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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6. 반도체 시장 주도하는 대만 ‘TSMC’

기술 넘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모범
‘고객과 경쟁 않는’ 조용한 승자의 법칙

권석준 | 359호 (2022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반도체 업계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TSMC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세대가 다양한 생산 라인을 동시에 가동해 영업이익률을 극대화하고, 그 수익을 R&D에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구축했다.

2. 디자인하우스로 불리는 가치사슬협력자(VCA)를 매개로 고객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맞춤형 공정을 설계하고 제공함으로써 공정 기술력과 노하우를 구축하고, 다른 회사들이 넘볼 수 없는 신뢰 자산을 쌓았다.

3. 공정 기술에만 매진하지 않고 소재부터 소자, 부품부터 장비까지 반도체 제조의 생태계를 아우르며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이를 토대로 고객사에 대한 종합적인 반도체 제조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파운드리 업계에서의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2022년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시장 지배력은 압도적이었다. 2022년 3분기 기준, TSMC는 매출액 207억 달러와 수익 88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한 수치다. TSMC의 영업이익률은 40%를 상회하는데 이는 반도체 업계에서도 제일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1 시장을 절반 이상 점유(2021년 기준 시장점유율 53.5%)하고 있는 1위 업체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가 가진 점유율(2021년 기준 점유율 16.5%)의 3배 이상에 달한다. TSMC가 삼성전자나 미국의 인텔 같은 종합 반도체 회사(IDM)가 아니라 파운드리에만 집중하면서도 높은 매출액과 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이처럼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앞으로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기록하며 독점에 가까운 위치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파운드리 강자의 자리를 공고히 한 TSMC의 시장 지배 전략을 공정 기술력, 고객과의 파트너십,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 등의 측면에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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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두의 공정 기술력

첨단 반도체 칩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선단(첨단, advanced) 공정 기술인 10나노미터(nm) 이하급 초미세 패터닝(patterning) 기술에서 TSMC는 최선두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 TSMC의 매출 및 수익 전략이 고부가가치 파운드리, 즉 5, 7나노 공정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2년 3분기 기준, 5, 7나노 공정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40% 이하지만 이 두 공정에서 올린 수익은 60%에 육박했다. 이러한 경향은 2023년 이후 5나노급 이하 공정으로의 이동이 빨라지면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특히 3나노 다음 영역인 2나노 공정2 은 현재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3 생산 위주로 팹(fab)4 이 구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업체인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의 차세대 HPC(고성능 컴퓨터)용 CPU 제조 물량이 2023년 상반기부터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TSMC의 시장에서의 지배력은 모바일과 HPC 양쪽에서도 2025년 이후 확장될 것이다.

2022년 상반기 기준, 테크노드(Tech-node)5 5나노급 반도체칩 양산이 최신 공정 기술이지만 향후 2∼3년 동안 3나노(2023년 상반기), 2나노급 공정(2024년 하반기)에 대해서도 TSMC의 로드맵은 가장 앞서 있다. TSMC의 기술력은 경쟁자들에 대해 진입 장벽을 구축함으로써 외부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TSMC는 2019년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기술-무역 제재 기조에 발맞춰 지난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120억 달러 규모의 5나노 팹을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최근 애리조나주 피닉스 TSMC 공장의 장비 반입식에서 당초 계획보다 3배 늘린 4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선행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고 양산 기술을 선보이며 그에 맞춰 세대교체를 거듭하면서도 안정적인 원가와 강력한 성능의 칩 제조 능력을 지키고 있기에 많은 팹리스 업체는 TSMC를 기준으로 칩을 설계할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는 또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글로벌 순이익 80% 이상을 점유하는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 자사의 모바일 칩과 노트북에 들어가는 애플 실리콘 제조를 2018년 이후 오로지 TSMC에만 위탁하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TSMC의 가장 큰 고객은 다름 아닌 애플이다. 2021년 기준, 애플의 공정 주문량은 TSMC 매출 전체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TSMC는 2018년 대만 남부 타이난시 사이언스파크에 약 400억 달러 규모로 건설한 신규 반도체 생산 라인의 대부분을 애플의 주문 물량 대응에 배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 공장은 애플의 아이폰에 장착될 A14 같은 AP칩에 적용할 테크노드 5나노 이하급 칩을 독점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TSMC는 타이난 공장에서 2023년, 3나노급 차세대 아이폰용 AP칩과 맥북용 M2칩을 동시에 양산해 3나노급 초미세 패터닝 공정에서의 양산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2022년, TSMC는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둔화와 비용 상승의 이유를 들어 애플에 생산 단가 인상을 통보했다. 양보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애플도 TSMC가 가진 독특한 위상 때문에 이 인상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TSMC가 갖는 경쟁력과 대체 불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렇게 TSMC는 업계 1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R&D 투자 비중을 높이면서 고객사 서비스 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 생산 수율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익률을 높이고 있다.

후발 주자 격인 삼성전자는 기술적인 면에서는 결코 TSMC에 뒤진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7월 테크노드 3나노급 공정을 통한 고객사 칩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GAAFET(Gate-All-Around FET)6 이나 BSPDN(Back Side Power Delivery Network)7 과 같은 새로운 구조를 갖는 반도체 칩의 생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TSMC에 비해 생산할 수 있는 칩의 종류가 제한돼 있고 무엇보다도 TSMC만큼의 고객 생태계가 깊고 넓게 형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대일로 경쟁하기에는 여전히 벅찬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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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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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의 성공은 창업주이자 전 회장인 모리스 창(Morris Chang, 장중머우, 張忠謀)의 공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931년생인 창 전 회장은 미국 MIT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통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TSMC를 창업하기 전에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TI)의 반도체 기술 개발 부서에서 1958년부터 1983년까지 25년간 근무했으며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7년 대만으로 귀국한 당시 이미 환갑에 가까웠던 창 전 회장은 반도체 대기업의 고위 임원 제의를 마다하며 TSMC라는 신생 업체를 설립한다. 이후 2018년까지 회장으로 30년 이상 재직하며 TSMC를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파운드리 회사로 키워내면서 대만 반도체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됐다. 그가 세운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과 파운드리에만 집중하는 전략이 오늘날 TSMC를 만든 핵심 가치로 꼽힌다.

고객과의 파트너십, 그 이상의 신뢰 관계

TSMC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부문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이다. 이는 TSMC가 35년 넘게 고수해 온 비즈니스 전략과도 연관돼 있다. TSMC의 사훈이자 전략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이다. 즉, 철저하게 반도체 사업 부문에서도 파운드리에만 집중해 전 세계 주요 팹리스(fabless)8 고객사들이 신뢰하고 제품을 맡길 수 있는, 그렇지만 대체하기 거의 불가능한, 이른바 ‘슈퍼 을’로서의 포지션을 지향한다. 팹리스 업체들이 아무리 좋은 성능의 칩을 설계해도 결국 끝단에서는 이를 하드웨어 레벨에서 생산하는 것이 관건인 데 그 끝판왕으로서 TSMC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TSMC는 삼성전자나 미국의 인텔 같은 종합 반도체 회사(IDM)가 아니기 때문에 모바일 AP칩부터 노트북용 CPU까지, 또한 인공지능용 GPU부터 자율주행차용 반도체까지 다양한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들과 협력할 수 있다. 특히 그 협력은 각 팹리스 회사에 맞게 맞춤형 공정을 설계, 제공함으로써 더 탄탄해졌다. TSMC가 팹리스 회사의 설계에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팹리스 회사들이 TSMC의 공정을 고려해 아예 칩의 설계 초기부터 제품의 스펙을 조정할 정도다. 물론 TSMC 자체적으로도 다변화되는 팹리스 업체들의 요구 조건에 맞춰 자사의 공정과 기술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를 한다. 2010년대 이후, TSMC는 맞춤형 파운드리 공정을 위해 선행 공정 개발은 물론 양산형 공정에 대해서도 품질 향상을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정 원가 절감 노하우 축적은 물론 잠재적 고객들에 대해 어필할 수 있는 기술력 실증 효과도 동시에 거둔다. 이는 다시 TSMC로 하여금 시장 지배력을 보존하거나 확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팹리스 업계의 가장 큰손인 애플과의 오랜 파트너십은 물론, 퀄컴이나 구글의 AP칩, NPU칩, AMD의 CPU, 엔비디아(NVIDIA)의 GPU 등 다양한 반도체 칩 생산 주문 물량 대부분이 TSMC로 쏠리고 있다. 이러한 팹리스 고객들이 위탁하는 칩 생산은 반드시 최신 공정을 통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팹리스 회사에서도 5나노급 이하의 공정과 12나노급 레거시 공정을 각각 요구하며 서로 다른 종류의 칩 생산을 동시다발적으로 위탁할 수 있다. 실제로 TSMC는 심자외선(DUV) 노광 공정 기반 7나노 공정을 통해 애플의 AP, AMD의 CPU 중에서도 중저가 칩 생산을,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 기반 5나노 이하급 공정을 통해서는 애플, 구글, 인텔, AMD, NVIDIA의 고가 칩 생산을 분리해 생산하고 있다. TSMC의 전략은 이처럼 세대가 다양한 생산 라인을 동시에 가동시켜 영업이익률을 극대화하고, 이로부터 창출되는 수익을 다시 차세대 공정에 대한 선행 기술 개발, 그리고 양산 수율 강화를 위한 R&D에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에 기초를 둔다.

실제로 TSMC는 2021년 기준, 5나노 공정 양산, 3나노 공정 개발, 2나노 공정 기술 탐색 등에 150억 달러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했다. 특히 3나노 공정 개발을 위해 연간 4000명이 넘는 설계 및 공정 엔지니어를 추가로 고용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TSMC가 3나노 이하급 공정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한 자릿수 나노 공정에서 생산되는 칩의 단가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TSMC의 전체 파운드리 공정 중 7나노 공정 출하 비중은 2021년 기준 1분기 22%, 2분기 21%, 3분기 27%, 4분기 35%로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 이는 TSMC가 중요시하는 요소가 바로 영업이익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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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과의 연결 고리, ‘디자인하우스’

TSMC가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은 무엇일까? TSMC는 2000년대부터 글로벌 고객사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른바 ‘가치사슬협력자(Value Chain Aggregator, VCA)’라는 가교 역할을 할 회사들과 적극 협력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VCA를 TSMC의 디자인하우스(Design House)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팹리스 회사들이 특정한 기능을 하는 반도체칩을 설계하면 VCA는 그것을 실제로 제조하기 위한 공정 조건 설정부터 마스크 설계나 소요 개수, 노광 스펙 등의 종합 설계 솔루션을 제공한다. VCA가 레서피를 준비하면 TSMC는 레서피대로 제조를 하고 품질 테스트 이후 양산에 돌입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VCA 회사로 유럽의 IMEC, 북미 지역에서는 알칩(Alchip), 오픈실리콘(Open-silicon), 글로벌유니칩(GUC), 아시아 지역에서는 에이직랜드(Asicland), 토판(Toppan) 등이 있다. 이 중 글로벌유니칩은 TSMC가 직접 출자한 회사이자 가장 매출액이 큰 회사(2021년 기준 시가총액 20억 달러)이다.

VCA는 팹리스 회사들이 어떤 설계 자산(IP)을 가지고 칩을 설계하든 그것을 TSMC의 현행 혹은 양산 예정 공정의 스펙에 맞춰 필요한 레서피를 만든다. 레서피를 만드는 과정은 팹리스 업체의 소자 설계도면(Front-end design)을 바탕으로 이를 다시 제조용 설계도면으로 변환하고, 그 과정에서 칩의 레이아웃(Layout)과 백엔드디자인(Back-end design)이 이뤄진다. 따라서 VCA들은 공정에 대한 디테일과 팹리스 고객사의 설계 도구인 전자설계자동화(EDA) 툴(tool)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TSMC는 VCA를 통해서 팹리스 업체들이 요구하는 상세 스펙의 칩을 제조하기 위한 공정을 최적화하고, 생산 스케줄에 맞춰 소재와 장비 수급 계획을 조정한다. TSMC는 VCA들에 기업 비밀에 해당할 수도 있는 자사의 공정 스펙을, 팹리스 회사들은 VCA들에 자사의 설계 요소를 미리 알려줘야 하므로 상호 간, 삼자 간 신뢰 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TSMC가 VCA를 통해 고객사의 까다로운 스펙을 맞추기 위해 다소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제조에 필요한 소재 단가가 올라도 그것을 공정 비용에 곧바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또한 TSMC는 자사의 IP를 활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고객사의 설계 IP에 맞춰 공정 IP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애플이 2020년 말부터 맥북 에어, 맥 미니, 맥북 프로 제품군에 탑재한 M 시리즈 단일 칩 체제(SoC, System on Chip)인 애플 실리콘이 삼성전자를 탈피해 TSMC에서 위탁 생산되기 시작하던 2017년 이후에 TSMC는 기존 공정 노하우를 활용하기 어려웠다.9 M1칩은 기존의 SoC 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ARM RISC 명령어세트 기반으로 설계됐을뿐더러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비중이 다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칩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무엇보다 저전력 구동 성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 모든 프로세서 부품이 메모리를 공유하는 구성을 채택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는 그간 메모리 레이아웃을 따로 설계한 칩을 주로 제조해 온 TSMC 관점에선 기술적 난제였다. 요구 성능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7나노 공정으로는 불충분했고, 5나노 공정이 필요했다. 특히 저전력 구동을 위해 명령어 캐시(cache) 파트가 칩 내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늘렸는데 이 과정에서 5나노 공정 수율이 낮게 나오면서 TSMC는 공정 비용의 손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펙에 맞춘 생산 공정을 최적화함으로써 TSMC는 애플의 신뢰를 얻었고, 이는 애플이 TSMC를 장기적 파트너로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반도체 종합 솔루션 회사로 발전

TSMC는 단순히 위탁 제조 업체로서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시스템 반도체 칩의 성능 조건이 다양화되면서 TSMC의 공정 노하우가 더욱 인정받고 있다. 고객사의 칩 설계 오류를 사전에 수정하거나 더 최적화된 설계를 제안하기도 한다. 실제로 TSMC는 10나노 이하 핀펫(FinFET) 기반 SoC 제조 공정 노하우를 활용해 전력반도체부터 이미지센서, 메모리반도체부터 신경망처리장치(NPU)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SoC 성능 최적화 솔루션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즉, 공정뿐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더 나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TSMC는 이러한 솔루션 노하우를 고객사의 엔지니어와 일일이 상의하면서 진행한다는 사실이다. 즉, 실제 공정 구현 단계에서 잠재적 문제나 저효율 요소가 발견되면 그것에 대한 솔루션 제공에 적극 나선다. 애플의 A13 칩 제조 공정에서 이러한 TSMC 의 솔루션은 빛을 발했다. 이를 통해 성능 요구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은 자사의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는 물론 차세대 맥 PC에도 들어갈 M1칩 등의 애플 실리콘 생산을 기존의 인텔에서 TSMC로 바꿔 위탁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TSMC의 또 다른 시장 지배 전략은 고객사들에 다양한 칩 구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SMC는 2022년 9월, NVIDIA와 협력해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 칩을 개발할 것임을 발표했는데 이는 차세대 GPU의 칩 구성에서 드디어 전자 대신 광자를 본격적으로 신호 전송/처리 수단으로 이용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행보였다. TSMC는 이를 위해 전 공정뿐만 아니라 포토닉스 칩과 기존의 실리콘 칩을 합칠 수 있는 후공정 기술인 패키징을 선도하고 있다. 이는 포토닉스 기반 칩으로의 기술 표준 확대 및 고객사에 대한 옵션 범위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TSMC는 공정뿐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칩을 위한 소재에서도 다양한 후보군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TSMC와 협력하고 있는 반도체 소재사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저유전율(low-K) 절연막과 관련해 TSMC는 소재 기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능을 위한 소재 스펙을 설계해 이를 기반으로 협력사들이 소재를 합성하고 테스트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소재 조성과 처리 방식은 기업 비밀로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며, 오로지 특정 기능 칩을 주문한 팹리스 업체에만 공급돼 공정에 활용된다. 이는 TSMC가 2022년 들어 3나노 공정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전용 포토레지스트(PR) 소재에도 해당되는 전략이다. 이렇듯 TSMC는 단순히 파운드리 시장의 지배력을 위해 공정 기술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부터 소자, 부품부터 장비까지 반도체 제조의 생태계를 아우르며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고객사에 대한 종합적인 반도체 제조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지배력을 공고히 한다.

TSMC가 직면한 도전과 응전

물론 TSMC에도 불확실 요소는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로 인해 TSMC에서 중국의 통신회사이자 AP칩 회사인 화웨이의 CPU와 AP인 기린 990, 티엔강, 쿤펑 등의 칩 위탁 제조가 중단됐다. 또 하이실리콘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팹리스 업체(화웨이의 자회사)들의 신규 주문은 모두 취소됐다. TSMC 입장에서는 미국에 버금가는 큰 시장을 잃게 된 셈이므로 고객사 생태계를 재구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TSMC는 이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재편으로 해석하고, 오히려 미국으로의 투자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TSMC의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될 제품의 주요 예상 고객은 북미 IT 기업인 NVIDIA와 애플이다. TSMC는 2024년까지 후속 차세대 나노 공정으로서 2나노 공정 기술을 양산 단계로 진입시킨다는 계획이며, 이 역시 애플의 차세대 AP칩 생산을 타깃으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TSMC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약 40여 년의 긴 업력 속에서도 꾸준히 기술 개발과 고객 가치 창출이라는 초기의 경로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러한 TSMC의 비즈니스 모델은 TSMC 외에도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코퍼레이션(UMC), 파워칩(Powerchip), 뱅가드국제반도체그룹(VIS), 에피실(Episil) 같은 중소 파운드리 산업이 대만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면서 하나의 거대한 파운드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 그래서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의 글로벌 점유율이 계속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대만 입장에서 TSMC를 필두로 하는 파운드리 산업은 이제 국가 기간 산업이자 핵심 전략 산업이기도 하다. 향후 더욱 다양해진 팹리스 업체의 칩 성능 요구 조건과 높아지는 제조 공정의 기술적 난도에 대응하기 위해 TSMC는 이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다져가며 선행/양산 기술로부터 얻는 가치를 극대화해 나갈 것이다. 전략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과 핵심 전략 산업으로 반도체 산업의 가치 극대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 또한 이러한 TSMC의 시장 지배력 유지 비결과 성공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sjoonkwon@skku.edu
필자는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MIT 화학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첨단소재연구본부 선임, 책임연구원을 지냈으며 반도체 신소재와 차세대 반도체용 나노 및 포토닉스 소자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반도체 삼국지』(뿌리와이파리, 202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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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반격과 EUV 장비 확보 경쟁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2010년경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파운드리는 대부분 자사의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에 들어가는 모바일 AP칩 엑시노스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며 그나마도 대부분 디램(DRAM) 생산 라인과 설비를 공유했다. 그러나 2017년 시스템 반도체 부문으로부터 파운드리 사업 부문이 분리된 이후, 삼성은 파운드리 사업으로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에서 쌓은 미세 공정의 원가 절감과 오랜 공정 노하우를 살려 1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만에 파운드리 분야에서 매출액 규모 세계 2위로 올라섰다.

2020년대 이후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파운드리 생태계 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TSMC처럼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 사업 부문이 독립적인 법인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계이다. 파운드리 업계 점유율 2위인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 TSMC와는 달리 반도체를 제조하는 동시에 설계도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다. 경쟁 업체인 미국의 AMD, 인텔, 퀄컴, 애플 등이 동시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고객사가 되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해 분사가 필요불가결해 보였으나 당분간 그럴 계획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리즈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되는 AP인 엑시노스 시리즈를 생산하기도 하는데 이는 애플의 AP인 A 시리즈, 퀄컴의 모바일 AP인 스냅드래곤 시리즈와 시장이 겹친다. 경쟁 업체에 자사의 설계 기술이 노출될 수 있고, 특히 초미세 공정 부분에서 특허로는 공개되지 않는 성능 개선 노하우가 넘어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사의 차세대 칩 생산을 삼성전자에 위탁할 업체는 많지 않다. 미국 퀄컴의 경우, 최신 세대가 아닌 구세대 AP를 간혹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위탁하기도 하나 그것은 이미 충분히 스펙이 알려진 상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다.

삼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행 기술과 양산 기술, 양산 규모 면에서 경쟁력을 먼저 갖추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2018년 2월, 삼성전자는 경기도 화성에 7조 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전용 EUV 라인 건설에 착수했다. 곧이어 3나노 공정 기술을 공개했으며 같은 해 10월, 7나노 공정 개발을 발표했다. 2019년 상반기에는 고객사를 위해 3나노 공정 설계 도구를 제공한다고 발표했으며 같은 시기, 화성 팹에 설치한 S3 라인에서 업계 최초로 EUV 기반 7나노 공정 기반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삼성전자는 8조∼9조 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평택 캠퍼스에 EUV 기반 파운드리 라인을 신설(평택 팹 V2 라인)해 2023년 이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삼성의 파운드리 생산라인은 기흥 팹(2개), 화성 팹(3개), 오스틴 팹(1개) 등 총 6개이며 2023년부터 평택 팹이 추가됨으로써 7개의 파운드리 라인을 보유하게 된다. 현재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인력 규모는 1만4000명 수준이며 매년 신규 채용하는 엔지니어 인력 규모는 수백 명에 달한다. TSMC의 사업 확대에 대응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 부문에서 향후 4∼5년간 최대 5000명 안팎을 신규 채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 시장의 점유율 확보를 위해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삼성전자에 맞선 TSMC의 대응도 발 빠르다. TSMC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독점 공급 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에 2022년까지 EUV 장비 50대의 구매를 추가로 요청했고, 2023년부터는 한층 더 성능이 강화된 0.55NA급의 EUV를 추가로 주문한 상태다. TSMC는 현재 90∼100대 규모의 EUV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EUV 장비의 70%에 달하는 규모다. 2018년에 업계 최초로 EUV를 10나노 이하급 양산 공정에 도입한 삼성은 2022년 상반기 기준, 40대 안팎의 EUV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2년에 신규 발주한 규모는 10대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23년 이후 도입할 0.55NA급의 EUV 역시 TSMC의 3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TSMC와 삼성의 EUV 보유 대수 격차는 현재 100대와 40대에서 앞으로 140대와 55대로 더 벌어지게 된다.

현재로서는 EUV 장비 없이는 5나노급 이하 공정에서 경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분간 파운드리 점유율은 양사가 ASML로부터 얼마나 많은 EUV, 특히 0.55NA급 차세대 EUV를 확보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텔이 2022년 이후 ASML의 차세대 EUV 노광기인 0.55NA급 EUV를 입도선매하다시피 하려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텔이 2025년 이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등장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인텔이 EUV 노광기를 충분히 확보한다면 2020년대 후반의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시장은 삼파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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