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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젠슨 황의 20년 베팅이 던진 질문

김병헌 | 447호 (2026년 8월 Issue 2)
2026년 현재, 엔비디아는 AI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의 성공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잘 탄 결과가 아니다. 시장의 회의와 비판 속에서도 2006년 개발자 플랫폼 ‘쿠다(CUDA)’생태계를 선보이고 20여 년간 한 방향에 자원을 집중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장기적 투자와 전략적 인내의 결실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시장에 회사의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경영학의 관점에서 젠슨 황의 선택은 맹목적인 고집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장기 전략이었다.

첫째는 실물옵션(real options)의 관점이다. 기술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단계별 투자로 미래의 선택권을 확보해야 한다. 젠슨 황은 하드웨어 제조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쿠다 생태계에 장기간 투자했다. 이는 AI 시장이 열렸을 때 엔비디아가 시장을 주도하는 기반이 됐다. 둘째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극복이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GPU 시장의 강자라는 안정적인 경로에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젠슨 황은 GPU를 그래픽 처리 장치가 아닌 새로운 컴퓨팅 인프라로 재정의했다. 리더의 확신이 조직의 관성을 넘어서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오늘날 글로벌 테크 시장에서는 기술 표준과 플랫폼을 선점한 기업이 시장의 규칙까지 결정한다. 필자는 1990년대 후반 체제 전환기 러시아에서 모스크바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이러한 힘의 논리를 경험했다. 당시 러시아 측은 “여기는 모스크바다”라며 기존 합의보다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앞세워 협상의 판을 다시 짜곤 했다. 젠슨 황 역시 엔비디아 생태계를 AI 시대의 산업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전략 아래 시장의 규칙을 다시 써왔다. GPU뿐 아니라 개발 도구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서버 시스템을 하나로 묶어 경쟁 기업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이 시장의 규칙을 설정하는 시대에는 한국 기업이 강점을 보여온 ‘치밀한 관리 경영’과 패스트 팔로어 전략도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전문경영인이 분기 실적과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구조에서는 10년 뒤를 위해 현재의 수익성을 감수하는 투자가 지속되기 어렵다.

조직에 모험의 DNA를 심으려면 세 가지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장기적 도전을 평가하는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략적 투자의 단기 손실을 단순한 비용이나 실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장기 연구개발과 신사업 투자를 미래 선택권 확보를 위한 투자로 평가하고 매출과 이익뿐 아니라 기술과 인재, 특허, 파트너 생태계 등 미래 경쟁력도 핵심 평가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둘째, 사내 샌드박스를 통해 ‘창조적 괴짜’를 보호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아이디어는 기존 사업의 논리로는 비효율적이고 위험해 보이기 쉽다. 젠슨 황이 시장의 비판 속에서도 쿠다 조직을 지켰듯 리더는 미래 기술을 탐구하는 소수 정예 조직에 시간과 자율성을 주고 단기 성과의 압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셋째, 서사적 리더십(narrative leadership)을 발휘해야 한다. 장기 투자는 숫자만으로 구성원을 설득하기 어렵다. 젠슨 황은 기술이 바꿀 미래를 꾸준히 설명하며 조직의 공감과 신뢰를 이끌었다.

젠슨 황의 사례는 무모하게 한 방향을 고집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면서 위험을 구조적으로 관리하라는 교훈을 준다. 단기 성과와 관리의 효율을 넘어 미래를 설계하고 그 가능성에 꾸준히 투자하는 리더의 용기가 한국 기업의 다음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 김병헌

    김병헌

    인생경영연구원장·전 한국관광대 교수

    서울대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항공대에서 전략·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에서 런던·모스크바 지점장 등 해외 주재 근무를 포함해 30여 년간 글로벌 산업 현장을 경험했다. 퇴임 후 한국관광대 관광경영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과장과 교학처장 등을 역임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등에서 정부 자문을 수행했으며 대표 저서로 『성공과 행복을 위한 인생의 길을 찾다』 『성공 패러다임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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