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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w York 단 한 줄의 캠페인 ‘공포의 도시’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178호 (2015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 혁신

 1970년대 초 만해도 더럽고 위험한 도시였던 뉴욕은 젊은이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몸값이 급상승했다. 희망이 없어보였던 도시를 재건시킨 것은 I♥New York이라는 한 줄의 슬로건이었다. 이를 통해 뉴욕시 주민들은 장밋빛 희망을 갖게 됐다. 뉴욕시는 타임스퀘어의 볼거리, 브로드웨이 조명, 금융센터 등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높은 범죄율과 교통체증 등의 단점은 숨기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뉴욕은 결국 도시 재생의 표본으로 거듭났다. 또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엄청난 갈등 속에보존 속 개발이라는 절충안을 펴냄으로써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됐다.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생활하기 가장 좋은 도시가 어디일까? 안전성, 생활비, 다양성, 음식 및 패션 등 10여 개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2013년 캐나다 토론토, 2014년 프랑스 파리에 이어 2015년 미국 뉴욕이 1위로 떠올랐다. 서울은 21위였다.

 

생활 지수 산정을 주도한 시민단체청년도시들(YouthfulCities)’의 공동창업자 소냐 미오코비치는세계 인구의 절반이 30세 이하이고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 도시가 청년들에게 매력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게 돕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뉴욕이 어떤 도시였나. 더러운 지하철과 범죄로 유명한 도시 아니었나. 어떻게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뉴욕을 젊은이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곳,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만든 것은 단 한 문장의 홍보 슬로건이었다. KOTRA 북미지역총괄본부장을 지낸 저자가 들려주는 뉴욕의 이미지 변신의 비결을 들어보자.

 

1970년대 초 뉴욕은 청소부들이 파업에 나서 길거리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던 곳이다. 지하철에는 험악한 낙서가 가득했고 공항과 기차역, 심지어 호텔에까지 소매치기와 강도가 들끓었다. 당연히 맨해튼에 있는 사무실 빌딩과 호텔은 텅 비어갔고, 기업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노동자에게는 우호적이고 기업에는 비우호적인 도시, 범죄자들이 들끓는 도시라는 평판이 확산되며 뉴욕은 점점 황폐해졌다.

 

인종의 용광로, 비즈니스의 용광로

뉴욕 비즈니스 산책

엄성필 지음, 한빛비즈, 2014

 

더 이상 손놓고 앉아만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뉴욕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1971년 결성된더 좋은 뉴욕을 위한 모임(ABNY·Association for a Better New York)’이 그것이다. ABNY는 정부 고위관료 및 파워 브로커들을 초청해 조찬간담회나 강연행사를 가졌다. 모임에 초청된 정부 고위관료에게 ABNY는 세금 감면, 임대료 규제 완화 등 친비즈니스 정책을 펼치도록 건의했고, 이는 상당 부분 관철됐다.

 

ABNY는 뉴욕의 치안 강화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자비를 들여 모든 경찰에게 방탄조끼를 지급했다. 그리고 각 건물을 지키는 도어맨들에게 무전기를 지급하면서 범죄를 발견할 경우 바로 경찰에 연락하도록 했다. 또한 24시간 작동되는 폐쇄회로(CC)TV를 타임스퀘어에 설치해 경찰이 직접 감시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도시의 거리를 감시하기 위해 최초로 설치된 CCTV로 기록됐다.

 

또한 ABNY는 뉴욕관광청과 함께빅애플캠페인을 전개했다. 수십만 개의 사과 모양 옷핀, 스티커 등을 제작해 비즈니스맨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눠주며 뉴욕을 홍보했다.

 

그러나 ABNY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뉴욕시의 재정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은행연합회는 뉴욕시가 채권을 결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1975년 초 뉴욕시의 채권을 모두 팔아치웠다. 그리곤 1975년 새로 취임한 아브라함 D. 빔 뉴욕시장의 채권보증을 거부함으로써 뉴욕시는 아예 채권시장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돼 버렸다. 결국 뉴욕 시장은 1975 5만여 명에 달하는 뉴욕시 소속 계약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고였다.

 

그러자 경찰과 소방노조를 비롯한 공공안전노조 등은 이에 반발해 새로운 캠페인을 준비했다. 이름하여공포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캠페인이었다. 노조는뉴욕 방문자를 위한 생존가이드(Welcome to Fear City-A Survival Guide for Visitors to the City of New York)’라는 4쪽짜리 팸플릿을 100만 부나 인쇄해 배포했다. 이 종이엔 두건을 쓴 해골을 비롯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귀가 포함돼 있었다.

 

- 오후 6시 이후 거리에 나돌아 다니지 마라.

- 걷지 마라.

- 대중교통 이용을 피하라.

- 호텔 방에 귀중품을 놓고 외출하지마라.

- 화재를 조심하라.

 

 

지금 들어도 섬뜩한 내용이다. 도시 곳곳에 이러한 내용이 담긴 팸플릿이 퍼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폭발 직전의 긴장감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뉴욕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이렇게 망가진 경제적 손실이 160억 달러에 규모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보고는 뉴욕을 다시 한번 관광 및 마케팅에 집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당시 뉴욕의 브랜딩 정책을 총괄한 사람은 1977년 선출된 휴 캐리 뉴욕 주지사였다. 그는 뉴욕상무부와 함께 뉴욕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뉴욕상무부는 뉴욕시의 관광과 관련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설문 결과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뉴욕상무부는 시장조사기관의 조언에 따라 타임스퀘어의 볼거리, 브로드웨이의 조명 등을 강조하고 풍부한 자연환경, 금융센터 등을 내세우는 쪽으로 홍보 방향을 설정했다. 그리고 범죄, 교통 체증, 높은 노조 가입률 등의 부정적인 내용은 감출 것을 지시했다. 장점을 강조하고 단점은 숨기는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I♥NY라는 뉴욕 로고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밀튼 글레이저가 디자인을 맡았는데 이 작품은 마케팅 도구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로고는 사실 글레이저가 뉴욕시의 의뢰를 받고 고민하던 중 우연히 냅킨에 스케치한 것이었다.

 

로고는 뉴욕 주의 관광 상품에도 잘 어울렸다. TV 광고와 인쇄광고물에서도 눈에 띄는 매력을 발산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지식재산권을 요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하게 한 뉴욕상무부의 전략 덕택에 I♥NY 로고는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는 소비와 관련된 바이럴 마케팅의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I♥NY 캠페인 속 긍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뉴욕은 점점 통제 불능의 상황이 돼가고 있었다. 장기 실업, 공공 서비스 중단 및 축소,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 폐지, 방화 등 계속되는 악재 때문에 뉴욕의 주민들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다수 뉴요커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현실이었고 애써 이룩한 뉴욕의 이미지마저 조금씩 상해갔다. 뉴욕은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됐다.

 

I♥NY에 담긴 이미지는 뉴요커들의 일상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뉴욕시 당국은 I♥NY 캠페인으로뉴욕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환상을 심어주려는 뉴욕시의 전략은 조금씩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I♥NY 티셔츠를 입고 기꺼이 캠페인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I♥NY은 일반 대중에 유토피아적 충동을 일으킨 셈이 됐고, 이러한 충동은 정치적으로 쉽게 이용됐다.

 

이와 더불어 뉴욕 주 및 시 당국은 뉴욕에 대한 인쇄물, TV 광고, 가이드, 상업광고 등을 만들면서 5번 애비뉴의 쇼핑, 브로드웨이 극장, 세계무역센터 근처의 새로운 나이트라이프 등 맨해튼 3개 지역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즉 뉴욕은 방문하기 좋은 곳이고, 돈 벌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홍보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홍보 전략이 먹혀들었는지 여러 곳으로부터 뉴욕 관광패키지에 대한 요청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뉴욕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급증해 1976∼1977년 사이 관광객 증가율은 56.7%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전체 관광객 수가 0.1% 늘어난 것과 비교해 엄청난 수치다.

 

 

결론적으로 뉴욕은

도시 재생의 표본이다.

보존 속의 개발이라는 절묘한

개발방식을 통해 뉴욕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I♥New York이라는 단 한 줄의

슬로건에서 시작됐다.

 

I♥NY 캠페인을 시작한 지 2년째이 지나자 I♥NY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가 되고 가장 성공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됐다. 더불어 I♥NY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뉴욕 주와 뉴욕시가 추진해온 비즈니스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후반 뉴욕은 관광객의 천국이 됐고 1980년대에 들어서도 이와 같은 추세는 지속됐다. 비즈니스 출장자, 컨벤션 참가자,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으며 그들은 뉴욕 곳곳을 누비며 많은 돈을 썼다. 이에 맞춰 럭셔리 호텔, 관광시설 등도 많이 지어졌다. 바야흐로 뉴욕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단 한 문장의 슬로건이 만들어낸 뉴욕 이미지의 변신은 스타트업 비즈니스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를 넘어서는 실리콘앨리(Silicon Alley)가 형성된 것이다.

 

뉴욕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티켓보다 훨씬 더 구하기 어려운 티켓이 있으니 바로스타트업 쇼티켓이다. 2004년 창설돼 33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뉴욕테크미트업(NY Tech Meetup)이 주관하는 쇼로 매월 10개 남짓의 스타트업 기업에 그들이 어떤 업체인지 소개할 기회를 준다. 이 쇼를 보기 위해 벤처캐피털, 투자가, 엔지니어, 컨설턴트, 학생, 경쟁 기업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뉴욕 맨해튼에서 IT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입주한 실리콘앨리는 원래 1990년 뉴욕의 1세대 닷컴기업들이 군집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IT 기업들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이제는 뉴욕의 IT 산업 자체를 뜻하는 용어로 통하게 됐다.

 

실리콘밸리와 실리콘앨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 대상이다. 실리콘앨리 사람들은 실용적 정신을 중시한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보다 상업적이다. 뉴요커들은 사업을 통해 돈을 벌기를 원한다. 그래서 뉴욕의 대다수 창업자들은 엔지니어가 아닌 기업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비즈니스를 우선으로 한다.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의 응용과 상용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실리콘앨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에는 실리콘앨리와 실리콘밸리의 확실한 차별점이 등장했다. 미국의 도시들 중에서 최초로 ‘.nyc’라는 인터넷 도메인을 갖게 된 것이다. 앞으로 뉴욕 기반의 스타트업들은 ‘.com’ 대신에 ‘.nyc’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뉴욕 출신이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 표시인 셈이다. 또 이는 뉴욕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명곡뉴욕, 뉴욕의 가사 한 대목은내가 거기서 성공한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어(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시대로부터 19년 뒤 제이 지는난 여기서 성공했으니까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지(Since I made it here, I can make it anywhere)’라고 노래한다.

 

한때 세계의 기업들이 손사래를 치며 떠나갔던 뉴욕, 더럽고 무서운 도시의 대명사였던 뉴욕은 이제 I♥New York 로고를 새긴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릴 만큼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뉴욕이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지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뉴욕은 도시 재생의 표본이다. 그 힘은 무엇일까? 뉴욕의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존 속의 개발이라는 절묘한 개발방식을 통해 뉴욕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은 I♥New York이라는 단 한 줄의 슬로건에서 시작됐다. 바로 이것이 뉴욕의 DNA이자 성공 방정식이다.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뉴욕의 리브랜딩 전략에 버금가는 국가, 도시의 브랜드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 Hyper-personalization 2020년 3월 Issue 1 목차보기