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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센티시티(Raw-authenticity)

AI 발전할수록 ‘날것’의 ‘진정성’에 감동
기업과 창작자는 ‘인간의 흔적’ 설계해야

권문혁,정리=백상경 | 448호 (2026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인공지능(AI)이 만들어 낸 매끄러운 결과물이 범람할수록 ‘인간의 흔적’은 더 높은 가치를 얻는다. 조금은 서툴고 흠집도 보이는 ‘날것(Raw)’,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비롯한 ‘진정성(Authenticity)’이 결합한 ‘로센티시티(Raw-authenticity)’는 2027년의 핵심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의도적으로 남긴 사람의 온기와 자취가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인간의 흔적을 남길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완벽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그 결과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출처(Origin)’를 입증하는 것도 중요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이 호응하는 본질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08. 로센티시티
Raw-authenticity

AI가 발전할수록 비인간적 완벽함보다 인간적 불완전함이 역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AI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의 지문, 창작자의 관점, 브랜드의 서사를 남겨야 진정성, 고유성, 출처성 차원에서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



1. AI 냄새 vs. 사람 냄새

실제로 AI가 만든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묻는다. AI를 썼는가, 쓰지 않았는가. 사람이 직접 쓴 글에도 그런 말을 한다. 사람이 만든 이미지나 영상에도, 사람이 기획한 광고에도, 사람이 올린 사과문에도 그런 반응이 붙는다. AI가 만들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결과물 앞에서 AI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AI 냄새를 분간하기가 쉬웠다. 여섯 개짜리 손가락, 어색한 문맥,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 현상’ 같은 명확한 오류들이 단서였다. 그러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외형적 결함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제 ‘AI티’가 나지 않는 매끄러운 결과물들이 나오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예컨대 다음 문장들을 보자. AI가 썼을까? 사람이 썼을까?

“고객님의 소중한 일상에 따뜻한 가치를 더하는 브랜드가 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법도 맞고 어휘도 무난하다. 틀린 말도 없고, 기업이 할법한 말은 빠짐없이 들어 있다. 그런데 아무런 감흥이 없다. 지독하게 밋밋하고, 지독하게 상투적이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때리는 울림이 없다. 사람들이 이런 문장을 보고 “AI 같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기술의 냄새가 짙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일은 저런 영혼 없는 문장들이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성 없는 광고 카피도, 영혼 없는 사과문도, 안전하기만 한 기획서도 우리는 오래전부터 숱하게 봐 왔다. 그때도 우리는 감동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AI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였다. 창작자의 고민, 경험, 개성이 보이지 않는 결과물은 원래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콘텐츠는 언제나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통과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AI도 이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AI가 ‘그럴듯한 무난함’을 손쉽게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아, 결과물 자체보다 이걸 만든 ‘사람’이 훨씬 중요하구나!” ‘AI를 썼느냐’를 묻는 이유도 기술을 심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안에 진짜 인간의 고민과 밤샘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감별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다. 인간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앞으로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더 자연스럽게 쓰고, 더 그럴듯하게 그리고, 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완벽함 때문에 인간의 흔적은 오히려 더 희귀해질 가능성이 높다. 완벽함은 점점 흔해진다. 하지만 한 개인만의 고유한 체험, 취향, 판단, 실패와 시행착오는 여전히 복제하기 어렵다.

AI 시대의 프리미엄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기술이 인간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가치가 더 커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소비 감각을 ‘로센티시티(Raw-authenticity)’라고 부를 수 있다. 조금 서툴고 흠집도 보이는 ‘날것(Raw)’과 진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과해 나온 ‘진정성(Authenticity)’이 만나는 기막힌 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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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사장의 손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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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화제가 됐던 한 필기구 기업 사장의 자필 메시지다. 흔한 인사말이었지만 대중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내용보다 ‘손글씨’ 그 자체였다. 또박또박 정성 들여 썼으나 아주 잘 쓴 글씨는 아니었다. 약간 삐뚤어진 획, 일정하지 않은 글자 크기와 간격, 꾹 눌러쓴 손의 악력까지, 디지털 공정을 거치지 않은 완벽한 ‘날것’의 산물이었다.

문장을 들여다보면 어설픔은 더 도드라진다. 결코 리듬감 있게 잘 읽히는 글이 아니다. 문법적으로 삐걱거리는 대목도 눈에 띈다. 특히 “대한민국의 기록을 함께해 온 모나미…”라는 구절은 대표적인 비문이다. 매끄럽게 다듬으려면 조사를 바꿔 “기록과 함께해 온”이라 쓰거나 동사를 보완해 “기록을 함께 써 온”으로 고쳐야 맞다. 전문가의 교정은커녕 AI의 검수조차 거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만약 이 메시지를 AI에 맡겼다면 어땠을까? 단 한 점의 오류도 없는 무결점 문장과 반듯하고 우아한 서체로 완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나친 유능함’이 때로는 독이 된다. 대중은 AI의 완벽함보다 조사가 틀리고 획이 흔들리더라도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직접 쓴 문장’에 마음을 연다.

예전에는 그저 평범했을 손글씨 인사말이 AI 시대에 오히려 더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툰 손글씨 한 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중은 세련된 가공보다 한 사람의 시간과 정성에 더 큰 가치를 매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평균 이상의 완성도’로 복제하는 시대에 진짜 진정성은 “그 결과물 안에 인간의 몸과 시간이 실제로 남아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2. 테크놀로지 스펙터클과 로센티시티

콘텐츠의 역사는 늘 기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 유성영화는 배우의 목소리를 스크린에 실어 날랐고 CG와 3D는 현실의 물리 법칙을 초월한 장면을 대중적 체험으로 만들었다. 기술은 언제나 콘텐츠를 위협하면서 동시에 확장해 왔다. 그리고 이제 AI라는 거대한 기술적 변곡점이 제작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 거센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을 꼽자면 단연 제임스 캐머런이다. 그는 단순한 연출자가 아닌 최첨단 기술을 직접 개척하는 ‘엔지니어형 크리에이터’다. 필자 역시 그가 스스로를 “기술에 미친 사람”이라 당당히 공언한 뉴스를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시간을 201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으로 돌려보자. 세계 최대 CAD 및 엔지니어링 행사 ‘솔리드웍스 월드 2010(SolidWorks World 2010)’의 기조연설 무대에 선 캐머런은 5000여 명의 엔지니어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전에는 영화를 만들 때 ‘영화’ 그 자체만 생각했는데 ‘아바타’를 제작하면서는 엔지니어처럼 행동하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기술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When making Avatar, I acted and thought like an engineer. I consider myself a techno-geek).”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식 학위는 없지만 그는 ‘아바타’의 혁신적인 ‘퓨전 카메라 시스템(Fusion Camera System)’과 실시간 가상 카메라, 퍼포먼스 캡처 기술 등을 직접 설계하거나 개발을 주도했다. ‘어비스’와 ‘터미네이터 2’의 초기 디지털 효과부터 ‘타이타닉’의 거대한 스펙터클까지, 그는 늘 최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껴안으며 표현의 한계를 깼다.

캐머런이 보여주는 기술 집착은 2027년 콘텐츠 시장의 또 다른 축인 ‘테크놀로지 스펙터클(Technology Spectacle)’의 정점을 보여준다. AI 시대의 창작자는 이제 엄청난 자본과 시간이 필요했던 상상력을 손쉽게 현실로 만들 수 있다. 세계관 시각화의 속도를 높이고, 제작의 시행착오를 줄이며, 한계를 뛰어넘는 화려한 비전을 구현할 수 있다. 할리우드만의 일도 아니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김부장’은 폭파, 추격, 수중 촬영 등 3분 분량의 고난도 액션 시퀀스를 생성형 AI로 구현해 비용과 제작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흥미로운 반전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기술의 최전선에 선 캐머런조차 기술이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주 명확한 경계를 설정한다. 2024년 생성형 AI 기업 ‘스태빌리티 AI(Stability AI)’ 이사회에 합류한 그는 AI가 “다음 시대의 물결(the next wave)”임을 인정하면서도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배우의 연기를 처음부터 대체하는 시도에는 “끔찍하다(horrifying)”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에게 퍼포먼스 캡처는 배우를 지우는 도구가 아니었다. 배우의 미세한 호흡과 눈빛의 떨림을 디지털 세계로 정교하게 옮겨 담는 ‘배우와 감독이 함께하는 순간에 대한 찬사(a celebration of the actor-director moment)’였다. 캐머런이 사랑한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표현력을 확장하는 도구였지 인간을 대체하는 주체가 아니었다. 캐머런은 기술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기술을 언제나 ‘이야기’라는 주인의 하인으로 다룰 줄 아는 감독이었다. 캐머런의 선택은 흥미롭다. 그는 기술이 인간을 지우는 순간만큼은 끝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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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서 테크놀로지 스펙터클은 로센티시티와 만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화려한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과 감정, 판단을 얼마나 선명하게 드러내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대중은 결과물 자체보다 결과가 어떤 사람의 고민과 선택을 거쳐 나왔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흔적이 희소한 프리미엄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은 집요하게 “이 안에 인간의 숨결이 남아 있는가?”를 묻는다. 사람이 직접 고민하고, 망설이고, 실패하며 통과한 흔적은 AI가 결코 복제할 수 없다. 수작업, 라이브 공연, 스포츠 경기, 친필 사인, 메이킹 필름처럼 ‘사람이 직접 해내고 사람의 손을 직접 거쳤다’는 증거가 곧 희소한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테크놀로지 스펙터클과 로센티시티는 서로 경쟁하는 가치가 아니다. 시장은 오직 기술만으로도, 그렇다고 오직 인간성만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가 커질수록 다른 하나도 함께 커지는 쌍둥이 축이다. 기술이 표현의 한계를 넓힐수록 사람들은 그 표현 뒤에 남아 있는 인간의 숨결을 더 집요하게 찾는다.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인간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점점 더 거세게 침범할 때, 그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하도록 끝까지 붙들어 매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방송 현장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본질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3. 오래된 질문: “지금 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인가?”

과거 TV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저 가수, 지금 진짜 부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필자 역시 야외 생방송 현장에서 가수의 공연을 중계하곤 했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로 가수를 잡는다. 이때 스피커를 통해 흠 하나 없이 완벽한 노래가 울려 퍼지면 시청자들은 일종의 진실 게임을 시작한다. “지금 저 무대는 MR1 인가, AR2 인가, LMR3 혹은 LAR4 인가 아니면 진정한 라이브인가. 저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 저 사람의 몸에서(육체성) 실시간으로(현장성) 뿜어져 나오고 있는가?”

같은 노래라도 녹음된 완성본을 재생하는 것과 녹음된 반주 위에 현장에서 실제 목소리를 얹는 것은 리스너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간다. 녹음된 목소리는 안전하고 완성도가 높다. 음정은 정교하고, 호흡은 단정하며, 실수할 위험도 없다. 반면 라이브는 불안하다. 컨디션에 따라 음이 흔들리고 춤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시청자는 바로 그 ‘불안(不安)’ 때문에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EXO 콘서트 AR 큐시트 유출 사건’은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준다. 유출된 큐시트에 적힌 31곡 중 MR은 단 7곡뿐 나머지는 대부분 AR이나 LAR이었다. 일부 팬이 분노한 것은 그들의 가창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1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지불한 이유는 ‘기계가 재생하는 최고급 음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 실제로 노래하는 인간의 행위’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팬들은 녹음된 목소리를 ‘진짜가 아닌 가짜’, 심지어 자신들을 속인 기만으로 받아들였다.

대중이 가수의 라이브 여부에 이토록 예민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 소리 안에 ‘사람의 흔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복잡한 첨단 기술이나 AI 사용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정작 대중이 갈증을 느끼는 핵심은 “지금 사람이 직접 해내고 있는가”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콘텐츠 속 ‘AI 냄새’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글과 영상의 저 너머에서 ‘진짜 사람의 체취와 숨결’을 찾아내려는 본능적인 감별 욕구다. 이 오래된 감별 욕구는 AI 시대를 맞아 훨씬 거대한 규모로 돌아왔다. 과거에는 가수 한 명의 입 모양을 보며 립싱크 여부를 가렸다면 이제 우리는 콘텐츠 전체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 감정은 인간의 뇌세포가 고뇌 끝에 퍼 올린 상상력인가 아니면 데이터센터의 전기가 짜낸 통계적 평균값인가?”

과거의 라이브가 완벽한 보정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 무대 위에서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면 AI 시대의 로센티시티는 클릭 한 번이면 무결점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고 일부러 인간의 흠결을 남겨두는 ‘의도된 선택’이다. 더 매끄럽게 포장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거친 호흡을 남겨두는 것. 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음에도 관객이 자기 감정을 투영할 여백을 과감히 비워두는 것. 대중은 결국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투박한 틈새로 전해지는 ‘진짜 사람의 온기와 자취’를 마주할 때 비로소 기꺼이 마음을 연다.


4. 출처성(Origin) :
맛집 원조 논쟁에서 AI 콘텐츠까지


2023년, 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기묘한 신곡 하나가 등장했다. 힙합 스타 드레이크와 더 위켄드가 함께 부른 듯한 ‘Heart on My Sleeve’였다. 익명의 창작자 ‘Ghostwriter’가 공개한 이 곡은 틱톡을 시작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스포티파이에서만 60만 회 넘게 재생됐다. 하지만 곧 놀라운 사실이 알려졌다. 드레이크와 더 위켄드는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AI 기술로 두 사람의 목소리를 모사해 만든 곡이었다. 두 가수의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이 문제를 제기한 뒤 이 곡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삭제됐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해 Ghostwriter는 ‘Heart on My Sleeve’를 그래미상의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와 ‘베스트 랩 송(Best Rap Song)’ 부문에 출품했다.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하비 메이슨 주니어 CEO는 처음에는 인간이 직접 곡을 썼다는 점에서 창작 측면의 자격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AI로 모사한 보컬이 당사자의 허가를 받아 사용된 것이 아니며 정상적으로 상업 유통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이 곡이 그래미상을 받을 자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흥미로운 점은 삭제라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의 반응이다. 노래는 충분히 그럴듯했고 목소리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하나의 재미있는 콘텐츠로 소비하면 되는 일 아닐까. 그러나 많은 사람은 완성도와 별개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다. 이유는 단순했다. 대중은 결과물보다 먼저 목소리의 정체성과 권리, 즉 “이 목소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신뢰는 더 이상 완성도의 문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과물이 얼마나 매끄러운가보다 그것이 ‘어떤 사람의 삶과 시간, 경험을 통과해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AI 시대의 신뢰는 ‘출처성(Origin)’에서 시작된다.

이 변화는 한국인의 ‘맛집 원조 논쟁’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특정 조리법을 법적으로 독점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비슷한 재료를 쓰고, 비슷한 조리법으로 같은 메뉴를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원조’라는 두 글자에 강하게 끌린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누구의 손맛이 이어져 왔는지, 그 음식이 정말 오랜 시간과 경험을 축적하며 만들어진 결과인지를 집요하게 확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법적 권리만은 아니다. 설령 완전히 같은 맛을 낸다 해도 사람들은 ‘원조’와 ‘모방’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레시피는 흉내 낼 수 있지만 그 음식이 지나온 시간과 역사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결국 맛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이 축적한 시간을 함께 소비한다.

AI 콘텐츠 역시 다르지 않다. AI는 이제 특정 가수의 음색은 물론 거친 질감과 어색한 말투, 낡은 필름의 입자감까지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닮았다 해도 그것이 실제 그 사람의 삶과 경험을 통과한 흔적은 복제할 수 없다. 그래서 대중의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날것처럼 보이는가?”가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산물인가?”를 묻는다.

이것이 바로 로센티시티의 핵심이다. AI 시대에는 결과물의 품질만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사람들은 점점 더 그 결과물이 누구의 삶과 경험, 어떤 창작 과정에서 비롯됐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목소리가 닮았다고 그 사람의 노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맛이 비슷하다고 모두 원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대중이 진정으로 신뢰하는 것은 복제된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가능하게 만든 ‘출처’다.

로센티시티는 바로 이 출처 감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기술이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보다 그것이 누구의 시간과 경험을 통과해 세상에 나왔는가가 앞으로 콘텐츠와 브랜드의 신뢰를 좌우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5. AI 이후의 인간 프리미엄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명확히 걷어낼 필요가 있다. 로센티시티가 거부하는 것은 ‘AI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창작자의 주관 없이 AI의 통계적 평균치에 전적으로 의존해 만들어진 ‘무취(無臭)의 태도’다. AI는 앞으로 콘텐츠 제작의 표준 인프라가 될 것이다. 핵심은 AI를 썼느냐가 아니라 AI라는 정교한 도구를 통과한 뒤에도 창작자의 고유한 의도와 판단, 윤리적 책임이라는 ‘인간의 지문’이 선명하게 살아남아 있는가이다. 대중이 “AI를 사용했는가?”를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은 점점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AI를 어디에 사용했는가? 그 기술은 인간의 판단을 대신했는가 아니면 인간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가 됐는가?” 로센티시티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23년 공개된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 ‘Now and Then’이다. 많은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AI가 만든 음악으로 오해하지만 실제 AI의 역할은 창조가 아니라 복원이었다. 낡은 데모 테이프 속에 묻혀 있던 존 레넌의 보컬을 정교하게 분리해 내고, 그 위에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가 새로운 연주를 더했으며, 조지 해리슨이 생전에 남긴 기타 리프를 연결해 마침내 하나의 곡을 완성했다. AI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창작 의도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였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는 끝내 인간이 결정했다.

대중이 이 작품에 깊은 경의를 표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AI의 성능 때문이 아니었다. 기술이 인간의 흔적을 덮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월 속에 희미해진 인간의 흔적을 더 또렷하게 되살려 줬기 때문이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는 조력자로 기능했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은 단순한 창작 의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책임을 함께 요구한다. 엠넷은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을 통해 고(故) 김현식과 터틀맨의 목소리를 AI로 복원한 무대를 보여줬다. 공개 5일 만에 3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감동을 전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추모인가, 존엄성 훼손인가”라는 치열한 논쟁이 뒤따랐다. 그 이유는 목소리가 단순한 음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과 시간, 고통과 기억, 팬들의 추억이 응축된 존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AI의 복원 기술 자체에는 감탄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를 다시 세상에 불러낼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로센티시티는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기술이 인간의 흔적을 다룰수록 사람들은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의 태도와 판단, 책임을 먼저 평가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책임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책임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이다.

이 원리는 생성형 AI 콘텐츠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생성형 AI를 적극 활용해 제작된 유튜버 심통봇의 ‘고스타그램’은 공개 한 달 만에 300만 뷰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AI가 만들어 낸 화려한 비주얼이 아니었다. ‘성불하기 싫어하는 귀신’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삶에 대한 미련과 관계를 향한 집착, 인간이 끝내 놓지 못하는 결핍을 섬세하게 건드린 세계관이었다. AI는 그 세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구현했을 뿐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를 결정한 것은 결국 창작자였다. 표현은 AI가 확장했지만 의미는 인간이 설계했다. 대중이 반응한 대상도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통찰이었다.

결국 AI 시대의 인간 프리미엄은 AI를 배척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AI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결과물 속에 창작자의 의도와 판단, 윤리적 책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끝까지 남겨 둘 수 있는가에서 결정된다.

기술은 표현의 문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턱까지 대신 넘어 주지는 못한다. AI가 점점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일수록 대중은 기술보다 그 기술을 도구로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더욱 유심히 바라본다. 결국 2027년 창작자의 진정한 경쟁력은 AI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기술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그 너머에 자신의 판단과 책임, 인간다운 흔적을 끝까지 남겨 둘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들이 AI 이후 시대의 새로운 인간 프리미엄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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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
가상 속에서 더 선명해진 인간


AI 이후의 인간 프리미엄을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역설 가운데 하나는 버추얼 아이돌이다. 언뜻 보면 버추얼 아이돌은 로센티시티와 가장 거리가 먼 존재처럼 보인다. 무대 위에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 아바타가 서 있고, 관객이 마주하는 것도 육체가 아닌 가상의 캐릭터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가장 인위적인 공간에서 인간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발매 첫 주 만에 5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누적 밀리언셀러에 등극하며 가요계를 뒤흔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많은 사람은 플레이브의 성공을 AI나 첨단 그래픽 기술의 성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상의 겉모습만 본 해석이다. 팬들이 사랑하는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바타가 아니라 그 아바타를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인간이다. 무대 뒤에는 실제 퍼포머들이 존재하며 모션 캡처를 통해 자신의 움직임과 호흡, 표정과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캐릭터에 투영한다. 결국 팬들이 만나고 있는 대상은 디지털 캐릭터가 아니라 디지털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이다.

그래서 플레이브의 진짜 매력은 완벽함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현재성’에서 나온다. 생방송 도중 예상치 못한 시스템 오류에 당황하는 모습, 즉흥적으로 농담을 던지는 순간, 팬들의 댓글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함께 웃고 대화하는 장면은 미리 설계된 연출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팬들은 바로 그 우연성과 즉흥성 속에서 ‘지금 누군가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확인한다.

앞서 살펴본 라이브성의 본질 역시 여기에 있었다. 과거 대중은 무대를 보며 “지금 정말 라이브로 부르고 있는가?”를 궁금해했다. 이제 버추얼 아이돌 앞에서는 질문이 조금 달라진다. “저 아바타 뒤에서 지금 실제 사람이 노래하고, 반응하고, 함께 호흡하고 있는가?”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대중은 오히려 그 안에서 인간의 현재성을 더욱 예민하게 찾기 시작한다.

버추얼 아이돌은 로센티시티의 반대 사례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증거다. 사람들은 가상 캐릭터 자체에 애착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통해 끊임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현존에 마음을 연다. 완벽하게 계산된 가상 존재보다 순간순간 살아 있는 인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캐릭터가 더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로센티시티는 ‘가상이냐 현실이냐’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가보다 그 기술 너머에서 ‘지금 누군가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얼마나 선명하게 전달하는가’를 묻는 개념이다. AI 시대에도 사람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바로 그 인간의 현존이야말로 어떤 기술도 끝내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프리미엄이다.



6. 한국 콘텐츠 시장의 ‘휴먼 리바운드’

지금까지 살펴본 로센티시티의 징후는 먼 미래의 예측이 아니다. 이미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는 AI 시대를 앞서 예고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술이 점점 더 완벽하고 매끄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수록 대중은 오히려 인간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불완전함과 실패 가능성에 더 깊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술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지나치게 계산되고 예측 가능한 콘텐츠가 일으키는 인지적 피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작용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휴먼 리바운드(Human Rebound)’라고 부를 수 있다.

휴먼 리바운드란 완벽함에서 불완전함으로의 회귀나 반동이 아니다. 사람이 실제로 감당하는 위험과 긴장, 망설임과 실패 가능성이 다시 콘텐츠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현상이다. AI는 결과를 더욱 완성도 높게 만들 수 있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몸으로 통과하는 과정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대중은 바로 그 과정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작품이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다. 표면적으로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지만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레시피나 조리 기술이 아니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매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하는 셰프들의 긴장, 이름 대신 맛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무명 도전자들의 압박, 결정적인 순간 화면에 포착되는 미세한 손떨림과 표정의 변화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완성된 음식보다 그것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위험한 순간을 함께 경험했다. ‘나는 SOLO’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출연자들은 세련되게 연출된 연애 판타지를 보여 주지 않는다. 어색한 침묵,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 근거 없는 자신감, 예상치 못한 질투가 관계를 흔든다. 시청자는 완벽하게 설계된 캐릭터보다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따라간다. 대중은 잘 짜인 각본 속 배우보다 때로는 지질하고, 때로는 무모한 일반인들의 ‘무방비한 인간적 진실’에서 더 큰 쾌감을 얻는다.

‘최강야구’의 감동도 다르지 않다. 은퇴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승부를 선택한다. 시즌 승률 7할을 넘기지 못하면 팀이 해체된다는 현실적인 압박은 매 경기의 긴장감을 실제로 만든다. 대중이 응원하는 것은 완벽한 플레이가 아니라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인간의 모습이다. 오컬트 영화 ‘파묘’의 흥행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첨단 기술이 아니라 무속과 의례, 땅과 조상이라는 가장 오래되고 물질적인 감각을 전면에 내세웠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채울수록 관객은 오히려 몸으로 체험하는 감각과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적 기억에 더 강하게 끌렸다. 인간의 몸과 시간이 축적한 감각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몰입의 원천이었다.

겉으로 보면 이들 콘텐츠는 서로 다른 장르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완벽함보다 위험을, 계산된 연출보다 인간이 실제로 감당하는 긴장과 망설임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점점 더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낼수록 인간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희소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대중은 이러한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한다. 무엇이 과도하게 계산됐고, 무엇이 실제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됐는지를 구별하는 감각이 매우 발달해 있다. 그래서 한국 콘텐츠 시장은 AI 시대의 소비자 심리를 가장 먼저 보여 주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결국 휴먼 리바운드는 AI에 대한 반발이 아니다. AI가 완벽함을 콘텐츠의 기본값으로 만들수록 인간은 오히려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는 현상이다. 기술은 점점 더 완벽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위험을 감수하는 인간의 손과 몸, 망설임과 떨림, 실패할 수도 있는 현재의 순간이다. 로센티시티는 바로 그 인간적 흔적이 다시 가장 큰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7. 기업과 창작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로센티시티는 단순한 감성 트렌드가 아니다. AI 시대에 기업과 창작자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운영 원칙이다. 앞으로 AI는 대부분의 창작자와 기업이 활용하는 기본 인프라가 될 것이다. AI는 방대한 세계관을 설계하고, 수많은 시안을 만들고, 반복적인 제작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줄 수 있다. 기업과 창작자는 그 능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지막 한 걸음까지 AI에 맡겨서는 안 된다. 결국 미래의 승자는 AI가 만든 압도적인 스케일 위에 인간의 판단과 경험, 감정을 가장 정교하게 얹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과 창작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핵심은 하나다. 기술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과한 뒤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흔적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AI의 제안을 거절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AI는 기획과 편집, 디자인, 마케팅, 흥행 예측까지 끊임없이 최적의 답을 제안할 것이다. 그러나 작품과 브랜드의 개성은 무엇을 선택했는가보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가에서 드러난다. 가장 매끄러운 대사 대신 침묵을 남기고, 가장 자극적인 연출 대신 여백을 선택하는 순간, AI가 계산하지 못하는 창작자의 철학이 비로소 드러난다. 이제 인간의 경쟁력은 더 많이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둘째, 결과보다 출처를 증명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결과물의 품질만으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사람들은 그 결과가 누구의 시간과 경험, 어떤 시행착오를 통과해 만들어졌는지를 궁금해한다. 마치 ‘원조 맛집’을 찾듯 콘텐츠 역시 그 출처를 확인하려 한다. 따라서 기업과 창작자는 결과만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말고 창작 과정과 고민, 시행착오를 함께 드러내야 한다. 출처를 투명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새로운 신뢰 자산이 된다.

셋째, 인간의 현존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AI가 결과물을 쉽게 복제할수록 대중은 오히려 실제 인간이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공연과 팬미팅, 라이브 방송, 실시간 소통처럼 창작자의 현재성을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은 더욱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이제 브랜드는 완성된 결과물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고객과 같은 시간 위에서 함께 반응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존재가 돼야 한다.

넷째, 기술보다 인간의 욕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AI는 표현의 가능성을 무한히 넓혀 주지만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외로움, 사랑, 인정 욕구, 승부욕, 상실감처럼 인간이 오래도록 반복해 온 감정과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기술도 공허한 결과물에 머물 수밖에 없다. 결국 콘텐츠의 본질은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네 가지 원칙은 서로 다른 전략이 아니다.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이 콘텐츠에는 인간의 흔적이 얼마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가?” AI는 앞으로도 더 뛰어난 결과물을 더 빠르게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끝내 기억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통해 드러난 사람의 판단과 시간, 살아 있는 존재감이다.

2027년 콘텐츠 시장은 기술과 인간이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다. 기술이 기본값이 되고 인간성이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다. AI는 콘텐츠의 규모와 속도를 무한히 확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가능성을 사람의 마음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 권문혁

    히트메카닉스 대표

    필자는 MBC-TV 시사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을 제작하고 기획했다. 편성국 프로그램개발TF팀장, ‘PD수첩’ CP,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강원대 초빙교수를 지냈다. 대중문화 흥행 비결을 분석하는 개인 연구소 ‘히트메카닉스’ 대표로 다양한 킬러 콘텐츠 기획을 자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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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리=백상경 baek@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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