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기업교육 문의
페이지 맨 위로 이동
검색버튼 메뉴버튼

이해관계자 경영 인사이트

공급망 불안 시대엔 효율보다 회복탄력성
주주·고객 요구 반영하고 이사회가 조정을

이돈희,정리=최호진 | 449호 (2026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21년 팬데믹발 공급망 붕괴 이후 기후변화, 전쟁, 관세 전쟁, 이해관계자 압박까지 겹치며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상시화되고 있다. 공급망 충격의 피해는 주주·고객·공급업체·구성원·지역사회·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만큼 공급망 재설계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균형 있게 반영하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먼저 품질·납기·혁신을 따로 보지 말고 고객 가치로 통합해 설계하는 동시에 디지털 전환으로 원가 효율을 높이면서도 생산 거점을 분산해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회복탄력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또한 ESG와 투명성을 공급망 전반에 내재화해야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 즉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공급망 핵심성과지표(KPI)를 재무 KPI와 동등하게 관리하고 CEO와 이사회가 직접 이해관계자 가치를 조정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갖출 때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



ms2_1


기후변화, 국가 간 무역 마찰, 보호무역의 부활, 전쟁, 이해관계자 압박 증대, 지속가능성 규제, 공급망 실사법 등 비즈니스 환경이 불확실성의 연속선상에 놓이면서 공급망 리스크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 Global Banking & Finance Review에 따르면 공급망 교란은 전 세계 기업에 매년 약 1840억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산됐다. 또한 맥킨지는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공급망 단절이 평균 3.7년마다 발생하며 10년에 걸쳐 보면 단일 대형 충격만으로도 기업이 한 해 이익(EBITDA)의 최대 42~45%를 잃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불확실성의 원인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 기후변화 관점이다. 2025년만 해도 극단적 기후가 2017년 이래 처음으로 공급망 단절의 최대 원인으로 제기됐다. 둘째, 무역 마찰과 보호무역 관점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1930년대 스무트-홀리 관세법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미·중 교역은 2025년 한 해에만 약 30% 감소했다. 셋째, 전쟁과 지정학 관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2026년 이란-미국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에너지 공급선 자체를 군사적 충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넷째, 이해관계자와 지속가능성 규제 관점이다. EU 공급망 실사지침(CSDDD),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ESG 요구가 공급망을 비용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시장 접근’ 관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역사적으로 위기는 평온의 가면을 쓰고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오며 정치·경제·기후·안전·보건은 서로 분리된 리스크가 아닌 서로를 증폭시키는 복합적 리스크로 작용했다. 만약 그 시기에 대체 경로와 비축, 분산된 공급망 같은 공급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충격의 상당 부분은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공급망이 마주한 다중 충격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변수다. 효율성에만 얽매이지 말고 이를 가치 창출의 기회로 삼아 취약성을 분석하고 평가해 이해관계자 간 협력 기반의 리스크 대응 역량을 확보하고,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회복탄력적 공급망 구조를 사전에 설계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전쟁·관세를 통해 본 공급망 리스크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르네사스 등 핵심 부품사 공장이 멈추면서 도요타가 이전 생산 수준을 회복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 2021년에는 에버기븐호 좌초로 수에즈 운하가 6일간 막히며 아시아-유럽 간 물류가 큰 차질을 빚었다.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단일 지점의 단절만으로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1. 단일 의존과 가시성의 한계

미국 기업정보 분석업체 Dun & Bradstreet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포천 1000대 기업의 94%가 공급망 차질을 겪었고 핵심 원인은 단일 공급원 의존과 다단계 가시성의 부재로 분석됐다. 도요타의 적기생산(Just-in-Time) 방식은 평소에는 재고를 최소화하는 효율적 시스템이지만 공급이 한 지점에서 막히면 그 충격이 곧바로 전체 라인으로 번지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부품사 고지마산업(Kojima Industries)이 사이버공격을 받자 도요타는 일본 내 14개 공장, 28개 라인이 가동을 멈췄고 약 1만3000대의 생산 차질과 약 3억75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듬해인 2023년 8월에는 발주 시스템 장애로 다시 14개 공장이 멈췄다. 맥킨지의 2025년 공급망 리더 서베이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은 여전히 1차 협력사(Tier 1)까지만 리스크를 파악하고 있으며 2차 이하 협력사에 대한 리스크 인지 역량은 2023~2024년 오히려 후퇴해 아직 202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팬데믹은 단일 공급원 의존과 다단계 가시성의 부재가 결합될 때 작은 단절 하나가 전체 공급망을 멈춰 세워 구조적 불확실성이 증폭됨을 보여줬다. 기업은 핵심 부품의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2차·3차 협력사까지 시스템을 통해 가시성을 확보하며 재고·정보·계획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2. 전쟁과 지정학적 요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원의 지리적 병목이 곧 전략적 약점이 됨을 보여줬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수적인 네온은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공급의 약 70%를, 크립톤은 약 40%를 차지하는데 전쟁으로 이 공급원이 흔들리자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전반이 위협받았다. 전쟁과 지정학적 충돌은 특정 자원·경로에 대한 집중 의존을 상시적 불확실성으로 바꿔 놓았다. 충격의 원인이 시장이 아닌 국가 간 갈등에서 발생하다 보니 가격이나 재고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고 예측도 어렵다. 따라서 공급선을 한두 곳 늘리는 소극적 전략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핵심 자원에 대한 대외 투자와 전략 비축, 우방국과의 공동 조달 등 공급망 자체를 재설계해 대비해야 한다.

3. 관세, 비용을 넘어선 공급망 구조 재설계

트럼프 2기의 관세는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니라 공급망 구조 자체의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미·중 교역은 약 30% 감소했고 약 1650억 달러 규모의 교역이 미·중 교역 중심에서 베트남·폴란드·멕시코·인도네시아 같은 커넥터(connector) 경제로 이동했다. 한국의 경우 2025년 7월 미국과 상호관세 15%로 합의했다. 자동차·부품 관세는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조선(1500억 달러)과 반도체·원전·이차전지·바이오 등(2000억 달러)에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1000억 달러의 에너지 구매에도 합의했다. 다만 이 합의의 토대였던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 기반 상호관세는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무효로 판결돼1 모든 IEEPA 관세가 2월 24일부로 종료됐다. 힘에 의한 합의가 법원 판결과 행정부의 권한 교체에 따라 다시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관세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리스크인지를 보여준다.

관세 정책으로 촉발된 공급망 리스크의 본질은 국가라는 이해관계자가 공급망 의사결정의 한복판으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관세는 시장 변수가 아니라 정책·외교의 결과이기 때문에 방향과 강도를 예측하기 어렵고 단가를 흡수하거나 가격에 전가하는 비용 관리만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다. 더구나 동맹국에도 자국 중심의 생산 기지 재배치와 투자 유치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공급망 전략은 이제 외교·안보 전략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기업은 관세를 일시적 비용 충격이 아니라 상시적 정책 리스크로 인식하고 생산 기지의 지역 분산(regionalization)과 우방국 중심 조달(friend-shoring), 정부 정책과 연계한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4. 공급망의 구조적 특성

외부 충격뿐만 아니라 공급망 자체의 구조적 특성도 리스크를 키운다. 채찍효과가 대표적이다. 채찍효과란 최종 소비자의 작은 수요 변동이 공급망의 상위 단계(상류)로 올라갈수록 정보가 왜곡·증폭돼 주문·재고의 변동 폭이 점점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채찍효과는 외부에서 큰 충격이 오지 않더라도 공급망 구조 자체만으로 불확실성을 만들어 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보가 단계마다 단절되고 각 주체가 자사의 관점에 의존하는 한 작은 변동도 상류로 갈수록 증폭돼 내생적 리스크로 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왜곡을 줄이려면 계획과 정보 공유, 전 구간의 가시성 확보, VMI(공급자 주도 재고 관리)·AI 기반 수요 예측·블록체인 같은 기술적 수단을 활용해 채찍효과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한다.


공급망 경쟁 차원과 재설계

그렇다면 다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공급망 경쟁력은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 데이비드 심치-레비 MIT 교수 등이 미래의 경쟁은 ‘기업 대 기업이 아니라 공급망 대 공급망의 싸움이다’2 라고 제시한 것처럼 공급망은 비용을 절감하는 기능적 영역이 아니라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전략 방향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애플이 경쟁자와 벌린 격차는 디자인이 아니라 핵심 부품의 수년 치 선구매, TSMC 생산 라인 예약, ‘China+1’을 넘어 인도·베트남·미국 애리조나로 생산을 분산하는 지정학적 헤징에서 나왔다. 쿠팡의 로켓배송 역시 AI와 로봇을 내재화한 속도 기반 공급망 전략의 결실이었고, 다이소가 1000원짜리 상품으로 영업이익률 9.8%를 만든 비결은 가격이 아니라 35개국, 3500개 공급처와의 직매입·직소싱·균일가 기반 공급망 설계였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로버트 헤이스, 스티븐 휠라이트 교수는 제조 경쟁력의 요소로 원가·품질·납기·유연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4대 핵심 차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지만 평가 단위가 개별 공장에서 공급망 전체로 확장됐다. 디지털·AI 시대로 전환되면서 핵심 차원도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AI와 자동화는 품질을 높이는 동시에 원가를 낮추고 디지털 플랫폼은 납기와 유연성을 함께 강화하고 있다. 또한 AX는 혁신(Innovation)·회복탄력성(Resilience)·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가시성(Visibility)을 부각시키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공급망 리더의 단 7%만이 충격에 즉시 대응할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효율성 중심으로 설계된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유리하나 충격 시 기업 가치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AX 기술은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데 AI 비전 검사(AI-based visual inspection)는 품질과 원가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회복력과 가시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표 1)

ms2_2



이해관계자 관점의 공급망 재설계 전략

공급망 충격은 한 기업의 운영 문제를 넘어 그 손실이 주주·고객·공급업체·구성원·지역사회·정부 모두에 전가된다. 따라서 공급망 재설계는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누구의 가치를, 어떤 차원에서 우선할 것인가’라는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급망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각 이해관계자는 서로 다른 가치를 요구한다. 주주는 자본 효율을 요구하지만 고객은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원한다. 공급업체는 안정적 거래를 원하는 한편 투자자는 회복탄력성을 요구한다. 구성원과 지역사회는 윤리적 조달과 일자리 안정을, 정부는 경제 안보와 핵심 산업 보호를 요구한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기업의 본질은 주요 이해관계자 그룹과의 네트워크이며 이해관계자의 권한이 강화되는 만큼 경영진의 조정자 역할과 자율성도 함께 강화돼야 상생적 생태계가 완성된다”고 제시한 바 있다.3

1. 고객 가치 통합 설계

AX 시대의 고객은 빠르면서도 안전하고 혁신적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동시에 요구한다. 따라서 품질·납기·혁신은 개별 요소가 아니라 고객 가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이런 전략은 디지털 기술과 공급망 협업을 통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한 기업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협력사 협업 플랫폼(HMG 파트너시스템)을 구축해 생산·품질·R&D·구매 전 영역에서 품질을 예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팩토리(E-FOREST)와 무인 자율검사 플랫폼(S-SCAN)을 도입해 검사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공급업체와 정기적으로 협업하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더 높은 성장률과 수익성을 달성하고 운영 비용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동 신제품 개발은 공급업체와 기업 모두의 성과를 향상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2. 원가 효율과 회복탄력성의 동시 추구

투자자에게 공급망은 두 얼굴의 자산이다. 평상시에는 자본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지만 외부 충격이 발생하면 기업 가치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공급망과 관련해 원가 효율성과 회복탄력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전략적 목표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전환은 원가 효율성과 재무 성과를 동시에 높이는 대표적인 전략이다. 미국 뉴멕시코하이랜즈대 연구진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수준과 재고회전율 사이에는 0.664의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으며 이는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가 재무 성과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4

회복탄력성 측면에서는 애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애플은 2022년 말 폭스콘 정저우 공장의 코로나19 봉쇄와 노동자 시위로 인해 아이폰14 Pro 생산에 큰 차질을 겪었다. 당시 미국 증권사 웨드부시는 이 셧다운 사고로 주당 약 10억 달러의 판매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계기로 애플은 생산 거점을 중국에 집중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China+1’ 전략을 본격화했다. 폭스콘 역시 아이폰 생산을 인도와 베트남으로 확대하며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했다.

3. 사회적 정당성 확보

공급망의 지속가능성과 가시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ESG를 공급망 운영 전반에 내재화하고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전략은 친환경 경영과 디지털 기반의 공급망 가시성 확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급망 가시성 확보를 위한 디지털 기술 활용도 확대되고 있다. 월마트는 IBM 푸드트러스트(Food Trust) 블록체인을 도입해 식품 이력 추적 시간을 7일에서 2.2초로 단축했으며, 코카콜라와 네슬레 역시 블록체인 기반의 공급망 관리 체계를 구축해 가시성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화유코발트, LG에너지솔루션, 포드가 IBM과 협력해 콩고산 코발트의 인권 및 환경 리스크를 블록체인으로 추적하고 있다.

비록 공급망실사법 등 일부 규제가 완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공급망의 지속가능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시장의 방향성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ESG 요구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기업은 협력사의 탄소배출 데이터를 수집·검증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ESG 기준을 공급업체 평가에 명시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블록체인과 AI를 결합한 통합 플랫폼을 통해 공급망 가시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4. 협력 생태계 강화

공급업체와 구성원으로 이뤄진 협력 생태계는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다. 협력 생태계가 흔들리면 다른 모든 차원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따라서 유연성과 공정한 가치 배분을 개별 거래의 문제가 아닌 공급망 제도와 구조 차원에서 내재화해야 한다. 이런 전략은 공급망 유연성 확보와 협력 관계 강화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정한 가치 배분 역시 협력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다이소는 35개국, 3500여 개의 직거래 파트너와 협력하면서 중간 유통마진은 최소화하는 대신 공급업체에는 적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는 거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공급업체의 단가를 일방적으로 낮춰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공급업체에 정당한 마진을 보장하는 상생 기반의 협력 관계를 통해 장기적인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5. 공급망을 이사회 안건으로, 거버넌스 역할 강화

앞서 제시한 공급망 재설계 전략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과거 공급망은 구매·생산·물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느냐의 문제로 여겨져 최고운영책임자(COO)나 최고공급망책임자(CSCO)가 주로 관리하는 실무 영역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정학적 갈등과 관세, 기후변화, 인권·환경 규제, 경제안보 등이 공급망을 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국가에 공장을 둘 것인지, 특정 국가나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 추가 비용을 감수하면서 공급선을 다변화할 것인지 등은 이제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의사결정이 됐다.

더욱이 공급망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생산 거점을 분산하고 안전재고를 늘리면 회복탄력성은 높아지지만 비용 부담이 커지고, 공급업체에 높은 환경·인권 기준을 요구하면 고객과 시장의 신뢰는 높아지지만 조달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급망 전략은 어느 한 부서가 최적의 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에 따라 최고경영자(CEO)가 공급망을 핵심 전략 과제로 직접 관리하고 이사회가 정기적으로 점검·감독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핵심성과지표(KPI)도 구매 단가나 재고회전율, 납기 같은 전통적인 운영 지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핵심 품목의 특정 국가·공급업체 의존도, 대체 공급처 확보 수준, 공급 중단 시 복구에 필요한 시간, 2·3차 협력사까지의 가시성, 공급업체의 ESG 리스크 등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를 재무 KPI와 함께 관리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발생한 뒤 대응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선택의 기준을 정해두는 것이다. 핵심 부품의 공급이 중단됐을 때 어느 수준까지 추가 비용을 감수할 것인지,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 언제 생산 거점을 이전할 것인지, 공급업체에서 환경·인권 문제가 발견됐을 때 거래를 중단할 것인지, 개선을 지원할 것인지 등을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

결국 공급망 거버넌스의 핵심은 공급망 의사결정의 위치를 ‘운영 현장’에서 ‘경영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똑같이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이라는 기준 아래 어떤 가치를 우선하고, 어떤 비용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경영진과 이사회의 역할이다. 공급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결국 기업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경영의 문제다.
  • 이돈희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한성대 및 미국 네브라스카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생산관리학회 회장을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생산 및 서비스 운영 혁신, 프로세스 및 품질 혁신, 지속가능 SCM, 의료경영, DX/AX 등이다. 120여 편의 논문과 『지속가능경영과 혁신-그림으로 만나는 창조적 여정』(2025) 『ChatGPT와 함께 하는 데이터 분석기행』(2025) 『운영관리 혁신』(2023) 등 다수의 저서와 eBook 『Journey into Data Analysis with ChatGPT』(2026) 『이것이 서비스 디자인이 행동이다』(2022) 등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 정리=최호진 hojin@donga.com

    동아일보 기자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

아티클 AI 요약 보기

GO

DBR 팟캐스트 Play

DBR 자문서비스 지금의 고민, 검증된 전문가에게
서비스
보기

K-FOCUS TOP 5

지금 주목해야 할 산업과 기업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