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024년 제124회 노벨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바야흐로 AI 시대가 열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삶의 깊이를 통찰하고 고통을 마주하는 인간 예술가의 고유성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AI의 새로운 가능성이 교차하는 변곡점에서 문학계도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AI 생성 문장을 일부 인용한 『도쿄 동정 타워』, AI를 서사의 장치이자 문체 구현의 도구로 활용한 『어메리칸 앱덕션스』, 주체적 결정권자이자 AI의 감독자로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 『작가의 죽음』 등도 주목받는 작품들이다. 생성형 AI를 창작에 활용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하려는 시도가 더 활발해질수록 작가의 부활도 함께 일어날 것이다. AI 시대에 대체되지 않는 작가 정신, 작품 생산자, 그 이상으로 삶을 살아내고 성찰하며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가가 더 조명받게 될 것이다.
AI 시대의 서막을 알린 노벨상2024년 10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 2024년 제124회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됐는데 인공지능(AI)을 연구한 과학자가 대거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다. 노벨 물리학상은 머신러닝의 기초를 세운 AI 대부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들 석학은 자신의 생애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수상의 기쁨에만 들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분명한 목소리로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AI 시장 선점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에 경종을 울렸다.
노벨 화학상도 AI 기반의 혁신을 가속화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디렉터,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베이커 교수는 새로운 종류의 단백질을 설계했고 구글 딥마인드의 허사비스와 점퍼는 AI ‘알파폴드’ 모델을 개발해 무려 2억 개의 단백질 구조 예측을 가능케 했다.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이 복잡한 사슬 구조로 연결돼 있고 저마다 고유의 모양으로 접힌 3차원 구조를 띤다. 이런 3차원 구조는 형태상 차이에 그치지 않고 단백질 기능과 생체 내 역할을 결정한다. AI 모델인 알파폴드의 폴드는 접힘을 뜻하는데 단시간에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3차원 단백질 접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델의 출현은 AI 기술이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 등 의학, 생명공학, 생화학 등의 분야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을 키웠다. 이처럼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AI 연구자들이 휩쓸자 전문가들은 바야흐로 “AI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AI 시대로 향하는 변곡점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 인간의 고유성과 본질에 가까이 다가간 한강 작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수상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예술가의 독보적인 가치에 대해 숙려하게 해준다.
예술가와 고통, 그리고 인간의 고유성예술가는 예민한 감각과 섬세한 감성으로 삶의 깊이를 통찰한다. 예술은 끈질기게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물론 때로는 순간의 우연성과 희열, 즐거움이 작품을 낳기도 하고 그런 작품이 감동을 주기도 한다. 허나 긴 호흡을 지니고 예술가의 삶을 지속하는 이들, 나아가 작품으로 인류에 깊은 울림을 던지는 예술가를 떠올려보면 고뇌와 노고, 고통과 인내 같은 단어가 연상되곤 한다. 이들은 고통을 일상의 일부로 담담히 수용한다. 오히려 작가들은 가볍고 유쾌하게 고통을 다루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빚어진 자신만의 서사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역시 집필 과정에서 느낀 창작의 고통을 언급한 바 있다. 작가는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다룬 『소년이 온다』을 쓸 당시, 한 문장을 쓰고 울기만 하다 겨우 또다시 한 문장을 이어갔다고 토로했다. 한강 작가는 다수가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고통을 대면하고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풀어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세 여성의 시선으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와 유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고통에 처한 개개인의 서사에 깊숙하게 관여한다. 『희랍어 시간』은 이혼 과정에서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채식주의자』는 평범한 주부 영혜가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가족과 갈등을 겪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폭력성에 저항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조명한다.
한강 작가의 글에는 고통하는 인간에 대한 절실한 공감이 녹아 있다. 고통을 직시하고 통과해야만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의 찬란함이 투영돼 있다. 고통의 층위는 다양하나 시대의 아픔과 주로 닿아 있고 그 당시를 겪었던 이들의 차마 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내재된 고통을 고요히 응시하며 다독인다. 작가는 고통의 순간을 묘사하는 데서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가슴으로 대면하고 경험하게 만든다.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참담한 고통의 서사 안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 통증을 공유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를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두고 지극히 인간의 본질과 닿아 있는 ‘트라우마’와 ‘생의 연약함’이란 단어를 언급했다. 한림원은 공식 발표문에서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표현했다. 이 같은 고통과 트라우마, 생의 연약함은 AI가 대체하거나 한 치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설령 미래에 AI가 위대한 작가의 문장을 작가의 동의하에 학습해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 고통까지 흉내 낼 수는 없다. 작가는 기계적으로 글 쓰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그 이상이며 예술가는 자신이 작품으로 풀어낸 주제에 관한 통찰과 식견, 가치관을 내재화한 존재다. 한강 작가는 수상 발표 이후 스웨덴 공영 SVT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자회견을 마다한 이유와 관련해 “지금은 주목받고 싶지 않다. 이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대와 사회, 개인의 고통을 품은 작가는 여전히 전쟁과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기억하고 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고통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그 주제를 내면화한 상태에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다.
AI와 인간의 교차점에서 문학의 전개 양상그렇다면 AI 시대에도 문학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것인가. 한강 작가가 예술가라는 존재의 고유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렇다고 AI가 문학이란 예술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2024년 10월 28일 MIT 집단지성센터의 연구진이 인간과 AI의 협업과 관련한 연구를 망라한 논문이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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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AI의 조합이 유용한 경우: 체계적인 검토 및 메타 분석’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 따르면 인간과 AI의 협업이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며 작업 유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다만 예술 같은 ‘창의’ 작업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즉 글쓰기나 작곡 등 예술 작품 제작에 있어 인간의 고유성이 AI 생성 능력과 결합했을 때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AI는 창작의 주요 영역에 속하는 문학에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여전히 사투와 노고를 동반하는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점을 숙지한 상태에서 실험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짚어보자. 본디 예술은 멈춰 있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화해 왔다. 생성형 AI 문학의 현대적 전개 양상을 들여다보면 AI 생성 문장을 작품 일부에 인용하거나, AI를 서사의 주요 장치로 도입하거나, 인간이 감독자로 지시와 선택을 하며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엿볼 수 있다.
① AI 생성 문장의 일부 인용: 쿠단 리에 『도쿄 동정 타워』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자 일본문학진흥회가 주관하는 아쿠타가와상은 제170회 수상자로 소설 『도쿄 동정 타워(Sympathy Tower Tokyo)』의 저자 쿠단 리에를 선정했다. 수상 소감 발표에서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기술인 ‘AI 빌드(AI-build)’가 주인공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에서 챗GPT를 적극 활용했고 대화 내용 가운데 약 5%는 AI가 생성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으로 일본 문학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아쿠타가와 시상위원회는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근거로 작가의 챗GPT 사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쿠단 리에 작가는 AI와 문학가의 협업에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향후에도 AI와 공존하며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사례의 경우 작가가 전체 작품의 5% 정도 분량에 AI를 사용했고 그 또한 AI 생성 문장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주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했다. 그런데 만약 AI 생성 문장이 전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례가 생긴다면 어떠할까. 이 역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결정한 작가의 의도적 선택이 개입됐기 때문에 작가의 온전한 작품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창의성의 주체가 인간에서 AI로 미묘하게 이동했기 때문에 온전한 작품이 아니라고 봐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더 많은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② 서사 장치이자 문체 구현 도구로서의 AI: 마우로 하비에르 카르데나스 『어메리칸 앱덕션스』에콰도르 태생으로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마우로 하비에르 카르데나스는 AI와 문학의 융합에 적극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금융기관에서 사이버 보안 과학자들을 관리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소설 쓰기를 병행한다. 최근 작가는 자신의 소설 『아메리칸 앱덕션스(American Abductions)』 집필 과정에 AI를 활용했을 뿐 아니라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 다뤘다. 작품을 통해 AI의 냉철한 성격과 인간성 사이의 이중성을 탐구한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에 깊이 얽혀 있는 AI의 역할도 함께 조명했다.
이와 동시에 카르데나스는 초현실주의 작가이자 화가인 레오노라 캐링턴(1917~2011)의 문체를 AI로 구현했다. 1917년 영국 태생인 케링턴은 1942년 멕시코로 이주해 활동하며 당시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초현실주의를 여성화(Feminized Surrealism)’했다는 평가를 받는 화가이자 작가다. 그녀의 소설 역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의 문체를 가지는데 카르데나스는 케링턴 유족의 동의를 받은 뒤 작가의 문체를 사용해 자연어 처리(NLP, Natural Language Processing) 데이터셋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AI 학습을 거쳐 생성된 문장은 소설의 특정 챕터와 말하는 자동차 캐릭터인 ‘아다(Ada)’의 대사에 반영했다. 이처럼 카르데나스는 특정 작가의 문체를 AI에 학습시켜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과 캐릭터에 투영했다. 이는 적극적으로 AI 기술을 문학 작품의 서사에 개입시킨 실험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만 카르데나스 역시 AI가 결코 인간 작가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바라본다. 대신 그는 창의성의 확장 도구로서 AI에 주목한다. 이런 확장 시도의 일환으로 본인의 문체를 데이터 삼아 AI에 훈련시켜서 새로운 문장과 기존 문장 사이의 유사성을 평가하려 시도한다. 과거 문체와의 유사성을 피해 작가의 새로운 문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③ 주체적 결정권자로서의 AI 감독자 인간: 스티븐 마시 『작가의 죽음』캐나다 소설가 겸 언론인 스티븐 마시는 2023년 AI와의 협업을 본격화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미스터리 중편 소설 『작가의 죽음(Death of an Author)』이다. 스티븐 마시는 이 소설에 본명이 아닌 ‘에이단 마신(Aidan Marchine)’이란 작가명을 썼다. 마신은 본인의 이름(Marche)과 기계(machine)를 합친 단어다. AI 협업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특징을 반영한 저자명 표기라 할 수 있다. 마시는 소설 속 문장의 95% 이상을 AI로 생성했다. 앞서 쿠단 리에가 작품에 등장하는 대화 내용 가운데 약 5%만 AI 생성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비중으로 AI를 도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마시는 이 사실을 감추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냈으며 당당하게 자신이 “100% 이 작품의 창작자”라 주장했다. 작가가 전체 줄거리를 구상했고 구체적인 프롬프트 입력도 직접 했기에 AI가 세부 내용과 문장들을 생성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작가의 역할을 감독자로 상정했기에 가능한 견해다. 즉 작가가 문장을 한 땀 한 땀 명주실처럼 뽑아내듯 창작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전체 소설 구성에 있어 방향과 구조를 결정하는 디렉터로서 AI와 협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때 AI는 철저히 도구의 지위에 놓이며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작가에게 있다. 따라서 AI 생성 문장의 분량과 상관없이 인간 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결정 권한을 쥔다면 그 작품의 창작자는 여전히 인간이라는 게 마시의 시각이다.
다만 AI 문학의 저작권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AI 생성 문장이 반영된 작품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인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의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에 따르면 AI 산출물 자체는 저작물로 보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산출물에 인간의 창작성이 부가돼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서 저작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저작자 내지 저작권 귀속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스티븐 마시의 주장처럼 AI 생성 문장이 작품의 전체 비중에서 다수를 차지할 때도 이 역시 인간 작가의 결정과 선택이 작용한 경우 창작성을 갖춘 저작물로 인정받아야 할까. 작가가 최종 창작물에 관한 기획 의도를 사전에 가지고 원하는 결과물을 산출하기 위해 AI에 입력할 프롬프트를 고심하고 실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 AI 아티스트들은 이런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는다고 고백한다. 또한 AI 생성물을 전체 작품의 어느 부분에 삽입해야 할지 작가의 연쇄적인 선택이 이뤄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AI 협업 작품에 관해 세계적으로 축적된 판례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상태에서 이 경우 저작물성을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AI 시대 저자의 부활지금까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작가의 가치에 대해 말하면서도 AI와의 공존은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AI와 인간 작가와의 관계를 ‘종말’ ‘죽음’ ‘대체’ ‘침범’ 등과 같은 극적인 단어로 규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대응은 AI에 인간 존재의 고유성, 나아가 실질적 생계를 위한 일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사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서사가 곧 인생이듯 이제는 AI와의 관계를 사유함에 있어서도 섣부른 단정으로 논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프레임을 적용해야 한다. AI를 문학에 활용하는 과정에도 창작자의 노고와 선택이 들어갈 수 있으며 창의성이 반영될 수 있고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새로운 창작 형태와 작품 수용 방식, 나아가 또 다른 예술 장르가 탄생할 있다. 이미 챗GPT를 초기 작품 구상 단계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창작자들이 많고 AI가 개별 대상 맞춤형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작품 속 등장인물과 대화하며 상호작용 경험을 하는 등의 흥미로운 시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미래에 생성형 AI가 창작에 적극적으로 도입될수록 필연적으로 저자의 부활이 일어날 거라 전망한다. AI에 대체되지 않는 작가 정신을 더 조명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본질적으로 예술가는 작품 생산자 그 이상으로 삶을 살아내고 성찰하며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는 ‘존재의 문제’와 닿아 있다. 그리고 작품의 독자, 감상자는 누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창작했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작가가 과거부터 최근까지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과 언론 인터뷰, 심지어 가족과 측근이 바라본 한강 작가에 관한 이야기 등에 관한 기사가 넘쳐나는 것만 봐도 이런 대중의 호기심을 알 수 있다. 대중은 작품뿐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 이 작품을 창작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 고유의 목소리뿐 아니라 어떠한 경험 데이터를 체화한 사람인지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오히려 더 강해질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그 인생에서 느낀 희로애락을 경험 데이터로 삼아 작품으로 풀어낸다. 영국의 소설가 헨리 그린은 “작가의 문체는 작가 자신”이라 말했으며 마틴 에이미스는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저자의 목소리”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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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삶, 경험, 고뇌, 감정 등을 바탕으로 창작하기에 독특한 목소리와 내러티브를 가진다. 한 사람의 존재는 그 사람이 쌓아온 인생의 서사가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되는 언어의 집과 같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뒤집으면 ‘존재가 언어의 집’이다. 작가의 진정성이 주는 고유한 울림은 그 무엇보다 깊고도 진하다. 제아무리 AI 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인간이 인간을 알고 싶은 마음, 한 사람의 고유한 경험과 철학을 기반으로 노고를 거쳐 빚어낸 작품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는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다. AI와의 협업이 일상화될수록 오롯이 작가의 고독한 사색의 시간을 거친 글귀와 서사를 마주하고 싶은 마음은 퇴색되지 않고 더 굳건히 변치 않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