정년 은퇴 세대의 이주가 주류였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한 후 노후의 건강관리와 삶의 여유를 위해 많은 퇴직금을 가지고 비수도권 지역으로 간 이들이다. 큰 결심을 하고 이주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산골 깊숙이 들어갔다. 하지만 눈이나 비가 많이 오면 이동이 불가능해지고, 갑자기 아프면 병원에 가기도 힘들어져서 그래도 사람이 있는 곳으로 점차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큰돈으로 으리으리한 별장과 같은 집을 지어 울타리를 만들고 지역 주민과 활발한 교류는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귀농귀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22년 농업·농촌 국민 의식 조사’에 의하면 10명 중 4명은 은퇴 후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2세대 귀농귀촌은 ‘지역에서의 삶’을 목적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1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젊다. 이들에게는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사회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여전히 지역에서 단체와 조직을 만들어 활동적으로 지내는 이들은 이제는 그런 문화를 이어갈 사람을 찾고 있다. 즉, 지금의 2세대 귀농귀촌 인구의 최대 과제는 후속 세대 양성이다.

3세대 귀농귀촌 세대로서 ‘U턴’한 사람들은 대개 고등학교 졸업 후 대도시에서 10년 정도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고향으로 간다. 고향으로 돌아온 U턴족은 고향이라는 환경 자체가 익숙하고 고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애착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모나 선대로부터 유지하고 있거나 물려받은 물적 자원도 있고, 선후배 등 인맥도 있다. 고향에 대한 기본 정보와 지식, 경험도 있다. 완전 외부인을 기준으로 보면 주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어쨌든 상당 기간 지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주민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반(semi) 지역민이라고 볼 수 있는 ‘J턴’은 대도시에서만 지낸 사람보다는 로컬 환경에 익숙하다는 면에서 U턴과 비슷하지만 낯선 곳에서 정착한다는 점에서는 I턴과 유사하다. ‘I턴’은 제2의 거주지를 찾는 외지인(주로 대도시 거주자)이다. 이들은 지역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치가 매우 낮은 상태이지만 대도시의 익숙한 터전보다 지역을 과감히 선택한 만큼 (상대적으로) 도전 정신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최근의 UJI턴 인구는 1, 2세대 귀농귀촌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다는 점이다. 은퇴 후에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의 절정기에 지역을 선택한다. 이들은 지역으로의 턴을 선택하며 삶의 속도와 방향을 능동적으로 바꿨다.9

이들의 이주는 두 가지 이유의 복합적인 결과다. 즉, 반사적으로 도시 탈출을 원하는 반응적(reactive) 이유와 사업 목적지와 삶의 거주지를 찾아가는 선제적(proactive) 이유가 그것이다. 어쨌든 이주 과정에서 지역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포착해서 스스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UJI턴한 사람들은 능동적인 새로운 지역 주민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노동 가능성: 워케이션

지역을 길게 체험하는 한 달 살기뿐만 아니라 일과 휴식의 병행을 의미하는 워케이션은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살기’보다 ‘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중이다.10 취준생의 66%는 ‘유연한 근무가 가능한지’가 입사 고려 요인에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는데11 기업 차원에서는 워케이션을 채택하면 더욱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본은 팬데믹 이전부터 침체된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주로 정부 주도로 2017년부터 워케이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와카야마현은 워케이션 전략을 가장 활발히 진행하는 지역으로서 지자체가 중심이 돼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워케이션 시설을 개설하고 지역 호텔들은 지자체가 추진하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위해 호텔 리노베이션, 운영 방식 변경 등으로 협력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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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는 해변에까지 원격 근무가 가능한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또한 지자체 대표 상품으로 워케이션을 내세우고 워케이션 포럼을 개최해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와카야마현의 WWP(Wakayama Workation Project)는 워케이션 참가 목적에 따라 코디네이터와 현 내 각 지자체를 매칭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하와이는 팬데믹으로 관광객이 급감하고 지역사회 우수 인재 유출이 지역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주(州) 정부에서 워케이션 프로그램 ‘무버스 앤드 샤카스(Movers and Shakas)’를 도입했다. 무버스 앤드 샤카스는 귀향한 카마치나(하와이 원주민)를 포함해 재능 있는 인재가 지역에 정착하게 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 미션이다.

참가자들에게 체류 시설 및 업무 수행 시설 이용비를 할인해주고 왕복 항공 티켓과 숙소를 제공한다. 지역 역사, 환경에 대한 학습 욕구나 지역 커뮤니티 참여 의사 등을 심사해 선발한다.

40∼50명 규모로 모집하며 6주간 주 8∼10시간 이상 6개의 지역사회 이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참여 프로그램은 학습, 기여, 교류 3개의 핵심 콘셉트로 구성돼 있으며 참여자들이 하와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고 지역 과제에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워케이션으로 일하는 방식이 지방 인구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규칙적인 출퇴근을 하고, 기업이 장기 휴가나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이상 프리랜서들만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원격 근무가 급속히 확산된 상황에서 엄격한 출퇴근 근무의 당위성이 많이 옅어졌다. 또한 워케이션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면 창업과 커뮤니티 활성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속가능한 워케이션은 기업과 지역 변화에 큰 계기가 될 수 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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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창업

일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일이다. 모두들 지역에 가려면 결국 먹고 사는 문제와 주거 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한 것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여전히 지역에는 다양한 산업과 서비스가 부족하고 판로 개척은커녕 시제품 하나 만들기 위해서도 수도권으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 다양한 창업 지원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중기부), 관광두레(문화부), 넥스트 로컬(서울시), 청년마을(행안부) 사업 등을 통해 지난 5년간 지역 가치 창업이 급증했다.

부문별로는 먹거리에 지역성을 더한 F&B(수제 맥주와 전통주) 산업이나 공간 개조(게스트하우스, 카페, 복합 문화 공간)가 가장 많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부문의 지역 가치 창업이 있다. 지역의 깨끗한 자연 자원 속에서 독창적인 힐링과 웰빙 문화를 선도하거나 폐공간에 숨결을 더해 지역의 명소를 만들기도 한다. 농업 부문의 창농, 데이터와 기술 창업, 콘텐츠 창업, 교육 부문의 산촌 유학, 문화 산업 등도 늘고 있다.

지역이라는 물리적 장소에서 사업을 전개하든, 지역이라는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사업을 전개하든 지역 가치 창업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을 보면 2000년대 벤처 붐은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회형 창업에만 머물렀다. 지금의 지역 가치 창업은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수익 추구와 지역 기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점에 주목해 지역 가치 창업자들을 로컬 벤처(local ventur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로컬 브랜딩과 마케팅이다. 즉, 지역의 매력을 재구성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로컬 브랜딩은 하드웨어 브랜딩과 소프트웨어 브랜딩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랜드마크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정한 딱딱하고 정형화된 슬로건으로 지역의 매력을 발산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공원이나 앵커 스토어를 통한 브랜딩, 서비스와 콘텐츠 브랜딩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 지자체뿐만 아니라 다수의 플레이어가 참여하고 있다. 지역의 새로운 정체성 찾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로컬 마케팅은 지역의 내수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온라인과 글로벌 판로 개척으로 어려움을 돌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컬 창업자들이 시장 형성과 확대라는 양적인 측면의 목적이 아니라 순환 경제 및 적정 경제 구현이라는 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시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역의 모든 자원을 지역에서 낭비하지 않고 선순환하는 것이 바람직한 미래 지역 경제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생활 인구를 넘어 관계 인구로

2023년 1월1일부터 시행되는 인구소멸지역지원특별법에는 지역을 월 1회 이상 방문하는 ‘생활 인구’ 개념이 제시돼 있다. 새로운 인구 개념이 법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앞으로 지역마다 생활 인구 확보 경쟁이 전개될 것이다.

이 개념은 일본에서 2015년 전후로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한 ‘관계 인구’ 개념을 원형으로 한다. 일본 총무성은 2018년부터 지역으로의 유동 인구를 늘려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 궁극적으로 지역에 이주하는 인구를 증가시키고자하는 관계 인구 사업을 진행했다.

관계 인구 개념은 주민 외에 지역에 들고나는 인구 행태가 다양하다는 것에 착안한 개념이다. 특히 업무상의 출장이나 진학, 관광을 포함해 심리적으로 지역에 대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구층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의 특산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하는 사람, 지역에 잠시 체류하는 사람, 지역 행사에서 자원봉사 하는 외지인, 지역에 기부하는 사람, 주말농장을 즐기는 사람, 5도 2촌처럼 두 지역 생활을 하는 사람 모두가 관계 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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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호주나 유럽 등 외국으로 가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워킹 홀리데이’가 최근에는 국내 지역의 일손 부족을 단기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21세기 버전의 농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단지 농촌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단기 노동을 하는 인구도 관계 인구 범위에 포함된다.

관계 인구 개념은 인구 감소·지역 소멸의 시대에 총인구는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자기 지역의 인구를 늘리겠다고 다른 지역의 인구를 빼앗아 오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대신 지역에 관심 갖는 인구와 교류하면서 지역도 바뀌고 지역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지역을 이해하게 되므로 서로 윈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지역이 폐쇄적이다. 사람들이 관심 갖는 지역은 한정돼 있고 인구 감소를 획일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지자체들은 관계 인구 ‘만들기’ 사업을 전개하는 등의 문제가 있긴 하다. 어쨌든 사람은 계속 움직이고 그 움직임 속에 심리적 관계가 형성되면 지역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지역 문제는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지방자치 30년간 지역 재정은 5배 이상 늘었지만 지역별 평균 재정 자립도는 40% 정도에 불과하다. 지역에 대한 대책 없는 낭만론과 근거 없는 비관론, 혹은 지원금 같은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시혜론이나 범위를 엄격하게 한정하려고 하는 행정론이 여전히 팽배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실현하려고 하는 모방론까지 지역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지역을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한정하면 이해의 폭이 줄어들거나 오해의 여지도 있다. 지역이란 행정구역이나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 아닌 ‘역사와 문화적 공통성을 갖는 일정 구역’이며 결국 모두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생활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성급히 지방 소멸을 논하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지역의 상황을 이런 다섯 가지 편견 없이 제대로 바라봤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대도시든 비수도권이든 제대로 된 인구문제에 접근하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그저 편의적인 5개년 계획 같은 것이 아니라 관계의 축적이 이뤄져 그것이 새로운 업무 방식과 일자리를 만들고, 창업이나 사업이 되고, 좀 더 풍성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한 달 살기, UJI턴, 워케이션, 지역 가치 창업, 관계 인구 등은 오늘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한 달 살고 휙 떠나면 그만, 워케이션 잠깐 하면 그만인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가운데에는 지속적으로 주민과 관계 맺고 끊임없이 그 지역을 좋아하며 새로운 경험과 관계에 열광하는 적극적인 플레이어들이 잠재해 있다. 즉, 무조건 오래, 무조건 깊이가 아니라 스며들 듯이 공감하는 시간과 관계의 화학작용이 진행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고 싶은, 가능성 있는 지역 만들기

지역 체류·이주·노동·창업·관계 부문에서 다른 결을 보이는 한 달 살기, UJI턴, 워케이션, 지역 가치 창업, 관계 인구에서 중요한 것은 ‘살기’ ‘턴’ ‘지역 가치’ ‘관계’이다. 이러한 요소는 인구의 사회적 증가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가치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 없이 정부 지원만 늘린다면 자칫 잘못하면 상하관계 구조만 더 공고해질 수 있다. 돈 받고 온 사람은 돈 떨어지면 떠난다는 것은 상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위적인 인구 ‘만들기’ 개념은 피해야 한다.

흔히 사회적 감소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청년 유출을 막는 대책을 인위적이고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청년은 국내외 어디로든 많이 나가는 게 본인의 삶에 더 큰 도움이 된다. 많이 보고 느끼는 것도 인생의 성장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의 유출을 무조건 막는 것보다는 기왕이면 청년이 돌아오고 싶은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더 맞다. 그런 지역이 되면 청년이 아니라 누구라도 살고 싶은 곳이 될 것이고, 살고 싶은 곳에 기쁜 마음으로 머물러야 출산율이 올라가든 몸이 건강해져서 더 오래 살든 할 것이다.

지역의 바람직한 상태는 사는 사람이든 방문자든 지역에 사람이 있어야 하며, 좋은 주거지·학교·교육이 있고, 다양한 일 방식과 일자리가 있으며, 지역의 부와 자원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하며, 관계가 풍부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저 인구만 늘리면 그만인 상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생활하는 모두가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고 느끼는 것이 인구문제 해결의 목표가 돼야 한다.

많은 연구자와 정부 부처, 지자체들이 인구문제에 대응하는 연구와 정책을 펴고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관계 인구가 새로운 개념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긴 어렵다. 실제 거주하는 인구나 한 번만 들르는 뜨내기 인구 외에 다른 형태의 인구가 생태계에 스며들면서 지역의 팍팍한 구조에 숨구멍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구문제 대응 주체들은 이러한 변화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다르게 살기, 협력하며 살기를 좀 더 풍부하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주민과 이주자, 그리고 자주 오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고 지역 환경 자체가 좋아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돼야 할 것이다.
  • 조희정 | 더가능연구소 연구실장

    필자는 서강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근무했다. 현재 서강대 SSK지역재생 연구팀 전임연구원이자 로컬과 청년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더가능연구소의 연구실장이다. 주요 연구 관심은 ‘지역재생의 정치 경제적 조건’이며 『마을의 진화』 『인구의 진화』 『마을 만들기 환상』 등을 공동 번역했고, 『제3의 창업시대』 『로컬의 진화』 등을 공동 집필했다.
    chohee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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