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정보·정책의 전파는 AI로 넓히고
최상위 고객과의 관계는 사람이 맡아야
Article at a Glance
AI는 고객 정보를 기억하고 개인화하는 비용을 낮춘다. 그 결과 ‘브랜드가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한 인정의 증거가 되기 어렵다. 럭셔리의 가치는 정보 저장이나 기본 추천이 아니라 담당자의 시간, 현장의 재량, 희소 상품과 접근권처럼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배분하는가에 남는다. 따라서 브랜드는 AI가 절약한 시간을 단순히 처리량 확대에만 쓰지 말고, 어떤 고객 관계에 다시 투자할지 전략적으로 정해야 한다. 동시에 AI는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기 전 후보군을 좁히는 새로운 관문이 된다. 브랜드는 제품 정보·정품·이력·정책을 외부에서 검증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 AI에 정확히 읽혀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선택되지는 않는다. AI 관문을 통과한 뒤의 선택은 여전히 사람, 매장, 서비스, 관계의 경험에서 이뤄진다. 결국 럭셔리의 과제는 ‘기억과 사실 확인’은 넓히되 ‘인정과 관계’는 누구에게 남길지 분명히 구분하는 데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최상위 등급 ‘트리니티’에 들어가려면 얼마를 써야 할까.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다. 그해 구매액 순위에서 999위 안에 들어야 한다. 즉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를 통해 자격이 결정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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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의 에비뉴엘 블랙에 들어가기 위한 기준도 2026년부터 ‘매출 최상위 777명’으로 기준이 명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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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은 금액 기준으로 선정하던 ‘쟈스민 블랙’ 등급 위에 사내 기준으로 선정하는 최상위 등급을 신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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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관리의 기준이 ‘금액’에서 ‘인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가격 인상 등으로 최상위 등급 고객이 늘어나면 VIP의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백화점들은 일정한 정원을 두고 최상위 고객 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반면 고객 응대에서는 정반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백화점들은 AI를 활용해 더 많은 고객의 취향과 구매 이력을 파악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스템만 갖추면 고객 한 명을 더 기억하는 데 드는 비용은 크지 않다.
두 전략은 각각 합리적이지만 나란히 놓으면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백화점은 ‘몇 명에게 VIP 자격을 줄 것인가’는 엄격하게 관리하면서도 ‘몇 명의 고객을 기억할 것인가’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경험은 럭셔리의 중요한 차별점이었다. 판매 담당자(SA)는 고객이 무엇을 샀는지뿐 아니라 선호하는 색과 스타일, 어떤 목적으로 제품을 구매했는지까지 기억했다. 그런데 AI의 등장으로 이 ‘기억’의 희소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기억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값비싼 기억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옮겨갈 뿐이다. 그런데 그 이동은 브랜드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기 전 어떤 브랜드를 검토할지 정해지는 단계에서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